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114화 (114/125)

# 114

헬 나이츠 5권 (14화)

“자, 그럼 토끼 굴에 불은 놓았고, 이제 서서히 알아서 나오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것인가? 크크크.”

젤만 공작의 음산한 웃음이 집무실 가득 울려 퍼졌다.

서신을 보낸 지 약 보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일주일 전에 젤만 공작가에서 사람을 보냈다는 서신을 받은 후 이렇듯 네빌 집사가 현관까지 나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도착할 때가 되었을 텐데…….”

네빌 집사가 정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을 때, 마침 그곳에서 뿌연 먼지가 일렁였다.

“왔군.”

네빌 집사는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후, 곧바로 도착할 사람에 대해 준비를 하였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마차가 바로 코앞에 도착을 하였다.

마차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다르나 자작이 내렸다. 네빌 집사는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며 말을 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음, 반갑네. 그보다 백작님은?”

“이미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네. 그리 안내하게.”

“네. 절 따라오십시오.”

네빌 집사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다르나 자작이 따랐다. 그는 건물에 들어서자 뒷짐을 진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내부를 확인하였다.

그런데 그 흔한 그림이나 장식품들이 없었다. 건물 내부가 화려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자신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간소하군.”

다르나 자작의 중얼거림에 앞에서 걷고 있던 네빌 집사가 곧바로 말했다.

“네, 백작님께서 워낙에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셔서 말입니다. 마님께서도 마찬가지시고요.”

“그래? 으음, 의외군.”

“하하하,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자, 다 오셨습니다.”

네빌 집사가 어느새 응접실에 멈춰 섰다. 다르나 자작도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풀고 자연스럽게 내렸다. 네빌 집사가 문을 두드렸다.

“네빌입니다.”

“들어오세요.”

문 안에서 아이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빌 집사가 손잡이를 잡아 천천히 문을 열고는 한쪽으로 물러났다. 다르나 자작이 안으로 들어갔다.

집무실 안에는 제이크, 아크, 아이린이 있었다. 다르나 자작이 들어서자 아이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이크는 무심한 눈빛으로 들어온 다르나 자작을 바라볼 뿐이었다. 여전히 소파에 앉은 채로 말이다.

다르나 자작은 응접실 안으로 들어서자 무거워진 공기에 살짝 숨이 막히는 듯하였다. 두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마치 자신이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으음…….”

낮은 신음이 절로 나왔다. 그때, 아이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다르나 자작을 맞이하였다.

“어서 오세요.”

아이린이 밝게 웃으며 인사하자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공기가 어느새 사라졌다. 또한 다르나 자작도 한결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아이린은 다르나 자작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전 아이린이에요. 이쪽은 저의 남편 제이크 백작님이십니다.”

“안녕하십니까, 백작님. 다르나 자작입니다.”

다르나 자작의 인사에 제이크는 슬쩍 고개만 까닥할 뿐이었다. 앞으로 내민 자신의 손이 민망할 정도였다. 그는 내민 손을 거두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이분은 저의 오빠, 아크라고 합니다.”

“아, 그 왕국의 기사 칭호를 얻은 분이시군요. 반갑습니다.”

“흥!”

아크도 제이크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차갑게 대했다. 하지만 다르나 자작은 개의치 않았다.

“우선 자리에 앉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마님.”

다르나 자작이 자리에 앉았다. 앞에 앉아 있는 아크에게서 따가운 눈빛을 받아야 했지만 말이다.

“네빌 집사, 차부터 준비해 주세요.”

“네, 마님.”

네빌 집사가 나가고 아이린도 자리에 앉았다.

“그럼 우선…….”

아이린이 입을 열려고 할 때, 제이크가 손을 들었다. 아이린은 의아한 얼굴로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내가 얘기하지.”

“네, 그러세요.”

아이린이 조용히 물러났다. 제이크는 다르나 자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르나 자작이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백작님.”

“일을 질질 끌지 말고 바로 시작하지. 젤만 공작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지?”

제이크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다르나 자작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웃음을 띠며 말했다.

“하하핫, 당황스럽네요.”

그리 말을 하면서 품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그것을 옆에 있던 아이린이 받았다.

“젤만 공작님께서는 일이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라십니다.”

“일이 원만히 해결되려면 서로 의견이 맞아야겠지.”

제이크가 곧바로 답을 하였다.

“그리되길 바랄 뿐입니다.”

다르나 자작도 곧바로 말했다.

아이린은 서신을 펼쳐 쭉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가 아미를 살짝 찡그렸다. 그녀는 다시 서신을 읽었다. 혹여 자신이 잘못 읽지는 않았는지 확인을 하기 위함이었다.

“젤만 공작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이것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건 좀…….”

아이린은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제이크가 서신을 뺏어 읽어보았다. 그 내용은 광산 채굴권을 담보로 잡되, 50%를 자신들이 채굴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건 정말 말도 되지 않는 억지이며, 날강도 심보였다.

“이거, 완전 날강도구만. 그냥 날로 드시겠다 이거네?”

