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데뷔 (3)
배가 부르면 착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걸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좋아! 이제 좀 볼만하네! 잘하고 있어!”
분명 점심 전까지는 호랑이였는데 밥 먹고 난 뒤로 갑자기 고양이가 되었다.
이 모습을 찍고 있는 리얼리티에서도 분명히 다룰 거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바뀌지? 아니면 오전은 연막이었던 걸까?
최종 리허설은 무난하게 끝날 듯싶다. 애들도 오전에 지적을 많이 당해서 그런지 더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현진아. 이제 팬들 슬슬 줄서기 시작했거든? 가서 한번 보고 정리해야 될 거 같으면 정리 좀 하고 와.”
“정리요?”
“기자들도 많이 와 있으니까 뭐 불미스러운 일 일어나기 전에 대처해야지. 한번 둘러보고 와. 그리고 너 이런 거 처음이잖아? 어차피 보안이나 경호는 씨큐 쪽에서 하는데, 우리도 문제 될 거 있는지 확인은 해봐야지. 보고 와.”
“알겠습니다.”
이 기회에 내가 기억하는 악성 팬이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악성 팬은 정말 빠르게 털어내는 게 좋은데.
초기에는 그래도 악성 팬이 생각보다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계속 이어진 서바이벌 프로그램 시즌으로 인해서 학습된 효과라고 해야 할까?
앞 시즌에서 악성 팬들이 얼마나 안 좋은지를 깨닫고 그룹 활동할 때만큼은 접어두자. 라는 게 커뮤니티 사이트들의 대세였다.
물론 어느 정도 팬들끼리 자정작용이 되었지만 그래도 튀는 사람은 어딜 가나 있기 마련이었다.
처음에는 자정작용이 되는 듯싶었는데 연달아 이슈가 뻥뻥 터지다 보니 자정작용이 될 수가 없었다.
“김현진 매니저님!”
이동하고 있는데 나를 부르는 게 누군가 싶어 봤더니 굿즈 담당 마케팅팀이었다.
“고생 많으십니다. 잘 팔리나요?”
“벌써 다 팔렸어요.”
“벌써요?”
예전엔 이렇게 빨리 팔리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아직 시작하기까지 세 시간 이상 남았다.
“네. 포스터만 조금 남았고 나머진 다 팔렸어요. 커뮤니티 사이트에 인증 글 올라간 뒤로 사람들이 빨리 안 사면 못 살 거 같은지 빠르게 와서 사가더라고요.”
“고생하셨습니다. 전 일단 팬들 보러 먼저 가볼게요.”
“네. 매니저님도 고생하세요.”
내가 돌아오기 전 이맘때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싸우느라 바빴다.
최 PD가 똥 싸놓은 예능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잘 나오기도 했고, 리얼리티 예능에 대한 예고편도 같이 넣어줘서 그런지 초반 충성도가 높은 것 같았다.
좋은 현상이다.
쇼케이스를 기다리고 있는 팬들을 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여성 팬들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팬들 사이로 눈에 띄는 사람도 한 명 있었다.
생긴 건 평범한데 정신은 이상했던 그놈. 자신은 진짜 팬이라고 말했지만, 팬들이 모두 욕했던 그놈.
이번에는 빠르게 회사 차원에서 대처해야지.
그전에 자정작용이 되면 더 좋고.
무리 지어 이야기 중인 것 같은데 근처 가서 대화나 들어볼까?
“아저씨.”
“…….”
“이봐요.”
나를 부르는 건가?
“저요?”
“네, 그쪽이요. 혹시 이런 곳 처음 와 봐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뭔가 할 말이 많은 눈치였다.
“보니까 여기저기 눈치만 보고 헤매시는 거 같길래요.”
남자를 자세히 보니 낯이 익었다.
생각났다.
스타즈가 해체하기 전까지 공개된 스케줄에서는 꽤 꾸준히 봤던 사람이었다.
통제도 잘 따라 주고 애들한테 피해주는 거 없이 끝까지 애들 믿어주면서 응원해줬던 사람이었다.
쇼케이스 때부터 꾸준히 팬질을 했었구나.
“그쪽으로 가봤자 얻을 거 없을걸요. 저기 있는 새끼들은 질 나쁜 새끼들이라 팬이라고 할 수 없는 놈들이거든요.”
이건 또 무슨 소리래?
“무슨 소리시죠?”
“쟤네는 아이돌이 좋아서 오는 게 아니라 자기들 욕망 채우려고 팬 하는 놈들이에요. 돈이라던가,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싫어하는 거 보고 싶다던가 혹은 욕먹는 게 좋다는 놈들이던가. 싸이코들이니까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아요.”
맺힌 게 많았는지 욕만 안 할 뿐이지 한이 맺힌 게 확 느껴졌다.
“무슨….”
