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헬 나이츠 4권 (17화)
Episode 37 미쳐 버린 베이런 후작 (3)
베이런 후작은 만족스런 얼굴로 스튜를 여러 번 떠먹었다. 덩어리도 떠서 입을 가져갔다. 그러던 그때 스튜를 먹다가 뭔가 이빨 사이에 딱딱한 것이 걸렸다.
“음?”
베이런 후작은 눈살을 찡그리며 혀로 빼내려 하는데 잇몸에 끼어서 잘 빠지지가 않았다. 손으로 억지로 그 이물질을 빼내어 보았다.
그 순간 베이런 후작의 눈이 커졌다.
“으앗!”
탁자 위에 놓은 이 물질은 바로 사람의 손톱이었던 것이다. 놀라움과 당황스러운 그리고 짜증이 확 솟구쳤다.
“이, 이런 것을……!”
베이런 후작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중얼거렸다.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부인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하지만 베이런 후작은 답변을 하지 않고 곧바로 주방장을 데려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이놈들이 어디 이따위로 음식을 만들어! 지금 당장 주방장 불러와!”
베이런 후작의 불호령에 하녀가 부랴부랴 주방으로 뛰어갔다. 한참 식사를 하는 부인도 베이런 후작의 언성에 놀란 눈치였다.
빌슨도 스튜를 먹다가 기침을 했다.
“콜록, 콜록!”
잠시 후 주방장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후작님, 부르셨습니까? 혹시 음식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주방장은 하녀에게 소리를 들었다. 잔뜩 화가 난 모습을 자신을 불렀다고 말이다. 이내 조심스러운 얼굴로 베이런 후작을 바라보았다.
베이런 후작은 그러 주방장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네 이놈! 도대체 이걸 누가 먹으라고 만든 것이냐! 누가 이따위로 만들어!”
수저를 던지며 주방장을 질타했다. 주방장은 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후, 후작님. 무슨 문제라도…….”
거의 기어들어 가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러자 자신의 입에서 나온 손톱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를 봐! 이따위 것이 스튜에 들어가 있었다! 어떻게 요리를 했기에 이런 것이 들어가?”
베이런 후작이 식탁 위에 있는 물질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주방장은 그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후작님. 오늘 아침 스튜는 야채 스튜입니다. 그래서 야채가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데…….”
주방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의아해하며 말했다. 하지만 베이런 후작은 더욱 노기를 띠며 말했다.
“이놈이! 지금 이걸 보고서도 그 따위 말을 해! 네놈이 잘 만들지 못해 손톱이 들어간 것이 아니냐! 이걸 봐, 네 눈에는 이 손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냐!”
베이런 후작은 조금 전 자신의 입에서 나온 손톱을 가리키며 불호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 손톱을 바라보는 주방장의 눈빛이 조금 이상했다.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더욱 베이런 후작을 화나게 하고 있었다. 급기야 주방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 더욱 가관이었다.
“후작님, 이건 그냥 야채 덩어리인데요. 손톱이 아닙니다.”
“뭣이? 이것이 손톱이 아니라고?”
베이런 후작 눈에는 분명 손톱으로 보이고 있었다. 옆에 있던 부인도 놀란 나머지 베이런 후작이 내려놓은 그것을 보았다.
영락없는 야채 덩어리였다. 그것도 감자였다.
“여보, 감자인데요. 어찌 감자를 보고 손톱이라고 하시는지요.”
“부, 부인! 그게 무슨 말이요! 어찌 눈으로 보고도 이것이 감자라고 말하는 것이오! 이건 분명 손톱이오! 인간의 손톱 말이오!”
점점 알 수 없는 말만 내뱉는 베이런 후작의 모습에 빌슨과 부인, 그리고 주방장과 하녀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 눈에는 베이런 후작이 언성을 높이며 가리켰던 것이 감자인 것이 분명했다.
하물며 부인과 빌슨은 ‘도대체 왜 저래?’ 이런 식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베이런 후작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분명 자신의 눈에는 손톱인데 모두들 감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부인, 정녕 이것이 손톱이 아니란 말이오.”
“네, 여보. 감자 덩어리인데요.”
“아니야, 이건 분명 손톱인데.”
베이런 후작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금도 보고 있는데 분명 인간의 손톱이었다.
“뭔가 잘못됐어. 다시 한 번 보시오. 이건 분명 손톱……인데.”
혹여 자신의 눈이 잘못되었는지 다시 한 번 그것을 보았다. 그런데 손톱이었던 것이 갑자기 하얀 감자 덩어리로 둔갑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베이런 후작은 헛바람을 삼켰다.
“헛! 이, 이럴 수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부, 분명 손톱이었는데…….”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분명 손톱을 꺼낸 것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감자로 둔갑되어 버린 것이다.
“으응?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여기 있던 손톱이 어디를 갔지? 도대체 어딜 갔냐 말이야!”
이 말을 하며 식탁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베이런 후작의 행동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멍한 표정이 되었다. 모두들 베이런 후작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그의 행동을 보던 부인이 주위의 눈짓을 보더니 이내 베이런 후작에게 말했다.
“여보, 진정하세요.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헛것이 보였나 봐요.”
“아니야, 난 분명 손톱을 봤어. 정말이오, 부인.”
베이런 후작은 억울했다.
분명 손톱을 꺼냈는데 그것이 감자로 변했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하지만 부인은 아랫것들이 지켜보는데 체통 없이 행동하는 베이런 후작의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그만하세요. 감자를 보고 왜 자꾸 손톱 얘기를 하세요. 아랫사람이 보고 있어요.”
부인의 따끔한 질책에 베이런 후작은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허허, 허허허!”
베이런 후작은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부인의 행동에 웃음만 지었다. 게다가 손톱이 감쪽같이 감자로 변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손톱이었는데…….”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나갔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빌슨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식사 안 하세요?”
