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헬 나이츠 5권 (20화)
Episode 48 영지전(下)
1
후버드 후작가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넓은 공터가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후버드 공작가의 병사들이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천 명의 병사들이 갑옷을 걸친 채 하나둘 집결하고 있었다.
그들은 평소에는 농경지에서 밭일과 농사일을 하면서 지내다가 소집 명령이 떨어지면 농기구 대신 갑옷과 창, 검을 들고 약속된 장소에 모였다.
다른 아낙네들과 어린아이들, 그리고 노인들은 그들을 배웅하고는 슬픈 눈망울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병사들이 모여들자 주위의 분위기는 매우 삭막했다.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해 오다 이제 곧 전쟁을 한다는 사실에 긴장이 되고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었다.
병사들 사이로 기사의 모습도 하나둘 보였다. 그들의 지휘로 병사들이 정렬하며 모이기 시작하였다.
병사들과 달리 기사들의 갑옷은 모두 다 새것이었다. 얼마나 광을 냈는지,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번쩍번쩍 빛이 났다.
어쨌든 이번 전쟁을 통해 얻는 것도 많을뿐더러, 미리 지원까지 받은 터라 기사들은 자신의 무장에 아낌없이 투자를 하였다.
후버드 후작가의 기사들은 대략 100여 명 정도 되었다. 징집 병사들은 2만 5천 명 정도고, 영지를 지키는 병사를 약 천여 명만 남겨두고 모두 전장에 나설 생각이었다. 그렇게 출격을 위한 준비가 거의 끝나갔다.
그사이, 후버드 후작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의 갑옷은 여기저기 보석들이 박혀 있고, 딱 봐도 폼을 내려고 만든 것처럼 보였다.
그가 시종들의 도움을 받으며 갑옷을 입고 있는 동안, 기사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후버드 후작을 향해 예를 표했다.
“기사단장, 카르폰이 후버드 후작님께 인사드립니다.”
“부기사단장, 폰트가 후버드 후작님께 인사드립니다.”
두 기사의 인사에 흡족한 미소를 지은 후버드 후작은 다 입은 갑옷을 툭툭, 치며 말했다.
“준비는 다 끝났나?”
“넵!”
“넵, 후작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출진할 수 있습니다.”
기사단장의 힘찬 대답을 들은 후버드 후작은 매우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잘했다. 지금 병사들은 어디에 있는가?”
“현재 동쪽 외곽, 성 근처에 집결해 놓은 상태입니다.”
“알겠다. 두 사람은 먼저 가서 대기하도록. 준비되는 대로 곧바로 출진하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백작님.”
카르폰 기사단장이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그의 푸른 망토가 유난히 펄럭거렸다.
두 기사가 나가고 홀로 남은 후버드 후작이 창가로 갔다. 그는 뒷짐을 진 채 창가 너머를 바라보았다. 이제 출진할 준비도 끝이 나고, 명분도 얻어 점령만 하면 되었다.
“후후후, 역시 젤만 공작의 말대로군. 녀석을 절대 내놓지 않았어. 이 얼마나 재미난 일인가. 크크크, 크하하핫!”
후버드 후작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때, 성안으로 한 대의 마차가 들어섰다. 그 마차에서 누군가 내렸다. 그를 본 후버드 후작의 눈빛이 바뀌었다.
“응? 왕비님 곁에 있던 놈인데?”
후버드 후작이 곧바로 집무실을 나섰다. 일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섰을 때, 아까 마차에서 내리던 녀석이 대기하고 있었다.
“자넨 왕비님을 보필하던 녀석이 아닌가.”
후버드 후작의 말에 녀석은 곧바로 인사를 하였다.
“왕비님을 모시는 나바로입니다.”
“오냐, 그런데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왕비님의 말씀을 전해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왕비님께서? 그래,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그것이…… 왕비님께서 이번 전쟁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아니, 왜? 무슨 일로?”
“그것은 자세하게 모릅니다. 그저 전 이 말만 전해 드리라고 했습니다.”
나바로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왕비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면 그리해야겠지만, 이미 전쟁 선포를 한 상태다. 그러니 어쩔 수가 없다.”
“안 그래도 왕비님께서 이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만약 그래도 전쟁을 하겠다면, 자신의 도움은 일체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왕국에서의 지원도 없다고 말입니다.”
녀석의 말에 순간 후버드 후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녕 왕비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느냐?”
“네, 그렇습니다. 너무 급한 나머지 글로 옮기지는 못하였다고 합니다.”
“알겠다. 어차피 지원 받지 않아도 내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문제였다. 물러가라.”
“네, 후작님.”
나바로가 물러나고 홀로 남은 후버드 후작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래도 오라비인데…….”
후버드 후작의 표정에 복잡미묘하게 바뀌었다. 그러다가 뭔가 훌훌 털어버리는 기분으로 말했다.
“됐어, 어차피 도움을 요청할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내겐 든든한 지원군도 있으니까.”
후버드 후작이 피식 웃었다. 그의 든든한 지원군은 젤만 공작이다. 젤만 공작을 믿고 이렇듯 전쟁을 선포한 것이었다.
“자, 어차피 일은 벌어졌다. 이제 이번 일을 얼마나 빠르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하지.”
후작은 그 말을 하고는 갑옷을 철컹철컹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한참을 이동한 끝에 준비된 말로 갔다. 갑옷이 무거운 관계로 시종의 도움을 받은 그가 낑낑거리며 말 위에 올라탔다.
“젠장, 갑옷이 왜 이렇게 무거워? 돌아오면 바꿔야겠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는 말을 몰았다.
