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헬 나이츠 5권 (23화)
반면, 제이크는 좁은 숲길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높은 나무 위에 올라선 제이크는 후버드 후작가의 병력이 좁은 길에 들어서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후훗, 드디어 오는군.”
그 말과 동시에 제이크의 몸이 그곳에서 사라졌다. 제이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오솔길의 끝 지점이었다.
그곳에서 제이크는 사람의 인적이라고 없는 무심한 숲을 응시했다. 발에 밟히는 것은 오직 낙엽뿐이었다. 제이크는 뒷짐을 진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놈들이 들어왔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제이크가 서 있던 왼쪽의 땅이 들썩였다. 낙엽으로 수북이 쌓인 그곳에 작은 공간이 생겨나며 몇 명의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인 알렌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 그렇습니까? 우린 언제까지 여기에 숨어 있으면 됩니까?”
“나의 지시에 따르면 된다. 그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앞의 길은 확실히 막았겠지?”
“넵, 백작님!”
알렌이 힘차게 말했다.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놈들이 오기만 기다리면 되겠군.”
제이크의 나직한 음성에 알렌은 다소 긴장된 표정이 되었다. 땅을 파고 숨어 있긴 하지만, 그들도 긴장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눈치챈 제이크가 피식 웃었다.
“긴장되나?”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죠.”
“후훗, 하긴 그렇겠지.”
제이크도 인정했다. 그러자 알렌이 나직이 물었다.
“과연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요?”
“이길 수 있다. 믿어라. 너희 자신을 믿고, 나를 믿어라. 그러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너희들은 그저 내가 가르쳐 준 대로 싸우면 된다.”
알렌은 제이크의 말을 듣고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항상 그랬다. 당당했고, 믿음을 주었다. 단지 말 한마디 한 것뿐이지만, 긴장되었던 마음이 다소 풀리는 것 같았다.
“저희들은 물론 백작님을 믿습니다.”
“그럼 되었다. 지시가 있을 때까지 잘 숨어 있도록.”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알렌이 다시 땅속으로 몸을 숨겼다. 제이크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는 다시 사라졌다. 이제 모든 준비가 되었다. 놈들을 완벽하게 몰살시키는 일만이 남은 것이다.
Episode 49 전쟁의 끝
1
후버드 후작가의 병력이 거의 다 숲 속에 들어섰을 때,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모두 공격!”
그러자 주변의 산언덕에 숨어 있던 병력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우와아아아!”
“죽여라!”
그들은 모두 제이크 백작가의 병사들이었다. 선두에서는 알렌 기사단장이 험한 인상을 지으며 공격해 들어갔다. 후버드 후작가의 기사와 병사들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숲 속인데다 좁은 오솔길이라 제대로 된 진영을 갖출 수는 없었다.
그리되자 우왕좌왕하는 쪽은 후버드 후작가 측이었다.
“기습이다!”
“적들이 공격한다! 모두 막아라!”
“당황하지 마라!”
카르폰 기사단장이 고함을 질렀다. 다른 기사들도 병사들을 다독이며 소리쳤다. 하지만 금세 진형이 무너졌고,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병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막아라, 막아!”
지휘관들의 처절한 외침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반면, 제이크의 병사들은 철저히 계획된 움직임으로 적을 상대했다. 병사들은 철저하게 훈련된 방식으로 움직였다. 예전에 사용했던 돌파 진형이었다.
이번에도 돌파 진형을 갖춘 채 적을 유린하였다.
길게 늘어선 후버드 후작가의 진형은 여기저기 구멍이 뻥뻥 뚫려 버렸다. 하지만 워낙에 많은 병력이기에 금세 그 자리를 메웠다. 그러나 또다시 제이크의 병력들이 들이닥쳤다.
“죽여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제이크 백작가 지휘관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상황을 지켜보던 후버드 후작이 소리쳤다.
“놈들을 상대하지 마라! 신속히 이곳을 벗어난다! 어서 움직여라!”
이렇게 피아를 분간하기 힘든 좁은 오솔길에서 적의 돌파 진형과 맞서 싸운다는 것은 매우 불리했다. 그래서 신속히 이곳을 벗어난 후, 넓은 곳에서 적을 상대해야 했다. 바로 뒤쪽의 파이란 평야에서 말이다. 후버드 후작은 그곳에서 부대를 정비한 후 놈들을 상대할 생각이었다.
카르폰 기사단장도 같은 생각을 하였다.
“퇴각하라! 어서! 파이란 평야까지 물러난다! 서둘러라!”
카르폰 기사단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주위는 난장판이고, 후버드 후작을 호위하는 기사 몇 명도 이미 사라진 후였다.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퇴를 하였다. 그리고 숲길을 벗어나 파이란 평야로 나왔다. 그가 나오자 병사들도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진형을 갖추어라! 어서!”
카르폰 기사단장은 말을 몰며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잘 훈련된 병사들은 당황하지 않고 진형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병사들의 비명 소리는 여전히 숲 속에서 들려왔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사, 살려줘.”
