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데뷔 준비 (4)
“Go! Go! Star!”
애들이 구호를 외치고 뮤직비디오 촬영이 시작되었다. 뮤직비디오 컨셉은 타이틀곡 Lovely처럼 사랑스러운 컨셉이다.
보통 아이돌 뮤직비디오는 두 가지 형태를 많이 띤다.
노래 가사를 따라가는 스토리 있는 구성이거나 화려하게 안무 중심으로 꾸미거나.
Lovely는 화려하게 안무를 따라가는 형태의 뮤직비디오를 찍었었다.
지금도 그때와 똑같이 찍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스토리 있는 뮤직비디오는 단기간에 눈에 띄기 힘든 점이 있다.
옛날에는 가사에 맞춰 스토리 라인 따라가는 뮤직비디오가 대세였다면 요즘은 스튜디오를 대여해 하루 혹은 이틀 안에 다 찍는다.
스타즈도 대세에 맞춰서 스튜디오 내에서 대부분을 해결했다.
예전 촬영과 다른 점이라면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팀과 이를 촬영하는 팀.
두 팀이 있다는 점이다.
오늘 뮤직비디오 촬영부터 리얼리티팀이 붙었다.
원래는 쇼케이스 이후부터 촬영 예정이었는데 편성시간을 하나 더 받아서 총 2화짜리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래서 뮤직비디오 일정부터 쇼케이스 후 데뷔 무대까지 찍는다고 했다.
남진수의 말에 의하면 오늘부터 숙소랑 이동 차량에도 카메라를 설치한다는데 애들이 숙소 정리는 해놨는지 모르겠다.
“현진아.”
누가 나를 불렀다. 소리가 난 곳을 보니 최 PD가 있었다.
학교 선배임을 알게 되어서 그런지 내심 최 PD가 반가워 나는 한달음에 그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나야 뭐 똑같지. 오늘 뮤직비디오는 일찍 끝나려나? 길어지면 너무 지루해지는데.”
“애들이 이 악물고 열심히 준비해서 금방 금방 찍을 거 같아요.”
리얼리티의 경우 종일 따라다니는 것과 방송에 쓸 그림만 담는 경우가 있다.
본격적인 구성을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경우 계속 따라붙어서 쓸 파일을 담는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급하게 짠 것도 있고 쇼케이스 이전에는 쓸 그림이 많지 않기 때문에 뮤직비디오 촬영과 숙소, 이동 차량, 연습실 정도만 촬영한다고 했다.
“경쟁으로 뽑아서 그런가?”
“K.NET 서바이벌 간판 프로그램이잖아요. 아이돌 데뷔프로그램으로는.”
“간판이면 뭐하냐. 다 상술이지. 내가 여기 몸담고 있어서 하는 말인데, 여기 사람들은 이런 거 뽑아내는 건 이제 다들 도가 텄어.”
“하하, 방송사야 시청률 잘 나오면 좋으니까요. 아무튼 저희 스타즈 애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나도 잘 만들어 봐야지. 너도 수고해.”
“네. 감사합니다.”
최 PD와 이야기를 끝내고 촬영 중인 애들의 모습을 봤다.
벌써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오늘 하루에 촬영을 끝내려고 오전 여덟 시부터 촬영을 시작했었다.
어제부터 애들은 뮤직비디오 찍는다고 굶고 있는 거로 아는데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춤이라는 게 열량 소비량이 생각보다 많다.
게다가 요즘은 또 아이돌은 칼군무라고 해서 아이돌들은 신경 쓸 게 한두 개가 아닐 것이다.
물론 연습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실수도 안 하고 군무도 칼같이 된다.
그러나 사람인 이상 예민해지거나 컨디션이 나쁘면 잘 되던 것도 되지 않는다.
“컷! 오전은 여기까지 찍고 점심 먹고 촬영 시작할게요!”
뮤직비디오 감독이 오전 촬영 종료를 알렸다.
스타즈 애들은 오전 촬영 종료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땅바닥에 털썩 앉았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보고 물 몇 개를 챙겨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고생했다. 얘들아, 이거 먹어.”
“아, 이제 물 그만 먹고 싶어요. 탄산! 탄산!”
“너 지금 탄산 먹고 평생 박제될래? 반나절 더 굶고 이쁘게 나올래?”
“좀 더 굶겠습니다….”
박혜연이 귀엽게 투덜댔지만, 이나라의 반격에 무너졌다.
“나라 언니 저는 살 안 찌는데 저는요?”
“우리는 운명공동체야. 안 돼.”
“눈 아페서 치키니 아른거려요.”
“치킨. 치킨. 치킨.”
“배고프니까 먹는 이야기하지 마아….”
이야기하는 거 보니 아직은 쌩쌩한 것 같았다.
투덜대는 애들과 내 곁으로 남진수가 다가왔다.
“현진아. 아까 챙겨온 샐러드 있지? 그거 애들 줘.”
“네. 알겠습니다.”
