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데뷔 준비 (2)
홍승기는 빈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근데 왜 이예진이 미친년이라고 하는 걸까?
“네? 이예진 배우님은 평판 좋은 거로 알고 있는데요?”
“그거 다 이미지야. 실은 미친…년이 맞아.”
홍승기가 공개된 장소에서 말하는 게 꺼려지는지 뒤에 가서는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했다.
“사실 나도 평소 이미지만 알고 있었는데 여기 들어와서 친해지면서 알게 됐어. 좋은 분? 맞아. 굉장히 예의 바르고 잘 챙겨줘. 근데 술 먹으면서 서로 연기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까 완전 다른 사람이더라.”
홍승기의 말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아니다.
연기하는 사람 중 정상인이 없다는 말이 있다.
연기 잘하는 사람치고 미친놈, 또라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에 조금 공감이 가는 게 연기라는 것이 자신의 성격, 행동을 묻어두고 다른 사람의 성격과 행동을 창조해서 표현하는 것인데 정상일 수 있을까?
이예진의 경우에는 연기에 관련해서 사람이 바뀌는 것 같다.
“어떻게 다르신데요?”
“연기에 임하는 자세가 너무 달라. 연기에 미쳤어. 그 누나는.”
“이예진 배우님 작품은 항상 작품성은 좋았죠. 흥행이 항상 그저 그래서 그랬지만.”
“그게 나도 이해가 잘 안 가긴 해. 아무튼 연기에 관련된 것만 아니면 좋은 누나야.”
“근데 그게 왜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돼요?”
“엮일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라는 거지. 엮이면 좀 골치 아파. 근데 넌 엮일 일이 없겠다.”
사람 일이라는 게 모르는 거다. 나도 그 말에는 동의한다.
엮일 일이 있을까?
이예진. 나랑 접점이 있는 배우는 아니었다.
이예진의 경우 12년째 줄곧 청순가련한 이미지로 먹고살았던 배우다.
배우들은 한번 데뷔할 때 나온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한데 그 이미지로 평생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예진은 20살에 청순가련한 이미지로 데뷔해서 쭉 그 이미지로만 드라마와 영화를 찍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뭐 상관없겠지.
“근데 이야기 듣고 보니까 형이랑 잘 맞긴 하겠네요. 형도 연기 좋아하시잖아요.”
“어. 맞긴 잘 맞아. 그래서 친해졌어. 누나도 연기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싫어하더라. 요즘 연기 너무 쉽게쉽게 한다고.”
“허들이 낮아지긴 했죠. 그래도 그것도 남자 한정이지 여자는 똑같잖아요. 아닌가? 남자도 똑같나.”
“남자 배우보다는 아무래도 여배우들은 나이를 많이 따지다 보니까…. 그 허들은 어쩔 수 없어.”
“아무튼 형. 화랑 한번 들어온 거 있나 살펴봐요. 전 강추예요.”
일단 홍승기한테 밑밥은 던져놨다.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다 됐다.
“그래, 한번 알아볼게. 가냐?”
“네. 이제 회의하러 올라가 봐야 해서요.”
“그래? 고생해라. 연말이나 연초에 한번 보자.”
“네. 먼저 가볼게요.”
홍승기와 이야기하다 보니 밥을 거의 못 먹었다.
맛있는 밥 놔두고 편의점 음식으로 때워야 하는 내 처지에 갑자기 슬퍼졌다.
결국 밥은 거의 다 버리고 편의점에서 간단한 에너지 바로 점심을 때웠다.
* * *
편의점에서 사온 에너지 바를 먹으면서 허겁지겁 회의실로 갔다.
생각보다 홍승기랑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회의시간에 늦을 뻔했다.
회의 시작은 한 시지만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된 내가 딱 맞춰서 올 수는 없었다.
못해도 15분 전에는 들어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왔다.
다행히도 회의실 안에는 나밖에 없었다.
회의실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데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기획팀에서 두 명, 마케팅팀 한 명 그리고 우리 4팀 실장인 이진성과 남진수 팀장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벌써 와 있었네? 부지런하다 야.”
“우린 밥 같이 먹고 왔는데 어디 있었어?”
“업무 보고 밥 먹고 왔습니다.”
“업무 볼 것도 없지 않나? 볼 게 있나 지금?”
“아이돌 동향 추이나 다른 아이돌은 팬을 어떻게 관리하나 이런 거 찾아보고 있었어요.”
“부지런하네. 좋아, 좋아. 근데 너무 힘 빼지 마. 어차피 1년이야. 갈 애들이고. 우린 상품으로써 잘 남겨 먹으면 되는 거야.”
남진수와 대화를 하는데 마지막에 이진성 실장이 끼어들었다.
지금 회사 내에 풍기는 분위기가 이진성 실장과 동일했다.
그런 이야기가 있다.
