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시작은 천천히 (1)
지금, 이 순간.
이 노래의 경우에는 스타즈가 데뷔하기까지의 감정을 토대로 작사한 곡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스타즈가 노래에 감정 이입하기에도 좋은 곡이다.
게다가 바로 직전에 부모님 영상도 같이 봤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예전에도 이 구성은 똑같았다.
그리고 팬들 또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처음부터 같이 커왔기 때문에 팬들에게도 효과는 좋았다.
“지금 이 순간 꿈꿔 왔던 우리”
“지금 이 순간 너와 나의”
노래를 부르면서 감정이 북받치는지 올라가기 전보다 눈시울이 더 붉어졌다.
조만간 터질 것 같았다.
팬 중에는 몰입이 심하게 되었는지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행복한 분위기라 그런지 분위기 자체는 침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노래 도중에 신희진이 너 울어? 하면서 놀리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자칫 잘못하면 분위기가 요상해질 뻔했는데 무대 위에서 애들이 잘 컨트롤 해주고 있었다.
어느덧 노래가 다 끝나갔다.
전날 내가 의견을 제시했던 특수효과도 뿌려지면서 애들을 더 돋보여주고 있었다.
쇼케이스가 가을 냄새로 뒤덮였다.
시기상 지금이 가을이기도 했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함께해”
노래가 끝나자 우후죽순 팬들이 자기 할 말을 하고 있었다.
와아아!
고생했어!
꽃길만 걷자!
사랑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스타즈 애들은 끝나자 정신없이 인사하느라 바빴다.
쇼케이스가 생방송으로 나가는 거라 정해진 시간은 칼같이 지켜야 했다.
“지금까지 스타즈의 쇼케이스였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많이 사랑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윽고 무대를 마무리 짓고 다시 백 스테이지로 넘어왔다.
“잘했어.”
“이제 방송은 끝난 거죠?”
“어. 일단 편한 옷으로 입고 다시 와.”
“네.”
안 보였던 남진수가 다가와 애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방송은 여기서 끝이었고 마지막 현장 엔딩무대가 하나 남았다.
앨범에도 있는 스페셜 트랙.
멤버들 본인들이 작사한 노래. 일기장이다.
“드디어 애들 데뷔 무대도 끝나가네요.”
“이제 고생 시작이지. 한동안은 엄청나게 바빠질 거야. 전략에 따라 다르겠지만 활동 끝나면 좀 쉬겠네.”
지금까지는 스타즈가 쇼케이스 아니, 거의 콘서트에 육박한 쇼케이스를 준비하느라 매니저로서는 생각보다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스타즈가 데뷔했으니 빡빡한 스케줄이 진행된다.
물론 나와 같이 움직이는 스타즈가 더 바쁘겠지만.
2일 후면 리얼리티 프로그램 단체 관람과 함께 첫 팬 미팅이 있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음악방송 스케줄이 쭉 잡혀 있었다.
스케줄을 곰곰이 되짚고 있었는데 무대에서는 김민성 MC가 아직 스타즈가 팬들에게 할 말이 남았다며 나가지 말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역시 MC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말을 어떻게 저렇게 하면서 시간을 끌 수가 있을까? 아나운서 출신이라 그런가?
김민성이 열심히 시간을 끌고 있던 사이에 스타즈 애들도 간편한 옷을 입고 백 스테이지로 왔다.
무대 스태프가 김민성에게 애들 준비 됐다고 연락을 했고, 김민성 MC는 능숙하게 진행하면서 애들을 다시 소개했다.
“네! 쇼케이스 현장에 오신 여러분들을 위해 스타즈 멤버들이 특별히 준비한 무대가 있다는데요. 궁금하시죠? 그럼 지금 바로 함께 만나보시죠!”
김민재의 말에 애들도 무대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어서 일기장의 MR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기장은 본인들 파트에는 본인들이 직접 작사한 대로 노래한다.
게다가 본인들이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직접 작사한 거라 그런지 전의 곡보다 감정 이입하기 더 수월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 걸까.
방송이 끝나서 그런지 아니면 노래를 부르다 감정 이입이 돼서 그런지 지영이와 혜연이가 노래를 울면서 하고 있었다.
팬들도 딱히 뭐라 위로할 분위기는 아닌 것 같이 느꼈는지 그냥 잠자코 무대를 보고 있었다.
잔잔한 분위기에 데뷔 무대 마지막 스페셜 무대로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도 무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 무대를 봤을 때는 어린 친구들이 참 고생이 많았구나 싶었고 지금 두 번째로 봤을 때는 이번에는 불꽃 길이 아닌 꽃길을 걷게 해줘야겠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스타즈 애들도 불꽃 길을 걷고 싶었겠냐만.