“샐러드도 그만 먹고 싶어요.”
“사람은 풀만 먹으면서 살 수 없다구요. 고기를 달라!”
서지영과 신희진이 제일 난리였다.
“안 돼. 뭐 먹으면 카메라에 티 확 나.”
“팀장님. 그럼 오늘 촬영 끝나고 애들 하루만 먹고 싶은 거 먹게 해주면 어떨까요?”
“끝나고?”
“네. 어차피 쇼케이스까지 시간도 있고…. 뮤직비디오 외엔 큰 스케줄이 없으니까요.”
내가 이야기하자 애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남진수 뒤로 애들을 보니 나한테 하트를 날리고 있었다.
안 들어주면 큰일 나겠는걸.
“팀장님. 제발요. 저희 이러다가 죽어요.”
“저희 파업합니다. 이러고는 못살아요.”
서지영과 신희진이 생사 대적을 앞에 두고 이야기하듯 남진수에게 말했다.
이에 남진수는 고민하다 말했다.
“흐음, 알았어. 오늘 하루만이야.”
남진수의 입에서 허락하는 말이 떨어졌다.
그러자 스타즈 멤버들은 마치 음악방송 1위 한 듯한 리액션을 선보였다.
이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리얼리티팀도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나는 그런 애들을 뒤로하고 샐러드를 찾으러 대기실로 향했다.
가서 샐러드를 꺼내는 도중에 들었던 생각은 여기서 먹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지 남진수가 애들을 데리고 대기실로 들어왔다.
뒤이어 리얼리티팀도 따라 들어왔다.
대기실에 들어와서는 아까 기력을 다 썼는지 카메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들은 얌전히 샐러드만 먹었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다 되자 촬영 시작 5분 전이라고 막내 스태프가 알려왔다.
“얘들아. 좀만 힘내서 찍자. 끝나고 나서는 치킨이 기다린다!”
남진수의 말에 스타즈 전원이 의욕이 활활 타오르는 게 보였다.
“촬영하러 가자아아.”
“치킨 먹으러 가자아아.”
얘들아 아직 점심이야. 너희 반나절 이상 촬영 남았어.
그래도 목표의식이 생겨서일까?
애들이 더 의욕적으로 촬영하다 보니 표정 연기가 더 자연스러워졌고 안무 실수도 줄어들었다.
“2스튜디오 촬영 종료하겠습니다! 3스튜디오로 이동해 주세요!”
생각보다 단체 안무 촬영이 일찍 끝나서 개인 촬영 파트로 넘어가게 됐다.
뮤직비디오는 자신의 노래 파트에 따라 나오는 분량도 확실히 다르다.
유미소는 프로그램 1위를 한 것에 더해서 센터포지션이라 분량이 나머지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래도 제일 분량이 많은 건 메인보컬인 박혜연이다.
아무리 뮤직비디오라지만 메인보컬이 노래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을 비춰줄 수는 없다.
박혜연의 경우에는 노래의 중심이 되는지라 확실히 자주 나온다.
또 린은 확실히 카메라보다 실물이 더 예쁜 것 같다.
신희진은 실물보다 화면이 더 잘 받는 것 같고.
예전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볼 때도 느꼈던 점이었다.
카메라를 잘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카메라빨.
신희진의 경우에는 카메라빨을 잘 받는 거고, 린 같은 경우 카메라빨이 안 받는 것이고.
보통 이렇게 카메라빨이 좋을 경우 배우를 하면 엄청 어드밴티지가 있다.
신희진이 연기를 아직 제대로 안 해봐서 그런지 연기를 못하는 게 나름 아쉬웠다.
그래도 배역을 어울리게 잘 고르고 연기에 대해서 감 잡고 한번 확 뚫으면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네, 좋아요. 미소 씨. 다음은 옆에 희진 씨도 옆에서 같이 웃어 봐요.”
둘 다 웃는 게 조금 어색해 보였다. 그래도 뮤직비디오 감독이 베테랑이라 그런지 애들을 잘 다뤄서 표정 연기를 끌어내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저녁 시간 조금 오버해서 끝낼 수도 있을 시간이었다.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저번에 찍었을 때보다 시간이 꽤 단축됐다.
예전에는 저녁 열 시 조금 넘게 끝났는데 지금은 벌써 단체안무 마지막 버전만 남겨 놓고 있었다.
“남 팀장님. 한 시간 정도만 더 찍으면 끝날 듯싶은데 저녁 시간 없이 그냥 가시겠어요?”
촬영에도 흐름이 있다.
잘 찍히고 있을 때는 식사 시간도 거르고 찍을 때도 있다.
다소 분위기가 어수선하거나 집중이 흐트러져 있으면 잠시 쉬거나 식사 시간을 갖지만, 모두가 집중하고 있을 때는 거르고 찍을 때도 빈번하다.
그래서 촬영장에는 정해진 식사 시간이 없다.