“보니까 아이돌 팬질 처음 하시는 거 같아서 알려드리는 거예요. 저런 새끼들이 늘어나면 아이돌도 손해지만 팬들도 손해 보니까. 헥사곤은 대처가 빨랐으면 좋겠네요. 쟤네가 물었던 애들은 다 중소기획사에다가 그렇게 큰 팬덤을 가진 아이돌은 아니어서 대처가 너무 구렸는데….”
남자는 자기 할 말은 다 했다고 생각했는지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바로 사라졌다.
이봐. 내가 관계자인데?
생각해보니 지금 팬들이 내 얼굴을 알 리가 없다.
팬들이 얼굴을 안다면 남진수 정도일 것이다.
운전만 하고 다니는데 어떻게 내 얼굴을 알겠어.
굳이 내가 지금 매니저라는 걸 알릴 필요는 없겠지?
전반적으로 둘러 본 결과 생각보다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괜찮았다.
어떻게 보면 이 쇼케이스 자체가 축제다.
자기가 뽑은 아이돌이 데뷔한다는데 얼마나 매력적인가?
성취감은 말로 할 수 없을 거다.
그래서 과몰입하기가 더 좋은 걸 수도 있다.
주위를 더 둘러봤지만, 데뷔 초기라 그런지 예전에 자주 봤던 팬들 몇몇 빼고는 딱히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인데, 과연 내가 팬들을 좋은 방향으로 통제할 수 있을까 싶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해보는 게 나을 것이다.
팬들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 * *
대기실로 돌아와 보니 스타즈 애들은 리허설을 끝내고 쉬고 있었다.
“얘들아, 먹을 거 사왔어. 배고프면 먹어.”
오기 전에 남진수가 간단하게 요깃거리라도 사오라고 나한테 시켰다. 애들이 밥 먹고 올라가기보다는 간단하게 먹고 올리는 게 낫다면서.
이제 쇼케이스까지 한 시간 조금 넘게 남았다.
애들 데뷔를 두 번 보는 건데 느낌이 새롭다.
처음은 뭣도 모르고 아이돌은 이렇게 데뷔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이제 진짜 시작이다. 라는 느낌이었다.
“뭐 사왔어요?”
“우유랑 빵.”
“오, 빵이다. 빵!”
여자들이 빵을 좋아하긴 하지만 얘들은 유독 빵을 더 좋아했다.
첫 만남 때도 점심이 빵이었었다.
“우유는 설마 흰 우유는 아니겠죠?”
“설마 센스 없게 흰 우유로 사왔겠어.”
“마자마자.”
“난. 흰 우유도. 좋은데.”
“골고루 사왔으니까 알아서 먹어.”
물론 취향에 맞는 거로 사왔다.
바나나 우유 넷. 흰 우유 하나. 초코우유 하나. 딸기 우유 하나.
“바나나 우유는 내 거!”
“어. 나도 나도.”
냠냠
“난 그냥 초코우유 먹을래.”
“리허설은 잘 끝냈어? 남진수 팀장님은?”
“팀장님은 상황 본다면서 저희 메이크업 다시 할 때 나가셨어요. 리허설은 당근 잘했죠.”
다 빵이랑 우유에 정신 팔려 있을 때 이나라가 이야기해줬다.
남진수를 찾아야 하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듯했다.
날 찾을 일 있으면 전화하거나 여기로 오겠지.
“긴장 안 돼?”
“긴장을 왜 해요, 데뷔인데. 즐겁게 놀다 오면 되죠! 무대에 있을 때가 가장 좋은걸요.”
유미소는 위축되지 않고 당당했다.
옆에 있던 이나라는 표정이 조금 어색한 거 보니 아닌 것 같았다.
애들 상태를 보니 설렘 반 긴장 반인 것 같았다.
먹느라 행복해 보이는 희진이 빼고.
“벌써 음원이랑 뮤직비디오 공개될 시간이네.”
“아, 떨려.”
“뭐가 떨려. 근데 난 뮤직비디오 모니터링 못 할 것 같애. 으, 오글거려.”
서지영이 핸드폰을 보다가 본인들의 음원 공개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찍었던 뮤직비디오가 생각나는지 몸서리쳤다.
“우리도 핸드폰으로 음원 켜놓고 무대 하러 가자. 순위 조금이라도 올려야지.”
박혜연은 폰이 여덟 개니 무조건 각자 핸드폰으로 음원을 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혜연아, 나는 빼줘.
그 와중에 신희진은 벌써 자기 몫은 다 먹었는지 유미소에게 들러붙어서 뺏어 먹고 있었다.
“아~ 언니이~ 나 아직 다 안 먹었어!”
“미소는 안 먹어도 이뻐.”
“아니 쫌! 그게 문제가 아니야. 무거워!”
“희진아, 내 거 먹을래? 난 먹으면 바로 살로 가서 별로 못 먹겠어.”
