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110화 (110/125)

# 110

헬 나이츠 5권 (10화)

“오빠, 아크 오빠! 정신이 들어요?”

“으음, 아이린?”

“으응, 오빠. 나야. 이제 정신이 든 거야?”

아크는 눈을 깜빡이며 아이린을 쳐다보았다.

“여긴 어디지?”

“어디긴 어디야, 집이지. 오빠, 일주일 만이야. 일주일 만에 일어난 거 알아?”

“일주일?”

아크는 아이린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가만, 내가 일주일 만에 깨어났다고? 그보다 이그나탈은 어찌 되었지?’

자신이 이곳에 누워 있다는 것은 이그나탈을 쓰러뜨렸다는 뜻이 되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기 전 나타난 두 사람, 폴과 필의 잔상이 떠올랐다.

‘마, 맞아, 그 녀석들!’

그 순간, 아크는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제엔장!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크는 이그나탈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아니, 일곱 제자를 합한 것보다 더 강한 존재가 바로 이그나탈이었다.

자신은 일곱 제자도 간신히 이기지 않았나. 더 정확히 말을 하면 그랜드 크로스를 깨우치지 않았다면 당하는 쪽은 자신이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런 이그나탈을 폴과 필이 처리하였다. 물론 자신은 기절했기 때문에 어떻게 싸웠는지는 모른다. 아니, 어떻게 이겼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렇듯 살아서 돌아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두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말이다.

‘하, 젠장. 내가 약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아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질려 버렸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이린은 걱정이 되는지 안쓰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오빠, 어디 아픈 거야?”

“아, 아니야. 괜찮아. 미안하다, 못난 모습 보여줘서.”

아크는 진심으로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동생을 오랫동안 내버려 둔 채로 강해지려고 하였는데, 그러지 못하였다. 그것이 아크에게는 커다란 미안함으로 다가왔다.

“오빠, 그런 말 하지 마. 이렇듯 살아서 온 것만으로도 난…….”

아이린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런 아이린을 아크가 살며시 안아주었다. 그러자 아이린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흐흑!”

아크는 눈물을 흘리는 아이린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아이린은 아크의 품에서 슬쩍 떨어졌다. 그러고는 눈물을 닦은 후 밝게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아크의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헤헤, 안 울려고 했는데…….”

아이린은 애써 밝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를 하였다. 그런 아이린의 모습을 보며 아크 또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아이린이 박수를 치며 먼저 말을 꺼냈다.

“아, 맞다!”

아이린의 행동에 아크는 의문의 눈빛이 되었다. 아이린은 실실 웃으며 아크에게 말했다.

“오빠!”

“응?”

“오빠, 축하해.”

“뭐가?”

아이린의 말에 아크는 고개를 갸웃하였다. 하지만 아이린은 계속해서 실실 웃을 뿐이었다.

“뭘 축하한다는 거야?”

“조금만 있어봐. 곧 소식이 올 거야.”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왔다!”

아이린은 문 쪽을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시녀가 들어왔다. 그녀는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는 말을 하였다.

“마님, 왕궁에서 사자가 오셨습니다.”

“그래, 응접실로 잘 모셨겠지?”

“네, 마님.”

“알았어. 곧 갈 테니까, 잘 모시고 있어.”

“알겠습니다, 마님.”

시녀는 인사를 하고 방에서 물러났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아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왕궁이라니? 왕궁에서 사자가 왜 와?”

“그게 있잖아…….”

아이린은 살짝 뜸을 들이더니, 이내 말을 하였다.

“오빠가 왕궁의 기사로 임명되었어.”

“엥?”

아이린의 말에 아크는 눈을 크게 뜨며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2

응접실에는 아이린을 비롯해 제이크와 집사 네빌이 있었다. 방 중앙에는 신성기사 갑옷을 걸치고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고 있는 아크가 있고, 그 앞에 왕궁에서 온 사자가 서 있었다.

사자는 자신의 손에 들린 임명장을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린의 눈빛에는 뿌듯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에 왕국의 기사로 임명합니다.”

사자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임명장을 말아 무릎을 꿇고 있는 아크에게 건네었다. 아크가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았다.

“기사 아크는 이후로 왕국을 위해서 성심성의껏 힘을 보태주길 바라네.”

“네, 알겠습니다.”

아크는 자신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를 바라보았다. 엉겁결에 받고는 있지만, 자신이 이걸 정녕 받아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사이 아이린과 네빌이 다가오며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오빠, 축하해.”

“도련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이건 우리 가문에 있어서 정말 큰일을 하신 것입니다.”

