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헬 나이츠 5권 (11화)
아크는 점점 더 얼굴이 무겁게 굳어지며 말을 하였다. 제이크는 그런 아크의 맘을 아는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저렇게 환하게 웃는 아이린을 지켜줄 것입니다. 아니, 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아이린을 닮은 제 아이를 버릴 수 있을 것이라 여기십니까?”
오히려 제이크가 되물었다. 아크는 그런 제이크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마치 제이크의 내면을 확인하려는 듯하였다.
그러다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아니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럼 그 느낌을 믿으십시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제가 마계까지 찾아가 당신을 끌고 올 것입니다.”
“후후후, 꼭 그렇게 하십시오. 하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이크가 다짐을 하듯 말을 하였고, 아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3
남부의 일을 지켜보는 젤만 공작은 여간 기분이 언짢은 것이 아니었다. 아니,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이 불만이었다.
“이런 젠장, 하나같이 제이크, 제이크하는군.”
젤만 공작은 올라온 보고서를 보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제이크 백작가를 어떻게든 집어삼키기 위해 뒤에서 암암리에 베이런 후작가를 지원했었다. 하물며 애지중지 키운 자신의 딸까지 줘가며 지원했는데, 돌아온 것은 큰 실망감뿐이었다.
“빌어먹을, 지금 하필 이런 때에 왕국의 기사라니? 게다가 그년의 오빠라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린가?”
젤만 공작은 탁자를 내려치며 소리를 질렀다. 게다가 왕국의 기사 칭호를 받은 이가 아이린의 오빠이니, 돈으로 데려오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이래저래 마음에 들지 않는 젤만 공작이었다. 그는 사나운 얼굴로 앞에 앉아 있는 베이런 후작을 바라보았다. 베이런 후작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이보게, 그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무슨 말이든 해보게. 이렇게 자꾸 제이크 백작가가 크는 것을 지켜볼 참인가?”
젤만 공작의 말에 베이런 후작이 눈을 떴다. 그러자 그의 눈이 반짝이며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설마 제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겠습니까?”
베이런 후작의 말에 젤만 공작의 눈빛도 반짝였다.
“그럼 자네에게 좋은 계획이 있다는 말인가?”
“후후후, 계획이라……. 그냥 지켜보면 될 것입니다.”
“지켜보면 된다?”
“그렇습니다. 지켜보면 자연스럽게 아이린의 오빠를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좀 자세히 말해보게.”
젤만 공작은 답답한지 어서 말해보라며 재촉하였다. 그에 베이런 후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신성제국.”
“신성제국?”
“네, 그렇습니다. 아이린의 오빠 아크는 바로 신성제국에 등록된 신성기사였습니다. 아니, 아직도 신성기사란 직함이 있지요. 그래서 따지고 보면 신성제국에 속한 기사란 말이 됩니다.”
베이런 후작의 말에 젤만 공작의 표정도 어느새 풀어져 있었다.
“크크크, 그렇군. 그놈이 신성기사였군.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젤만 공작은 베이런 후작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였다.
“자세히 설명해 보게.”
“네. 신성제국에 속한 기사가 왕국의 기사 칭호를 받았다. 아마도 신성제국에서 그 사실을 안다면 가만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암, 그럴 것이야.”
젤만 공작도 호응을 해주며 박수를 쳤다. 그에 베이런 후작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래서 제가 슬쩍 조사를 좀 해보았습니다.”
“조사?”
“네, 신성제국 쪽에 저의 사람이 좀 있습니다.”
“오호, 그래? 자네, 제법이구만.”
젤만 공작은 한 번 실패를 했지만 그래도 믿음직한 베이런 후작의 모습에 흐뭇한 얼굴이 되었다. 자신의 딸을 준 것이 다시 한 번 잘한 일이라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베이런 후작은 자신이 조사해 온 것에 대해 젤만 공작에게 알려주었다.
“일단 신성제국에 속한 성기사는 예외 없이 국가에 귀속될 수 없다고 합니다. 또한 그 녀석은 신성제국에서도 제법 잘나가는 기사라고 합니다. 그럼 더욱 신성제국에서 녀석을 잡으려고 할 것이 아닙니까.”
“음, 그렇겠군. 하나 그 녀석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텐데?”
“후후후, 이미 신성제국의 성기사가 될 때, 각서를 썼다고 합니다. 성기사가 된 후 신성제국에 속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녀석은 입도 뻥긋 못할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심려 마십시오.”
베이런 후작의 말에 젤만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설명해 보게.”
“네. 일단 다음으로 넘어가 보면, 각서에 이런 것도 있습니다. 만약 다른 국가에 귀속될 경우,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배상금?”
“네, 그렇습니다. 아마도 제법 잘나가는 기사였으면 그 배상금 또한 엄청날 것입니다.”
“크크크, 그렇겠군. 게다가 짠돌이 국왕이 그 돈을 낼 리도 없고 말이지.”
“그렇습니다. 아마도 제이크 백작가에게 떠넘길 것이 분명합니다. 어쨌든 지금은 제이크 백작가의 사람이니 말입니다.”
“오호, 그렇군. 그렇다면 문제는 제이크 백작가가 그만한 돈이 있는가인데…….”
젤만 공작이 은근슬쩍 말끝을 흐리며 베이런 후작을 바라보았다. 베이런 후작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곧바로 답을 주었다.
“아마 없을 것입니다. 지금 흡수한 백작령을 키우느라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빠듯한 살림에 배상금을 부담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죠.”
“그래? 그럼 잘되었군.”
“네, 맞습니다. 우리에겐 기회죠. 돈 많은 우리들이 도와준다면 말이죠.”
베이런 후작의 말에 젤만 공작의 눈빛이 번쩍였다.
