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124화 (124/125)

# 124

헬 나이츠 5권 (24화)

후버드 후작은 막사 안에서 와인을 벌컥벌컥 마셔 댔다. 너무나도 화가 났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낮부터 술에 취해 잠들고 싶었다.

“빌어먹을! 젠장!”

후버드 후작은 한 손에 와인 병을 들고 몸을 비틀대며 욕을 내뱉었다. 와인 병을 통째로 입에 물었다. 입술 사이로 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뭐가 문제야? 도대체 뭐가 문제냔 말이야!”

그리 말을 하며 자신의 침대로 가서 앉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두 팔도 축 늘어뜨렸다.

잠시 후, 오른손에 들린 와인 병이 바닥에 떨어졌다.

후버드 후작의 몸이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것이다. 후버드 후작의 막사 안에는 십여 병의 와인 병들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그사이, 후작의 진영에 제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검을 늘어뜨린 채였다. 그 뒤로 폴과 필이 나타났고,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이크는 후버드 후작가의 진영을 내려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놈들을 전멸시켜라.”

“넵.”

“알겠습니다.”

“그럼 어디 한 번 놀아볼까?”

그들은 제이크를 선두로 신속하게 군영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제이크도 검을 늘어뜨린 채 자신에게 달려드는 병사들을 처리하였다.

늦은 오후가 되었다.

후버드 후작은 막사 안에서 자신의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기를 잠깐. 그가 꿈틀거리더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잠시 후, 침대에서 일어난 후버드 후작이 머리를 감쌌다. 숙취가 밀려온 것이다. 그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밖을 향해 소리쳤다.

“으윽, 밖에 아무도 없느냐!”

그의 외침에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짜증이 확 밀려왔다. 숙취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다가 자신이 불렀는데 아무도 들어오지 않다니.

“빌어먹을, 녀석들이 왜 대답이 없어!”

후버드 후작은 막사 입구를 향해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다.

“카르폰! 카르폰!”

카르폰 기사단장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후버드 후작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는 밀려오는 두통에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걸음을 옮겼다.

“이것들이 전부 다 어디 간 거야!”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막사 문을 열었다. 그때, 그의 콧속으로 짙은 피 냄새가 밀려왔다. 안 그래도 아픈 머리가 더욱 아파왔다.

“무슨 피 냄새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후버드 후작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주위가 온통 피로 물들어 있고, 여기저기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목 없이 몸통만 존재하는 시체, 배가 뚫려 내장이 흘러나와 있는 시체, 팔과 다리가 분리되어 있는 시체 등…… 그야말로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한 광경이었다.

“뭐, 뭐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머리의 통증이 싹 가셨다. 아니, 후버드 후작은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이봐, 아무도 없어? 카르폰, 카르폰 기사단장!”

후버드 후작은 소리쳐 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때, 그의 눈에 처참한 몰골로 죽어 있는 카르폰 기사단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기사들이 처참하게 죽어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꿈이야,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야…….”

후버드 후작은 자신이 직접 눈으로 목격했음에도 애써 부정하였다. 그러다 급기야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는 울부짖었다.

“으아아악! 어떻게 이런 일이!”

후버드 후작은 본인을 제외하고 전부 다 몰살당한 군영을 보며 기겁했다. 그러고는 실실 웃기 시작했다.

“헤헤헤, 키키키, 흐흐흐……. 믿을 수가 없어. 이건 현실이 아니야, 꿈이야!”

그 말을 내뱉고는 시체들 사이를 헤치며 걸어갔다. 거의 반미치광이나 다름없었다. 멀어지는 후버드 후작의 몸이 비틀거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미친놈들……. 아니야, 내가 미쳤나? 킥킥킥, 내가 다 죽여 버리겠어. 아니야, 내가 죽였나?”

3

후버드 후작가의 멸망.

그 소식은 삽시간에 왕국에 퍼져 나갔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한 사람들이 말을 하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후버드 후작가는 멸망하였고, 그의 성에 있던 모든 가솔들은 집을 비워야 했다. 그곳으로 당당히 제이크의 부대가 입성하였다.

그곳을 알렌 기사단장에게 맡기고, 제이크는 곧바로 하버트 왕도로 향했다. 제이크는 폴, 필과 함께 하버트 왕도에 들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국왕을 만날 수 있었다. 국왕도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제이크는 곧바로 국왕과 면담을 할 수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제이크는 당당하게 말을 하였다.