“고, 고마워.”

아크는 엉겁결에 말을 한 후, 뒤에 서 있는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제이크는 아크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여기 오기 전 제이크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뭐가 말입니까?”

아크는 강하게 물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받아들였다.

“제, 제가 왜 왕국의 기사 칭호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이그나탈은 제가…….”

아크가 그 말을 할 때, 제이크가 그의 입을 막았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어쨌든 이그나탈의 일곱 제자를 쓰러뜨리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게다가 이런 것이 오히려 모양이 좋습니다.”

“모양이 좋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후우, 누가 받는 것이 뭐가 중요합니까. 어쨌든 이그나탈은 죽었고, 그 보상을 처남이, 아니, 우리 가문이 받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지요.”

“하, 하지만…….”

“깊게 생각지 마십시오. 어차피 왕국에서도 이그나탈이 눈엣가시였고, 신성제국은 더했겠죠. 그런 이그나탈을 처리해 준 것만으로 왕국에서는 큰일입니다. 게다가 처남께서는 이미 그 경지에 올라선 것 아닙니까?”

“무슨 경지…….”

“그랜드 마스터.”

제이크의 말에 아크의 눈빛이 반짝였다. 제이크의 말대로 아크는 그 경지에 들어선 것이었다. 비록 이제 막 그 경지에 올랐지만,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아크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제이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왕국에서는 그랜드 마스터를 그냥 둘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당장에라도 왕국의 수호 기사로 데려갈 생각일 것입니다. 하지만 처남은 그럴 생각이 없겠죠?”

“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동생을 얼마 만에 만났는데.”

“그러니 이참에 그냥 왕국의 기사 칭호를 받으세요. 그래야 동생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게다가 왕국의 기사 칭호를 받은 처남이 이 영지에 있다면 얼마나 힘이 되겠습니까. 주변 영지에서도 감히 딴마음을 품지 못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이크의 말을 들은 아크는 자신도 모르게 수긍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렇게 생각을 하세요. 그깟 칭호가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그래도 그 칭호 하나로 우리 영지는 큰 힘을 얻게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사가 우리 영지의 기사단장이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기사들의 사기는 아마 엄청날 것입니다.”

제이크의 말을 들은 아크는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크는 정말이지 모든 것을 내다보는 듯하였다.

“그러니 아무 부담 갖지 마시고, 왕국의 기사 칭호를 받아들이세요. 영지를 위해서, 아니, 아이린을 위해서 말입니다.”

제이크의 말은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래서 아크는 어쩔 수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뒤에서 제이크가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그렇게 왕국의 기사 칭호를 받을 수 있었다. 모두의 축하를 받은 아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영지에서는 오랜만에 축하 파티가 열렸다. 저택을 개방해 마을 사람들까지 불러서 음식과 술을 베풀었다. 저택은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로 붐비게 되었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밝은 보름달이 하늘에 둥실 떠 있었다.

그때까지 저택 앞마당은 환한 불빛이 가득했다. 여기저기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구석진 자리에서는 기사가 여자들이 밀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렇게 밤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그들과 달리 홀로 난간에 걸터앉아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 제이크가 있었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은 채 홀로 사색에 잠겨 있었다.

그때, 발소리가 들려왔다.

제이크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발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응?”

제이크는 다가오는 사람이 다름 아닌 아크라는 것을 알고 살짝 놀란 눈이 되었다. 아크는 제이크 옆에 서며 말했다.

“여기서 뭐하십니까?”

“후후후, 그냥 혼자 있는 것이 좋아서 말이죠.”

“그래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전 그런 것에 아직 익숙지가 않습니다.”

제이크는 그리 말을 하며 시선을 다시 정면으로 돌렸다. 아크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제이크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이곳에 있는 것이 불편하지 않습니까?”

“뭐가 불편합니까, 아이린의 오빠이신데. 하물며 이제 기사단장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전 신성기사였습니다. 당신과 전…….”

“상관없습니다. 저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전 아이린이 저리 기뻐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이크의 말에 아크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러시군요.”

“게다가 이제 처남이 아이린 곁에 있으니 저의 맘이 한결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제이크의 말을 듣는 순간, 아크의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 그는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려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이크도 고개를 돌려 아크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한동안 영지를 떠나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처남이 당분간 아이린 곁에 있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제이크의 말에 아크의 미간이 찡그러졌다.

“마계로 가는 것입니까?”

“네. 휴가가 끝났으니 복귀해야죠.”

“설마 이대로 마계로 도망치는 것은 아니죠? 처자식을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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