제이크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러자 다르나 자작이 인상을 구겼다.

“백작님, 말이 심하십니다. 그래도 공작님이십니다.”

다르나 자작도 자신이 섬기는 이가 날강도라는 말을 듣자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제이크는 그런 것을 신경 쓸 위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뭐? 날강도를 날강도라고 하는데, 뭐가 잘못되었나?”

“그, 그래도…… 윽!”

제이크가 인상을 구기며 째려보자 다르나 자작은 순간 고통이 밀려왔다. 심장을 옥죄는 듯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아이린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보.”

그제야 다르나 자작은 숨을 쉴 수 있었다. 자신의 심장을 옥죄는 압박도 없어졌다.

“허헉, 허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르나 자작은 손으로 자신의 심장 부위를 어루만졌다. 아이린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조용히 말했다.

“50%는 무리입니다. 저희는 이것을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아이린의 말에 다르나 자작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입을 열었다. 한편으로는 앉아 있는 제이크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고, 공작님께서는 거금 500만 골드를 빌려주는 데 그 정도는 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무려 500만 골드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합니다. 광산 채굴권의 50%입니다. 그 정도면…….”

아이린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녀도 이건 너무 억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억지라는 생각이 들겠죠. 하지만 저희 공작님도 그 정도 담보는 잡고 있어야 안심이 된다고 합니다. 막말로, 절실함으로 따지자면 마님 쪽이 아니십니까?”

그 말에 아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이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시간도 얼마 없었다. 그리고 그만한 거금을 빌려줄 만한 곳도 젤만 공작밖에 없었다.

사면초가라는 말이 바로 이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아이린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답은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저희들끼리 충분히 상의한 후 알려 드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십시오.”

다르나 자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문이 열리며 네빌 집사가 들어왔다. 아이린이 네빌 집사를 향해 말했다.

“다르나 자작님께서 휴식을 취할 곳으로 안내해 주세요.”

“네, 마님. 절 따라오십시오.”

다르나 자작은 네빌 집사를 따라갔다. 그가 나가고 아이린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아크가 입을 열었다.

“이거 정말 너무하는군. 광산 채굴권 50%라니……. 이거, 거저먹겠다는 뜻이잖아.”

“…….”

“어쩔 수 없죠. 칼자루를 쥔 쪽은 젤만 공작이니까요.”

아이린도 무거운 얼굴로 답을 하였다. 그때까지 제이크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였다.

‘그냥 폴과 필을 시켜서 놈을 협박해? 아니야. 이제 휴가 복귀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말썽을 일으켜서는 안 돼. 이거참, 내 뜻대로 되지도 않고…… 답답하군. 이것이 아빠가 된 마음인가?’

그랬다. 제이크는 자신이 휴가 복귀 후 남겨질 아이린과 영지, 무엇보다 자신의 자식들 때문에 더욱 고민되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말썽 일으키지 않고 해결을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음 같아서는 진짜 폴과 필을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후우…….”

제이크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아이린이 깜짝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당신, 한숨을 내쉬었어요?”

“으응? 내가?”

“네, 방금 그랬어요.”

“내가 그랬나?”

제이크는 짐짓 모르는 척하였다. 그 모습을 보다가 아이린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50%는 줄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저들도 물러날 기미도 없어 보이고요. 문제는 그만한 돈을 빌릴 곳은 그곳밖에 없다는 거예요.”

“아이린, 이건 아니야. 그냥 내가 돌아갈게. 그게 최선이야.”

“오빠, 그건 안 돼.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데…….”

“그렇다고 50%를 준다는 것은…….”

아크가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말을 한다는 것은 무의미하였다.

“어쩔 수 없어요. 50%를 주더라도 돈을 빌려야 해요. 제겐 무엇보다 오빠가 더 중요하니까요.”

“과연 그놈들이 50%로 만족할까? 아마 그건 시작에 불과할 거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제이크가 불쑥 말했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세 사람이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네빌 집사가 들어왔다.

“무슨 일에요, 네빌?”

“그러니까…… 마님.”

“무슨 일이에요?”

네빌 집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말을 하였다.

“벨란 상단이 찾아왔습니다.”

“벨란 상단?”

“옛날에 저희와 한 번 거래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백작님께서 주신 목걸이…….”

네빌 집사의 말에 아이린도 기억이 떠올랐는지 환한 얼굴이 되었다.

“아, 기억이 나요. 벨란 상단이 목걸이를 비싼 값에 사줘서 우리가 숨통이 트였었죠.”

“네. 그런데 이번에는 벨란 상단의 가주께서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상단주께서?”

아이린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벨란 상단은 옛날에 위기에 처한 자신의 가문을 도와준 인물이었다. 5만 골드밖에 하지 않는 목걸이를 무려 20만 골드에 사줬다.

그 결과, 에페로 자작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는 벨란 상단이 구원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너무 정신이 없어 감사의 뜻도 전할 수가 없었다.

훗날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마론 왕국에 들어갔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껏 잊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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