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9화 (9/200)

제9화. 데뷔 준비 (1)

지잉. 지이잉. 지잉.

알람 소리에 일어나보니 아침이었다. 창문 틈 사이로 햇살이 포근하게 내 몸을 덮고 있었다.

아직도 꿈만 같다.

알람을 끄고 날짜를 확인해 봤다.

[10월 13일]

애들과 처음 만나고 며칠이 지났다.

그사이 특별한 일은 없었다.

특별한 일이라고 하면, 회사에서 기획부와 매니저팀이 같이 스타즈 이미지 메이킹 회의를 계속했다는 정도와 스타즈 애들 앨범 노래 녹음한 것 정도였다.

나는 요즘 매일 아침 항상 꿈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꿈이 아니구나. 현실이구나.

침대에서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수첩을 찾았다.

원래라면 책상 구석진 곳에 있던 내 아이디어 노트였다.

지금은 그 일이 있던 직후 다음 날에 내가 생각나는 대로 적어둔 일명 회귀 노트다.

벌써 13일이다. 10월에 있던 큰 굵직한 사건이 뭐가 있었지?

10월 24일 쇼케이스.

10월 27일 음악 프로그램.

이 두 개가 끝인가? 11월에는….

* * *

집에서 간단히 식사하고 회사로 향했다.

오늘은 딱히 특별한 스케줄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스타즈를 어떻게 메이킹할지 최종회의가 있다.

보통 큰 회사들은 마케팅팀과 같이 기획팀이 따로 있다.

물론 헥사곤 E&M도 두 팀이 존재했다.

그런데 로드매니저인 내가 회사에 가서 저런 회의에 끼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답은 인원이 없어서이다.

지금 돌아가는 1팀 2팀 3팀만 해도 과부하가 걸려 있는데, 4팀 프로젝트팀에 또 그룹 하나가 추가되었다.

더 뽑기에는 인력 낭비인 것이 어차피 프로젝트 보이그룹이 조만간 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그룹 시기가 약 2~3개월 정도 활동이 겹치게 되는데 이때의 기간에 인원 공백이 발생한다.

게다가 회사 차원에서는 돈 되는 보이그룹에 더 신경을 쓰지 걸그룹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거다.

물론 갓 데뷔이기 때문에 신경을 아예 안 쓰지는 않지만, 어차피 틀은 잡혀 있는 데뷔 코스이기 때문에 크게 무리는 없을 거라고 보는 것 같다.

회사 가기 전에 볼일부터 보고 들어가야겠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대학교 동기인 이진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여섯 번 정도 갈 때 즈음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 왜? 바빠

“용건 1분 안에 끝낼게.”

- 뭔데?

전화기 너머로 분주한 소리가 들리는 거 보니 확실히 바쁜 듯싶다.

“너 폴라로이드 사진기 있지? 저번에 단편 찍고 놔뒀던 거. 그거 좀 빌려줘.”

- 아~ 그거? 그건 왜?

“내가 이번에 매니저 하면서 애들을 맡게 됐는데 걸그룹이야. 얘네 폴라로이드 사진 좀 찍으려고.”

- 그런 걸 왜 찍어?

“아, 쓸 곳이 있다니까. 일단 줘봐.”

- 누군데?

“관심도 없어 보이던 새끼가 관심 있는 척은.”

- 마, 사람 마음이 바뀔 수도 있지. 까칠하긴. 사진기 그거 우리 집에 있는데 비밀번호는 알지? 어디다 박아 놨는지는 모르겠는데 알아서 찾아. 감독님이 부르셔서 이만 끊는다. 나중에 보자.

“어. 그ㄹ….”

말이 다 끝나기 전에 통화가 끊겼다.

많이 바쁜가 보다.

이진철은 내 얼마 안 되는 마음을 터놓는 고등학교 친구다.

중, 고등학교 때 다른 불알친구들도 있지만 일적으로 마음 터놓은 건 이진철이 유일했다.

자신만의 확고한 색깔이 있는 친구다.

