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115화 (115/125)

# 115

헬 나이츠 5권 (15화)

“이리로 모셔 오세요.”

“네, 마님.”

네빌 집사가 나가고 잠시 후, 응접실로 백발의 노인이 들어왔다. 풍채는 제법 컸으며, 긴 백발의 수염을 늘어뜨린 채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매우 인자했고, 눈빛은 따뜻해 보였다. 아이린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아이린입니다. 저분은…….”

막 자신을 소개하던 아이린은 노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가 아이린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녀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따스함이 있고, 정이 있었다.

“저어…….”

아이린이 입을 열려고 할 때, 벨란 상단주의 입이 열렸다.

“잘 컸구나, 아이린.”

“네에?”

아이린의 눈이 커졌다.

“절 아세요?”

“그럼 알다마다. 눈동자가 네 어미를 쏙 빼닮았구나.”

엄마라는 말에 아이린의 눈동자가 더욱 커졌다. 가만히 앉아 있던 아크도 그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의 어머니를 아십니까?”

아크가 이내 말하였다. 벨란 상단주의 눈이 아크에게 향했다.

“그럼 네가 아크로구나. 너도 건장하게 컸구나.”

그 말을 들은 아크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구세요?”

아이린이 물었다. 그러자 벨란 상단주는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니 어미의 애비가 바로 나란다.”

“엄마의 아버지?”

그 순간, 아이린의 눈동자가 급속도로 흔들렸다.

“외, 외할아버지?”

“오냐, 내가 너희들의 외할아버지다.”

아이린은 직접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외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어릴 적부터 들었다. 인자하시고, 항상 엄마를 많이 사랑해 주셨다고.

그러던 어느 날 외할아버지의 가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였다. 반역을 했다는 모함을 받고 가문이 풍비박산이 났다고 하였다.

그 이후 외할아버지의 소식은 전해 들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지만, 찾지 못하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눈앞에 외할아버지가 있었다. 아이린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올라왔다.

아이린은 저도 모르게 외할아버지 품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할아버지!”

Episode 46 함정에 빠진 알렌

1

응접실에서는 아이린과 아크가 외할아버지 루세프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왜 여태까지 나타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그들 세 사람이 얘기하는 동안 제이크는 뒤로 빠져 있었다. 대충 얘기를 들어보면 루세프는 반란죄라는 모함을 당한 후 마론 왕국으로 피신하였다.

그곳에서 벨란 상단을 만들어 지금에 이른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할아버지를 무척이나 보고 싶어 하셨어요.”

“안다, 알고 있단다. 하지만 올 수가 없었단다. 그 당시 국경 지역은 아주 위험했거든. 그리고 벨란 상단도 아직 안착되지 않았고 말이야.”

“그래도…….”

“얘야, 차차 얘기하자구나. 시간은 많단다.”

“그럼 할아버지, 돌아가지 않으실 거예요?”

“아니, 상단으로 돌아가야지. 다만, 이곳에서 좀 지낸 후에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아이린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정말이죠?”

“그렇단다, 얘야.”

“잘됐다. 그렇지, 오빠?”

“으응, 그래.”

아크도 기쁜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기쁨을 뒤로 미뤄야 했다. 지금 당장 직면한 일 때문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외할아버지 루세프는 다시 진지한 얼굴로 말을 하였다.

“얘야, 아이린.”

“네, 할아버지.”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루세프는 말을 하면서 아크를 쳐다보았다. 아이린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아, 맞다.”

“이번 일은 이 할애비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린과 아크의 눈이 크게 떠졌다.

“500만 골드예요. 할아버지.”

“허허허, 500만 골드? 할애비가 돈이 좀 많단다. 그 정도쯤은 충분히 있구나.”

“할아버지께서 도와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어요.”

아이린은 뛸 듯이 기뻐했다. 아크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제이크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어렸다.

‘훗, 보기 좋군. 내가 없어도 걱정 없겠어.’

제이크는 흩어졌던 아이린의 가족이 하나둘 모여드는 것에 매우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르나 자작이 탄 마차가 조금 전 출발하였다. 그가 가진 소식은 돈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50% 광산 채굴권 또한 없는 얘기가 되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다시 며칠의 시간이 흐른 후, 신성제국으로 500만 골드가 든 상자가 배달되었다. 제이크 백작가의 직인이 찍힌 서신과 함께 말이다.

루세프는 제이크 백작가에서 지내며 아이린과 아크에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증손자, 손녀들을 보며 너무도 기뻐했다. 그렇게 따뜻한 가족들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와중에 또 다른 사건이 수면 위로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젤만 공작은 빈손으로 돌아온 다르나 자작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빈손으로 와? 어떻게 빈손으로 올 수가 있어, 앙!”

“죄, 죄송합니다, 공작님.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돈을 구했다며 더 이상 협상은 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갑자기 돈을 구해? 어디서? 누가 그 큰돈을 줬단 말이야!”

어느 정도 진정된 젤만 공작이 천천히 물었다. 다르나 자작은 자신이 알아낸 상황을 설명하였다.

“감시가 심해 자세한 것은 알아내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벨란 상당주가 직접 방문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돈을 준 것 같습니다.”

