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99화 (99/125)

# 99

헬 나이츠 4권 (24화)

Episode 40 관심 (2)

2

벨란 상단의 상단주인 보이란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는 원래 멸망한 카론 왕국의 후작이었다.

전쟁이 터지고 왕국이 점점 수세에 몰리자 그는 재빨리 상인으로 위장에 도망을 쳤다.

뭐, 자신을 왕국을 버린 비정한 놈이라고 욕을 할 수도 있지만 그는 자신과 가족, 그리고 식솔들을 책임져야 했다. 그래서 이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왕국을 버렸다.

보이란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었다. 혹여 자신이 상인으로 위장한 것을 들키며 안 되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옆 왕국으로 피신을 하였다. 그곳에서 벨란 상단을 만들어 서서히 이름을 알렸다. 벨란 상단은 점점 세력이 커져 갔고, 드디어 2년 전 이곳, 옛 카론 왕국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 후로는 프라인 백작가에 대해서 은밀히 조사를 시작했다. 자신의 딸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사라진 외손자에 대해서도 말이다.

하지만 10년 전 사라지고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보이란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 있는 한 꼭 찾고 말 것이라고 다짐했다.

일단은 프라인 백작과 자신의 딸은 전쟁으로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손자들은 노예로 팔려 갔다. 어디로 갔는지 그 당시의 기록이 없어 애를 먹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몇 달 전 우연히 딸에게 선물했던 목걸이가 나타났다. 그것을 판다는 사람은 옛 프라인 백작가의 성이었던 바로 그곳이었다.

보이란은 서둘러 그곳으로 칼을 보내었다. 혹시라도 가족들의 소식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리고 그 목걸이를 아주 비싸게 사기로 했다.

첫날 칼이 목걸이를 건네받았을 때 이것이 어디서 났는지 물었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이들과 거래를 하기로 했다.

칼이 거의 매일 에페로 자작령으로 찾아갔다. 누가 이것을 주었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니면 성에 몰래 숨겨 둔 것을 꺼낸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그를 만났다. 제이크라는 청년을 말이다. 칼은 그를 찬찬히 보았다. 그에게서 예전 둘째 아가씨의 얼굴이 남아 있었다.

물어보고 싶었다. 혹시 프라인 백작가의 사람이 아니냐고, 하지만 그것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하물며 에페로 자작가의 사람들도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한 걸음 물러나 지켜보기로 했다. 완벽한 증거를 찾을 때까지 말이다. 그래서 칼은 에페로 자작령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다.

보이란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펜을 놓더니 옆의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는 자그마한 보석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꺼낸 보이란은 보석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 반짝이는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몇 달 전 아이린이 팔았던, 아니, 제이크의 어머니의 유품이었던 미라젠의 눈물이었다.

“후우.”

미라젠의 눈물을 손에 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딸아. 너의 아들을 찾은 것 같은데 아직 확실치가 않구나. 제발 그 아이가 맞기를 빌어야겠구나.”

보이란은 슬픈 눈이 되며 그 목걸이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던 그때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보이란은 그 목걸이를 도로 보석 상장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다시 서랍에 원위치를 시킨 후 그것을 닫았다.

“누구냐?”

“칼입니다.”

“들어오너라.”

문이 열리고 칼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보이란은 칼을 보며 흐뭇한 얼굴이 되었다.

“두 달 만이구나.”

“네, 상단주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허헛, 나야 늘 똑같지. 그보다 밖에서 고생하는 자네가 더 힘들지 않겠는가.”

“아닙니다. 이 일이 저에게는 천성입니다.”

칼도 한때는 보이란 후작의 집사였다. 지금은 상단을 맡고 있는 총관이지만 말이다.

보이란은 그런 칼에게 매우 의지하고 있었다. 칼 또한 보이란에게 충심으로 대했다.

“그래, 어찌 되었나?”

보이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칼의 얼굴이 환해졌다.

“찾았습니다. 상단주님의 외손자를 말입니다.”

“저, 정말인가?”

보이란의 얼굴이 밝아졌다.

“네에, 역시 그 목걸이를 준 사람이 바로 상단주님의 외손자였습니다.”

“그래? 이, 이름이 뭐던가? 혹시 제이크라고 하지 않던가?”

보이란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칼이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네, 맞습니다. 제이크라고 했습니다.”

“오호, 드디어, 드디어 찾았구나! 드디어 나의 외손자를 찾았어!”

보이란의 주름진 눈가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얼마나 찾아 헤맸던가. 지난 시간, 모든 것을 바쳐 가족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드디어 그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칼도 그런 보이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칼은 계속해서 에페로 자작령에 들어서면서 정보를 수집했다. 그 결과 모든 것은 제이크에 의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10년 전 사라졌던 보이란 후작의 외손자인 제이크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제이크, 그래 제이크였어. 그 애가 살아 있었단 말이지.”

보이란은 기쁨의 얼굴이 되었다. 칼 또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예, 제가 몇 번이고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확실한 것 같습니다.”

“후후, 그래, 역시 그래야지.”

보이란는 외손자의 생존에 기뻐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가족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상단 일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숨기면서 말이다.

“그래, 내가 여태까지 죽지 못했던 것이 다 이 날을 위해서인 것만 같구나.”