처음에는 천천히 걸어가는 것으로 시작해서 점점 속도가 올라갔다. 그러고는 이내 힘차게 말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이히히힝!
말의 긴 울음소리와 함께 후버드 후작은 병사들이 집결한 공터로 힘차게 내달렸다.
외곽 동쪽, 성문에는 만 명의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서 있었다. 그 앞에 카르폰 기사단장과 폰트 부단장이 대기했다. 그들은 곧 출진할 태세를 갖추고 후버드 후작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화려한 갑옷을 걸친 후버드 후작이 흰말을 타고 나타났다. 후버드 후작의 등장으로 인해 이들은 출진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후버드 후작이 힘겹게 말에서 내렸다. 그러자 카르폰 기사단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부대 차렷!”
척! 처처처척!
카르폰 기사단장의 힘찬 목소리에 만 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차렷을 했다. 그 소리가 공터 가득 울려 퍼졌다. 기사와 병사들의 움직임에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지은 후버드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카르폰 기사단장이 몸을 돌려 후버드 후작에게 보고를 하였다.
“기사 150명, 병사 만 명 출진 준비가 끝났습니다.”
“음, 고생했다.”
후버드 후작은 정렬해 서 있는 만여 명의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깔맞춤을 한 듯 똑같은 갑옷을 걸친 병사들을 보니 마음이 뿌듯했다.
“역시 돈을 들인 보람이 있어.”
한눈에 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이, 이번 영지전을 100% 승리로 장식할 것이 분명했다.
후버드 후작은 기사들과 병사들을 보며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리 자신이 준비했다고 해도 이렇게 멋있는 부대는 본 적이 없었다.
후버드 후작은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후후후, 이 정도면 충분해. 이번 영지전 이길 수 있어.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어. 나 혼자 할 수 있다고. 돈이야 다시 벌어들이면 되는 거고.”
후버드 후작은 혼잣말을 중얼거린 후,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단상에 올라섰다. 그는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병사들을 한차례 훑어보았다.
그때, 옆으로 기사단장인 카르폰이 다가왔다.
“후작님,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내 눈에도 지금 보인다. 아주 좋구나. 고생했다.”
후버드 후작의 흡족함이 담긴 말에 카르폰 기사단장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만큼 공들여 준비한 것에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저희들은 꼭 후작님께 승리를 안겨 드릴 것입니다.”
“좋아, 좋아.”
후버드 후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단상으로 올라갔다. 단상 위에 올라서서 정렬되어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단상 위에서 보니 더욱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는 찬찬히 병사들을 훑어본 후, 큰 소리로 외쳤다.
“병사들이여, 우리는 강하다! 강한 만큼 제이크 백작가를 박살 낼 수 있다. 자, 가자!”
“와아아아아아! 후버드 후작님 만세!”
“깨부수자! 부숴 버리자!”
“우리는 강하다!”
만 명이 힘차게 외치는 함성 소리에 후버드 후작은 가슴이 요동쳤다. 심장이 심하게 바운스하며 자신도 모르게 흥분이 되었다.
잔뜩 격앙된 얼굴로 있던 후버드 후작이 자신도 모르게 한 손을 높게 쳐들었다. 그 순간, 만 명의 병사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엄청난 함성이 단상에 서 있는 후버드 후작의 몸을 고스란히 강타하였다. 그 순간, 뇌전에 감전된 듯 몸이 부르르 떨리며 전율이 일어났다. 후버드 후작은 눈을 감은 채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떤 후, 눈을 번쩍하고 떴다.
‘후후후, 기다려라, 제이크 백작. 내가 곧 간다. 너의 땅은 바로 내 것이 될 것이다.’
후버드 후작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가득해 보였다. 그는 그 누구와 싸우더라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힘차게 몸을 돌렸다. 단상을 내려오는 그의 망토가 바람에 나부꼈다.
“멋졌습니다, 후작님.”
어느새 다가온 카르폰 기사단장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단상에서 내려온 후버드 후작은 아직까지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당연하지. 난 원래 멋있는 사람이니까.”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어쨌든 지금 당장 가지.”
“넵, 바로 출발하면 됩니다.”
후버드 후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말로 향했다. 시종의 도움을 받아 육중한 몸을 말 위에 올렸다. 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뒤에 정렬해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힘차게 소리쳤다.
“자, 가자!”
“우오오오오오!”
후버드 후작을 선두로 만 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한 걸음 내걸을 때마다 땅이 진동하고 가슴이 요동쳤다.
2
제이크도 전쟁을 치를 준비를 모두 끝냈다.
이번에는 에페로 자작령에서의 증원도 부르지 않았다. 그곳도 그곳 나름대로 지켜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제이크가 말 위에 올라탔다. 그 뒤에는 알렌 기사단장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 위에 있었다.
제이크는 그들을 한차례 둘러보고는 힘차게 말했다.
“가자!”
척척척척!
병사들이 내딛는 발걸음 소리가 하늘 가득 울려 퍼졌다. 아이린은 멀어지는 제이크를 바라보며 걱정스런 표정이 되었다.
“조심히 잘 다녀와요.”
“걱정 마, 매제는 잘할 거니까.”
어느새 아이린의 뒤쪽으로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건네는 아크였다. 아이린은 그런 아크를 바라보고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에페로 자작령에서 베일 기사단장이 지원하러 오겠다고 하는 것을 거절했다고 하던데…….”
“네에, 이번에도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볼 요량이에요.”
“그래, 자신만만하더라. 그리고 이런 말을 하더구나. 이번에 자신은 인간답게 싸울 거라고.”
“네에? 그게 무슨?”
아이린이 놀라며 물었지만, 아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