제20화. 첫 공식 일정 (1)
“오늘 하루 고생하셨습니다. 들어가세요.”
“너 오늘 일할 수 있겠냐?”
퀭해 보이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차태수가 나를 보며 걱정해줬다.
“해야죠, 뭐. 시간 좀 지나면 각성 들어가서 안 졸릴 거예요. 익숙합니다.”
“벌써 체력 그렇게 쓰면 너 애들 감당 못 한다. 고생해라.”
“네. 들어가세요.”
그렇게 회사 앞에서 헤어졌다.
차태수는 촬영할 때 차에서 좀 자둬서 그런지 쌩쌩했다.
뒤에 있던 이예진은 피곤했는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곯아떨어졌다.
이예진과 차태수를 보내고 회사를 둘러보았다.
회사 앞은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
오늘 하루는 정말 길겠구나.
핸드폰을 보니 오전 7시 20분이었다.
차 빼서 애들 숙소로 가면 시간이 딱 맞을 시간이었다.
회사에서 차를 빼서 스타즈 숙소로 가기 시작했다.
지잉. 지이잉. 지잉
숙소로 가고 있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김현진입니다.”
- 현진아. 한 시에 사전 녹화인 건 알고 있지?
방금 일어난 듯 잠에서 덜 깬 남진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시간에 전화할 사람은 남진수밖에 없지.
“네.”
- 애들 샵 갔다가 밥 먹일 수 있으면 먹이고 빠르게 들어가. 그리고 가서 사전 녹화 참여하러 온 팬들한테 주의 사항 꼭 알려주고. 어차피 팬클럽 운영진에서 모인 팬들에게 이야기는 했겠지만 한번 짚고 가.
이건 중요하다.
이번이 첫 공식 행사기 때문에 시작부터 삐걱거리면 서로 힘들어진다.
근데 남진수는 왜, 마치 안 올 것처럼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그럼 언제 오세요?”
“일단 샵은 너 혼자 애들 데리고 가고. 나는 스타일리스트들이랑 같이 사녹 장소로 갈게. 혹시 늦을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꼭 귀찮은 거만 나한테 맡기는 거 같다.
어딜 가나 말단이 제일 고생이야.
운전하면서 졸 수도 있으니 노래나 들으면서 가야겠다.
* * *
애들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하기 전에 편의점에 들러 에너지 드링크와 껌을 샀다. 에너지 드링크는 그 자리에서 바로 마셨고 껌은 운전할 때마다 씹을 목적이었다.
차라리 음악방송 하는 날이면 기다리는 동안 잠이라도 잘 수 있었을 텐데.
애들에게 전화해서 내려오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애들 숙소에서 애들이 나오는 게 보였다.
“굿 모닝~”
헬 모닝이다.
“어. 좋은 아침.”
“왜 이렇게 힘이 없어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걸그룹이 오고 있는데!”
지영아. 너도 잠 안 자면 눈앞에 뵈는 게 없을 거야.
“시끄럽고. 빨리 타.”
“와, 개매정해.”
“혜연이 오늘 컨디션 좋나 보네.”
“아, 아뇨.”
“언니. 빨리 타.”
“흥~ 흥~ 흥~♪”
박혜연도 서지영을 따라 태클을 걸었지만 내가 무표정으로 이야기하자 바로 움츠러들었다.
뒤를 이어서 린이랑 콧노래 부르는 유코가 탔다.
“언니. 핸드폰 그만 보고 빨리 좀 가면 안 될까? 차에서 봐도 되잖아.”
“알았어~”
유미소가 이나라를 끌고 왔고 그 뒤로 신희진이 젤리를 먹으면서 걸어왔다.
내가 아침을 안 먹어서 그런지 아침부터 뭘 먹는 사람 보면 신기했다.
아침에 먹을 게 넘어가나?
“다 왔지?”
“넹!”
“Check~ Check~”
서지영이 오늘 흥을 주체할 수 없어 했다.
“이.”
“냠. 신.”
“유.”
“유.”
“서.”
“박.”
“린.”
“다 왔어요!”
“알았어. 그럼 출발할게.”
“제군들 돌격하라!”
싸우러 가니 지영아?
하루 쉬고 와서 그런지 나와 반대로 다들 에너지가 넘쳤다.
배터리 풀 충전 된 애들을 데리고 샵으로 갔다.
무척 시끄러워서 졸린 게 달아나 버렸다.
* * *
샵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을 보고 있으면 항상 새롭다.
샵 들어가기 전에는 영락없는 학생들인데 샵에 들어갔다 나오면 연예인이다.
여자 아이돌은 풀 메이크업이 아니어도 예쁘지만, 전투태세에 들어간 여자 아이돌은 대비가 장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와, 누구세요?”
“스타즈입니다!”
서지영과 신희진이 둘이 서로 마주 보면서 놀고 있었다.
“왜 이렇게 이쁘세요?”
