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2)
당연히 박한진 촬영 감독은 나를 모른다. 나도 예전에 우연히 같은 회사에 있는 배우 홍승기한테 들었던 거다.
예전에 헥사곤에 입사했을 때는 술에 미친 고래 홍승기가 헥사곤 소속인 줄 몰랐다.
아마 내 기억이 맞는다면 조만간 홍승기랑 만날 거다.
언제 만났는지는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래도 예전에 홍승기가 했던 말은 기억난다.
선배 한 명이 자기가 스타즈 애들 촬영했다며 안부 전화 왔었다고 했었다.
내가 스타즈 담당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홍승기가 해준 말이었다.
그때 알았다. 전화한 선배가 박한진 촬영 감독이라는 걸.
그리고 홍승기의 선배면 내게도 선배라는 점이다.
“승기 형이 알려주셨던 거 같아요. 여기서 일하신다고.”
혹시 모르니 홍승기가 알려줬다고 확답하지 말고 긴가민가한 느낌으로 이야기했다.
홍승기가 물어보면 곤란해지니까.
“승기가? 오랜만에 승기한테 전화나 해봐야겠구먼. 그래, 반갑다. 어이! 최 PD! 얘 우리 후배라는데?”
박한진 촬영 감독이 반갑게 최 PD를 불렀다.
최 PD도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이건 몰랐던 정보다. 최 PD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뭐? 후배라고?”
“안녕하십니까. 31기 김현진입니다.”
“임 교수님은 정정하시냐? 아직도 브라보~ 하고 계시던?”
“네, 정정하십니다. 브라보도 여전하시구요.”
술 귀신 임 교수. 유명했다.
우리 학교 출신들이 술을 잘 먹는 건 임 교수 때문일 거다.
“그 양반은 언제 철드실지 모르겠네.”
“철이 드시겠냐? 들었으면 일찍 들었지. 지금은 힘들어.”
“에이, 형님. 그래도 교단에서 물러나실 때쯤이면 술 안 드시고 절제하시지 않을까요? 근데 넌 어쩌다 매니저 시작했냐?”
후배라는 걸 알아서 그런지 둘 다 나를 대하는 게 상당히 편해졌다.
눈가에도 웃음기가 보였다. 학교 근황 물어보면서 더 친밀감이 생긴 것 같다.
“그 연출 전공으로 공부하다가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서 매니저 하게 됐습니다.”
“뭐 그럴 수 있지. 이야 근데 부럽네. 걸그룹 매니저라니. 캬, 얼마나 좋아.”
“좋긴 개뿔. 개시다바리지. 결국 따까리 아냐.”
“하하하. 그래도 누군가 서포트해서 키운다는 게 매력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특이한 놈이네. 대부분은 자기 위주인데. 그러고 보니 나도 얘네 투표했어. 내 1픽은 떨어졌는데. 아, 생각하니 아쉽네.”
그 1픽이 떨어져서 악에 받쳤었지.
“뭐야. 너 그런 거 보냐?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었나.”
“선배님. 요즘 트렌드를 알아야 합니다. 요즘 트렌드는 서바이벌이라고요.”
“아, 몰라. 난 어차피 용돈 벌이하러 나온 거야. 내 주 밥벌이 장소도 아닌데 뭘 그런 걸 신경 쓰냐?”
“전 여기가 밥벌이 장소라…. 이름이 뭐랬지? 김현진이였나? 촬영시간 된 거 같은데? 애들 스탠바이 해서 데리고 와. 잘 찍어보자. 학교 후배라니 편집 때 좀 더 신경 써볼게.”
생각보다 일이 더 좋아졌다. 원래 의도는 촬영 감독과 친분이 있으면 PD가 그래도 정상 참작해줄 거로 생각했다. 근데 PD도 내 선배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홍승기가 나에게 이야기해준 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근데 지금 보니 홍승기랑 촬영감독 둘의 나이 차이가 있어 보였다.
그럼 역시 홍승기와 박한진 촬영감독이랑은 술친구 관계일 거다. 촬영하는 사람들치고 술 안 좋아하는 사람이 드무니까.
“네. 애들 데리고 오겠습니다.”
