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1)
푸우. 곰돌이 푸우.
이걸 벌써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애들이랑 조금 친해지고 난 뒤 불린 별명인데 이렇게 시기가 앞당겨지나?
생각해보니 내가 애들이랑 말을 편하게 한 건 쇼케이스 이후였다.
처음 매니저 일을 시작했는데 베테랑처럼 잘할 수 있을까. 아니, 못했다.
어리바리하고 촬영장에서 갈팡질팡하고 애들한테 신뢰를 주지 못했었다.
그러다 일이 익숙해지고 애들 쇼케이스로 데뷔한 뒤에나 애들이랑 이야기하면서 말을 트게 된 거였다.
나는 애들을 1년을 봤었고, 그래서 너무 친숙한 나머지 바로 말을 놓겠다고 한 게 이렇게 된 것 같다.
아니면 오늘 회사 앞에서 애들 도와준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보면 좋은 징조인 것 같다. 친하면 친할수록 균열이 적어지니까.
“푸우라고 아이디어 꺼낸 사람 누구야. 나와.”
“혜연이가 꺼냈어요!”
“저 아니에요!”
서지영과 박혜연은 진짜 개와 고양이다. 아주 틈 만나면 으르렁으르렁.
아니지 톰과 제리인가? 보통 박혜연이 당하고 서지영이 괴롭히니까.
포지션이 톰과 제리네.
“린이가 이야기했어요.”
“제가 말했어요.”
“그래. 마음대로 해라. 푸우면 어떻고, 런닝맨이면 어떻겠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근데 푸 삼촌. 저희 뭐 찍는 거예요?”
“왜 또 삼촌이야. 너는 오빠라고 불러.”
“아니, 저도 10대인데요? 만으로 19살인데요?”
“그래… 그래라….”
저번에는 오빠라고 부르더니 이번엔 무슨 심술이 나서 삼촌일까.
신희진의 생각은 진짜 도통 모르겠다.
회사 앞에서 했던 행동도 나는 아직도 이해 못 했다.
“근데 너네, 왜 이리 날 편하게 대해? 처음엔 안 그러더니.”
“오빠가 저희를 위한다는 게 느껴져서요.”
“응? 뭐가?”
“사실 저희가 프로젝트 그룹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만난 헥사곤 스태프분들은 되게 뭐랄까 좀 사무적이었어요. 사실 그렇잖아요? 어차피 1년 하고 사라질 텐데. 정 줘서 뭐해? 우리 회사도 아닌데. 저라도 그럴 거 같아요. 근데 오빠는 처음부터 우리 걱정해주고 하는 모습에서 애들이랑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이나라가 쉴 틈 없이 말을 내뱉다가 한 템포 쉬었다.
그리고 이나라가 하는 말이 맞다.
1년 프로젝트 그룹이라 헥사곤에서도 꽤 사무적으로 대했었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프로젝트 그룹을 맡게 된 것도 모회사랑 관련이 있다고는 들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아마도 로비가 이뤄져 정 대표의 노하우를 생각하고 회사들이 맡긴 게 아닌가 싶었다.
사실 헥사곤이 이걸 맡을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보니 회사 내부도 꽤 정치가 심하다고 느껴졌다.
나야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일 때는 팀장 따라다니느라 회사나 애들한테 신경 못 써서 잘 몰랐다.
나는 무슨 말이 나올까 궁금함이 커져서 이나라의 입에 주목했다.
“오늘 회사 앞에서 미소랑 희진이 도와주셨다면서요? 아까 얘기 들었어요.”
“오기 전에 멤버들한테 이야기했었거든요.”
이나라가 왜 나를 편하게 대하는지 이유를 알려줬다.
이번에는 애들 만나기 전에 도와준 영향이 컸던 듯싶다.
회사 앞에 있었던 사건을 유미소가 멤버들한테 풀었던 듯했다.
“아…. 그래? 무슨 이상한 사람 때문에 곤란한 것 같길래 그냥.”
“그 사람이 갑자기 다가오는데 박력 있게 거기까지! 하는데 와!”
거기에 신희진은 갑자기 나를 띄워줬는데 조금 당황했다.
이럴 애가 아닌데?
나는 조금 쑥스러워져 그냥 앞만 보고 운전했다.
“그래서 그것도 있고, 회의실에서 해준 이야기도 있고 해서 오빠가 좋은 사람 같이 느껴졌거든요.”
“조아요. 스키(좋아)”
이나라가 화제의 마침표를 찍었다. 유코도 끄덕이면서 동조하고 있었고.
저번과 다르게 이런 거에서도 영향을 끼치는구나.
“아니, 뭐… 낮에 있었던 건 어쩌다 보니 도와준 거였고, 회의실에서 했던 말은 별다른 건 아니고 너희가 잘돼야 나도 빠르게 승진하지. 서로 윈윈이야.”
“아니에요. 1년간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타트가 예전과는 달리 쾌적한 항로로 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근데 저희 가서 뭘 찍는 건가요?”
“남 팀장님이 말 안 해주던?”
“네. 안에서는 그냥 스타일이랑 헤어만 좀 보시다가 쭉 전화만 하셨어요.”