“우리가 도와준다? 그럼 우리는 그에 따른 보상을 원해야겠지.”
“당연합니다. 그 보상으로 우리는 광산 채굴권을 되찾아올 생각입니다.”
“오호, 그거 묘안이군. 광산 채굴권!”
젤만 공작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 얼마나 가지고 싶던 것인가.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던 것이었다. 그 이유 때문에 자작령뿐만 아니라 백작령까지 삼키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하물며 백작령에도 광산이 많았다.
그걸 베이런 후작이 알고 은밀히 뒷공작을 펼치다가 망한 것이 아닌가.
젤만 공작도 욕심이 많았다. 그래서 베이런 후작이 젤만 공작과 손을 잡은 것이 아닌가. 젤만 공작은 돈을 대고, 베이런 후작은 그것으로 다시 백작령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뜻이 맞으니 두 사람이 손을 잡은 것이었다. 그런데 일을 차차 진행시키는 와중에 아크가 등장했다. 게다가 아크는 이그나탈을 쓰러뜨린 그랜드 마스터였다.
“음, 녀석의 거취 문제를 우리가 해결해 준다면, 광산에 대한 권리를 가져올 수 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물론 다 뺏어오기는 힘듭니다. 하나씩, 차근차근 뺏어올 생각입니다.”
“그럼 아크, 그 녀석이 가만히 있겠는가?”
“그 녀석은 어찌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 때문에 광산에 문제가 생겼는데, 쉽게 관여는 못할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간 오히려 저희가 그 돈을 지불하라고 해버리면…….”
“크크크, 그렇군.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광산 수익을 가로채면 되겠군.”
“네, 그렇습니다.”
“이거 완전히 꿩 먹고, 알 먹고로군.”
“네. 일이 뜻대로 진행된다면 말이죠.”
베이런 후작은 만약이라는 전제를 걸었다. 그것이 젤만 공작의 심사를 어지럽혔다.
“뜻대로 일이 진행되도록 해야지.”
“하지만 제이크 백작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이라…….”
베이런 후작이 걱정하는 것은 역시 제이크였다. 그가 어떻게 나올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의 무력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음, 그 녀석을 꽁꽁 묶어놓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고 말이야.”
“그렇게만 된다면야 일이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
“우음…….”
두 사람은 잠시 침묵을 이어가며 말이 없었다. 그러기를 잠깐. 젤만 공작이 입을 열었다.
“그 문제는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일단 일을 진행시키도록 하게. 먼저 신성제국의 귀에 들어가야겠지?”
“그 일은 벌써 진행시켰습니다. 아마 조만간 신성제국에서 보낸 서신이 도착할 것입니다.”
“그래, 알았네. 자네가 알아서 잘 처리하게. 난 뒤에서 빵빵하게 지원을 해주겠네.”
“네, 감사합니다.”
Episode 45 젤만 공작의 야심
1
몇 달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자작령과 백작령을 잇는 도로가 완성되었고, 각 영지의 치안도 안정이 되었다. 병사들뿐만이 아니라 기사들의 징집도 많이 이루어져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린은 쌍둥이를 낳았다. 아들, 딸, 이란성 쌍둥이를 말이다. 제이크는 한 방에 아들과 딸을 낳아서 크게 기뻐하였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서서히 시간이 흘러가고, 어느덧 제이크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아아아함―!”
경비병 한 명이 길게 하품을 하였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고, 살랑살랑 따뜻한 바람이 얼굴을 간질이니 졸음이 쏟아졌다.
“젠장, 더럽게 졸리네.”
“그러게. 나도 졸리네.”
옆에 있던 동료 경비병도 졸린지 눈을 비비고 있었다.
“이거참, 뭔가 큰일은 없나? 경비는 너무 지루하단 말이야.”
“이 사람, 큰일 날 소릴 하는군. 자네 말은 꼭 큰일이 생겼으면 하는 말투구만.”
“에헤, 거, 심심해서 말이 헛 나왔네.”
“그래도 그러는 것은 아니야.”
“알았네, 알았어.”
그 경비병은 투덜투덜거리며 다시 정면을 응시하였다. 하지만 한 번 졸리기 시작한 눈꺼풀은 쉽게 올라가지 않았다.
“제기랄, 눈꺼풀이 천근만근이구만.”
그러는 사이, 저 멀리서 뿌연 먼지구름이 뭉글뭉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응?”
경비병은 혹시나 자신이 너무 졸려 잘못 본 것은 아닌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한 번 확인을 하였다. 이번에는 뚜렷하게 먼지구름이 보였다.
“잉? 뭐지? 뭔가 다가오는 것 같은데…….”
“그래? 어디? 어디?”
옆의 동료도 확인을 하기 위해 고개를 쭉 내밀었다. 역시 저 멀리서 먼지구름이 일렁거렸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언덕 너머로 마차가 달려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차네. 그런데 저 길은 왕궁으로 통하는 길인데?”
경비병이 의아한 얼굴로 중얼거릴 때, 옆에 있던 경비병의 눈이 크게 떠졌다.
“가, 가만, 저 깃발은…….”
경비병 하나가 마차 옆에 꽂혀 있는 깃발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는 눈치였다.
“와, 왕궁의 깃발이야.”
“엥? 진짜?”
“그래, 정말 왕궁에서 온 마차라고.”
“어디, 어디!”
동료 경비병도 재차 확인을 하고서야 진짜 왕궁에서 온 마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어느새 입구에 다다랐다.
이히히히힝!
마차의 마부는 급히 말의 고삐를 당겨 말을 세웠다. 그러고는 경비병을 향해 소리쳤다.
“왕궁에서 온 전령이다! 어서 문을 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