현장 지휘권을 가진 사람이 식사하자고 하면 그때가 밥 먹는 시간인 거다.
남진수는 자신에게 이야기한 뮤직비디오 감독에게 말했다.
“10분 정도만 애들 쉬게 하고 마지막 안무 들어가면 안 될까요?”
“네. 그렇게 하시죠.”
“10분 쉬고 바로 찍겠습니다!”
이제 뮤직비디오 촬영도 다 끝나 갔다.
리얼리티팀은 개인파트 촬영 부분까지만 찍었고, 촬영팀 한 팀만 남겨둔 채 철수했다.
아무래도 계속 찍기엔 더 넣을 그림이 없다고 판단한 듯싶었다.
장시간 촬영에 지치는지 스태프들 얼굴에도 피로가 가득했다.
그래도 다들 다소 예상보다 일찍 끝날 걸 짐작하는지 피로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나는 벽에 기대 쉬고 있는 애들에게 다가갔다.
“아직 할 만해?”
“죽을 거 같은데요.”
“너아누 할 때보다 더 힘들어요.”
“그땐 굶지는 않았다고요.”
“힘이 아직도 남아도는구나.”
한마디 하자 우후죽순 한마디씩 내뱉었다.
아이돌들은 원래 체력이 좋은 건지 얘네가 체력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
나는 못 버티고 쓰러질 거 같은데.
어떻게 보면 아이돌은 정말 대단한 직업이다.
이쪽 업계 사람들은 죄다 강철 체력인가.
하긴 나도 이틀 밤새우면서 촬영도 해봤으니까.
사람은 막상 닥쳐오면 다 하게 되어 있다.
“슛 들어갈게요! 준비해 주세요!”
조연출이 촬영 시작을 알렸다.
애들도 하나둘 다시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애들 텐션이 다운됐을까 봐 좀 풀어주러 왔던 건데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막 잡은 생선 마냥 팔팔했다.
촬영이 시작되었다.
단체 안무 촬영도 무난하게 흘러갔다.
흐름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의욕이 처음 촬영을 시작했을 때랑 같은 텐션이었다.
프로들도 종일 촬영하면 지치기 마련이다.
무엇이 애들의 의욕을 이렇게 불태우게 만든 걸까?
치킨의 힘이 그렇게 컸던 걸까.
이윽고 촬영 종료를 알리는 컷 사인이 내려졌다.
“컷! 수고했어요. 예정보다 두세 시간 일찍 끝났네요. 더 찍고 싶어도 많이 찍어서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정리합시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애들은 촬영 종료와 동시에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했고, 나 또한 고생했다고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했다.
“현진아, 애들 데리고 퇴근해라. 나는 회사에 일 좀 보고 가야 하니까 따로 갈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애들 숙소 데려다주고 퇴근하면 될까요?”
“어, 애들 픽업하고 퇴근해. 수고했어.”
“네, 고생하셨습니다!”
인사하면서 사인해주는 애들을 좀 기다리다가 애들을 데리고 차로 돌아왔다.
“수고했어. 얘들아.”
“치킨요.”
“치킨 주세요.”
“배고파요.”
“치킨.”
“숙소 도착하면 시켜줄게.”
이번에 일찍 끝난 건 아무래도 치킨의 힘인 것 같다.
내가 돌아오기 전에는 오히려 촬영 예정시간보다 오버해서 끝났었다.
“아싸~”
“설마 시켜준다고 해놓고 한 마리만 시키는 거 아니죠?”
“여기 1인 1닭 하는 사람 있어요. 최소 네 마리예요.”
“알았어. 알았어. 가는 동안 좀 쉬고 있어.”
신희진이 제일 팔팔할 줄 알았는데 제일 지친 것 같다.
근데 치킨이라는 단어에 몸이 반응하는 거 보니 눈을 감고 있어도 몸이 치킨을 기억하는 듯하다.
저게 자동 반사인가?
그래도 전부 촬영이 지쳤는지 숙소로 돌아가는 도중에 다 곯아떨어졌다.
조용히 가서 좋네. 평소에 워낙 시끄러워야지.
다 와갈 때쯤 핸드폰으로 애들 숙소로 치킨을 시켰다.
“얘들아 도착했어.”
“치킨요?”
“아니 숙소.”
“치킨은 시켰으니까 받아서 먹어. 계산은 했어.”
숙소에 도착한 것보다 치킨을 찾는 거 보니 집념이 대단했다.
“네~”
“오빠. 오늘 고생하셨어요!”
“푸 삼촌 오늘 고생하셨어요~”
“아냐.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너희가 더 고생했지. 먹고 푹 쉬어. 내일부턴 다시… 알지?”
“아, 몰라요. 몰라. 오늘은 일단 먹고 즐길래요. 들어가세요!”
애들이랑 치킨으로 인사를 나누고 차를 끌고 회사로 갔다. 회사에 차를 놔두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이제 애들 데뷔가 코앞으로 다가왔구나.
쇼케이스가 며칠 남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