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91화 (91/125)

# 91

헬 나이츠 4권 (16화)

Episode 37 미쳐 버린 베이런 후작 (2)

오직 성안에서만, 그것도 집무실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았다. 부인이 다가가 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여보, 도대체 왜 그래요. 왜 문을 잠그고 있어요.”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흘러갔다.

드디어 집무실 문이 열리며 초췌한 모습을 한 베이런 후작이 나왔다. 성의 식구들은 환호하며 그를 맞이했다. 하지만 베이런 후작은 눈동자를 굴리며 잔뜩 경계를 하였다.

그 모습에 부인과 빌슨은 도무지 이해를 못했다. 게이런 남작에게도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도 쉽사리 답변을 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더 흘러갔다.

베이런 후작은 여전히 하루 종일 집무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문은 잠그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호위할 기사를 두게 하지 않았다.

혹여 그 기사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성 내부에는 어떤 기사도 있지 못하게 했다.

바깥 경계만 두 배 이상을 강화할 뿐이었다. 만나는 사람은 게이런 남작과 레딘 기사단장뿐이었다. 그것도 한낮에 넓은 집무실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만났다.

그만큼 노르딘 성에 있었던 사건이 그에게는 공포와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주변 어떤 사람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생활을 했다. 심한 불면증과 함께 악몽까지 꾸게 되었다. 이렇듯 자신만만하게 떠났던 길이 심한 후유증만 안고 돌아온 것이다.

한편 후작성에서 기쁜 소식만 기다리던 둘째 아들 빌슨은 돌아온 아버지가 성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침거 생활만 하자 영문을 알지 못했다.

하물며 뭔가에 잔뜩 두려움이 일어났는지 사람을 경계하고 있었다.

불철주야 아이린의 소식만 기다리고 있던 빌슨은 돌아온 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아버지가 답답하기만 했다.

오늘도 집무실에 들어가서 꼼짝도 하지 않는 아버지를 보기 위해 빌슨이 움직였다.

“답답해서 미치겠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빌슨은 복도를 걸어가며 투덜거렸다. 그러던 중 게이런 남작을 만났다.

“게이런 남작. 아직도 아버지가 집무실에 계시오?”

“그렇다네.”

게이런 남작도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빌슨은 그를 보며 물었다.

“도대체 갔던 일은 어떻게 된 일이오. 그냥 돌아온 것이 맞소?”

“맞네.”

게이런 남작이 조용히 말했다. 그 모습에 더욱 답답함을 느낀 빌슨이 언성을 높였다.

“거참 답답하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어디 속 시원하게 말씀 좀 해 주시오!”

“…….”

하지만 게이런 남작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답을 해 주지 않았다. 이런 것이 무려 사흘이나 지났다.

“정말 말씀을 해 주지 않을 작정이오?”

빌슨이 화를 내며 말하자 게이런 남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라고 말할 수가 없네. 다만 후작님께서 차후에 얘기를 해 주실 것이네. 그럼 난 이만.”

이번에도 게이런 남작은 속 시원하게 답변을 해 주지 않았다. 어두운 얼굴로 사라지기 바빴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진 빌슨이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내가 직접 아버지를 만나서 물어 봐야겠다.”

거친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에 도착한 빌슨이 큰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접니다! 들어가겠습니다!”

그러고는 문을 확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베이런 후작은 의자에 앉아 깊은 고뇌에 빠져 있었다. 둘째 아들 빌슨이 들어서자 움찔하며 그를 쳐다봤다.

그 모습에 빌슨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버지, 도대체 왜 그러세요? 에페로 자작령에 가셔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빌슨의 다그침에도 베이런 후작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빌슨의 언성이 올라갔다.

“도대체 왜 아무런 말씀도 해 주지 않는 것입니까! 에페로 자작령은 어찌 되었습니까? 아이린은요!”

빌슨의 언성에 베이런 후작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는 빌슨을 날카롭게 째려보며 소리쳤다.

“에페로 자작령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묻지 말거라! 당분간 애비를 그냥 두어라!”

“아버지!”

빌슨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러자 베이런 후작이 강하게 말했다.

“시끄럽다!”

“아이린과 결혼시켜 주기로 했지 않습니까!”

빌슨은 거의 울상이 되며 말했다. 하지만 베이런 후작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다시는 아이린을 입 밖에도 꺼내지 말거라. 다른 좋은 가문의 여자를 소개시켜 줄 테니 그 여자랑 하여라.”

베이런 후작의 말에 빌슨이 강하게 반발했다.

“싫어요! 전 아이린과 할 것입니다! 아이린을 데려와 주세요!”

마치 어린아이가 어깃장을 부리는 것처럼 졸라댔다. 청년의 모습을 한 둘째 아들이 아이처럼 생떼를 부리자 베이런 후작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이! 애비 말이 말 같지 않아! 아이린은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어서 썩 물러가거라!”

“아버지!”

“시끄럽다! 다시는 에페로 자작령과 아이린 그년에 대해서는 입 밖에도 꺼내지 말거라! 어서 썩 나가!”

베이런 후작이 손을 휙휙 저으며 빌슨을 집무실에서 쫓아내었다. 빌슨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궁시렁댔다.

“뭐야, 아이린을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까지 했으면서, 이게 뭐냐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야.”

빌슨이 복도를 걸어가며 투덜거렸다.

