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98화 (98/125)

# 98

헬 나이츠 4권 (23화)

Episode 39 결혼식 (4)

둥근 달과 촘촘히 떠 있는 별들을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아이린이 지나가는 듯 중얼거렸다.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대부분 힘든 일이었지만 당신을 만나고 모든 것이 잘 풀렸어요. 게다가 이렇게 결혼까지 하고…….”

아이린이 약간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러자 제이크 입을 열었다.

“하긴 나도 당황스러웠지. 집에 왔는데 웬 이상한 여자가 주인이라며 소리치고, 더욱 황당한 것은 내가 있던 왕국이 망했다는 것이야. 완전히 길 잃은 양이었지. 그런데 당신이 날 돌봐줬고, 이렇듯 결혼을 하게 되었네.”

제이크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린도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고, 먼저 입을 연 쪽은 아이린이었다.

“저 이제 단 한 가지 소원밖에 없어요.”

“뭔데?”

제이크가 묻자 아이린은 고개를 푹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

“당신 닮은 사내아이를…….”

순간 제이크의 얼굴이 정색되며 말했다.

“난 딸이 좋아.”

그 말에 아이린의 고개가 들려졌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이내 천천히 얼굴이 가까워졌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깊은 키스를 하였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두 사람을 지켜주면서 말이다.

Episode 40 관심 (1)

1

아이린은 제이크와 결혼 후 곧바로 왕도로 향했다.

왕도에 도착을 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밖에는 비도 보슬보슬내리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 시간에는 국왕을 만난다는 것은 무리였다.

하룻밤 여관에서 휴식을 취한 후 아침 일찍 국왕을 알현하기로 했다.

마부는 곧바로 수도에서 가장 큰 여관으로 달려갔다. 여관에 도착을 하고, 마차의 문이 열리며 네빌 집사가 먼저 내렸다.

다음은 제이크가 내렸고, 아이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린은 한 손으로 제이크의 손을 잡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드레스 끝자락을 잡고 천천히 내렸다.

“고마워요.”

아이린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제가 들어가서 방을 잡겠습니다.”

네빌 집사가 여관으로 들어가고 제이크는 아이린과 함께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내부로 들어서자 네빌 집사가 주인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네빌 집사가 다가왔다.

“방이 준비되었습니다.”

제이크와 아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이층으로 올라가자 여러 개의 방이 보였다.

그중 하나의 방문 앞에 도착한 네빌 집사가 말했다.

“두 분이 묵을 실 방은 여기입니다. 저는 맞은편 방에 있을 테니 시키실 일이 있으면 불러 주십시오.”

“알았어요.”

아이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네빌 집사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제이크와 아이린이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네빌 집사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제이크와 아이린은 방에 들어서자 겉옷을 벗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결혼은 했지만 아직은 어색한 두 사람이었다.

제이크도 어떤 말을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아이린이 창가로 가서 문을 열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아이린이 입을 열었다.

“당신, 수도에 온 것은 처음이죠.”

“그, 그렇지.”

“저도 정말 오랜만에 왔어요.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온 적은 있지만 그 후로는 오지 못했어요. 이곳도 많이 바뀌었네요.”

아이린이 조용히 말했다. 그녀 곁으로 제이크가 다가왔다. 밤이지만 수도는 아름다웠다. 마계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말없이 수도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어둡고 비까지 내리고 있지만 그런 것은 상관이 없었다. 지금 이렇게 두 사람이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잠깐의 시간 이 흐른 후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이크와 아이린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방문 밖에서 네빌 집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빌 집사입니다.”

“들어오세요.”

아이린이 말했다. 문이 열리고 네빌 집사가 들어섰다. 그는 두 사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요?”

“네.”

“누군지는 모르고요?”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왕궁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네빌 집사의 말에 아이린이 살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말했다.

“어서 모시세요.”

“네, 아가씨.”

‘누굴까?’

아이린은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제이크의 시선은 이미 방문 밖으로 향해 있었다. 네빌 집사가 문을 열자 그 앞에는 후드를 쓴 자가 서 있었다.

“들어가시지요.”

네빌 집사가 한쪽으로 물러서자 방문자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문객은 로브를 걸치고 후드를 쓴 자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빗속을 뚫고 왔는지 진흙 범벅이 된 부츠에 아주 조악한 천으로 만든 갈색 로브를 입은 건장한 사내였다. 그는 양손을 넉넉한 소매 속에 넣고 있었다.

“누구세요?”

아이린이 물었다.

그러자 그 사내는 후드를 벗었다. 드러난 얼굴은 매우 준수한 남자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필립 베이런이라고 합니다.”

‘필립 베이런? 베이런?’

아이린은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제이크도 눈가를 찡그렸다. 두 사람의 모습을 이미 예상을 한 필립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베이런 후작가의 첫째 아들입니다. 두 분께 긴히 드릴 말이 있어 무례인 줄은 알지만 찾아왔습니다.”

베이런 후작의 첫째 아들인 필립.