보이란은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 멸망한 카론 왕국의 후작이 아닌 그저 평명한 상인으로서 말이다. 끝내 가족 중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겠다. 조만간 내가 찾아가 보지. 그보다 다른 이들은 찾아보았나.”

보이란의 물음에 칼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게, 백작과 보이란 님의 여동생은 아무래도 죽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큰 조카도 노예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고, 작은 조카의 행방은 현재 찾는 중입니다. 하지만 거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쉽지가 않습니다.”

칼이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보이란은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10년이 지난 후 드디어 세 명의 조카 중 하나를 찾지 않았나. 반드시 다 찾아낼 것이라 생각했다.

“찾아라,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 찾아야 해. 그리고 큰 조카의 시신은 어디에 있느냐?”

“그것이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그냥 아무 곳이나 파서 묻은 것 같은데…….”

“으음.”

보이란이 자리에 앉으며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하얀 백발이 된 보이란의 머리는 그 동안의 고뇌를 대변하고 있었다.

“알겠다. 그만 나가 보아라.”

“네.”

칼이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보이란은 눈을 감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보이란에게 있어서 가족을 찾는 일은 죽기 전 완수해야 할 사명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이곳에 살아가야 하는 그에게는 무엇보다 가족이 소중하기 때문이었다.

“다들 어디 있느냐. 어떻게 살든지 제발 목숨만이라도 붙어 있기를 간절히 빈다.”

보이란이 조용히 읊조렸다.

3

수도에서도 가장 어둠의 골목.

이곳은 흔히 말하는 도적들과 범죄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의 술집은 제법 이름이 알려진 도적들이 와서 술을 마시곤 했다.

이곳의 술집 이름은 ‘시크릿’.

한마디로 비밀의 술집이었다.

그곳 술집으로 허름한 로브 차림의 한 노인이 들어섰다.

끼이익!

나무문이 소리를 내며 열리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숨을 죽이며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들어서자 이내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노인은 구석진 자리로 가서 앉았다. 잠시 후 나무 컵을 들고 나타난 덩치 큰 사내가 노인을 보며 말했다.

“뭘 먹을라오?”

“간단히 목을 축일 만한 것을 내어 주게나.”

“기다리쇼.”

덩치가 가고 노인은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았다. 그때 바로 옆의 다섯 명의 사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들의 주제는 바로 얼마 전 있었던 에페로 자작령과 베이런 후작가와의 싸움이었다. 그때 제이크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뜨거운 뉴스거리가 되었다.

그때를 같이해 그곳에서 두 명의 흑마법사가 죽었다는 소문은 뒷골목에서는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죽은 흑마법사는 한때 최고의 흑마법사로 불린 발데스였다. 그의 죽음은 같은 흑마법사들에게서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들은 모였다 하면 발데스와 그의 제자들 죽음에 대해서였다.

“어떻게 된 일인가?”

“맞아, 천하의 발데스 님이 죽었다니 믿을 수가 없어.”

“소문에 의하면 엄청난 실력을 가진 흑마법사라고 하더군.”

“그래? 발데스 님에 대항하는 흑마법사는 이그나탈 님뿐이지 않는가. 그럼 이그나탈 님께서 나타나셨나?”

“그래, 나도 그 소문은 들었어.”

“하지만 확실히 이그나탈 님께서 그런 것이라고는 하지 않던데.”

다섯 명의 사내들이 얘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노인의 눈빛이 어느 순간 반짝였다.

“발데스가 죽었어?”

그 노인은 깜짝 놀라고 있었다.

“흑마법사 중 가장 겁 많고 소심하던 그놈이 죽었다면 그만큼 위험한 적이 나타난 것인가? 도대체 누구지?”

노인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계속해서 귀를 기울였다. 그 사내들은 계속해서 그 얘기에 열을 내고 있었다. 노인은 귀를 쫑긋 세우며 그 얘기를 듣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런, 이런.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잘 들리지 않아. 그렇다면 방법이 없지.”

그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이보게들.”

노인의 목소리에 사내들은 힐끔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아까 얘기하던 것을 이 노인에게 들려줄 수 없는가. 내가 그 얘기에 무척이나 관심이 있어서 말이야. 얘기 값으로 여기 있는 술은 내가 사겠네.”

그 말에 사내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흔하디흔한 이런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 뭐가 어렵겠는가. 게다가 얘기를 해 주는 조건으로 공짜 술까지 얻어먹을 수 있으니 웬 횡재냐면 흔쾌히 승낙을 했다.

“하하하, 술을 사시겠다면 당연히 말씀해 드려야죠. 이리 앉으십시오.”

한 명의 사내가 자리를 권했다. 노인은 그곳에 가서 앉았다.

“자, 그럼 얘기를 해 주게. 어찌 된 일인가?”

그러자 사내들은 여태껏 들린 소문을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했다. 그러던 중 한 명의 인물이 거론되었다.

노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제이크? 그 녀석은 누구지?”

“그게 누군지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에페로 자작령에 있다고 합니다.”

“이봐, 이제는 백작령이 되었잖아.”

“아, 맞다. 그곳의 아가씨와 결혼을 해서 이제 백작이 되었지.”

사내가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그 사내를 보며 다시 물었다.

“그럼 그가 죽인 것이 확실한가?”

“에이, 어떻게 확신을 합니까. 워낙에 뛰어난 자라서 혹여 그자가 그런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던 것뿐입니다.”

“그런가? 으음. 제이크, 제이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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