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122화 (122/125)

# 122

헬 나이츠 5권 (22화)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필의 팔은 병사들을 단 한 명도 접근시키지 못하게 했다. 병사들은 가슴이 뚫리고, 팔과 머리가 잘려 사방으로 날아가며 픽픽 쓰러졌다.

기사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처럼 잔인하고, 이처럼 포악한 녀석은 처음이었다. 아니, 평생 이렇게 무서운 괴물은 처음 봤다.

“이, 이럴 수가. 어떻게…….”

기사가 검을 들고 놀라고 있을 때, 30명의 병사는 이미 모두 고혼이 되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필은 팔에 잔뜩 묻은 붉은 피를 혀로 핥았다. 그러고는 기사를 향해 말했다.

“넌 덤비지 않을 것이냐?”

그 말을 듣는 순간, 기사는 울분을 토해내며 달려갔다.

퍽! 퍼퍽!

그러나 필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늘어난 팔이 날아와 기사의 안면을 가격했다. 그 뒤로 몇 개의 주먹이 더 날아왔다. 필의 가까이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주먹이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몰랐다.

그냥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가끔씩 번쩍하고 번개가 치는 듯했다. 그 순간, 자신의 눈이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자신의 다리라 여겨지는 것이 우뚝 서 있었다.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막사 옆구리를 찢고 나타난 사내의 다리가 보이고, 그 다리가 옆의 막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기사는 허리에서부터 잘려진 자신의 다리를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이 되었다.

‘왜 내 다리가 저기 있지? 그리고 난 왜 바닥에 떨어져 있지?’

기사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필은 막사에 있던 병사와 기사를 처리한 후 옆 막사로 이동했다.

그때, 막사의 입구가 걷히며 그곳에서 병사들이 우르르 뛰어 나오고 있었다.

필은 그들이 나오는 족족 단 한 방으로 가슴을 꿰뚫으며 죽여 댔다. 그 옆에서 폴 역시 필과 마찬가지로 병사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고요하던 파이란 평야는 어느새 살육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둥근 달은 서서히 붉게 변하고, 여기저기 병사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붉은 눈을 가진 두 명의 사내가 이리저리 날뛰며 그 많은 병사들을 하나하나 처리하고 있었다. 후버드 후작가의 선발대는 파이란 평야에 도착하자마자 폴과 필에 의해 모두 전멸했다.

3

다음 날, 아침이 밝아왔다.

후버드 후작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군영 막사에서 잠을 잤지만, 저택의 넓고 푹신한 자기 침대에서 자는 것보다 오히려 편안했다.

물론 침대 자체도 푹신하기는 하였다. 전쟁터에 어울리는 침대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였다. 어쨌든 후버드 후작은 잠옷 차림으로 침대 옆에 마련된 세숫대야로 향했다.

그 물로 간단히 세면을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막 갑옷을 입으려고 할 때, 막사 문이 열리며 카르폰 기사단장이 들어섰다.

“후작님, 큰일 났습니다.”

후버드 후작은 아침 일찍, 그것도 자신이 갑옷을 입기도 전에 나타난 카르폰 기사단장에게 못마땅한 얼굴로 소리쳤다.

“뭐가 큰일이 났다는 것이냐?”

“선발대로 보낸 병사들이 밤사이에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뭣이?”

후버드 후작의 눈이 부릅떠졌다. 혹여 자신이 잘못 듣지는 않았는지 재차 확인하였다.

“그 말이 사실인가? 좀 더 상세히 설명해 보아라.”

“사실 오늘 새벽에 선발대로부터 소식이 오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상히 여겨 정찰병을 보내 확인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확인을 보낸 병사의 말이, 그곳을 지켜야 할 병사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저, 정녕 그것이 사실이냐?”

“네, 그렇습니다. 지금 선발대 진영을 확인하고 온 정찰병이 밖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어, 어서 들라 하라.”

후버드 후작은 조금 전까지 편안했던 기분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무려 기사 20명에 병사 2천 명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그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었다.

정찰병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그사이 후버드 후작은 서둘러 자신의 갑옷을 챙겨 입었다. 정찰병은 들어와서 후버드 후작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네가 확인을 하였느냐?”

“네, 후작님.”

“그곳에서 봤던 것을 소상히 설명하라.”

후버드 후작의 다그침에 병사는 자신이 본 것을 상세히 설명했다.

“선발대 진영에 도착하기 전부터 비릿한 피 냄새가 숲 속에 진동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선발대 진영에 도착을 해보니 모든 병사들이 죽어 있었습니다.”

“다, 단 한 명도 생존자는 없더냐?”

“네, 그렇습니다. 기습을 당했는지 대부분의 병사들이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정찰병의 말을 들은 후버드 백작의 몸이 휘청거렸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난 것이다.

“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네 녀석이 잘못 보지 않고서야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아, 아닙니다. 제 눈으로 직접 확인을 했습니다.”