연예인들은 매니저를 사람으로 안 보고 편리한 물건 정도로 본다는 것.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매니저도 연예인을 사람으로 안 보고 상품으로 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로망이 있었다.
매니저와 연예인 모두 마음 터놓고 형 누나 동생 하는 그런 시절.
지금에 와서는 로망이 되었다.
물론 모든 매니지먼트와 연예인들이 그런 건 아니다.
연예인과 매니저가 사이가 좋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는 많지가 않다.
왜냐하면, 매니저는 연예인의 업무와 스케줄을 봄과 동시에 이미지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담당 연예인과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
싫은 소리를 하게 되고 매니저 입장에서는 하지 말라고 하지만 연예인 입장에서는 하고 싶을 수 있다.
보통 이렇게 의견이 충돌하게 되는 경우는 가치의 차이가 달라서이다.
이런 문제가 잦아지다 보니 서로 깊게 정을 주려고 하지 않게 됐다.
물론 마음이 잘 맞으면 서로에게 모든 걸 오픈하지만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건 회사의 분위기와도 상관관계가 깊었다.
회사가 연예인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또 달라진다.
가족처럼 서로에게 신뢰를 바탕으로 커나가면 가족이 되는 것이고. 비즈니스 관계로 커나가면 결국 비즈니스로 가게 되는 것이다.
정 대표가 다루는 어비스팀을 제외하곤 회사 내 팀들은 대부분이 비즈니스의 분위기다.
그래서일까?
이번 스타즈 아이들과 만났을 때 아이들은 나에게서 비즈니스 관계보다는 사람 냄새를 느껴서 더 친해지게 된 걸 수도 있다.
“그래도 한번 맡았으면 끝날 때까지 책임져야죠.”
“이거. 이거. 매니저 오래 할 새끼는 아니네. 너 그러다 혼자 다치고 울면서 나간다.”
“아직 안 데어봐서 그래요. 사람은 당하기 전에는 모르거든.”
이진성 실장과 남진수 팀장은 이런 일에 익숙한 것 같았다.
익숙하지 않으면 실장이나 팀장 자리까지 못 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이 문제는 익숙하다.
연예계를 지망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연예인들이 가면을 얼마나 수시로 바꾸는지 나는 안다.
하지만 진심인 친구들도 있다.
나는 그런 친구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스타즈는 진심인 친구들이라 말할 수 있다.
“저번에 누구더라? 그 2팀에 걔 있잖아. 팬심으로 매니저까지 지원했다는 걔.”
“아~ 희철이요? 애가 성실하긴 했는데. 민낯 알고 나서 바로 도망갔죠. 충격받고.”
기획팀 두 명이 이진성과 남진수의 말을 뒷받침해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임마. 런 하지 말고 잘해. 뽑아다 키워놓으면 도망가고 뽑으면 도망가고. 나도 질린다.”
“얘 별명이 런닝맨이라며? 별명대로 하는 거 아냐?”
“원래 그런 별명이 더 잘 붙어 있어요.”
내 이미지가 왜 이래?
“아닙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자자, 오늘 최종회의 들어가 봅시다. 애들 어떻게 메이킹 할 건지.”
마케팅팀 쪽에서 화제를 전환하면서 다들 자리에 앉고 본 회의에 들어갔다.
“시작하겠습니다. 기획팀 공통된 의견으로는 어차피 1년 뒤 흩어지고 경쟁회사의 상품으로 들어가게 될 거, 그냥 할 것만 하고 신비주의 컨셉으로 가는 게 좋겠다는 의견입니다.”
“아이돌이 신비주의는 좀 아니지 않나요?”
마케팅팀에서 태클을 걸었다.
“숨긴다는 의미는 아니고 이미지 노출을 최소화하면서 활동한다는 게 주요 골자입니다.”
“예전에는 2, 3년 활동 기간을 가졌는데 이 기간에 이미지 소비가 다 되어서 본인들 회사 그룹 런칭할 때는 써먹질 못했죠. 그래서 이번에는 최대한 이미지 소비를 줄이는 방편으로 가자고 이야기 나왔습니다.”
“앨범 활동도 2번이고 2번이면 상, 하반기 활동이 다 가능하니까. 그렇게 하는 거로 하죠. 지금까지 회의하면서 더 좋은 의견은 안 나오는 것 같은데요.”
“그럼 정리해서 대표님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이대로 회의가 끝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사실 오늘 회의는 최종 결정하기 전 확인 절차 단계 정도였다.
이미 무수히 많은 의견이 오고 갔고 이게 회사에서는 최선이라는 결과를 도출한 거니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왜 망했는지 알 것 같다.
회귀 전 나는 이 자리에 없었다.
단순히 인원이 없어서 이 자리에 오게 된 게 아니다.
단지 이진성 실장의 변덕으로 오게 되었다.
