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103화 (103/125)

# 103

헬 나이츠 5권 (3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문이 열리고 신관이 들어왔다. 곧이어 추레한 차림의 성기사가 들어왔다. 낡디낡은 로브를 걸친 그는 사무실에 들어오자 머리를 감싸고 있던 두건을 벗었다.

그러자 매우 준수한 미남형의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를 알아본 대신관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교황청에서 오신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우선 앉으시지요.”

대신관이 서둘러 성기사를 자리에 앉혔다. 성기사는 눈에 보이는 바로 앞의 의자에 앉았다.

철컹!

로브 속에 감춰진 육중한 갑옷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대신관의 눈에 로브 사이로 언뜻 보이는 빛나는 성기사 갑옷이 들어왔다. 겉은 추레한 로브를 걸치고 있지만, 안은 그야말로 멋진 갑옷을 입고 있던 것이다.

“하하하,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대신관도 맞은편에 앉으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다지 고생스럽지는 않았습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대신관은 어색한 웃음과 함께 옆에 서 있는 신관에게 눈짓을 보냈다. 신관은 눈짓을 받고는 이내 인사를 하며 말했다.

“그럼 전 차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신관이 밖으로 나가고 둘만 남게 된 사무실은 약간의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그런 것도 잠깐. 대신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전보에 적힌 것으로는 성기사님께서 도착하기로 한 날짜가 일주일 전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대신관의 말에 순간 움찔한 성기사는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입을 열었다.

“허헛! 오, 오는 길에 잠시 다른 일이 생겨서…….”

“아, 그렇습니까?”

성기사는 차마 자기가 길치라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굳이 알릴 필요도 없고 말이다. 대신관은 그런 줄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아, 그보다 성기사님 성함이…….”

“아크라고 합니다.”

“아, 아크 성기사님이시군요.”

대신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대신관은 힐끔힐끔 아크를 쳐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거참, 되게 과묵하네. 얼굴도 무표정이고 말이야. 속을 모르겠어, 속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문이 열리며 신관이 차를 가져왔다. 두 사람의 앞에 차를 내려놓고 신관은 다시 나갔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대신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쨌든 오신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 때문인지는 통보를 받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 때문이신지…….”

“아시지 않습니까, 임무에 대해서는 함부로 발설할 수 없다는 것을.”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도울 일이라도…….”

“없습니다.”

아크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러자 대신관은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졌다.

‘헐, 이런 미친! 아무리 교황청에서 나왔다고 해도 내가 명색이 대신관인데.’

대신관은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가는 속이 좁은 대신관이라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문제였다. 또한 교황청에서 하는 일을 대신관이 어찌할 수도 없었다.

“허험,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요.”

내심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그런 심정을 눈치챈 아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자세한 것은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꼭 청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관께서도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 네에…….”

그렇게 다시 어색한 시간이 찾아오자 대신관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가, 가만…… 도움을 준다고?’

대신관이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아크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도움을 주신다고 하셨습니까?”

“……?”

“그럼 도움을 주셔야 할 것이 있는데 말입니다.”

대신관이 은근슬쩍 말을 하자 아크는 살짝 눈살을 찡그렸다. 예의상 꺼낸 말이었는데 이렇듯 곧바로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하였다. 살짝 짜증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짜증을 표출할 수도 없었다. 어쨌든 자기 입으로 꺼낸 것이 있지 않는가.

“말씀해 보십시오.”

아크는 차분하게 말을 하였다. 그러자 대신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여기 백작령에 제이크 가문이라고 있습니다. 그곳에 최근 아이가 생겼는데, 저희가 신전의 축복을 내려준다고 하여도 거부하고, 신전에 대한 기부도 착실히 해오더니 어느 순간부터 일방적으로 끊었습니다. 이건 명백한 신에 대한 불경죄입니다. 신에 대한 거부는 응당 악의 무리, 즉 마계의 인물일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 아마 악의 종자가 확실할 것입니다.”

대신관은 제이크를 악의 종자와 같은 부류로 취급하였다. 기부도 하지 않고, 아기에게 축복을 내려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아크가 들어보니 솔직히 억지를 부리는 경향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 이유는 이런 사례가 다른 영지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백에 하나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럴수록 대신관의 언성은 점점 더 올라갔다.

“그러니까, 이건 명백히 신전을 멀리한다고 봐야 합니다. 신전을 멀리한다는 것은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죠. 마계의 추종 세력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 가문을 한 번 조사해 주십시오.”

대신관의 다른 속뜻은 자기를 무시한 그 새끼를 아주 깡그리 다 묵사발로 만들어 달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크는 그 정도까지 신전에 충성하는 성기사는 아니었다. 그냥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그러니 지금 들은 얘기도 그다지 흥미는 없었다.