“그냥 너희를 보여주는 프로그램? 데뷔하기 전에 내가 누구예요! 뭐 이런 거야. ‘너의 아이돌은 누구?’ 하면서 못 보여준 너희 모습을 짧게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저도 할 말 있어요!”
이나라가 그래도 리더라 그런지 전반적으로 잘 챙기는 느낌이었다.
내가 뒤이어 간략하게 프로그램 설명을 끝내자 박혜연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지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뭔데?”
“유코가 할 말 있대요.”
“……?”
뭘까? 유코는 원래 나서서 잘 이야기 안 하던 친구인데.
“바나나가 우스면!?”
설마.
“바나나킥! 킥킥.”
“…….”
“바나나가 우스면 바나나킥. 메모….”
린아. 그런 건 메모하는 거 아니야.
* * *
아이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DMC에 도착했다.
첫 대면인데도 애들과 아주 친해졌다.
남진수가 있었으면 이렇게 못 친해졌을 거 같기도 하다.
돌아오기 전에도 남진수는 없었는데, 그때는 서로 아무 말도 안 했다.
애들도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일단 들어가기 전에 소소하게 비타민 음료수를 좀 사서 촬영장에 뿌려야겠다.
그리고 이번에는 확실히 호감을 쌓아야 했다. 이런 사소한 거에서부터 방송 이미지는 시작된다.
애들을 잠시 밴에 대기하라고 말해 놓고 편의점에 들어가 비타민 음료수를 사왔다.
“얘들아. 들어가자.”
“네~”
애들이랑 담연 센터로 들어갔다. 애들은 지나가면서 직원들한테 열심히 인사를 했다.
직원들도 애들을 알아보는지 멀리서 사진 찍는 사람도 몇몇 보였다.
꽤 흥행한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네.
아니면 자사 프로그램이라 그런가?
시간을 보니 시간이 좀 남았다. 예전에는 빠듯하게 도착한 거 같은데, 이번에는 내가 운전 숙달이 돼서 그런지 넉넉하게 도착해 버렸다.
어차피 지금 올라가도 한창 촬영 세팅 중이라 바쁠 때다.
애들도 현장에 있으면 신경 쓰일 테니 한 10분만 있다가 올라갈까?
“간이 사인회 한번 해볼래? 너네 알아보시는 분들도 많은데.”
“시간 괜찮은가요? 그래도 돼요?”
“어. 일찍 와서 시간이 좀 많이 남는데….”
“와! 그럼 할래요!”
아이들이 신나 하는 게 보였다.
좋아. 애들 동의는 구했으니까….
“여러분! 저희가 아직 스케줄 상 시간이 조금 남아서 사인이나 사진 요청하실 분들은 와서 하셔도 됩니다!”
이런 팬 서비스는 처음부터 해주면 좋다.
특히 방송국 쪽은 더더욱. 이런 자잘한 이미지가 모여서 섭외가 되는 거고 내가 모르는 인맥이 된다.
이 중에 메인 PD나 CP 등 헤드 스태프가 있을지 누가 알겠나. 혹시라도 있으면 애들한테 좋은 이미지를 그 사람들한테 눈도장 찍는 거다.
근데 생각보다 오는 사람이 많았다. 장소를 이동해야겠다.
“어…. 생각보다 인원이 많아서 옆에 휴게공간으로 이동할게요!”
휴게공간으로 이동해서 말 그대로 간이 사인회를 열었다.
다행히도 휴게공간에 있던 사람들도 양해해줬고 오히려 있던 사람들도 같이 사인을 받기 시작했다.
사인 인기순위는 1위를 한 유미소가 역시 가장 많았다. 그리고 의외로 박혜연이 인기가 많았다.
조용조용하고 쭈구리라 제일 적을 줄 알았는데.
그다음으로 인기 많은 건 투표 2위를 한 유코였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눈웃음으로 사람들을 녹이고 있었다.
나머지는 비슷비슷한 것 같다. 하는 걸 보니 얘네는 정말 천생 연예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예인 할 팔자는 타고났다는데 이런 걸 보고 말하는 것 같다.
점심시간이 지난 거 같은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길어지면 곤란하려나?
뭐 상관없었다. 스타즈는 담연의 딸들이니까.
‘너의 아이돌은 누구?’의 메인 채널이 K.NET이고 K.NET 모회사가 담연이다. 그리고 헥사곤 E&M도 대주주가 담연으로 알고 있다.
경영에는 간섭 안 하면서 투자유치만 받은 거로 알고 있는데 지분이 상당하다 들었다.
거대 기획사끼리는 서로 자존심 차리는 것도 있고 이해관계가 많이 얽혀서 차라리 능력 있는 회사에 투자하여 키운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래서 헥사곤은 덩치가 급속히 커져 지금의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헥사곤은 아주 훌륭한 파트너다.
담연.
어느새 문화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사업을 확장하더니 지금에 와서는 영화산업 60% 이상을 먹었다.
특히 영화 쪽은 담연이랑 척지면 영화를 접어야 할 정도다. 아이돌 시장이나 방송국 쪽은 힘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은데, 영화 쪽은 그냥 꽉 잡고 있다.
