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헬 나이츠 5권 (2화)
“나머지는 네빌, 자네가 알아서 처리해.”
“네, 백작님.”
“아, 그리고 사인할 것 있으면 내일로 미루고.”
“후후, 이제 없습니다. 나머지는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고맙고.”
“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빌 집사는 나머지 일을 처리하기 위해 그곳을 떠났다. 제이크와 아이린은 멀어지는 네빌 집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제이크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쩝, 네빌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그러니까요. 좀 잘해줘요.”
“잘해주지. 내가 못해주는 건 또 뭐 있어?”
제이크가 곧바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러자 아이린이 피식, 웃었다.
“누가 뭐래요? 그냥 잘해주라는 거지.”
“잘해줘. 나처럼 잘해주는 사람 있음 나와보라고 해.”
“네네, 알았네요.”
“그런데 네빌 집사가 똑똑하긴 해. 나처럼 무식하게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도 않고 말이야.”
“그럼요, 얼마나 똑똑한데요. 그리고 당신도 무식하지 않아요. 똑똑한 거 다 알아요.”
“그래? 후후후, 아이린이 그리 봐주면 나야 고맙지.”
“진짠데?”
아이린은 웃으며 들고 있던 책을 옆의 탁자에 내려놓기 위해 움직였다. 그 모습에 움찔하던 제이크가 곧바로 책을 받아 탁자 위에 놓았다.
“고마워요.”
아이린은 그런 제이크의 행동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걸 가지고 뭘. 그보다 요 녀석, 잘 크고 있나?”
제이크는 볼록하게 솟아오른 아이린의 배를 아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뺨을 가져다 댔다. 그러기를 잠시. 이내 제이크의 눈이 커지며 화들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뭐, 뭐야?”
그 모습에 아이린이 크게 웃음을 흘렸다.
“호호호, 뭐긴 뭐예요, 발길질하는 거죠.”
“아니, 요 녀석이 벌써부터 애비한테 발길질을 하고 말이야, 아주 크게 될 녀석이야.”
“호호호, 그러게요. 아주 크게 될 녀석이에요.”
아이린이 웃으며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그때, 시녀가 급히 달려오며 말했다.
“마님, 산파께서 오셨습니다.”
“그래? 어서 뫼시고 와.”
“네, 마님.”
시녀가 인사를 하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녀가 멀어지자 제이크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벌써 검사 받을 때인가?”
“그럼요.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요.”
아이린이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예정일이 언제지?”
“왜요? 그렇게 빨리 보고 싶으세요?”
“그럼, 아이린은 안 보고 싶어?”
“당연히 보고 싶죠.”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사이, 산파가 도착을 하였다. 산파는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한 후, 아이린 곁으로 다가갔다. 그사이 제이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비켜주었다. 그리고 산파가 아이린을 진찰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산파는 아이린의 배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눈을 감았다. 천천히 아이린의 배 이곳저곳을 어루만지며 확인을 하고 있었다.
아이린은 그런 산파의 모습을 지켜보며 살짝 긴장한 눈빛이 되었다. 차 한 잔 정도 마실 시간이 흐른 후, 산파가 눈을 뜨며 손을 뗐다. 아이린이 급히 물었다.
“어때요?”
산파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잘 크고 있네요.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산파의 말을 들은 아이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나직이 물었다.
“아들일까요, 딸일까요?”
그녀의 말을 들은 제이크가 바로 말했다.
“당연히 아이린 닮은 예쁜 딸이어야지.”
“후후, 전 당신 닮은 건장한 남자아이였으면 좋겠는데.”
“아니야. 안 돼, 날 닮으면…….”
제이크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 모습에 아이린이 고개를 갸웃하였다.
“아니, 왜요?”
그녀의 물음에 제이크는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을 하였다.
‘날 닮으면 지옥의 수라도에서 살아야 하잖아. 암, 그러면 안 되지. 그걸 겪은 것은 나 하나로 족해.’
그렇게 속으로 생각을 하며 아이린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후후, 그래도 난 예쁜 딸이었으면 좋겠어.”
“칫, 그래도…….”
“그럴 것이 아니라, 물어보면 되겠네.”
제이크의 말에 아이린의 눈이 크게 떠지며 옆에 있는 산파에게로 향했다.
“산파, 당신은 알지? 아들이야, 딸이야?”
제이크의 대놓고 묻는 질문에 산파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훗, 글쎄요. 아들일 수도 있고, 딸일 수도 있습니다.”
“이봐, 그게 무슨 말이야? 딸이면 딸이고, 아들이면 아들이지, 일 수는 또 뭐야?”
제이크가 인상을 팍 쓰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아이린이 나서며 말렸다.
“당신은 가만히 있어봐요.”
아이린의 말에 제이크가 입을 다물었다. 그런 후 곧바로 산파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렇게 애매모호한 답 말고요, 확실하게 말해줘요.”
“후후, 마님, 제가 드린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아들도 되고, 딸도 되고요.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산파는 의미심장한 웃음만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고 제이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이, 이봐! 그게 무슨 말이야! 말은 똑바로 해주고 가야지!”
제이크가 일어나서 멀어지는 산파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그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유유히 걸음을 옮겨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뭐야? 저 산파…… 뭐냐고.”
