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
헬 나이츠 4권 (21화)
Episode 39 결혼식 (2)
한편 연무장에 있던 폴과 필은 여전히 그늘에 앉아 훈련 중인 기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기사 한 명 한 명을 보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필, 저 기사는 팔 힘은 좋은 것 같은데 스피드가 약해 보이지 않아?”
“덩치를 봐. 힘 좋게 생겼잖아.”
필은 폴의 말에 당연한 것을 묻냐며 대꾸했다. 그러고는 다른 기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길 봐. 저 기사는 스피드는 있는데 힘도 부족하고, 검을 휘두르는 것이 어색하잖아.”
“그거야 훈련만 하니까. 그렇지. 실전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폴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폴의 말에 필도 일리가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기사 하나하나를 보며 계속해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폴과 필이 나누는 대화가 훈련을 하고 있는 기사들에게 들린다는 것이다. 두 사람만 작게 얘기해도 될 문제인데 말이다.
급기야 훈련을 하던 기사 한 명이 참지 못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제기랄, 나 더 이상 못 참아!”
덩치가 큰 기사는 훈련을 멈추고 폴과 필을 째려보았다. 그것을 본 폴과 필이 또다시 중얼거렸다.
“어라? 저 기사가 날 보네.”
“우리 목소리가 좀 컸나?”
“곧장 이리로 올 분위기인데.”
“에이, 꼴에 자존심은 있나 보지. 뭐, 내가 실전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지.”
필이 의기양양하게 대답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덩치 큰 기사가 검을 늘어뜨리며 다가왔다. 그 기사는 폴과 필을 보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지금 뭣들 하는 것이오. 대화를 하려면 좀 조용히 해 줄 수 없소. 훈련에 방해가 되지 않소.”
그러자 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우리 말이 들렸구나. 뭐, 어차피 작게 말할 생각도 없었어. 자신의 단점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보다 알고 있는 게 훈련에 도움이 되지 않겠어.”
필의 말에 기사는 몸을 움찔했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기사였다. 두 사람이 비록 자신의 단점을 얘기했지만 그 말이 왠지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자신이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어떻게 나와 한 번 대련을 해 보지 않겠소?”
기사의 말에 필이 히죽 웃었다.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좋아, 내가 실전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지.”
필이 앞으로 걸어갔다. 폴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필, 살살해. 저 녀석 죽이면 곤란해져.”
“노력해 볼게.”
폴과 필의 말에 기사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한마디로 자신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훈련을 하던 나머지 기사들도 재빨리 그 두 사람에게 달려갔다. 필과 기사는 연무장 중앙에 대치했다. 그들 중심으로 기사들이 구경을 하기 위해 모여 들었다.
기사는 검을 중단세로 잡았다. 필은 그냥 편하게 서 있었다. 필은 모르겠지만 기사는 살짝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 명의 기사가 성에서 나오며 소리를 쳤다.
“이봐들, 빅 뉴스야, 빅 뉴스!”
그 기사의 말에 대련을 하려던 필이 고개를 갸웃했다. 덩치 큰 기사도 그 기사의 말에 검을 내렸다.
“아이린 아가씨와 제이크 님이 결혼한데.”
“뭐? 정말이야?”
“그래, 지금 막 얘기가 끝났데.”
“오호, 이럴 수가.”
“아, 아가씨도 이제 유부녀가 되는구나.”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이 전해지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몇몇 기사들은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게다가 한두 명은 실의에 빠진 얼굴이 되었다.
“아가씨, 저는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아이린을 사모하던 기사는 절규를 하였다.
반면 필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폴도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진짜로?”
“헐! 이거 큰일이네.”
“폴, 도련님께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그래야겠지.”
필은 덩치 큰 기사를 보며 말했다.
“이봐, 아무래도 우리 대결은 나중으로 미뤄야겠다.”
그 말을 내뱉고는 폴과 함께 성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제이크에게 직접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연무장에 있는 기사들도 반으로 나뉘었다.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말이다.
2
공식적인 발표가 있은 후 결혼식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결혼식은 정확히 보름 후에 하기로 했다.
네빌 집사는 결혼식의 총책임을 맡고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진행시켜 나갔다.
아이린도 업무를 뒤로 미루고, 결혼식 준비에 힘을 쏟았다.
한편 제이크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주로 그가 있는 곳은 지붕 위였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지붕 위에 팔베개를 한 채 누워 있었다. 그는 막상 결혼을 한다고는 했지만 살짝 두려움이 밀려왔다.
“거참, 내가 잘한 짓인지 모르겠네.”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휴가가 끝이 나면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이곳에 남아야 하는지 아니면 돌아가야 할지.
“후우.”
일은 저질러졌고 그렇다고 물릴 수도 없었다. 이래저래 한숨만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도련님, 여기 계셨어요?”
“한참 찾았잖아요.”
어느새 지붕 위로 모습을 드러낸 폴과 필이었다. 두 사람은 약간 짜증 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뭡니까?”
“어떻게 그런 결정을 혼자 합니까?”
폴과 필의 말에 제이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푸르른 하늘만 응시했다.