집무실에 홀로 있는 베이런 후작은 눈동자를 굴리며 두려움에 질린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촌 칼링 남작의 죽음, 그리고 두 흑마법사의 시체, 괴물의 시체까지. 에페로 자작령을 장악하기 위해 떠났던 길이 공포만 안고 돌아왔던 것이다.

“이곳도 안전하지 않아. 도대체 어디로 도망쳐야 한단 말인가?”

베이런 후작은 주변을 경계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매일 시달리는 악몽과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지 못하는 심정은 그야말로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게다가 한 번 도망치기 시작하니까 또 도망칠 구멍을 찾게 되었다. 다들 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자신을 노리고 벌어진 일인 것만 같았다.

“누구냐? 도대체 어떤 놈이 흑마법사냔 말이다.”

혼자 지내고 있을수록 혼잣말을 하는 것이 늘어났다. 하루하루 이런 시간을 보내는 베이런 후작은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두려움 속에서 베이런 후작을 향해 또 다른 어둠이 은밀히 파고들고 있었다.

2

하루하루가 매일 고난이었다.

주변을 경계해야 하고 혹여 자신을 죽이려고 하지 않는지. 그 누구도 자기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그런 식으로 지낸 것이 무려 일주일이 지났다. 이 일주일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베이런 후작은 점점 경계를 풀기 시작했다.

집무실에 있는 베이런 후작은 여전히 서류에 파묻혀 지냈다. 아무리 무서움에 떨어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베이런 후작이 깜짝 놀란 눈이 되며 고개를 들었다.

“누, 누구냐!”

“집사입니다. 점심 식사는 어떻게 이곳으로 가져올까요?”

집사의 물음에 베이런 후작은 잠시 생각을 했다.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

가족들끼리 식사를 하지 않은 지도 꽤 된 것 같았다. 솔직히 미안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베이런 후작이 큰마음을 먹었다.

“아니다, 오늘은 식당에서 먹도록 하겠다.”

“네에? 아, 알겠습니다. 식당에 준비시켜 놓겠습니다.”

다다닥!

집사는 깜짝 놀라며 대답을 한 후 서둘러 식당으로 뛰어갔다.

베이런 후작은 대충 서류를 정리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이지 자신의 성으로 온 후 딱 일주일 만에 식당으로 가는 첫걸음이었다.

하지만 주변을 경계하는 것은 바뀌지 않았다. 복도를 걸어갈 때면 정면에서 하인이나 하녀가 걸어오면 말을 했다.

“가까이 오지 말아라. 벽에 붙어!”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 자신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그렇게 하면서 식당으로 오는 길은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식당에는 부인과 둘째 아들이 앉아 있었다. 베이런 후작의 등장에 모두들 환한 얼굴이 되었다.

“여보!”

“아버지!”

“후작님!”

베이런 후작은 그들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보이고는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부인은 걱정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보 괜찮으세요?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부인의 말에 베이런 후작이 말했다.

“괘, 괜찮소. 우선 식사부터 합시다.”

베이런 후작이 딱 잘라 말했다.

부인은 다시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렇게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것도 정확히 일주일 만이었다.

잠자리도 같이하지 않았다.

오로지 집무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부인은 속 시원히 털어놓고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베이런 후작은 계속해서 피했다.

그것이 불만이었지만 꾹 참기로 했다. 빌슨은 그런 아버지가 여전히 불만스러웠다.

부인은 주방장을 향해 말했다.

“식사를 가지고 나오세요.”

“네, 마님.”

주방장이 주방에 들어가고 곧이어 식사가 나왔다. 베이런 후작은 식사를 가지고 나오는 하녀가 자신에게 다가오면 몸을 움찔하며 경계했다. 하녀는 그런 베이런 후작의 모습에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식사를 놓았다. 그런 모습에 부인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후우, 도대체 왜 저러시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베이런 후작도 이렇듯 오랜만에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에 왠지 모르게 감회가 새로웠다.

여느 때는 게이런 남작이나, 다른 가신들을 불러 함께 식사를 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누구를 믿어야 할 것인지 몰랐다.

그래서 큰마음을 먹고 식당으로 왔지만 오늘은 우선 가족만 이렇듯 참석한 가운데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할 때도 혹여 음식에 독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체크를 했다. 그것도 모자라 아들과 부인이 먼저 손이 간 곳을 보고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그 음식을 먹었다.

스튜가 나오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옆에 있는 하녀를 보며 말했다.

“네가 먼저 먹어 보아라.”

“네에?”

하녀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러자 베이런 후작의 음성이 올라갔다.

“먼저 먹어 보라고 하지 않았나!”

베이런 후작의 말에 하녀는 어떻게 할지를 몰랐다. 마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참지 못한 부인이 나섰다.

“여보, 왜 그러세요. 혹시 독이라도 탄 것 같아요?”

하지만 베이런 후작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딱딱한 얼굴로 하녀를 째려보았다.

“마, 마님…….”

하녀가 마님을 불렀다. 그러자 부인이 자신의 수저로 베이런 후작 앞에 놓인 스튜를 떠서 먹었다.

“자, 이제 됐죠. 이제 그만 좀 하세요!”

부인은 약간 짜증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자 베이런 후작이 부인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스튜를 떠서 먹었다.

그 모습에 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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