“벨란 상단?”

“네, 그렇습니다.”

“벨란 상단이라면…… 마론 왕국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그 상단이 아닌가?”

“네, 맞습니다.”

“그 상단이 왜?”

젤만 공작은 잔뜩 의문이 들었다. 잠깐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다르나 자작을 보았다.

“자넨 벨란 상단과 제이크 백작가와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봐. 신속히.”

“네, 알겠습니다.”

다르나 자작이 인사를 하고 나갔다. 잠시 후, 집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젤만 공작은 집사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베이런 후작을 지금 당장 부르게.”

“네, 공작님.”

집사가 나가고 홀로 남은 젤만 공작은 찬찬히 생각에 잠겼다. 두 손을 깍지 낀 상태로 턱을 괴며 고민하였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아까웠다.

“젠장, 절호의 기회였는데…….”

젤만 공작은 포기하기에는 아직 너무나 이르다고 판단하였다.

“다시 빼앗아올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젤만 공작이 찬찬히 생각에 잠겼다. 그의 앞에 촛불이 살랑거리며 빛과 암영이 함께 일렁거렸다. 젤만 공작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약 10여 분이 흘러갔다.

어느 순간, 그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고정되었던 손이 풀렸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렇군, 하버트 왕국을 움직이면 되겠어. 크크크.”

2

젤만 공작은 뒷짐을 진 채 현관 입구에 서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였다. 그 옆에는 다르나 자작이 서 있었다. 그 뒤로 공작가의 사람들이 양옆으로 나란히 서 있었다.

“아직인가?”

젤만 공작이 옆에 서 있는 다르나 자작에게 물었다.

“곧 도착할 겁니다. 조금 전에 정문을 통과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으음, 알겠네.”

젤만 공작의 말이 끝나자마자 현관 입구로 말을 탄 기사단이 등장하였다. 그 뒤로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제법 화려한 마차 한 대가 들어왔다.

“왔군.”

젤만 공작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조용히 말했다. 마차는 젤만 공작 앞에 멈춰 섰다. 기사단이 마차를 호위하듯 에워쌌다. 그리고 잠시 후, 마차의 문이 열리며 날씬한 여자 한 명이 내렸다.

그녀는 살랑거리는 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허벅지가 훤히 드러난 드레스는 뭇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였다. 얼굴 또한 그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다만, 피부가 검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매혹적인 눈으로 주위를 한 번 훑어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 마차 안에서 두툼한 손이 불쑥 나오며 가녀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드디어 도착인가?”

그 말과 함께 마차에서 내리는 퉁퉁한 중년 남성이었다. 양손에는 각양각색의 보석들이 끼워져 있었고, 목과 귀에까지 보석들이 달려 있었다.

얼굴은 컸으며, 3중으로 된 턱살이 덜렁덜렁거렸다. 젤만 공작은 내리는 그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오호, 후버드 후작. 어서 오시게나.”

젤만 공작의 말에 후버드 후작은 살짝 놀란 눈빛이 되어 말했다.

“젤만 공작님께서 직접 환대를 해주시다니, 이거 영광입니다.”

“하하하, 내가 어찌 직접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젤만 공작이 환하게 웃으며 답을 하였다. 후작인 후버드를 젤만 공작이 직접 나서서 환대해 준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그것도 그런 것이, 후버드 후작은 국경 수비를 맡고 있는 사령관이었다. 하물며 하버트 왕국 국왕의 매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젤만 공작의 초청에 이렇게 응해준 것도 놀라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반갑습니다.”

“그래, 나도 반갑네.”

두 사람은 서로 악수를 나누며 눈빛을 교환하였다. 그것도 잠시. 젤만 공작이 직접 후버드 후작을 안내하였다.

“자네가 좋아할 만한 차를 준비하였네.”

“설마…… 드레인 티?”

“하하핫! 역시 자네도 알고 있구만. 그렇다네. 드레인 티를 준비해 놓았네.”

“그렇다면 얼른 가서 먹어보고 싶군요. 정말 먹고 싶던 차인데, 구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렇겠지. 왕궁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니까.”

젤만 공작이 희미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 말에 후버드 후작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그래서 제가 구하기 힘들었군요. 하지만 공작님은 가지고 계시는군요.”

“뭐, 그렇게 되었네.”

젤만 공작은 그 차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영향력을 알려주고 있었다. 왕궁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국왕만 먹는 차라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젤만 공작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젤만 공작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힘을 과시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여기서 계속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어서 안으로 드시게나. 이야기는 차를 마시며 나누도록 하지.”

“네, 그리하겠습니다.”

그렇게 이동하려는데, 후버드 후작이 걸음을 멈추었다.

“아, 제 수행원들은?”

“하하하, 걱정 말게. 기사단이 머물 방은 이미 다 준비해 놓았네.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해두었으니, 너무 걱정 마시게나.”

“하하하, 감사합니다. 메이, 넌 방에서 대기하고 있어.”

메이라고 불린 검은 피부를 가진 여자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젤만 공작이 다르나 자작에게 말했다.

“뒤는 자네가 처리하게.”

“네, 공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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