상황과 환경이 그렇게 몰고 갔었으니까.
지금 웃기게도 정말 사소하게 방송 프로그램 방향이 바뀐 것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었다.
순위가 변동되었고, 팬들의 성향이 많이 온순해졌으며 애들과의 친밀도도 달라졌다.
겨우 이 정도로 이렇게 바뀌었는데 1년의 행보를 알고 있는 내가 더 좋게 그리고 더 높게 날 수 있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단순히 첫 단추를 잘 끼워서 그런 걸까?
그리고 이렇게 바뀌어 가는 모습들을 보니 생각보다 더 짜릿했다.
“아, 참. 현진아. 내일은 회사 안 나와도 돼. 하루 휴가야.”
“휴가요?”
“어. 데뷔 기념으로 오늘 끝나고 내일까지 스타즈 포함 담당 인원들 전원 휴가.”
나는 이 이유를 알고 있다.
예전에도 똑같이 줬었거든.
“이유는 뭔지 알 거 같은데요. 휴가 끝나고 휴일이 없어서 주는 건 아니겠죠?”
“아니. 그게 정답이야.”
그렇다. 데뷔한 아이돌. 그것도 화제성 높은 아이돌이다. 안 바쁠 수가 있을까?
나도 이때부터 너무 바빠 집 갈 시간도 아까워서 회사 근처에 쪽방을 잡아서 거기서 잠만 잤다.
집으로 오고 가며 하는 시간 동안 잠이라도 좀 더 안 자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예전처럼 미련하게 버티다 구하지 말고 내일 바로 방을 구해야겠다.
남진수와 이야기하다 문득 쇼케이스가 끝난 지금 화제성이 얼마나 높은지 궁금해서 검색 사이트 창을 켜봤다.
[↑1위 스타즈]
[↑2위 스타즈 쇼케이스]
[↓3위 송지혜]
[↓4위 화랑]
[New 5위 이예진]
실시간 검색창 위쪽만 잠깐 봤는데 1, 2위가 둘 다 스타즈 이야기였다.
확실히 화제성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즈 애들은 노래를 끝내고 팬들과 만담을 하고 있었다.
“잘 들으셨죠~ 여러분~!”
“여러분 지영이랑 혜연이가 18살 먹고 운대요.”
“안 울어.”
“눈에 뭐가 좀 들어가서요. 아까 낙엽이 눈에 들어갔나?”
안 운 척하는 모습이 상당히 우스웠다.
팬들도 붉어진 눈시울을 보고 아니라고 하는 둘을 보고 웃고 있었다.
“울보래요. 울보래요.”
“울보. 울보.”
멤버들이 합심해서 박혜연과 서지영을 놀리고 있었다.
유코야. 왜 놀릴 때는 발음이 정확해지는 거니?
“방송에 안 나가니까 조금 더 길게 해도 되죠?”
“퇴근하셔야 한다고요? 네? 아 정해진 시간이 있다고요? 아….”
“그럼 딱 10분만 쓸게요!”
유미소랑 이나라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잘 이끌어 가고 있었다.
예전에는 무대만 하고 후다닥 내려왔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소통하고 끝내기로 했다.
무슨 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었고 방송 중에는 생방송이라 말을 좀 더 조심했는데 지금은 자유롭게 하는 느낌이었다.
“…오빠.”
“푸 삼촌!”
날 불렀나? 잘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날 왜 부르지? 근데 저거 마이크에 대고 날 불렀던 거야?
Oh my goddd.
무대를 보니 나보고 사진 찍어달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배경을 관객석 쪽으로 해서 쇼케이스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듯했다.
일단 급히 무대로 나갔다. 무대로 나오니 쇼케이스 현장의 열기가 확 느껴졌다.
그리고 애들은 내가 나오기도 전에 벌써 자리를 잡고 있었다.
“찍을게? 하나, 둘, 셋!”
사진을 핸드폰으로도 찍고 무대로 오기 전에 폴라로이드 사진기도 같이 챙겨 나와서 폴라로이드 사진으로도 한 장 더 찍었다.
이 사진은 애들한테 줘야겠다.
앵글에는 정말 행복한 모습의 애들이 잡혀 있었다.
사진을 찍고 나니 애들이 무대를 보고 마지막 무대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와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더 좋은 노래로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고생했어!!
데뷔 축하해!
팬들이 퇴장하는 애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고, 그런 팬들에게 스타즈는 호응해 주면서 뿌듯한 얼굴로 무대 뒤로 내려왔다.
“고생했어.”
“와~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내가 고생했다고 인사말을 건네자 나와 더불어 다른 스태프들에게도 고생했다고 인사를 했다.