나는 최 PD에게 말하고 나서 애들을 데리러 대기실로 향했다.
“얘들아, 촬영하러 가자. 그리고 가기 전에 이거 큐시트 한 번씩 봐봐.”
“네~”
애들한테 큐시트를 주고 애들을 데리고 세트장으로 이동했다. 큐시트를 보면서 애들이 수군수군했다.
내 기억으론 별 특별한 게 없었던 거로 기억한다.
좋다. 이번 촬영은 마음 편히 애들 하는 거 볼 수 있을 것 같다.
PD랑 촬영 감독이 아군인데 꿀릴 게 뭐가 있나.
편집도 예전과 달리 매끄럽게 해줄 것 같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봐야겠다.
세트장에 도착한 뒤 나는 구석진 자리에서 스튜디오 안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메인 카메라에 프롬프트 있으니까 멘트 해야 할 곳은 우리가 프롬프트로 자막 띄워 줄 테니 보고 읽으면 돼요. 어려울 거 없어요. 그리고 진행은 큐시트에 나와 있는 대로 패드 하나 드릴 테니 거기서 보고 진행하시면 돼요. 진행할 사람?”
최 PD가 아이들한테 진행 볼 사람을 요구했다.
아까 애들이 수군거렸던 건 진행 볼 사람 정하려고 했던 것 같다.
진행 볼 사람이 필요한 거 같은데 누가 하는 게 좋을까?
예전에는 누가 했었지?
애들이 당황한 게 느껴졌다. 빨리 교통정리를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라랑 지영이가 하자.”
“네?”
“네?”
대답이 메아리처럼 울려서 들렸다. 둘 다 당황한 것 같다.
“나라가 리더롤이잖아? 그리고 너희 일곱 명 중에 가장 활발한 게 지영이니까 아마 잘할 거 같은데? 둘이 해보자.”
“네.”
교통정리를 하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조연출이 선창으로 촬영 시작을 알렸다.
“카메라 롤.”
박한진 감독이 카메라가 촬영 중임을 알리면서 스타즈의 공식 첫 예능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저희 시작해요?”
이나라가 눈을 굴리며 언제 시작하는지 물었다.
최 PD는 손으로 동그랗게 O 표시로 알려주었다.
이내 이나라가 작게 발을 굴리면서 진행을 시작했다.
탁
“…둘, 셋.”
“안녕하세요. 반짝반짝 빛나는 무지갯빛 스타즈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하늘에서 내려온 스타즈!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첫 예능이라 그런지 멤버들 모두 떨고 있어요. 그래도 열심히 노력해서 재미있게 해보겠습니다!”
“와아아!”
스타즈 전원이 같이 인사하고, 그 뒤로 서지영이 생각보다 능숙하게 이어서 진행했다.
옆에 애들은 잔망스럽게 호응해줬다. 근데 호응하는 게 조금 어색했다.
방송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처음으로 진행할 순서는. ‘알려줘! 스타즈!’인데요. 팬분들께서 스타즈에게 궁금한 점을 댓글로 남겨주셨습니다! 코너 이름처럼 각 질문에 해당하는 멤버는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 단! 거부권은 없어요~”
[멤버들이 사투리 쓰는 모습이 궁금해요.]
“사투리 쓰는 모습이 궁금하다고 하시네요. 근데 우리 멤버들 중에 사투리 쓰는 친구가 없는데….”
“저… 제가 개인기로 사투리 연습한 게 있긴 해요.”
서지영의 진행에 맞춰 박혜연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말했다.
“오! 그럼 우리 귀염둥이 박혜연을 일일 선생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신들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예능이 꽤 능숙했다.
물론 지금 합은 서지영과 박혜연이 미리 짜 논 거였다.
“아,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나↗”
“와, 멍석 깔아주니까 어색해.”
“아까랑↗ 많이~ 다르네↗”
박혜연이 안 쓰던 사투리를 의식해서 쓰려고 하다 보니 어색해 보였다.
그런 박혜연을 서지영과 이나라가 맛깔나게 도와주었다.
호흡이 좋다.