그렇다고 못 들은 척할 수는 없었다. 당분간은 이곳에서 신세를 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제이크 가문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최근에 이곳 영지를 다스리는, 그리고 옆 영지의 영애와 결혼을 한 자입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일단 제가 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크의 말에 대신관의 표정이 환해졌다.

“하하하, 그리해 주신다면야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 악의 종자는 신의 이름으로 심판해야 합니다.”

대신관은 이제 제이크를 악의 종자로 급상승시켰다. 그런 대신관의 말을 들은 아크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대신관께서는 사람을 그리 성급하게 판단하시는 것입니까?”

아크의 따끔한 지적에 대신관의 웃는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그러다 곧바로 표정을 근엄하게 바꾸고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하였군요. 물론 제가 성급하게 판단을 한 것은 아닙니다. 신전에서 내려주는 모든 것을 거부하니까, 제가 의심이 들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저희 신전의 규율에도 있지 않습니까, 신전의 축복은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주는 것이라고요. 저는 그것을 충실히 이행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그러니 오해는 하지 말아주십시오.”

“어쨌든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확인은 해보겠습니다. 정녕 대신관께서 하신 말씀이 맞다면, 신의 이름으로 제가 처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해 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잠시 마을을 둘러보러 가겠습니다.”

아크가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신관도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천천히 둘러보십시오.”

아크가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그가 나가고 대신관이 자리에 앉았다.

“쳇, 잘난 척하기는…….”

대신관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Episode 42 필, 폴 vs 아크

1

“날씨 한 번 정말 좋구나.”

신전을 나온 아크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찡그렸다. 한 손으로 그늘을 만들며 잠깐 동안 하늘을 바라보던 아크는 이내 낡은 후드를 뒤집어썼다.

“그럼 가볼까.”

신전에서 뻗어진 대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큰 언덕 위에 지어진 신전에서는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크는 마을로 이어지는 대로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눈에 들어온 마을의 전경은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후후, 많이도 변했군.”

깊게 눌러쓴 후드 사이로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필과 폴은 매일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슬슬 지겨움이 밀려왔다. 때려 부수고, 싸우고, 죽이는 것만 해오던 그들이기에 이런 평화로움은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심심해.”

“지겨워…….”

필과 폴은 저택 꼭대기에 있었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일광욕이라도 즐기는 듯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너무 무료한 생활에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지?”

“그걸 내가 아냐?”

“그럼 누가 아는데?”

“누구겠어, 저기 헤벌쭉 웃고 있는 저 양반이겠지.”

필이 슬쩍 저택 한쪽으로 턱짓을 하였다.

폴이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아이린과 함께 있는 제이크가 보였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쳇, 그리도 좋을까? 매일 웃고 있고 말이야.”

“그래, 좋기도 하겠지. 그보다 뭐 재미난 일 없을까?”

“재미난 일? 죽이러 갈까?”

“누구를?”

“누구긴, 그냥 뭐…….”

필이 말을 얼버무리자 폴이 눈을 가늘게 떴다.

“너 그러다 도련님께 된통 혼난다.”

“에잇! 그럼 어쩌라고, 좀이 쑤셔 죽겠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냥 확 마을로 내려가서 사람이나 죽일까?”

“그럴까? 사람 죽일까?”

“아니야. 자고로 연약하고 약한 인간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고 했어.”

“그럼 숲에라도 가서 몬스터나 사냥할까?”

“어제 열 마리 잡은 후로 더 이상 안 나왔잖아.”

“그래도 혹시 알아? 눈먼 한 마리가 있을지.”

“에이, 됐어! 그냥 이 상태로 있으련다.”

폴은 육중한 몸을 다시 뉘었다. 그 모습을 본 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잇, 나도 모르겠다.”

필도 귀찮다는 듯 폴 옆에 누워버렸다. 그러기를 잠깐. 필의 눈동자가 크게 떠지며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는 눈을 크게 뜬 채로 마을의 어느 한곳을 응시했다.

폴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놀란 눈으로 몸을 돌려 마을을 바라보았다.

“야, 느꼈냐?”

필이 물었다.

“으응, 아주 독특한데?”

“그래도 강한 기운이지?”

“그래, 강해 보이네.”

폴이 히죽 웃으며 답했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말했다.

“야, 오늘은 왠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냐?”

“킥킥킥, 그래, 오늘은 재밌을 것 같아.”

두 사람은 동시에 쳐다보고는 히죽 웃음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몸을 일으킨 두 사람은 마을이 보이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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