내가 연극영화과 출신이라는 사실이 눈에 띈 것 같다.
예전에는 그냥 좀 특이한 놈이네? 이었는데 박한진 촬영감독과 최 PD의 후배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너도 의견 한번 내봐라.’로 변화된 거였다.
나에겐 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신입 로드매니저 따위가 어떻게 회사에 의견을 제시하겠나.
끝나기 전에 나도 챙겨 가야 할 것은 챙겨 가야겠다.
“혹시 아이들 폴라로이드 사진 찍어서 이벤트로 풀어도 되겠습니까?”
“굳이 그걸 왜 해? 어차피 앨범에 멤버별 포토 카드 들어가 있잖아.”
“공식적인 일정에서 팬들 관리하는 차원에서 써보려고요. 팬들이 통제가 안 되긴 하지만 이벤트성으로 사진 준다고 하면 어느 정도 따를 것 같습니다.”
이 방법은 거의 1년 뒤에나 나왔다.
어디든 공식적인 행사 때 팬들 관리하는 게 몹시 힘들다.
그러다 보니 나온 개념인데 공식적으론 응원을 나와 준 팬들을 위한 이벤트성 선물이다.
근데 이걸 빌미로 팬들에게 아이돌에게 예의를 지키면서 팬질 해달라고 하는 것과 동일하다.
물론 행사에 온 참여자 다 주는 건 아니고 행사가 잘 끝나면 하는 이벤트이기 때문에 딱 멤버별 한 장씩만 푸는 거다.
행사에 문제가 생기면 이벤트는 취소한다고 하면 되고.
이렇게 하는 이유는 팬 중에는 갑자기 연예인에게 황소처럼 돌진한다거나 머리를 잡는다거나 별 이상한 놈들이 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물건을 미끼로 삼아 자정작용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팬 매니저나 로드 매니저 하나 뽑긴 해야 하는데 뽑히질 않네. 일단 그것도 네가 같이 관리 좀 해라, 현진아.”
“네.”
이진성에게 허락을 받았다.
일단 임시방편으로 애들 안전은 도모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1년은 괜찮겠지.
내가 대답하는 걸 끝으로 회의가 끝났다.
남진수가 회의실에서 나가면서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애들 Y앱 컨셉은 정했나? 들은 거 있어?”
“아뇨. 오늘 오면서 한번 짜보라고 이야기는 했어요.”
“뭐, 이건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니까. 그냥 애들한테 맡겨봐.”
“네. 따로 준비할 건 없나요?”
“세팅 준비만 해주고 나머진 애들보고 하라 하자.”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회의실에는 나 혼자 남았다.
애들 Y앱 시간까지는 시간이 남으니 세팅 준비해 놓고 업무 보면 되겠구나.
이렇게 회의가 끝나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라도 애들을 보호해 줘야겠다는 생각.
연예인과 매니저의 관계에 관한 생각.
일단 할 일부터 하자.
* * *
Y앱 촬영 준비를 하고 업무를 보니 벌써 Y앱 시간대가 다가왔다.
회사에서는 준비해줄 만한 건 없고 너희들 자체를 보여주라고 이야기했는데 잘하려나 모르겠다.
저번 첫 예능 프로그램처럼 진행하면 잘할 것도 같은데.
촬영 장소는 일러줬지만 조금 불안하니까 한번 가서 지켜봐야겠다.
아직 시작하기 10분 전인데 한번 Y앱을 켜볼까?
[antngl122: 이거 언제 시작함?]
[aksgdms0421: 곧 시작할 거예요]
[dkdlel0: 보고 싶다!!! 미소야!!! 사랑한다!!!]
[yuukko: だいすき(사랑해)!!]
[aksgdms0421: 5시 시작이라고 했어요.]
시작 전인데도 채팅이 활발했다. 역시 투표로 뽑은 그룹이라 그런지 채팅 화력이 장난 아니었다.
채팅이 읽을 새도 없이 위로 쭉쭉 올라갔다.
이게 인기 걸그룹인가 싶었다.
그럼 보이그룹은 얼마나 빨리 올라가는 거야?
보통 걸그룹보다 보이그룹이 장난 아니게 사람이 몰린다고 들었는데.
띠링.
내 핸드폰에서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 어… 이거 이렇게 키는 거 맞나?
- 언니. 손대지 마. 아직 시간 안 됐어.
- 아니. 그냥 한번 보려고.
- 근데 우리 뭐 해야 해?
- 그냥 데뷔곡 언급하면서 근황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30분 정도만 하니까. 짧잖아.
- 나 그럼 Y앱으로 안무랑 노래 스포 해야지. 요렇게 요렇게~ 눈치 못 채게.
그리고 핸드폰에서 나온 목소리.
맙소사.
Y앱이 켜졌네? 그것도 10분 일찍?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