“됐고! 그럼 제일 유명했던 그걸로 할게요. 예전에 어떤 프로그램에서 했던 거 따라 해봤는데 생각보다 잘 되더라고요. 자, 따라 해보세요. 오빠야~↗ 감자 함 무 봤나↗”
“오빠야~↗ 감자 함 무 봤나↗”
멤버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박혜연을 따라 했다.
사투리는 린이랑 유코가 하는 게 제일 귀여울 거 같은데….
아무래도 외국인 애들이 하는 게 더 신선하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마침 마음이 통했는지 서지영도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좋아요. 좋아. 그럼 유코 언니랑 린이가 한번 해보자!”
“오빠야↗ 가무자 하무 무 봤나↗”
“오빠야↗ 감자 무 봤나↗”
유코와 린이 어눌한 말투로 따라 하니 신선하고 엄청 귀여웠다.
“오오~”
“귀요미! 귀요미!”
잘한다. 원래 이렇게 방송을 잘했었나?
처음에 방송할 때는 되게 어색하게 진행했던 거로 기억한다.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나와 사이가 급격하게 좋아진 정도이다.
이 차이가 이렇게 큰가?
그 뒤로도 진행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이번 코너는 스타즈 1분 토크입니다!”
“1분 안에 최대한 많은 대답을 해주시면 되는데요. 제일 적게 대답한 멤버는 잔혹한 숙소 폭로전이 있으니 긴장하시고 최대한 많이 답변해 주세요!”
“그거 지영이가 제일 불리한 거 아냐? 숙소에서….”
“거기까지! 제가 꼴찌 하면 오픈해 주세요!”
서지영이 더 말하는 걸 용납 못 한다는 듯 카메라를 등지면서 필사적으로 막았다.
“처음에는 우리 스타즈의 당당한 1위! 미소 언니! 그리고 질문지 읽어서 도와주실 분?”
“제가 할게요~”
계속 진행하니까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다른 아이들의 말도 트이기 시작했다.
이내 이나라가 질문지를 받아 유미소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짜장면? 짬뽕?”
“첫 질문부터 너무 어려워요. 난 짬뽕!”
“인터넷에 자기 이름을 검색한다. 안 한다?”
“한다!!”
유미소가 대답을 하면서 얼굴을 다양하게 쓰고 있었다.
때로는 당당하게 때로는 귀엽게.
“서바이벌 프로그램하면서 운 적이 있다? 없다?”
“있다!”
“멤버들 중 처음 봤을 때 가장 이상형이었던 멤버는?”
“희진 언니. 너무 이뻐서.”
“끝! 여기까지!”
“프로그램하면서 어떨 때 울었어요?”
서지영의 능력이 정말 탁월했다. 예전에도 느꼈던 거지만 MC를 하면 정말 잘할 것 같다. 후속 질문은 대본에 없었다.
“다들 하면서 한 번쯤은 울었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저는 생각보다 안무 배우는 게 늦어서 나 때문에 진도가 늦어지는 게 느껴졌을 때? 나 자신한테 너무 화났어요. 그때 숙소에서 혼자 울었어요.”
“그렇지만 1등 했죠?”
“그건 여러분 모두가 잘 봐주신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부드럽게 질문을 받아 넘기는 거 하며 멤버들 케미가 초반인데 생각보다 좋았다.
예전에는 이 케미가 데뷔 후 늦게 나왔다.
도대체 이렇게 좋은 팀이 그렇게 밑바닥까지 망가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느덧 마지막 차례인 신희진 차례로 왔다.
“그럼 마지막으로 희진 언니! 이번엔 린이가 읽는 거로 할게요!”
“네.”
“부…먹? 찌그…먹?”
“다 먹! 다 먹는다.”
“코라? 팝시?”
“콜라.”
먹는 이야기를 하니 바로 눈이 돌아갔다. 표정을 보니 벌써 먹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제일 자신 있는. 신체 부위는?”
“눈!”
“자는 거? 먹은 거?”
“먹는 거!”
“찍고 시픈. CF는?”
“치킨! 치킨!! 치킨!”
치킨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보고 있던 멤버들도 공감하면서 날뛰었다.