나와 같이 영화연출을 꿈꾸며 같은 학교에 들어갔고 나는 그 꿈을 접었지만, 그 친구는 아직도 걸어가고 있는 걸 보고 항상 응원하고 있다.

* * *

“와, 여기가 돼지우리인가?”

너무 더러웠다.

집에 안 들어온 지 꽤 됐거나 귀찮아서 치우지 않은 게 분명했다.

내 생각은 귀찮아서 안 치우는 게 더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일단 목표였던 사진기를 찾기 시작했다.

마치 뱀이 허물 벗어 놓은 듯한 옷들을 뒤로하고 책상 근처 서랍 같은 곳 위주로 찾기 시작했다.

서랍 맨 아래를 열어보니 사진기랑 필름을 찾았다.

다행히 필름도 몇 장 있어서 사진기가 잘 작동되는지 테스트를 했다.

찰-칵

인화된 사진을 보니 작동도 잘하고 쓸 수 있을 듯했다.

찍은 방 사진은 책상 위에 두고 가야겠다.

책상 위에 사진을 두다가 낯익은 제목의 시나리오를 발견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가을.’

이게 그 화제가 됐던 그 영화인가?

내가 돌아오기 전 진철이는 영화를 한 편 찍었었다.

아마 지금 크랭크인 들어간 영화가 끝나면 이걸 찍게 되는 것 같다.

성적은 개봉 전이라 잘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선 엄청 이슈였다.

애초에 독립 장편 영화로 극장에 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찍기 전에 투자자가 안 나와서 원래 예정보다 2~3개월 딜레이 걸렸었던 거로 기억한다.

진철이가 그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나한테 하도 하소연해서 기억이 났다.

나는 상념에 젖어 있다 정신을 차리고 집 밖으로 나갔다.

* * *

회사에서 차를 끌고 나와 애들 숙소로 갔다.

회사랑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숙소를 잡긴 했는데 그래도 거리가 있어서 내가 항상 픽업하러 갔다.

준비는 다 했겠지?

이나라한테 전화를 걸었다.

“네! 준비 다 했어요! 내려가면 될까요?”

“어, 그래. 내려와.”

“네~”

신호음 두 번 만에 받는 거 보니 기다리고 있었던 듯싶다.

근데 통화기 너머에서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조금 기다리고 있자 아이들이 내려오는 게 보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졸려….”

“나도 졸려.”

이나라가 힘차게 말문을 열었다. 그 뒤로 18살 동갑내기 두 명이 들어왔고, 그 뒤로 신희진이 눈 감은 채로 들어왔다.

눈은 감고 있지만 깨어 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 보니 자는 것 같다.

“안녕. 하세요.”

“안녕. 발음 많이 늘었네?”

“네. 연습하고 잇서요.”

린이도 도착했고… 남은 건 유코랑 미소인가?

아침잠 많은 멤버 두 명이 늦는군.

예전에도 거의 항상 유미소랑 유코가 늦었던 것 같다.

멀리서 유코랑 유미소가 뛰어오는 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아녕하세요!”

“굿모닝~ 그럼 다 온 거지? 체크 한번 해볼까?”

“이.”

“…….”

“희진 언니 자? 신, 유요!”

“유.”

“서….”

“박….”

“린.”

“다 왔어요.”

“OK. 그럼 출발할게.”

“네.”

인원이 많으니 누구 이름 부르고 대답 듣는 게 힘들어서 멤버별 성만 따서 체크했다.

이신유유서박린.

순서는 나이순이다.

다 탄 거 같으니 이제 회사로 출발해야겠다.

회사로 가면서 애들에게 오늘 스케줄을 이야기했다.

“오늘은 너희들 안무연습 쭉 하다가 저녁에 Y앱 할 거야. Y앱 끝나고는 자율 연습인데 뭐 말이 자율이지 불안해서 쉬겠어?”

“오늘 저희 Y앱 해요?”

“응. 오늘부터 조금씩 할 거라고 그러더라.”

