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헬 나이츠 5권 (21화)
“모르겠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다만, 어젯밤 지하 연무장에서 내게 묻더군. 인간들이 싸우는 법은 어떻냐고. 그래서 그냥 인간답게 싸우는 법을 알려줬을 뿐이야.”
“그래요? 저이가 왜 그런 말을…….”
아이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멀어지는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크가 피식, 웃었다.
“난 알겠는데.”
“네에? 뭘 알아요?”
“매제가 뭐 때문에 그러는지.”
“뭔데요?”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냥 매제를 믿어보라는 거야. 돌아오면 매제 스스로가 알려주겠지.”
아크의 알 수 없는 말을 들으며 아이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아이린은 제이크를 믿었다. 그가 무사히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네에, 전 언제나 믿고 있어요.”
아이린의 눈은 정말 믿음으로 가득했다. 그러다가 아이린이 누굴 찾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굴 찾아?”
“폴과 필 님이 보이지 않아요.”
“그러게. 요 며칠 보이지 않던데, 이런 중요한 때에 어딜 간 것이지?”
아크는 그 두 사람이라면 큰 전력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후버드 후작의 선전포고가 있고 난 후부터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있겠죠. 그 두 분은 워낙에 신출귀몰해서…….”
아이린은 말을 하면서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제이크 백작령으로 향하는 대로변으로 만여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손에 기다란 창을 쥐고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움직였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부대의 행렬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 선두에 후버드 후작이 늠름한 자세로 말을 타고 있었다.
후버드 후작령을 떠난 지 어느덧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병사들의 사기를 생각해서 이동에 큰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그래서 천천히 이동을 하였다. 그리고 파이란 평야를 앞에 두고 본진이 멈추었다. 잠시 후, 정찰을 나갔던 기사가 말을 타고 돌아왔다.
“후작님께 보고합니다.”
“하라.”
“전방에 파이란 평야가 보입니다.”
“그래? 그럼 본진은 이곳에서 군영을 갖추고 싸울 준비를 한다. 폰트!”
“네, 후작님.”
후버드 후작의 부름에 폰트 부기사단장이 앞으로 나섰다.
“자넨 기사 20명과 병사 2천을 전진 배치해서 놈들에게 우리의 위용을 보여주도록!”
“네, 알겠습니다.”
폰트 부기사단장은 즉시 병력을 이끌고 파이란 평야를 향해 움직였다. 그사이 후버드 후작의 본진은 군영을 펼치며 이동에 대한 피로를 풀기 시작하였다.
폰트 부기사단장은 선발대로 온 기사와 병사들을 이끌고 파이란 평야 인근 야산에 군영을 꾸렸다. 본진과는 약 1㎞ 떨어진 곳이었다.
“이곳에서 짐을 푼다.”
“넵!”
힘찬 외침과 함께 서둘러 야영을 준비하였다. 몇몇 병사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보초를 섰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주변을 정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약 두 시간가량 준비를 한 끝에 마무리가 되었다. 폰트 부기사단장은 서둘러 본진에 보고할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간이 막사로 이동을 하였다.
그때, 병사 한 명이 급히 달려왔다.
“부기사단장님.”
폰트 부기사단장은 막사로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달려온 병사는 급히 인사를 했다.
“무슨 일이냐?”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놈들을 잡아왔습니다.”
“그래? 이리로 데려오너라.”
“넵.”
막사 입구에서 폰트 부기사단장이 기다렸다. 잠시 후, 병사들에 의해 포박당한 채 끌려오는 두 명을 보았다. 한 명은 뚱뚱하며 키가 작고, 다른 한 명은 옆의 사내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마른 체구였다.
병사는 두 사람의 등을 밀며 폰트 부기사단장 앞에 무릎을 꿇게 했다.
“꿇어라!”
그러자 잡혀온 두 명 중 뚱뚱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살살해.”
뚱뚱한 사내는 살짝 짜증을 내며 병사의 말을 들었다. 마른 체구의 사내는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폰트 부기사단장은 그런 두 사내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둘 다 거지 차림이었다. 그렇다고 녀석들이 누구인지 신분을 나타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폰트 부기사단장이 물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입에서는 그 어떤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병사가 자신의 창으로 꾹꾹 찌르며 소리쳤다.
“네 이놈! 부기사단장님께서 묻지 않느냐! 어서 대답하지 못할까!”
그 말에 뚱뚱한 사내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어째 그때랑 똑같냐?”
“내 말이.”
빼빼 마른 사내도 그에 동조를 하며 중얼거렸다. 병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는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이, 이것들이 미쳤나? 지금 너희들 포로거든?”
“알아, 우리가 붙잡혔다는 것을. 그래서 뭐? 어쩌라고?”
뚱뚱한 사내는 적반하장식으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말했다. 그에 병사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어찌하지를 못했다.
“이, 이……!”
병사는 당장에라도 창을 들어 녀석들을 찔러 죽일 태세였다. 그에 폰트 부기사단장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만!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이곳은 곧 전쟁터가 될 것이다. 그런 곳에 있었다는 것은 수상한 녀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병사가 물었다. 폰트 부기사단장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말했다.
“우선은 막사 안에 가둬두어라. 혹시라도 녀석들에게서 알아낼 것이 있다면 알아내야지.”
“넵, 부단장님.”
병사는 폰트 부기사단장에게 지시를 받고는 두 녀석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창끝으로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이놈들아, 일어나!”
