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113화 (113/125)

# 113

헬 나이츠 5권 (13화)

아이린은 사실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듯 직접 들으니 더욱 답답하였다. 그녀는 몹시 어두워진 얼굴로 조용히 물었다.

“어디서 돈을 구할 데는 없을까요?”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네빌 집사가 여러모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마, 마님…….”

아이린이 살짝 미소를 짓고는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방법이 있는지 그의 의향을 묻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제이크도 뾰족한 답이 없었다. 마계에서 혹시나 싶어서 가지고 나온 보석들은 이미 모두 꺼내놓았다.

그것을 팔았기 때문에 두 영지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던 것이었다. 그녀도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었다.

집무실에서는 한동안 침묵만이 맴돌았다. 그 누구도 선뜻 답을 꺼내지 못하였다. 더욱 답답한 것은 제이크였다. 그냥 지금 당장이라도 신성제국에 쳐들어가 박살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전제로 바로 자신의 마계 군대가 있으면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천하의 제이크도 돈 문제에 이르자 어찌하지를 못했다.

“젠장, 그냥 쳐부수는 것이 쉽겠네.”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하였다.

“제이크 님!”

“매제!”

“여, 여보!”

세 사람이 동시에 제이크를 보며 소리쳤다. 그런 그들의 시선을 받은 제이크는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답답해서 그런 거야, 답답해서.”

“그래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알았어, 미안.”

제이크가 아이린을 달래며 사과를 하였다. 그러던 중 아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행동에 의문을 가진 세 사람의 눈빛이 동시에 향했다.

“오빠?”

“아크 님?”

“……?”

아크는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조용히 말했다.

“10년 만에 찾아와서는 이렇듯 동생에게 폐만 끼치고……. 그냥 내가 신성제국으로 돌아가면 그 돈 주지 않아도 되잖아. 그리고 아이린이 이렇듯 결혼해서 엄마도 되고, 잘사는 모습을 봤으니 됐어. 내게 미련은…….”

아크는 애써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어느덧 눈가에 촉촉하게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몸을 돌린 아크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그때, 그를 붙잡는 아이린과 제이크가 있었다.

“오빠!”

“또 도망치는 건가?”

그 말에 몸을 돌린 아크가 소리쳤다.

“도망이라니. 아니야!”

“그럼 잔소리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할 테니.”

“그래요, 오빠. 우리가 해결해요.”

“어떻게? 그 큰돈을 어디서 구한단 말이야.”

“빌리면 돼요, 빌리면…….”

아이린이 말했다. 아크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 큰돈을 빌릴 곳이 있어?”

“있어요.”

아이린의 얼굴이 굳어지며 말했다. 그런 아이린을 보며 네빌 집사가 깜짝 놀랐다.

“서, 설마, 마님…….”

“네, 젤만 공작가라면 그만한 돈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젤만 공작가는…….”

네빌 집사가 굳어진 얼굴로 말을 하려다가 아이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알아요. 그 젤만 공작이 어떤 사람인지 말이에요. 그리고 그가 뭘 원하는지도 알아요. 우린 그것을 담보로 하면 돈을 빌릴 수 있을 거예요.”

아이린이 말을 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크가 자리에 앉으며 조용히 물었다.

“담보? 어떤 것을?”

그러자 아이린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광산 채굴권.”

“헉! 그, 그것을 담보로 한단 말이야?”

“네. 그만한 담보가 아니면 젤만 공작이 돈을 빌려주지 않을 거예요.”

“그건 안 돼! 어떻게 그것을 지켰는데…….”

아크가 심각해진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아이린이 그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오빠. 돈만 빌리는 거야. 광산 채굴권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지만 마님, 젤만 공작도 광산 채굴권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이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알아요, 그러나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요.”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네빌 집사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을 했지만, 막상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괜찮아요. 딱 반년이에요. 반년 안에 이자를 포함해 원금을 갚으면 돼요. 그 안에 영지를 안정시키고 광산을 최대한 발전시키면 돼요. 그다음은 제이크 님이 지켜줄 거예요.”

아이린이 말을 함과 동시에 제이크를 쳐다보았다.

“그렇죠, 당신?”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니까.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그렇게 하지.”

“고마워요. 그럼 그렇게 준비할게요. 네빌 집사.”

“네, 마님.”

“그리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는 네빌 집사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 큰돈을 빌릴 수 있는 곳도 현재로서는 젤만 공작가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아크는 잔뜩 굳어진 얼굴로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자신 때문에, 자기 때문에 동생을, 가문을 또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자책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오빠…….”

아이린은 그런 오빠의 맘을 알기에 섣불리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하였다. 그저 조용히 손을 잡아줄 뿐이었다.

“오빠, 괜찮아. 걱정 마. 오빠는 가족이잖아. 우리는 충분히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거야.”

“그래, 처남. 걱정하지 마. 안 되면 까짓것 마계에서 내 군대를 데려와서 신성제국을 밀어버리면 되는 거야.”

“여보!”

그 소리에 아이린이 눈을 흘기며 제이크를 불렀다.

“왜?”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와요?”

“진짠데…….”

“그만 됐어요. 어쨌든 이번 일은 그리 처리하는 것으로 해요.”