정찰병은 절대 거짓말이 아니라고 했다. 옆에 서 있던 카르폰 기사단장의 표정도 잔뜩 굳어졌다. 그도 하룻밤 사이에 그들이 전멸당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폰트는? 폰트 부기사단장은 어찌 되었나?”

“부기사단장님도 이미…….”

정찰병은 고개를 숙이며 차마 말을 끝내지 못했다. 그 모습만 봐도 폰트 부기사단장이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버드 후작은 비틀거리며 옆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카르폰 기사단장이 재빨리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후작님!”

“괘, 괜찮다.”

후버드 후작이 카르폰 기사단장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고는 잠시 숨을 고른 후, 정찰병에게 물었다.

“놈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습격한 녀석들이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냐? 몇 명인지도 파악되지 않았고?”

“……네.”

정찰병은 힘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카르폰 기사단장이 나섰다.

“분명 제이크 백작가 놈들일 것입니다. 그들밖에 없습니다.”

카르폰 기사단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후버드 후작의 얼굴도 잔뜩 일그러졌다.

“죽일 놈들…….”

후버드 후작은 이를 갈았다. 한마디로 제이크 백작가 놈들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 같았다.

“빌어먹을!”

후버드 후작은 주먹을 쥐며 옆의 탁자를 내려쳤다. 그러고는 카르폰 기사단장에게 말했다.

“긴급 대책 회의를 소집하라.”

“네, 후작님.”

그렇게 긴급 대책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긴급 대책 회의에서 나온 결과는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최대한 빨리 전투를 벌여 전쟁을 끝내 버리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후버드 후작의 최종 명령이 떨어졌다.

“오늘 당장 제이크 백작가를 향해 돌진하라!”

후버드 후작의 돌진 명령에 본진은 서둘러 돌격할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파이란 평야에 들어섰을 때, 그곳은 조용하였다. 건너편에 있어야 할 적은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바람에 살랑거리는 갈대만이 전부였다. 후버드 후작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마치 자신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이 죽일 놈이!”

후버드 후작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감히 날 가지고 놀아? 오냐, 널 찢어 돼지 먹이로 줘버리겠다.”

후버드 후작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다시 지시를 내렸다.

“이대로 제이크 백작령으로 총공격한다.”

“넵!”

“자, 이동하라.”

그렇게 다시 이동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약 한 시간가량 이동하자, 파이란 평야의 반대편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제이크 백작령으로 들어가는 숲이 존재하였다.

일단 선두에 있던 카르폰 기사단장이 병사들을 멈춰 세웠다. 그는 눈앞의 숲을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만이 전부였다.

“으음…….”

카르폰 기사단장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렀다. 그도 오랫동안 전쟁을 겪은 기사인 만큼 이곳이 매복을 하기에 적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카르폰 기사단장이 우선 전방에 10여 명의 기사를 앞세웠다.

“이곳에 적이 매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주위를 살펴 확인해 보도록.”

“네, 단장님.”

기사들이 힘차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기사들이 주위를 살피기 위해 떠나고, 얼마 있지 않아 후버드 후작이 앞으로 나섰다.

후버드 후작은 카르폰 기사단장이 더 이상 진군하지 않고 멈춰 선 것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

그러자 카르폰 기사단장이 그에 답했다.

“앞에 숲이 있습니다. 그곳을 지나야만 제이크 백작령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럼 가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적의 매복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확인 없이 들어갔다가 매복에 당하게 된다면 큰일입니다.”

그 말을 들은 후버드 후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그래…… 알았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으음,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카르폰 기사단장이 나직이 말했다.

“그럼 정찰을 보냈는가?”

“네, 조금 전에 보냈습니다. 그들이 돌아오고 나서 움직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겠다. 서둘러라.”

“네, 후작님.”

힘차게 대답을 한 후, 카르폰 기사단장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주변에 경계를 세우고는 정찰을 보낸 기사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정찰을 나갔던 기사들이 무사히 돌아왔다. 카르폰 기사단장이 즉시 물었다.

“놈들은?”

“주위가 너무 조용합니다. 멀리까지 들어가 주변을 샅샅이 확인해 보았지만, 매복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

기사들의 보고를 들은 카르폰 기사단장은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금 숲 속을 응시했다. 매복이 없다고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 많은 병력을 길이 없는 곳으로 이동시키기에도 무리가 있어 보였다. 잠깐 고민을 하던 카르폰 기사단장이 결정을 내렸다.

“이동한다!”

“넵.”

카르폰 기사단장의 지시가 내려지고 병력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숲 속으로 들어서자 작은 오솔길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오솔길이기에 대규모 이동은 무리였다.

그래서 세 명씩 정렬해 줄을 지어 이동하였다. 기사단이 먼저 앞장을 서고, 그 뒤로 후버드 후작이 이동하였다.

카르폰 기사단장과 기사들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주위를 살폈다.

주변을 경계하는 그들은 바짝 긴장을 한 상태였다. 여기서 기습을 당하면 엄청난 병력 손실을 입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적의 기습을 먼저 발견하고 대처해야 했다.

이동하는 기사들과 병사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잔뜩 경계를 하였다. 그렇게 부대 전체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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