“언니는 진짜 너무 예뻐.”
“우리 이쁜 지영이~”
“꺗. 껴안지 마! 메이크업 지워져!”
얼씨구. 놀고들 있네.
그 와중에 나라는 아침부터 핸드폰으로 기사만 보고 있었다.
“나라야. 너 핸드폰 그만 봐라. 악플 보면 멘탈 나갈 거면서.”
“괜찮아요. 악플은 너아누 하면서 미친 듯이 달렸어요. 견딜 만해요.”
서바이벌 프로그램하면서 일곱 명 중 가장 많은 악플을 받은 게 나라였다.
진짜 상상도 못 할 악플도 많았는데 자기 관련된 기사 댓글은 다 확인하는 게 버릇이라고 했다.
연예인 중에선 자기 기사 댓글 확인 안 하는 사람도 많다.
오히려 보고 정신병원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안 보는 게 제일 좋은 거다.
피드백을 빠르게 얻을 수 있는 점은 좋으나 멘탈이 유리 멘탈이면 버티기가 힘들다.
그런 점에서 이나라는 강철 멘탈이었다.
사건 사고 터지는 1년 내내 기사 댓글 확인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활동했던 게 이나라였다.
속으로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안 되지만 겉으로 봤을 때는 그때도 웃으면서 활동했었다.
이번에는 가식적으로 웃는 게 아닌 진짜 웃음으로 1년을 보냈으면 좋겠다.
애들 모습을 보면서 운전하다 보니 어느새 K.NET 홀이 보였다.
“도착했다.”
“와, 여기 오랜만에 오는 것 같애.”
“오랜만에 온 거 맞을걸? 우리 서바이벌 공식 곡 부를 때 여기 온 뒤로는 안 왔잖아.”
깡충깡충 뛰는 애들 모습을 보니 오랜만에 온 K.NET 무대에 들떠 있는 것 같았다.
주차장에 들어가 차를 주차하고 올라가려는데 남진수와 스타일리스트들이 다가왔다.
벌써 도착해 있었구나.
“왔네. 올라가자.”
“네.”
“현진이 너는 밖에서 도시락 좀 받아서 와. 홀 앞에서 받으면 돼. 업체는 굿 도시락이야.”
“알겠습니다.”
오자마자 바로 뺑이치게 됐다.
K.NET 홀 앞으로 가 도시락 업체를 기다리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쇼케이스에서도 봤던 그 진성 팬이었다.
팬도 날 보더니 바로 나에게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스타즈 관계자분이시죠?”
뭐지?
“네? 관계자는 맞긴 한데. 어떻게 아셨죠?”
“쇼케이스 엔딩 무대 때 올라와서 애들 사진 찍어주셨잖아요.”
아, 맞다. 그때 얼굴 팔렸었구나.
“오늘 사녹 때문에 오신 거죠? 팬 매니저분은 어디 계신가요?”
“아, 팬 매니저가 지금은 없고요. 일단 제가 로드 매니저 겸 팬 매니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혹시 오늘 어디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입장해야 하나요?”
“일단 애들 줄 도시락 좀 받고 팀장님이랑 이야기한 뒤 알려드릴게요. 따로 팬클럽 측에서 인원 통제하시지 않나요?”
“저희가 인원 뽑아서 커팅은 했는데 안에 다 들어갈 수 있나 해서요. 이게 결국 방송국 마음대로기도 하고 따로 연락받은 게 없어서요.”
음악방송은 방송국이 갑 오브 갑이다.
방송에 관련해서는 최대 갑은 방송국. 그다음이 아이돌. 그리고 그다음이 팬인 것이다.
갑, 을도 못 되는 병이 팬이다.
그래도 다행히 스타즈는 K.NET의 모회사와 같은 계열이라서 푸시를 다른 기획사들과 비교도 안 되게 받기도 하고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왜 스타즈가 편의와 푸시를 받는다고 느꼈냐면 원래 K.NET 음악방송은 스케줄이 팬들 배려 안 하고 뭐 같이 짜기로 유명한 방송국이다.
가령 새벽 2시에 사전 녹화를 시작한다던가, 새벽 4시에 시작한다던가 아주 엿 같은 스케줄로 팬들 대가리 깨는 방송국이다.
원래는 오늘 저녁에 사전 녹화를 했었다.
오후 7시 촬영을 시작해서 12시에 끝났었다.
12시에 끝난 것도 팬들이 통제를 안 따라주고 사전 녹화 때 핸드폰으로 무대를 촬영한 게 걸려서다.
사전 녹화가 음악방송 전날 녹화하기 때문에 무대가 유출될 경우 무조건 다시 찍게 되어 있다.
정상적으로 촬영을 했다면 9시에 집에 가야 했는데 12시로 바뀐 거였다.
근데도 계속 팬들 입장을 허락해주고 다시 찍은 걸 보면 스타즈에게 편의를 엄청 봐주고 있다는 걸 못 느끼면 멍청한 거였다.