그는 왕궁에서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변방에 위치한 베이런 후작가는 중앙 정계에 진출하기 위해 첫째 아들을 수도로 보내었다.

필립은 그런 아버지의 생각을 알고 열심히 수도에 있으면서 많은 귀족들과 친분을 쌓으며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 가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베이런 후작이 병을 앓으면서 후계자 문제가 거론된 것이다. 자신은 현재 수도에 있으니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었다.

서둘러 이곳을 정리하고 후작가로 내려가야 했다. 둘째인 빌슨과 후계자 싸움을 해야 했다. 그런데 에페로 자작령에서 제이크와 아이린이 수도로 향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렇게 기다렸던 것이다.

“우선 이곳에 앉으시죠.”

아이린이 자리를 권했다. 필립이 의자에 앉았다. 맞은편에 제이크와 아이린이 앉았다. 필립은 제이크에게 시선을 던졌다.

“당신이 제이크로군요.”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볼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맞소?”

제이크가 물었다. 그러자 필립이 미소를 지었다.

“맞습니다.”

“그럼 얘기해 보시오.”

제이크는 구차하게 질질 끌지 말고 본론을 말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을 보고 필립이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현재 그대는 작위를 계승하고, 채플 백작가의 땅을 인정받기 위해 왔을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물론 국왕 폐하의 승인도 있어야겠지만 수도에 있는 귀족들의 승낙도 얻어야 합니다.”

필립은 막힘없이 술술 얘기를 하였다.

“그 일을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작위를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한 단계 더 올려드리겠습니다.”

필립의 말을 듣고 제이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해 주는 이유는? 나에게 뭔가 원하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요.”

“하하하, 맞습니다.”

“그럼 원하는 것을 말해 보시오.”

“제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나중에 일이 있을 때 절 도와주고, 지지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뿐입니다.”

필립의 말을 듣고는 제이크는 곰곰이 생각을 하였다. 그도 귀가 있기에 베이런 후작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충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이는 가문을 차지하려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 있는 필립은 만약을 대비해 자신을 보험용으로 두고 싶었던 것이다.

제이크가 피식 웃었다.

그런 일이라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게다가 필립의 말을 들어 보니 에페로 자작령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수도에서 도움이 필요한 것도 느꼈다.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겠소. 당신의 말뜻은 현재 당신 가문에서 벌어지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봐야 하는데, 맞소?”

“이런, 벌써 눈치를 채신 것 같군요. 맞습니다. 전 아버지의 대를 이을 것입니다. 빌슨 녀석에게 절대 가문을 넘길 수 없습니다.”

필립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제이크는 그런 필립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리하겠소. 단, 확실해 해 둘 것이 있소. 당신도 아버지와 같은 그런 마음을 먹을 생각이라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좋소.”

“후후, 이래 봬도 눈치 하나는 빠릅니다. 이곳 수도에서 생활이 무려 8년입니다. 올라갈 곳이 있고, 올라가지 말아야 할 곳을 알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는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전 그곳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필립이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이크의 눈동자가 약간 흔들렸다. 대충이지만 그가 원하는 곳이 어딘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이곳 중앙 정계를 노리고 있는 듯했다. 뭐, 에페로 자작가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저쪽이 무엇을 하든 상관이 없었다.

“그럼 좋소. 그렇게 합시다.”

“그럼 얘기가 끝난 것으로 알겠소.”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고, 필립도 얘기가 끝났다고 판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내일 대전에서 봅시다.”

필립은 말을 마치고 다시 후드를 머리에 걸쳤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가 나가자 아이린이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괜찮을까요?”

“걱정 마. 그리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니까.”

“그래요?”

제이크가 말을 했지만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아이린은 제이크를 믿고 따를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아 왔다.

여관을 나선 제이크와 아이린은 곧바로 국왕을 만나기 위해 왕궁으로 향했다.

그전에 필립은 약속한 것이 있기에 수도 생활을 통해 만든 인맥을 총 동원해 제이크를 지원해 주었다.

그 결과 기존의 자작위에서 한 단계 더 올라서 백작의 작위를 얻을 수 있었다.

주요 공작들과 귀족들은 모든 제이크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무너져 가던 에페로 자작령을 제이크가 나타남으로써 해결하였다.

아니, 채플 백작가를 무너뜨리고 그곳을 차지했다. 갑자기 어디서 났는지 모두의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제이크가 누군가?”

“어서 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해.”

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다. 백작의 작위를 얻은 제이크는 대전을 나섰다.

다시 영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대전을 나서자 필립이 어제와 다른 옷차림으로 서 있었다.

방긋 웃는 얼굴로 제이크를 맞이했다.

“백작에 오르신 것을 축하합니다.”

“고맙소.”

제이크도 인사를 했다. 그러자 필립을 그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전 약속을 지켰습니다.”

제이크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걱정 마시오. 내가 한 약속은 지킬 테니까.”

“그럼 다음에 뵙죠.”

필립이 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났다. 제이크는 멀어지는 필립의 등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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