“내가 먹은 후버드 후작의 땅 3분의 1을 드리겠소. 그러니 조용히 물러나시오.”

제이크의 말을 들은 국왕은 어이없다는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 내 땅을 거저 먹는다? 그것도 인심 쓰는 척 3분의 1을 가져가라? 지랄하고 있네.”

하버트 국왕도 입이 거칠기는 마찬가지였다. 제이크는 그런 국왕의 말이 싫지는 않았다.

“한 나라의 국왕이라는 사람이 말이 거치네.”

“왜, 꼽냐?”

“아니, 정감이 가. 그것보다 확실히 해야 할 것 같군. 알고 있잖아, 영지와 영지 간의 다툼은 아무리 국왕이라도 관여할 수 없다는 걸 말이야.”

“그, 그건…….”

“꼬우면 함 붙든가.”

제이크가 다리를 꼬며 도발하였다. 그러자 국왕도 당장에라도 싸움을 걸 태세로 말을 하였다.

“전쟁? 그럼 왕국와 왕국 간의 전쟁이 되는데?”

“내가 그런 걸로 쫄 것 같아?”

제이크의 당당한 말에 국왕은 잠시 생각을 하였다.

‘가, 가만…… 저 녀석이 저리 세게 나오는 이유는 뭐지?’

그 순간,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왕국의 기사 칭호를 얻은 아크, 그리고 이 녀석. 소문에 의하면, 모두 그랜드 마스터에 도달한 자라고 하였다.

게다가 앞에 있는 녀석 혼자서 후버드 후작령을 박살 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머리가 하얗게 질려 버린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저렇게 당당하게 큰소리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제기랄, 초반부터 지는 싸움이었나?’

국왕은 실실 웃고 있는 제이크의 얼굴을 보며 인상을 와락 구겼다.

“됐어, 니 맘대로 해.”

“후후후, 그리 나올 줄 알았어.”

제이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번 건은 여기서 끝이라는 말이군.”

“꺼져!”

국왕이 거칠게 말했다. 그런 국왕을 보며 제이크는 피식 웃었다.

“아무튼 즐거운 대화였어.”

제이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제이크가 나가고, 국왕은 홀로 집무실에 있었다. 그가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뒷짐을 진 채 창가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멀어지는 제이크를 바라보며 크게 웃음을 흘렸다.

“하하핫, 크하하핫!”

Episode 50 10년 후

1

제이크 백작가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제이크와 네빌 집사, 아크는 빠르게 주변 정리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냈다. 여러 인재를 등용해서 영지를 빠르게 안정화시켜 나갔다.

그렇게 약 몇 달간의 노력으로 영지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고, 또한 활발한 무역으로 인해 많은 상권이 들어섰다. 그 결과, 각 왕국은 제이크 백작령을 중심으로 활발한 무역을 펼쳤다.

그럴수록 제이크 백작령으로 들어오는 돈은 점점 더 많아졌다.

점점 더 발전해 가는 제이크 백작령은 앞으로 파브안 대륙 무역의 중심이 될 것이라 예상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벨란 상단의 상단주였다.

아이린의 외할아버지인 그의 돈으로 활발한 상권을 만들 수 있었다. 게다가 무역의 중심으로도 발전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영지가 발전되면 될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이크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갔다.

깊은 한숨이 나오는 횟수가 점점 늘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의 밤이 다가왔다.

“여기서 뭐해요?”

제이크는 홀로 베란다에 나와 있었다. 그의 뒤로 잠옷을 걸친 아이린이 다가왔다.

“어어, 깼어?”

“아니에요, 애들 재우고 지금 왔어요.”

“아, 그랬지?”

제이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풍경은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아이린이 살며시 제이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제이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이린에게 향했다.

“춥지 않아?”

“아뇨, 괜찮아요. 당신이 옆에 이렇게 있으니 따뜻한걸요.”

아이린의 따뜻한 말이 제이크에게는 더욱 아픈 비수로 다가왔다. 제이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저기, 아이린…….”

“네에?”

“할 말이 있어.”

제이크의 음성에서 심각함을 느낀 아이린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무슨 말요?”

“나 일주일 후면 인간계에서의 휴가가 끝나.”