“그럼 저희 Y앱 켜서 뭐해요?”

“그냥 근황 토크 간단하게 하고 끝내면 될걸?”

“그냥 간단하게 근황 토크면 어렵네요. 제일 어려운 거….”

“컨텐츠 짤 거 있으면 짜서 진행해봐. 우리가 짜주는 것보다 너희가 짜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네. 생각해 볼게요!”

아침이라 그런지 이나라만 팔팔하고 다 죽어 있는 것 같다.

이나라는 정말 성실했다.

성실한 건 몸에 밴 습관인 것 같다.

그러나 그 뒤로 나라도 조용한 걸 보니 자는 분위기에 취해서 같이 자는 것 같았다.

조용하게 운전하면서 회사에 도착해서 애들을 깨웠다.

“얘들아, 일어나. 도착했어.”

“5분만요… 5분….”

지영아. 미안한데 5분 주면 다시 5분 달라고 할 거잖아.

“언니들. 빨리. 일어나.”

린이가 특유의 끊어서 말하는 화법으로 애들을 깨우고 있었고, 곁에 있던 유코도 애들을 흔들어서 깨웠다.

이내 애들이 다 일어나고 차에서 내린 걸 확인한 후 주차를 했다.

애들은 안무실로 바로 향한 것 같았다.

나도 우리 팀 사무실로 올라갔다.

사무실에는 생각보다 인원이 별로 없었다. 아마 활동 마무리 들어간 남매 그룹인 넘버6 쪽으로 빠진 것 같다.

나도 앉아서 내 할 일을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됐다.

어차피 최종회의는 점심 이후에 하니까 시간이 좀 남았다.

점심 생각하니 군침이 돌았다.

우리 회사 식당 밥이 너무 맛이 좋아서 식당에 가면 종종 회사에 소속된 아티스트들도 본다.

그러고 보니 홍승기는 언제 만났지? 식당에서 만났나? 그게 오늘인가?

* * *

식당에 내려와서 밥을 받고 앉을 자리를 찾는데 홍승기가 보였다.

아, 오늘 봤구나.

홍승기를 보고 있는데 홍승기도 나를 봤다.

나를 보더니 자기 쪽으로 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바로 홍승기 곁으로 갔다.

“형,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Hey~ Bro~”

뭐야. 원래 이런 캐릭터였나? 이러지 않았던 거 같은데.

홍승기는 외관만 보면 마초남이다.

키가 꽤 크고 덩치도 있고 본인이 근육 키우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근육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 걸 수도 있다.

근데 그냥 성격이 빼다 박았다.

외관이랑 성격이랑 판박이다.

그리고 별명이 미친놈이다.

미친놈인 이유는 간단했다. 술에 미쳤기 때문이다.

본인도 별명을 아는데 좋아라했다. 좋은 의미 아니냐면서.

“갑자기 왜 그러세요? 괴리감 느껴지게.”

“아니~ Man~ 이번 작품 배역이 힙합 컨셉이야. 그래서 배역에 몰입하고 있었지.”

힙합? 드라마를 찍었나? 기억에 없다.

이 시기에는 나도 내 할 일이 바빠서 남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힙합? 그러면 드라마예요?”

“아, 힘들다. 어. 드라마야. 이번 케이블에서 하는 거.”

“별로 어울리지는 않는 거 같은데….”

“그래서 하는 거야. 재밌잖아?”

홍승기는 정말 재미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비중은요?”

“크지는 않고. 그냥 단역이라고 해야 하나 조조연이라고 해야 하나. 쉬는 동안 감 잃지 말라고 던져주더라. 근데 넌 왜 여기 있냐?”

홍승기가 이상한 말투를 그만두고 정상적으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아, 저 매니저로 여기 입사했어요. 지금은 스타즈 로드매니저예요.”

“스타즈? 얼마 전에 한진 형님한테 전화 왔었는데 자기 스타즈 애들 찍었다고. 조만간 술 먹자는데 언제 먹지.”