“여기까지~”
“왜 근데 난 다 먹을 거 관련이야?”
그건 아마 신희진의 평소 생활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건 언니 이미지가 그렇다는 거에유~”
“너무 많이 먹어. 너.”
멤버들의 말을 들어 보니 숙소에서도 똑같은 것 같다.
“아니. 다들 먹기 위해서 사는 거 아니에요? 전 먹기 위해서 산다구요!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한데….”
“나도 먹을 때만 행복해. 그 뒤는 아니야. 근데 희진이는 그렇게 먹는데 왜 살이 안 쪄? 너무 부럽다. 난 진짜 바로바로 찌는데.”
“모르겠어요. 그냥 안 쪄봐서.”
“와, 재수 없어.”
“동감.”
“마자. 마자.”
중간중간 팬들이 흥미 있을 만한 토크 주제로 이어가기도 하고, 소소하게 본인들 디스하면서 재미 요소 넣어주고.
벌써 베테랑이 다 된 듯싶다.
예전에는 너무 급격하게 무너져서 예능 프로그램도 많이 못 했는데 이번엔 무너지지만 않으면 많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끼리 간단하게 진행했는데도 벌써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큐시트를 보니 이번 마무리 멘트를 끝으로 오늘 촬영은 마칠 것 같았다.
“네! 여기까지 잘 보셨나요? 저희가 준비한 프로그램이 다 끝났어요!”
“아쉬워요~”
“더 하고 싶은데~”
“너무 빨리 끝난 것 같아요.”
멤버들이 앙탈을 부렸다.
아쉬운가 보다.
“그럼 간단하게 몇 명만 소감 한마디 하고 이만 마칠까요? 최연장자인 나라 언니부터!”
“네! 최연장자. 이나라입니다. 벌써 저희가 이렇게 이런 프로그램을 찍게 돼서 감개무량하구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네. 다음은 청순 사차원 희진 언니!”
“저는 그냥 다 좋았구요. 제가 모르던 멤버들 정보도 알게 돼서 좋았어요!”
“그럼 마지막으로 유코가 마지막으로 소감을 하고! 단체로 클로징 멘트하는 걸로 이만 끝내겠습니다!”
“MC가 업어서. 조그믄 당황했는데. 재미이섯서요.”
다 각자 고유의 색깔이 조금씩 보였다.
또 프롬프트로 진행 순서까지 다 알려주다 보니 MC가 없어도 진행은 순탄하게 됐다. 물론 서지영의 진행 능력도 한몫했다.
“네. 앞으로도 저희 스타즈 사랑해 주시구요. 저희 데뷔곡 Lovely도 많이 많이 사랑해주세요!”
“어? 잠깐. 우리 데뷔곡 스포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아, 그러네. PD님 다시 할까요?”
박혜연이 프로그램 방송 시기를 생각하고 말했다. 박혜연의 말에 최 PD가 대답했다.
“데뷔곡 이야기만 빼고 다시 하시면 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다시 시작할까요?”
최 PD가 이나라의 말에 OK 사인을 보냈다.
“네! 앞으로도 저희 스타즈 사랑 많이많이 해주시구요. 다음에 또 색다른 모습으로 만나 뵀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나도 이걸 끝으로 오늘 할 일은 끝났다.
벌써 저녁 시간대다.
“지금까지 스타즈였습니다! 안녕!”
오늘은 이렇게 촬영이 마무리되는 것 같다.
“…….”
“오케이! 수고했어.”
애들이 클로징 멘트를 끝내고 5초 뒤에 피디가 컷 사인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애들도 같이 촬영에 도움을 준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녔다.
인사를 하면서 사진이나 사인도 같이하면서 정성껏 팬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훌륭했다.
그 와중에 최 PD가 나한테 왔다.
“이야, 애들 잘하네. 1화로 단발성으로 끝내기엔 아까운걸.”
“애들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혹독하게 단련돼서 그런지 잘하네요. 저도 처음 봐요.”
예전과는 상반된 반응의 최 PD였다.
그리고 이어 나온 최 PD의 말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흐음, 혹시 얘네 데리고 리얼리티 프로그램 하나 더 해볼 생각 없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