이 모든 상황을 아이린이 정리를 하였다. 네빌 집사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나갔다. 이제 그가 할 일은 젤만 공작에게 보낼 서신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아이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쌍둥이에게 가봐야 할 듯해요.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운 것 같아서…….”

“어, 그래.”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아이린이 제이크에게 눈짓을 보냈다.

‘당신이 오빠를 좀 위로해 주세요.’

‘알았어. 걱정 마.’

제이크도 그녀의 눈빛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크를 보며 살짝 안쓰러운 눈빛이 되었다. 그러다가 이내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섰다.

이제 집무실에는 제이크와 아크, 둘밖에 남지 않았다. 아크는 자신 때문에 일이 커진 것에 대해 큰 자책감에 빠져 있었다. 그런 아크를 보며 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이봐, 처남.”

제이크의 부름에 아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제이크는 그런 아크를 보고 히죽 웃으며 말했다.

“술 한잔하지.”

3

“음, 좋구나.”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정오.

젤만 공작은 오랜만에 야외로 나와 뒤쪽에 있는 자그마한 동산에 올랐다. 젤만 공작은 수행원 몇 명만 데리고 이곳에 올라왔다.

그곳에서 자신의 영지를 내려다보며 흐뭇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다르나 자작이 서서 함께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르나 자작.”

“네, 공작님.”

“보이는가, 저 방대하게 펼쳐진 곡식의 향연이 말이야.”

“네, 보입니다.”

젤만 공작이 바라보는 곳으로 다르나 자작의 시선이 향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평야에 누런 밀이 바람에 살랑살랑거리며 풍요롭게 자라고 있었다.

“저렇듯 나의 대지는 황금빛으로 물들고, 나의 곡식 창고는 셀 수 없을 만큼 쌓이고 있네. 다른 영지에 비하면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야.”

“그렇습니다. 공작님이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준, 타고난 복을 가지고 계십니다.”

“자네도 그리 생각하나?”

“당연합니다.”

“그런데 말이야, 곡식 창고에 곡식이 차곡차곡 쌓여가면 마음이 풍요로워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허전해지는 것은 왜일 것 같나?”

젤만 공작의 물음에 다르나 자작은 고개를 갸웃하며 쉽게 답을 내지 못하였다. 그러자 젤만 공작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르나 자작을 바라보았다.

“그건 말이야, 저기에는 넓은 평야만 있을 뿐, 그 흔한 산 하나가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푸르고 아름다운 산 말이야. 그 산속에 숨어 있는 미지의 광물들! 그것만 내 손에 있다면 정말 내 맘이 풍요로워질 것인데 말이지.”

다르나 자작은 그제야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그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아마도 조만간 그 마음을 채울 소식이 전해질 것입니다.”

“알아, 알고 있네. 그래서 내가 오늘 이렇듯 이곳에 올라오지 않았나. 내가 어제 아주 좋은 꿈을 꿨거든. 그러니까, 꿈속에서 말이야, 저쪽으로 아주 높은 산들이 불쑥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젤만 공작이 북쪽으로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르나 자작의 시선도 젤만 공작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그곳으로 시선이 향한 다르나 자작의 입가로 미소가 스르륵 번졌다.

그곳은 바로 제이크 백작가의 영지가 있는 곳이었다.

“그렇군요. 아마도 그 꿈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르나 자작의 말을 들은 젤만 공작의 입가에도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그래야지.”

젤만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때, 언덕 아래에서 말을 탄 기사가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급히 말에서 내려 젤만 공작에게 다가갔다.

“공작님, 제이크 백작가에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젤만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어제 꾼 꿈이 좋은 꿈이었어.”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다르나 자작은 곧바로 아부를 하며 말을 하였다. 젤만 공작은 그런 다르나 자작의 행동이 싫지 않은 듯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 내려가서 확인을 해볼까?”

“네, 그리하시지요.”

다르나 자작이 허리를 살짝 숙이며 옆으로 물러났다. 젤만 공작은 뒷짐을 진 채 마차에 올랐다. 젤만 공작이 탄 마차는 말들의 긴 울음소리와 함께 공작가를 향해 빠르게 내려갔다.

집무실에 도착을 한 젤만 공작은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서신을 확인했다. 제이크 백작가의 직인으로 봉해진 것을 확인한 그는 느긋하게 자리에 앉았다.

“후후후, 예상대로 서신이 왔군.”

젤만 공작은 곧바로 서신을 뜯지 않았다. 그는 서신의 내용을 보지 않아도 알고 있는 듯 말했다.

“그럼 어디 서서히 쪼여볼까?”

젤만 공작의 눈빛이 한순간 반짝이며 말했다. 그때, 다르나 자작이 들어왔다. 그는 공손한 자세로 젤만 공작 옆에 섰다.

“다르나 자작.”

“네, 공작님.”

“이번에 자네가 제이크 백작가에 다녀와야겠네. 내가 적어준 서신을 들고 말이야.”

“후후후,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르나 자작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 곧바로 집무실을 벗어났다. 그는 제이크 백작가로 떠날 채비를 할 것이다. 그사이 젤만 공작은 펜에 잉크를 찍어 종이에 뭔가를 적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약 20여 분의 시간이 흐르고, 펜을 내려놓은 젤만 공작은 서신의 내용을 다시금 확인한 후 고이 접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직인을 꺼내 서신을 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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