제이크가 못마땅한 얼굴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 제이크를 아이린이 말렸다.
“그냥 두세요. 말 못할 이유가 있겠죠. 그것보다 난감한 일이 있어요.”
그 말에 제이크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난감한 일? 뭐야? 뭔데?”
예전의 제이크는 이렇게 호들갑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내가 생기고, 거기다가 아기까지 생기자 이렇듯 바뀌었다. 아이린의 입장에서는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순간순간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다.
지금이 딱 그럴 때였다.
“그게요, 자꾸 신전에서 사람을 보내네요. 신전으로 와서 진찰을 한 번 받고, 축복을 받으라면서…….”
제이크는 신전이라는 말에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그런 제이크의 얼굴을 아이린이 슬슬 살피며 말했다.
“계속 거절은 하고 있지만…… 또다시 찾아온다면 거절하기가 난감할 거예요.”
“거절해!”
제이크는 단호했다.
“그래도 아이에게 축복을 내려준다고 하잖아요. 그럼 아이에게도 좋고…….”
“안 돼! 거절해.”
“그래도…….”
“안 된다면 안 돼! 아이린, 다른 부탁은 다 들어줄 수 있지만, 이것만은 들어줄 수 없어. 그냥 그런 자잘한 것에 신경 쓰지 말고 태교에 힘을 써. 무엇보다 나는 우리 영지가 그런 종교에 휩쓸리는 걸 원치 않아.”
아이린은 제이크의 단호한 말에 순간 당황했지만, 마지막 말에는 존경심이 들었다.
“네,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고마워.”
두 사람은 서로를 무척이나 신뢰하는 눈빛으로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제이크가 화제를 바꾸며 아이린의 배에 다시 자신의 뺨을 가져다 댔다.
“그래, 욘석아. 다시 애비의 뺨에 발길질을 해봐라.”
“호호호, 지금은 자나 봐요. 가만히 있네요.”
“그래? 그럼 자게 둬야지.”
제이크는 약간 아쉽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들었다. 그런 제이크의 표정을 보고 아이린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쉽다는 표정이네요?”
“뭐, 그렇지.”
“태어나면 실컷 놀아주면 되잖아요. 뭐가 그리 급해요.”
“그러면 되지. 실컷 놀아주면 되겠지.”
제이크는 그 말을 하며 살짝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고개를 살짝 돌려 뭔가 생각에 잠겼다. 그런 제이크를 보며 아이린 또한 걱정스런 얼굴이 되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으응? 아, 아니야. 그냥 잠깐 뭐 좀 생각하느라.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지?”
“무슨 얘기요? 아무 얘기도 안 했어요. 그냥 아기 태어나면 같이 놀아준다는 얘기했는데…….”
“아, 맞다. 그랬지. 그럼 뭐하고 놀까?”
“그냥 같이 놀아주면 되지, 뭐가 필요하겠어요.”
“그렇지? 하하하!”
제이크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제이크의 모습을 보고 아이린 또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 두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저택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두 사람, 필과 폴이었다.
“야, 필.”
“왜?”
“아무래도 얼마 안 남았지?”
“그렇지.”
“그런데 어쩌냐, 저리도 행복해하시는데…….”
“그러게나 말이야.”
“후우―!”
“후우―!”
필과 폴, 두 사람이 동시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표정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3
같은 시각.
신전의 문이 벌컥, 열리며 대신관이 들어왔다. 그는 매우 불만스런 표정으로 걸어와 책상에 털썩 앉았다. 신전을 수호하는 대신관답지 않게 잔뜩 찡그려진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아니, 왜, 왜 거절을 하는 거야? 이유가 도대체 뭐야!”
백작가를 다녀온 대신관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친히 나서서 아기에게 축복을 내려준다고 하였는데도 거절을 당했다.
그 이유란 게 아이는 그저 평범하게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태어난 순간부터 평범함을 버려야 하는 것이 바로 백작가의 후손이었다. 그런데 평범하게 키우겠다니, 말이 맞지 않았다.
하물며 자신은 대대로 백작령에 자리를 잡고 지내왔고, 백작가의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유독 제이크 가문과는 가까워질 수가 없었다.
아무리 찾아가고 노력을 해봐도 되지 않았다. 그 흔한 식사 초대도 받지 못했다. 아니, 식사 초대를 해도 오지 않았다. 마치 이곳에서 왕따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건 명백히 날 무시하는 행동이야. 아니지, 우리 신전 전체를 무시하는 일이야. 아무리 백작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신전을 무시하는 것은 용서 못해!”
대신관은 여전히 화를 내며 소리쳤다.
“빌어먹을! 지가 무슨 마왕의 아들이라도 되는 거야, 뭐야?”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더욱 화를 냈다. 그때,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신관은 찡그린 얼굴을 곧바로 풀었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앳되어 보이는 신관이 들어왔다. 그는 안으로 들어와 대신관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하며 입을 열었다.
“대신관님, 교황청에서 성기사님이 오셨습니다.”
“뭐, 교황청에서 성기사가?”
대신관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러기를 잠깐. 그는 곧바로 정신을 수습하며 말했다.
“어서, 어서 여기로 모시거라.”
“네.”
신관이 나가자 대신관은 곧바로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한 후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오래전부터 업무를 보고 있었다는 듯 펜을 들고 서류를 확인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