“…….”

아이린은 제이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제이크를 쳐다봤다.

“사실 난 마계의 군단장이야. 이번에 인간계에 나오게 된 것도 휴가를 얻어서 나왔어. 그리고 이제 휴가가 끝이 났고.”

“그, 그럼…….”

“으응, 마계로 다시 돌아가야 해.”

제이크의 말에 아이린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급기야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그래요, 최근에 당신의 얼굴이 어두웠던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군요.”

“미, 미안해.”

아이린이 울먹이자 제이크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아이린은 한참을 제이크 품에서 눈물을 흘렸다. 제이크는 그런 아이린을 살며시 감싸 안아주었다.

지금 해줄 수 있는 일은 고작 그것뿐이었다.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며 가만히 안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울던 아이린이 눈물을 훔쳤다.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안나와 도니는 제가 잘 키울게요. 그러니 몸조심하세요.”

“으응, 걱정 마. 꼭 다시 돌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알았지?”

“네. 전 당신 믿어요.”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깊은 포옹을 하였다. 오늘따라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유난히 반짝였다.

일주일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제이크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폴, 필과 함께 마계로 돌아갔다. 자신이 나왔던 그곳을 통해서 말이다. 아이린은 제이크가 마계로 갈 때 활짝 미소 띤 얼굴로 배웅하였다.

안나와 도니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를 아빠의 얼굴을 되새기며 방긋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제이크는 사랑하는 안나와 도니, 그리고 아이린을 두고 마계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2

아이린은 집무실에 앉아 잔뜩 쌓여 있는 서류를 일일이 검토하고 있었다. 서류를 처리하는 일은 매일매일 해도 끝이 없었다. 그 옆에서 네빌 집사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벌써 쓰러졌을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네빌 집사의 눈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차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고마워요.”

아이린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네빌 집사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나갔다.

“후우…….”

아이린은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옆에 쌓인 서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구나. 이러다가 몸살 나겠어.”

아이린은 혼잣말을 하고는 다시 한 장의 서류를 꺼내 확인하였다.

“어멋, 벌써 훈련이 끝이 났구나. 이제 오라버니도 돌아오시겠구나.”

아크는 기사 양성을 위해 옛 에페로 자작령에 기사단 양성소를 세웠다. 그곳에서 뛰어난 기사를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힘을 키우고 있었다.

물론 아이린은 이 모든 것이 제이크 백작가의 힘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오늘 날아왔다.

“어머, 오빠가 고생했네. 이번에 기사가 벌써 500명이나 나왔네. 오라버니도 참 대단해.”

아이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이곳의 예산을 좀 더 책정해야겠네.”

아이린은 잔뜩 미소를 지으며 펜을 들어 작성을 하였다.

그때,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앳된 여자아이가 뛰어 들어왔다.

“엄마, 엄마! 저 좀 살려주세요.”

“안나, 왜 그러니? 엄마 지금 일하고 있잖아.”

“하지만 도니가 자꾸 괴롭혀요.”

“뭐? 도니가?”

“내가 언제!”

집무실 입구에서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똘망똘망한 눈동자에 제이크를 닮아서 그런지 깡다구가 있어 보이는 표정으로 아이가 소리쳤다.

“언제라니, 조금 전에도 나 괴롭혔잖아!”

“그건 니가 억지를 썼잖아!”

“억지라니. 당연한 것을 말하는 것뿐이야!”

두 아이는 쌍둥이답게 서로 지지 않으려 소리치며 떼를 썼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린은 한숨이 나왔다.

“도니, 넌 누나에게 말버릇이 그게 뭐니?”

“엄만 만날 나만 야단치셔.”

도니가 입이 삐죽 내밀며 삐친 상태가 되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아이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

“그래도 우리 착한 도니는 엄마 말 잘 듣잖니.”

아이린의 애정 가득한 말에 도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맞아. 난 엄마 말씀 잘 들어요.”

“그래서 엄만 도니를 참 예뻐하잖니.”

“칫, 나는?”

이번에는 옆에 있던 안나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런 안나를 아이린이 살포시 안았다.

“물론 엄만 안나도 많이 예뻐하지. 엄마는 도니도 그렇고, 안나도 무척이나 사랑한단다.”

두 아이는 엄마 품에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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