동료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병사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 소리가 천천히 잦아들었다. 곧이어 더 이상의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후버드 후작가의 병사들은 이미 진형을 갖춘 채 다음 전투를 준비했다. 하지만 숲에서는 한 명의 적도 나오지 않았다. 비명 소리가 끊어지고 한참이 지나도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카르폰 기사단장이 후버드 후작에게 말했다.
“놈들이 나오지 않을 모양입니다.”
“으으윽, 빌어먹을!”
이제야 넓은 공터로 나와 확실하게 전투를 치르려 했지만, 적이 나오지 않으니 그것도 되지 않았다. 속만 부글부글 끓었다.
카르폰 기사단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죽어간 부하들을 생각하니 손이 부르르 떨렸다. 당장에라도 저 숲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나 그럴 수는 없었다. 저곳으로 들어가면 당하는 쪽은 자신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도 검의 손잡이를 꽉 쥐며 부르르 떨었다.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숨어서 야금야금 병력을 처리하는 것이 얌체처럼 느껴졌다.
기사라면 당당히 나서서 정정당당히 붙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전쟁이었다. 이것도 하나의 전술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피해 규모는?”
카르폰 기사단장이 뒤에 있던 기사에게 물었다. 기사는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대답이 없자 몸을 돌린 카르폰 기사단장.
“이봐! 정신 차려!”
“네? 네에!”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가 빼놓고 있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당장 피해 상황을 확인해서 보고해!”
“알겠습니다, 단장님.”
기사가 황급히 움직였다. 그런 기사의 모습을 보며 카르폰 기사단장이 머리를 내저었다. 그는 곧바로 후버드 후작에게 다가갔다.
“후작님, 놈들은 이곳으로 안 나올 것입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빨리 성으로 돌아가 부대를 재정비해야 할 듯합니다.”
“그, 그래, 알았네.”
후버드 후작은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그도 이제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제대로 된 싸움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매복에 당하고, 정신없이 몰아치는 녀석들의 수법에 기가 질린 듯 보였다.
카르폰 기사단장은 서둘러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어서 성으로 귀환한다! 부상병들을 챙겨라!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최대한 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서둘러라!”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후버드 후작은 거의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말을 몰았다.
한편, 매복 기습에 성공을 한 제이크 백작가의 병사들은 잔뜩 들뜬 분위기였다. 이번에도 제이크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더니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게다가 사망자와 부상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백작님, 완벽한 승리입니다.”
알렌 기사단장이 제이크에게 다가와 말했다.
“당연한 결과다. 그보다 우리 측 피해는?”
“현재까지 파악한 결과,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잘됐군. 부상자는 서둘러 성으로 돌려보내고, 나머지는 재정비를 한 후 밤에 퇴각하는 적들을 기습한다.”
“네, 백작님.”
알렌이 힘차게 말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제이크는 숲 건너편 파이란 평야로 시선을 두었다. 그러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다시는 넘보지 못하도록 철저히 짓밟아 버리겠다.”
2
제이크의 부대가 정렬을 하는 동안 어느새 폴과 필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련님, 밤까지 기다립니까?”
폴이 물었다. 그러자 제이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굳이 밤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냥 쓸어버려.”
“크크크, 그냥 죽여도 상관없죠?”
“그래. 단, 헬 솔저로의 변신은 불가!”
“에이, 그럼 재미없는데.”
“맞아, 재미없어.”
폴과 필이 퉁명스럽게 말을 하였다. 그런데 제이크의 모습이 전과 좀 달랐다. 이때쯤 무서운 눈으로 째려보며 위협을 가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진지한 표정으로 폴과 필에게 말했다.
“이번은 그냥 인간다운 모습으로 싸워줬으면 좋겠다.”
제이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폴과 필도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왜 그러십니까?”
필이 물었다. 그러자 폴이 필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쳤다.
탁!
“아얏, 왜 때려!”
“시끄러, 넌!”
폴이 제이크를 보며 말했다.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는 필의 뒤통수를 잡아서 끌었다.
“넌 나 따라오고.”
“아이씨, 왜! 왜 그러는데!”
“조용히 따라와.”
폴과 필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제이크는 미소를 지었다. 필은 아니지만, 폴은 자신의 의도를 알아챈 것이 내심 고마웠다.
“후후, 그래도 한 놈은 똑똑해서 다행이네.”
제이크는 그리 말을 한 후, 알렌을 향해 말했다.
“오후를 기해 총공격을 명한다. 준비하도록.”
“네, 백작님.”
알렌은 힘차게 대답을 한 후 자리를 떠났다.
후버드 후작가의 병력은 전투의 후유증 때문에 걸음이 지체되어 성에 복귀하지 못했다. 그래서 근처에서 진영을 갖추고 잠시 휴식을 하기로 하였다. 내일 정도면 성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었다.
후버드 후작은 자신의 막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상대에게 당한 것이 화가 났다. 그러면서도 무서웠다. 녀석들의 전술에 제대로 된 대응도 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자만심 때문이었다.
자신의 자만심 때문에 병력을 잃었다. 만 명이나 되던 병력이 지금은 2천도 남지 않았다. 거의 5분의 4 정도나 되는 병력을 잃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