“박 감독님한테는 인사했어요. 그 같이 찍던 최 PD님도 우리 학교 선배님이더라고요.”

“최 PD? 그분은 모르겠다. 방송 쪽에 계시는 분인가?”

“네. 방송 쪽에만 있으신 것 같아요.”

다행히도 박한진 촬영 감독이 내 이야기는 안 한 것 같았다.

뭐라 둘러댈지 막막했는데 다행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알고 있는 흥행 정보를 쓸 곳을 찾은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무슨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하라고 할 수도 없고 꼽아 줄 수도 없다.

잘 받아먹으면 자기 복이고 못 받아먹으면 그것도 자기 복인 거다.

근데 어떻게 유도하지?

“야. 근데 너 왜 연출 때려치우고 매니저 하냐? 안 아까워?”

“그냥 매니저부터 해보려고요. 원석 채취하고 가공하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 게 어딨어. 그게 재미가 있어?”

“경험이죠. 뭐… 근데, 형. 작품 뭐 들어온 거 없어요?”

“작품? 내가 작품 들어오는 짬이냐? 그냥 기웃거리고 있다. 뭐할지.”

홍승기는 드라마 조연으로 확 떴었다.

홍승기는 연기하는 스타일이 그냥 단순했다.

그냥 그 배역이 되어 보는 것.

예전에 거지 배역 맡았다고 길가면서 구걸도 해본 사람이 홍승기였다.

그래서 배역에 몰입해서 연기를 잘한다고 떴었는데 찍었던 드라마도 중간 이상 성적은 나와서 지금 주가가 꽤 높은 거로 알고 있다.

“그럼. 형, 혹시 화랑 오디션 한번 봐봐요. 충무로 소스인데, 4년 떠도는 거 이번에 투자받아서 만든다고 해요.”

“화랑? 처음 듣는데? 그리고 4년 굴러다녔으면 하자 있는 거 아니야? 그딴 걸 왜 해? 그래도 지금 내가 가릴 처지는 아니긴 한데….”

“형, 저 감 좋은 거 아시죠? 예전에 저랑 같이 잠깐 학교생활 하실 때 제가 흥행 스코어 다 맞췄던 거 기억나요?”

“그건 뽀록이고. 충무로 소스는 뭔데?”

“그 작품에 김진석 촬영 감독이 붙는대요. 영상미 죽이게 뽑는 그 감독. 화랑이 액션 사극인데 오래 돈 만큼 제작사에서 이 갈고 준비한다고 하더라고요.”

김진석 촬영 감독이 붙는 건 팩트. 나머진 블러핑이다.

화랑 같은 경우 스토리보다 영상미가 뛰어나 여름쯤 개봉해서 액션으로 흥행한 영화다.

어떻게 보면 홍승기랑 딱 맞는 영화일 수도 있다.

그리고 홍승기는 액션을 아주 좋아했다.

“음. 그래? 한번 알아볼게.”

“잘되면 아시죠?”

“잘되면 뭘 알아. 술이나 한번 살게. 너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고 했지? 그럼 나도 우리 회사 소스 하나 풀어줄게. 우리 회사에서 조심해야 할 인물이 딱 한 명 있어. 이예진. 예진 누나만 조심해. 물리면 답 없다.”

“이예진… 배우님이요?”

홍승기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의외의 인물이 나왔다.

이예진은 청순가련의 대명사인데?

이예진은 20살에 데뷔하고 지금 12년 차인 배우다.

그리고 예전에는 이런 말도 안 해줬는데….

또 바뀐 건가?

이예진이면 예전에도 회사에서 종종 마주쳤었다.

엄청 상냥하고 예의도 12년 차면 까탈스러워질 만도 한데 굉장히 예의 발랐다.

크게 이슈 되는 것도 없었던 거로 기억하고.

내가 의아해하고 있자 홍승기가 내 쪽으로 몸을 대면서 누가 들을까 다시 주위를 살피며 조용하게 이야기했다.

“어. 완전 미친년이야.”

홍승기가 갑자기 대뜸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