보다 못한 이나라가 자기 걸 신희진에게 줬다.
신희진은 내가 봤을 땐 먹는 방송 나가면 끝내줄 거 같다.
어디 섭외 안 오나?
“어! 떴다! 떴어!”
“다 같이 뮤비 보자.”
냠냠
핸드폰 하나에 일곱 명이 모두 모여서 본인들이 찍은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악!”
“와, 혜연이 웃는 거 봐. 개웃겨.”
“지영아 니가 더 가증스럽거든?”
“린이는 분위기가 다 몽환적이네. 유코는 진짜진짜 귀엽다.”
스타즈 애들이 뮤직비디오에 정신 팔려 있는 상황에서 나는 대기실에서 같이 쉬고 있던 스태프들에게 다가갔다.
“애들이 정신이 없죠?”
“귀여운데요, 뭘.”
“많이 봐왔어요. 익숙해요.”
많은 아이돌팀들을 담당했던 스태프들이라 그런지 무덤덤했다.
“식사 아직 안 하셨죠? 여유 있게 더 사왔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아니에요. 저희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하셨을 텐데요, 뭘.”
“그래도 김현진 매니저님은 복 받은 거예요. 애들이 다 착해서.”
한 명이 이야기하자 자신도 할 말이 있다는 듯 우후죽순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어휴, 이 정도면 천사지 천사. 얼마나 기세등등한 애들이 많은데.”
“그렇죠? 저만 그렇게 느낀 거 아니었죠?”
애들 인성이 정말 좋은 편이다.
다른 아이돌은 히스테리 부리거나 개차반인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난 아직 경험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스태프들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보니 어느새 무대 올라갈 시간이 다가왔다.
그리고 첫 차트 진입의 시간도.
그전에 핸드폰을 켜서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둘러보았다.
[Re: 스밍 하고 있지? 무조건 3위 안으로 박아 넣어야 한다.]
└ 3위는 조금… 아직 뽕이 덜 빠졌다지만 데뷔 그룹이 첫 진입이 3위? 될까? 이제 너아누도 끝물이라 화력 안 될 텐데.
└ 끝물이면 안 할 거야? 그냥 해.
[Re: 쇼케 현장 와 있는데 사람 개 많음. 너그들은 애들 못 보지? 꺼-억]
└ 죽어
└ 쇼케 끝나고 자빠져서 병원 가길 빔
확실히 예전보다 기류가 좋다. 예전엔 싸우느라 이런 글도 몇 개 없었거든.
지금 시간이 44분이니까….
제일 큰 음원사이트에 들어가 차트 정보 페이지에서 새로 고침을 계속 눌렀다.
[6 : 45]
떴다!
어?
(-)1위 Max - 부릉부릉
(-)2위 By – B. B
New 3위 Stars - Lovely
(-1) 4위 Brother - 형
(-1) 5위 Teen Project – 10대. 20대
(…….)
New 18위 Stars - Candy
New 19위 Stars – 지금, 이 순간
(-4) 20위 Spring - 가을 그리고 겨울
New 21위 Stars – Bomb Bomb
3위네?
예전보다 3위나 높게 올라갔다. 수록곡들도 전체적으로 순위가 올랐다.
팬들이 단합된 게 이렇게 큰가?
한창 메이크업 받는 애들에게 순위를 이야기해 줬다.
“너희 차트 인. 3위로 진입했어.”
“네?”
“네?는 무슨 네? 야, 이제 올라갈 준비해. 10분 남았어.”
“진짜진짜 진짜 우리가 3위라고? 와, 대박. 와….”
“응. 너희 3위야. 첫 진입 3위.”
순위를 듣고 난리가 나버렸다.
이 기세면 금방 1위 찍겠지. 유지를 얼마나 하느냐가 관건이겠지만.
“자자. 이제 무대 올라갈 준비하자.”
“와, 대박 대박 대박.”
“그만! 일단 우리도 이제 준비하자. 그만 뛰고 모여 봐, 얘들아.”
순위를 듣고 정신없는 와중에 이나라가 애들을 끌어모았다.
“우리 이제 데뷔야. 모두 숙소에서 했던 이야기 기억나? 간절히 바라면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우리 항상 데뷔만 꿈꿨잖아. 잘하자! 즐기자!”
“놀고 오자!”
“가자. 가자. 가자.”
“하나, 둘!”
“Go. Go. Star!”
멤버들 모두 흥분되는지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일곱 명이 원 모양으로 마주 보고 구호를 외치고 무대로 올라갔다.
“갔다 올게요~”
“잘하고 와. 뒤에서 보고 있을게.”
- 네! 모두 기다리셨죠? 카운트다운 세볼까요?
3!
2!
1!
밖에서 팬들의 카운트다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시작이다.
- 이번에 데뷔하게 된 스타즈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