“왜 말이 없어요?”
“말씀 좀 해 보세요.”
두 사람의 성화에 제이크가 팔베개를 풀며 상체를 일으켰다.
“이것들이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해 죽겠는데 왜 여기까지 따라와서 잔소리야!”
제이크의 으름장에 폴과 필이 움찔했지만 곧바로 말을 했다.
“그래도 이건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결정을 하셨습니까?”
필이 물었다.
그러자 제이크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모르겠다. 그냥 어쩌다 보니…….”
제이크는 심각해진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폴이 입을 열었다.
“도련님은 마계의 군단장입니다. 휴가가 끝이 나면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갈 때 아가씨도 함께 데리고 갈 생각입니까?”
“아니.”
“그럼 과부로 그냥 둘 것입니까?”
필의 물음에 잠시 머뭇거리던 제이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답답한 필이 물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시는 것입니까. 정말 답답하네요.”
필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때 폴이 중얼거렸다.
“탈영이라도 할 생각이신가?”
그의 중얼거림에 제이크의 눈빛이 흔들렸다. 필도 그 말을 듣고 눈이 커졌다.
“설마… 에이, 아니시겠죠.”
필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러자 제이크가 고개를 돌려 필을 바라보았다. 필은 제이크의 눈빛을 본 순간 머리가 띵했다.
“진짜요?”
“야, 왜 그래.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폴은 필의 말에 궁금증을 느끼며 물었다. 하지만 필은 제이크에게 시선이 고정된 채 입을 크게 벌렸다.
“말도 안 돼. 도련님, 큰일 날 생각을 하십니다.”
필이 소리를 질렀다.
제이크는 고개를 돌려 다시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어. 이 일은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아.”
“아니요.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도련님은 마계의 군단장입니다. 헬 나이츠란 말입니다. 마계에서 도련님만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하들은요? 그리고 마왕님은…….”
“그만! 아직 확실치 않다고 했잖아!”
제이크는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몸을 날렸다. 제이크가 사라지고 필은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었다.
옆에 있던 폴이 물었다.
“야, 필. 도련님이 왜? 뭐가 안 된다는 말이야.”
필이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도련님이 아주 나쁜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다.”
“나쁜 생각이라니?”
폴이 재차 물었지만 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시각 네빌 집사는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초대장부터 시작해 음식이며, 파티할 장소 등 모든 것을 혼자서 준비했다. 마치 딸아이를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처럼 하나하나 철저하게 체크했다.
네빌 집사는 자작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아이린을 돌봐 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항상 상단 일로 밖에서 생활하는 자작님을 대신해 네빌 집사가 거의 키우다시피 했다.
그래서 막상 결혼을 한다고 하니 마음 한 편이 쓸쓸했다. 왠지 딸아이를 시집보내는 심정이었다. 그 마음을 오히려 결혼식 준비로 풀어 버리려는 듯 보였다.
“최고의 결혼식을 준비할 테야.”
네빌 집사는 다짐을 하듯이 말했다. 그리고 성 뒷문으로 통해 들어오는 마차의 물품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여기 있는 것은 저쪽 창고로 옮기게.”
“집사님, 이것은 어디다 놓을까요?”
사내가 물었다. 네빌 집사는 곧장 그리고 갔다. 물품을 확인하더니 이내 말했다.
“이것은 장식용이니 우선 저기 창고에 가져다 놓게.”
“네, 집사님.”
힘차게 대답을 한 사내는 그 물품을 들고 창고로 향했다. 네빌 집사는 또 다른 물품으로 향했다.
최고의 결혼식 준비를 위해 네빌 집사는 분주히 움직였다.
한편 아이린은 자신의 방에서 드레스를 맞추고 있었다. 마을에서 최고의 재봉사를 불러 하나하나 치수를 재고 있었다.
“아이린 님. 정말 몸매가 아름다우세요.”
재봉사 말덴은 줄자로 아이린의 몸 치수를 재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런 말덴의 말에 아이린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아, 아니에요.”
아이린이 수줍게 대답했다. 하지만 말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닙니다, 아가씨. 정말 균형 잡힌 몸매입니다. 들어갈 때 들어가고, 나올 때 나온. 재봉사로써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몸매는 처음입니다.”
말덴의 칭찬은 계속되었다. 그럴수록 아이린은 더욱 민망한 얼굴이 되었다. 치수를 다 잰 말덴이 수첩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아이린 님. 이번에 만들 아이린 님의 드레스는 내 평생의 걸작이 될 것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아, 네. 부탁드릴게요.”
아이린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덴은 줄자를 목에 걸고 수첩을 들고는 곧바로 인사했다.
“그럼 치수 재는 것도 끝났으니 전 바로 돌아가서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결혼식 날 그때 뵙도록 하죠.”
“네, 수고하세요.”
말덴이 돌아가고 아이린은 긴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후우, 힘들다.”
하녀가 다가왔다.
“아가씨, 쉬시는 동안 차를 준비할까요?”
“그래 줄래?”
“네, 바로 준비할게요.”
하녀는 방긋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아이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테라스로 향했다. 문을 열자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