두 사내가 어슬렁어슬렁 일어났다.
“가자!”
그런 후, 병사에게 이끌려 구석에 마련된 막사로 이동하였다. 폰트 부기사단장은 그런 두 사내를 힐끔 쳐다보고는 몸을 돌려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폰트의 입장에서는 정찰병이든 아니든 모든 준비를 마쳤기에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놈들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막으면 그만이었다.
폰트 부기사단장은 막사로 들어가기 전, 다시 한 번 지시를 내렸다.
“주변 경계를 철저히 하라!”
“네, 부단장님!”
폰트 부기사단장은 지시를 내리고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병사들에게 이끌려 막사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내 중 마른 체구가 중얼거렸다.
“우리는 왜 만날 이런 짓을 해야 하지?”
그러자 뚱뚱한 사내가 바로 말했다.
“어쩌겠어. 까라면 까야지.”
“젠장, 맘에 안 들어.”
마른 체구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러자 그 뒤에 있던 병사가 소리쳤다.
“시끄러! 뭘 그리 중얼거려! 어서 가지 못해!”
“네네.”
그렇게 두 사내는 병사들에 의해 막사 안에 가둬지게 되었다.
하지만 후버드 후작 병사들은 몰랐다, 이 두 사람이 예전 채플 백작가와의 싸움에서 광란의 피바다를 만들어낸 폴과 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파이란 평야에도 어느덧 밤이 찾아왔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은 수많은 별들로 가득했다. 그중 가장 으뜸은 바로 달이었다.
하얀 달은 늦은 밤임에도 주변을 환히 밝혀주었다. 후버드 후작군의 선발대 병사들도 주위가 밝아서인지 경계를 서는 데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탁 트인 공간에다가 달빛마저 밝게 비춰주니, 어느 누구라도 쉽사리 습격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부욱― 북!
그 순간, 막사 옆구리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살짝 벌어지자 그곳에서 네 개의 붉은 눈빛이 번쩍였다. 막사 주위를 지키는 두 명의 병사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찢어진 막사 옆으로 네 개의 붉은 눈빛이 나뉘며 두 명의 병사 뒤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곧바로 두 병사를 덮쳤다.
“웁!”
“흡!”
우두둑!
두 병사가 고함을 지르지 못하게 입을 막고는 그대로 목을 꺾어버렸다. 목이 부러진 병사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잠시 후, 그곳에 나타난 인물은 바로 폴과 필이었다.
폴과 필은 막사에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밝게 빛나는 달을 쳐다보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오늘도 그때와 같이 달이 무지 밝네.”
폴이 말했다.
“그러게. 그때와 마찬가지로 광란의 밤을 즐기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이지.”
필이 동조했다.
“킥킥킥. 그래, 맞아. 그런데 인원이 그때보다 많은데?”
“왜? 겁나?”
“무슨 소리! 죽일 것들이 많아서 그렇지.”
“그렇지. 죽일 놈들이 많으면 기분이 좋지.”
“클클클! 맞아, 맞아.”
폴과 필은 서로 얘기를 주고받으며 붉은 눈동자가 더욱 빛을 발했다.
“그럼 또 한 번 한바탕 휘저어볼까?”
“크크크, 거 좋지. 신명나게 한바탕 놀아보자고.”
“그럼 이번엔 내가 먼저!”
이번에는 폴이 먼저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던 필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만 양보하는 거야.”
그렇게 말을 하고는 반대쪽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악!”
“으아악!”
동료들의 비명 소리에 막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다른 병사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저,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쨍쨍쨍쨍!
적이 나타났다는 소리에 고요했던 선발대 진영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경계를 서는 병사들 빼고 나머지는 모두 막사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자기 닥쳐든 적의 습격에 모두들 우왕좌왕하며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모두가 예외 없이 잠에서 깨어나 장비를 착용했다. 그때, 옆의 천막에서 동료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악!”
“크악!”
그러자 기사가 장비를 착용하며 다급하게 외쳤다.
“어서 서둘러라, 어서!”
기사의 재촉에 병사들도 누구라 할 것 없이 일제히 장비를 착용했다. 옆 막사가 갑자기 고요해졌다. 장비를 착용하던 기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순간, 막사의 천막이 부욱― 하고 찢어지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기사는 그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누, 누구냐?”
막사 안으로는 달빛이 들어오지 않아 매우 어두웠다. 그런데 막사 옆구리가 찢어지며 달빛이 스며 들어왔다. 그 달빛에 의해 붉은 눈빛을 가진, 키가 큰 검은 그림자가 드러나며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크크, 내가 누군지는 지옥에 가서 알아봐. 아주 자세히 설명해 줄 테니.”
필은 늘어난 팔을 쭉 뻗어 옆에 있던 병사의 머리를 낚아챘다. 손에 힘을 팍, 주자 마치 두부가 으깨지듯 박살 나버렸다. 사방으로 뇌수와 피가 튀었다.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병사들은 동료의 죽음에 그냥 무작정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으아아악! 괴물! 죽어라!”
하지만 병사들은 이내 가슴이 꿰뚫린 채 싸늘한 시체로 변했다. 기사는 놀란 눈이 되며 소리쳤다.
“막아라! 놈을 죽여 버려!”
30명가량 모여 있던 천막의 병사들은 한꺼번에 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필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병사들을 차례대로 처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