하지만 베이런 후작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부인은 그런 베이런 후작의 모습에 안타까운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주방장에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
“아무래도 후작님께서 기력이 많이 떨어지신 것 같네. 지금 당장 보양식을 준비해 주게나. 내가 직접 가져갈 것이야.”
“예, 마님!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주방장은 인사를 하고는 급히 주방으로 뛰어갔다. 부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걱정스런 얼굴이 되었다.
3
베이런 후작의 광증은 계속되었다.
게이런 남작이 서류를 들고 오는데 그것을 보고 무기를 쥐고 있다고 소리를 지르지 않나. 밤에는 몽유병처럼 벌떡 일어나 죽은 사람이 나타났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자꾸만 눈에 헛것이 보이는 것이다. 부인은 그런 베이런 후작을 보고 요즘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것이라 말을 하고 휴식을 취하라고 말했다.
베이런 후작도 지난 사건 때문에 신경을 써서 헛것이 보인다고 생각하고 부인의 말을 들었다.
모든 업무를 게이런 남작에게 맡기고 베이런 후작은 휴식을 취했다.
따뜻한 오후의 날씨.
베이런 후작과 부인은 성 뒤뜰로 나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하녀가 은쟁반에 찻잔과 주전자를 들고 나왔다. 탁자에 그것을 내려놓고 차를 부었다. 부인은 하녀를 보며 물었다.
“오늘 차는 무엇이냐?”
“네, 마님. 홍차입니다.”
“오냐, 알았다.”
부인이 대답을 하고는 차를 베이런 후작에게 건넸다.
“홍차라고 합니다. 드셔 보세요.”
부인에게 건네받은 홍차를 베이런 후작의 입으로 가져갔다. 한 모금 마신 베이런 후작은 눈을 부릅뜨고는 곧바로 그것을 뱉어냈다.
“푸아앗!”
“여, 여보. 왜 그러세요.”
부인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베이런 후작은 거칠게 찻잔을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녀의 뺨을 후려쳤다.
쫘악!
난데없이 뺨을 맞은 하녀는 눈물을 글썽였다. 하지만 베이런 후작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소리쳤다.
“네 이년! 감히 날 죽이려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하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부인 또한 베이런 후작의 행동에 다소 놀란 얼굴이 되었다.
“여보, 왜 그러세요?”
“부인, 이년이 나에게 독을 탄 차를 가지고 왔소. 날 죽이려고 말이오.”
“네에? 독이 든 차라니요. 제가 마셨는데 아무렇지 않아요. 아주 맛있는 홍차인데요.”
“뭣이?”
베이런 후작은 놀란 얼굴이 되며 부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믿지 못하겠는지 자신의 찻잔을 들고 하녀에게 내밀었다.
“이것 봐! 이렇게 시커먼 독물이지 않느냐.”
“아, 아닙니다. 홍차입니다.”
하녀는 벌벌 떨며 말했다. 그 모습에 베이런 후작은 더욱 언성을 높였다.
“이년이, 이렇게 뻔히 보이는데도 거짓말을 해! 오냐, 어디 네가 직접 마셔라! 이걸 마시고도 네년이 그런 말이 나오는지 어디 두고 보자!”
베이런 후작이 억지로 찻잔을 하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 하녀는 어쩔 수 없이 그 차를 고스란히 마셨다. 그것을 본 베이런 후작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독물을 마시니 어때?”
하지만 하녀는 아무렇지 않았다. 멀쩡한 상태에서 두려움에 울먹이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부인이 나섰다.
“여보, 당신 정말 왜 이러세요! 홍차를 보고 독물이라니요! 저랑 똑같이 홍차예요!”
그때서야 또다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시커먼 독물로 보였던 것이 이제는 엷은 갈색을 띠고 있는 홍차가 되었다.
베이런 후작은 황당한 얼굴이 되며 몸을 비틀거렸다. 그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의자에 앉았다.
부인은 안쓰러운 얼굴로 베이런 후작을 바라보았다. 베이런 후작은 자신이 갑자기 왜 이러는지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그 후로 몇 번의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급기야 성안에서 이런 소문까지 돌았다.
‘후작님이 미쳤어.’
‘헛것을 보며 소리치고, 밤에는 유령이 나타난다고 하지, 아마…….’
기사들과 병사들까지 이런 소문이 퍼졌다. 게이런 남작이 그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뛰어다녔지만 그 불씨를 꺼뜨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베이런 후작의 병세는 날로 심각해졌다.
신관이 와서 확인을 했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만 했다. 다만 신경이 많이 쇠약해졌다는 소견만 내놓았다. 게다가 몸에 좋다는 약은 다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모두 독물이라며 먹지 않으려 했다. 아무리 약이라고 해도 직접 그것을 보는 앞에서 먹어 보기도 했는데도 베이런 후작은 끝내 입에 대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베이런 후작의 얼굴은 날로 수척해져 갔다.
급기야는 피를 토하며 쓰러져 버렸다.
침대에 누운 채 신관이 옆에서 열심히 병세를 확인했다. 하지만 무슨 병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저 신경 쇠약이라는 진단밖에 없었다.
“저도 도대체 무슨 병인지 알지를 못하겠습니다.”
“아니, 어떻게 무슨 병인지 알지를 못한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부인이 강하게 소리를 쳤지만 알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베이런 후작이 눈을 떴다. 그 옆을 지키던 게이런 남작과 부인은 반갑게 그를 불렀다.
“깨어나셨어요?”
“후작님, 괜찮으십니까?”
매우 수척해진 베이런 후작은 힘겹게 눈을 뜬 채로 입을 열었다.
“여기가 어딘가?”
“후작님의 방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