길었던 오늘 하루가 끝나가는구나.
“오늘 퇴근은 각자 알아서 퇴근한다! 다들 부모님 오셨지?”
“네!”
“혹시 숙소 가야 하는 사람?”
내 기억으로는 없었다.
외국인 멤버인 린이랑 유코도 부모님이 왔었다.
“…….”
다행히 일을 두 번 안 해도 될 듯했다.
“그럼 현진이는 나랑 같이 회사로 가자.”
“네. 알겠습니다.”
“가자. 오늘 고생했어~”
“고생하셨습니다! 내일모레 봬요!”
“내일모레 봬요!”
“그래~ 잘 가고. 데뷔 축하해.”
“잘 쉬고. 데뷔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기뻐하는 애들과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남진수와 같이 회사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남진수와는 별 이야기는 안 했다. 나는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처지였다.
앞으로 힘들어질 거라는 둥 내가 널 얼마나 열심히 가르쳤는데 도망가면 안 된다는 둥.
뭐 이리 말이 많은지. 이번엔 도움 없이 나 혼자 알아서 잘 큰 거 같은데.
예전에는 매니저 일을 정확히 몰랐으니 도움을 좀 받았다지만 지금은 뭐 배운 게 없었다.
정작 이번에 일할 때는 남진수를 잘 못 본 거 같기도 하다.
내 착각인가? 팀장은 팀장만의 일이 있겠지.
근데 팀장이라고 엄청나게 달라지는 건 없다. 기껏해야 영업하는 정도가 늘어나는 거다.
사람 만나는 빈도가 확연히 올라간다는 점 정도인가. 물론 만나는 사람은 다 업계 관련자들이다.
“고생했다. 앞으로 고생 많이 하고.”
“왜 팀장님은 같이 고생 안 할 거처럼 이야기하세요? 같이 움직이잖아요.”
마치 일을 다 나에게 떠넘길 것처럼 말하는 남진수길래 나는 급히 말했다.
“자식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암튼 오늘 고생했어. 푹 쉬고 이틀 뒤에 보자.”
“네. 들어가세요!”
남진수와는 이틀 뒤에 보자고 이야기하면서 헤어졌다.
회사에서 나와 보니 나같이 늦게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랑 동지구나. 야근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니….
왠지 모르게 동질감이 느껴졌다.
빨리 집으로 가자.
다행히 대중교통은 안 끊긴 시간에 퇴근했네.
* * *
“엄마 나 왔어.”
“어. 왔니?”
“나 이제부터 바빠서 집 안 들어오거나 늦게 올 거야. 걱정하지 말고 알아둬.”
“네가 하루 이틀 집에 안 들어왔어? 새삼스럽게.”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섭섭합니다. 어머니.
엄마와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고 방으로 들어왔다.
내일 뭐 할까? 예전에는 그냥 종일 잠만 잤는데. 이번엔 사람이나 만날까?
사람을 만날까 생각하니 이진철이 떠올랐다.
이진철은 신호음이 가자마자 바로 전화를 받았다.
- 왜?
“넌 내가 항상 전화하면 왜냐고 그러더라.”
- 용건 있어서 전화한 거 아니야?
정이 없다고 생각이 들지도 모를 차가움이었지만 오히려 이래서 더 정겨웠다.
“아니. 그냥 전화해서 목소리 좀 들을 수 있지. 어? 왜 이리 매정해?”
- 지랄하지 말고 빨리 말해.”
“아~ 거 정 없긴. 내일 뭐 하냐?”
- 나 촬영하지. 죽겄다. 죽겄어.
피로에 찌든 목소리였다.
“아, 그럼 안 되겠네. 얼굴이나 볼까 했더니만.”
- 너 바쁜 거 아니야? 걸그룹 맡았다며?
“어, 오늘 데뷔했는데. 스타즈라고. 알아?”
- 아니. 모르지. 이쁘냐? 아무튼. 갓 데뷔면 한창 바쁠 때 아니야?
무턱대고 ‘이쁘냐?’라니.
바쁜 것 같으니 용건만 말해야겠다.
“이제 바빠질 예정이라고 회사에서 하루 휴가 줬어.”
- 어? 내일 쉬는 거네? 야, 그럼 내일 우리 촬영장 와서 일 좀 해라.
이건 무슨 참신한 개소리야.
설마?
“무슨 소리야?”
- 척하면 척 아니냐? 왜 모른 척해? 촬영 원, 투데이 하냐? 촬영 힘들다고 제작부 막내가 도망갔어. 와서 땜빵 좀 해. 페이는 쳐줄게.
맙소사.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