이게 다 담연이 영화 스크린.
즉, 영화관 수가 가장 많아서 벌어진 현상이다.
근데 영화 쪽은 우리 애들이랑 상관없으니 별문제 없을 거다.
시간이 이제 슬슬 올라 가봐야 할 시간인 거 같은데….
“간이 사인회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스케줄 상 이제 촬영하러 올라가야 하오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반짝반짝 빛나는 무지갯빛 스타즈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나라가 선창하고 나머지 애들이랑 같이 후창으로 멘트를 하고 간이 사인회를 종료했다.
애들을 데리고 제3 스튜디오에 도착하니 아직도 세팅이 정신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조명 위치보고 밝기 조절하는 조명부.
촬영 동선이 안 겹치게 그리고 카메라 선 안 꼬이게 마스킹하는 촬영부.
이들 외에 헤드급 스태프와 연출부, 그리고 작가진들이 안 보이는 걸 보니 아직 회의 중인 것 같았다.
그리고 출연진들도 방송이란 게 몸만 간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가서 메이크업이랑 헤어도 다시 손보고 큐시트도 봐야 하므로 촬영 시작 30분이나 1시간 전에 가서 대기한다.
일단 애들을 데리고 헤드 스태프들한테 인사시켜야 하는데….
예전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여기 왔을 때는 대기실에서 멀뚱멀뚱 애들이랑 기다렸다.
그리고 예전에는 애들 또한 앞선 팬과의 마찰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소극적이었다.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었지만 말이다.
당시 헤드 스태프들이 오고 우리를 찾아서 그때야 큐시트랑 뭐 하는지를 알아봤다.
남진수가 촬영 전에 온다고는 했지만, 예전이랑 똑같다면 촬영 다 끝나갈 때쯤 올 거다.
예전에는 언제 오나 노심초사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러나 예전에 아무것도 몰랐다면 지금은 다르다.
근데 조금 조절하면서 일을 해야 할 것 같긴 하다. 누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 나를 3일 차 매니저라고 생각할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애들이 잘돼야 내가 잘되기 때문에 임기응변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상황을 보니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얘들아. 대기실에서 조금 기다리고 있어.”
“네.”
일단 애들을 대기실에 보내놓고 후속으로 올 메이크업팀과 스타일리스트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 회사 소속 스타일리스트 두 명, 메이크업 아티스트 두 명이 왔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스타즈를 맡게 된 김현진 씨죠?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김현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애들은 대기실 안에 있어요. 애들 좀 봐주세요.”
“네. 알겠어요~”
간단한 방송프로그램 찍는데도 사람이 많이 왔다.
지금은 회사에서 확실히 신경 쓰는 티가 났다.
일적인 면에서는 손 털기 전까지는 확실히 케어해 준다.
예전엔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지금은 헤드 스태프들 오기 전에 가지고 온 음료수라도 나눠 줘야겠다.
“안녕하세요? 스타즈 매니저 김현진입니다! 애들 잘 부탁드립니다! 음료수 사왔으니 일하시다가 시간 되시면 하나씩 가져가세요!”
말하고 나서 세트장 뒤 테이블에다가 비타민 음료수 상자를 열어서 가져가기 쉽게 해두었다.
마침 촬영부 스태프가 와서 꺼내서 가져가려 하길래, 헤드 스태프들 언제 오는지 물어봤다.
“안녕하세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혹시 최 PD님이나 박한진 촬영 감독님 언제 오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아마 두 분 다 회의 끝나고 오실 것 같은데, 곧 오실 거예요. 보통 촬영 15분 전에는 오셨으니까. 음료수는 잘 마시겠습니다.”
그럼 곧 올 것 같다.
예전에는 촬영 시작 5분 전에 큐시트 받고 부랴부랴 했었다. 이번에는 좀 넉넉하게 애들이랑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복도에서 웅성거림이 들리는 거 보니 오는 것 같았다. 맨 앞에 최 PD가 보였다.
열려 있는 박스에서 음료수 하나 들고 내 최대한의 미소를 지으며 최 PD에게로 갔다.
“안녕하세요? 스타즈 매니저 김현진입니다.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 고생하시는데 영양 보충하시라고 사왔습니다.”
“고마워요. 큐시트 필요한 거죠? 야. 막내야, 여기 큐시트 한 장 드려라.”
“감사합니다. 그럼 애들보고 스탠바이 하라고 하겠습니다. 아, 근데 혹시 죄송한데 박한진 촬영감독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박 감독님? 그 양반은 저기 있는데? 아는 사람이에요?”
“아, 저는 아는 분인데 박한진 감독은 모를 거예요. 감사합니다.”
연출부 막내에게서 큐시트를 받고 박한진 감독을 찾아봤다.
푸짐한 뱃살, 날렵한 인상, 적당한 덩치. 일일이 촬영부들에 지시를 내리고 있는 한 인물.
찾은 것 같다. 이내 나는 촬영장을 진두지휘하는 박한진 촬영 감독에게로 갔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31기 김현진입니다.”
“응? 나 알아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