“일단 밖은 추우니까 홀 안에 들어와서 대기하셔도 될 거 같아요.”
“네? 그래도 돼요?”
돼. 우리 빽이 담연이다. 안 될 리가 있나.
지금 한창 잘나갈 때라 미친 짓만 안 하면 모든 편의가 오케이일 거다.
“저희 모회사가… 아시죠? 괜찮을 거예요. 일단 전 도시락 좀 건네주고 다시 오겠습니다. 홀 안에서 기다려 주세요.”
팬과 이야기하느라 도시락 기다리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도시락 업체가 도착한 게 보여 도시락을 받고 대기실로 향했다.
대기실에서는 애들이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 찍고 놀고 있었다.
오늘부터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이벤트를 시작해 봐야겠다.
“밥 왔습니다.”
“와~ 밥이다!”
“와~”
“너희 어제 실컷 먹었잖아. 희진이 빼고 다 1kg 이상씩 쪄서 왔지?”
“에이, 무슨 말이세요. 아침에는 원래 평소보다 1kg 더 쪄 있는 게 정상이에요. 밥 먹으면 2kg 찌구요.”
아침이라 제일 몸무게 적게 나갈 때 아니니? 미소야?
그래도 무대가 있는 날은 샐러드만 먹이지 않고 밥을 먹인다.
체력 소모가 생각보다 심하기 때문에 샐러드만 먹이면 쓰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맘대로 해라. 체중 관리 못 하면 너희만 흑역사 남는 거지 뭐. 저번에 누구더라? 그 핑크베리에 걔. 아무리 비시즌이었다지만 시즌일 때보다 살찐 상태로 방송 나가서 조리돌림 엄청 당하더만.”
남진수가 걱정되는지 애들에게 잔소리 폭격을 시작했다.
아이돌그룹은 시즌과 비시즌으로 나뉜다. 시즌은 앨범 활동을 하는 시기. 비시즌은 말 그대로 휴식기다.
보통 체중 관리는 앨범 활동 계획이 잡혀 있을 때부터 시작하는데 비시즌은 그래도 편히 쉬라고 체중 관리는 크게 터치하지 않는다.
남진수가 말한 여아이돌도 비시즌에 방송을 나왔는데 체중 관리 실패로 인해서 방송 끝나고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계속 조리돌림 당했었다.
남자 아이돌도 똑같다. 단지 티가 덜 날 뿐.
“팀장님. 밖에 팬들 기다리고 있던데 일정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벌써 와 있어? 어차피 명단제라 일찍 올 필요는 없을 텐데. 일단 12시 30분에 입장하고 1시 녹화 시작. 녹화는 총 3번. Lovely 무대 두 번 찍고 지금, 이 순간 무대 한 번 해서 3번 찍을 거야. 예상 녹화 종료 시간은 2시인데 2시에 끝나려나 모르겠네.”
남진수는 말을 하면서 미간을 찡그린 채 걱정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팬들한테 개인 멘트나 촬영 절대 하지 말라고 해. 우리 오늘 저녁에 단관 스케줄 있어서 촬영 딜레이 걸리면 골치 아파.”
“네. 알겠습니다.”
이번엔 저번과 다르게 다음 스케줄이 잡혀 있는 상황이라 어떻게든 딜레이가 걸리면 안 됐다.
한창 밥 먹고 있는 애들에게 다가가 폴라로이드 사진에 사인 좀 해달라고 이야기했다.
“얘들아. 밥 먹으면서 폴라로이드 사진에 사인 좀 넣어줄래? 팬들한테 이벤트 형식으로 뿌리려고.”
“어. 이미 해놨어요!”
나이스. 역시 나라야. 너밖에 없어.
이나라한테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건네어 받았다.
멤버별로 4장씩 있었다. 오늘 무사하게 진행되면 사녹으로 2장씩 총 14장. 단관 때 14장 뿌리면 될 것 같다.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는데 눈에 띄는 사인 멘트가 있었다.
‘배고파요. 여러분은 밥은 먹고 있으시죠?’
희진아 먹성 자랑은 거기에다가 안 해도 돼.
* * *
이제는 정신이 뚜렷해지고 기운이 펄펄 넘치기 시작했다.
나는 밤을 새우고 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아주 멀쩡해진다.
평소보다도 더.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걸 각성상태라고 부르고 있다.
각성상태가 얼마나 갈까?
저녁 예능 단관 및 팬사인회만 끝나면 오늘 일정은 끝인데 내 몸이 버틸 수 있을까.
이대로만 가자.
애들 고비를 넘겨줘야 하는데 내가 고비가 온 거 같다.
젠장.
팔팔한 상태로 팬들이 있는 홀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방송국 스튜디오 쪽에서 나오니 팬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이 일제히 나를 보니 무언가 섬뜩했다.
“어. 푸우다!”
뭐 임마?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