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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나이츠 4권 (15화)
Episode 36 내분 (3)
“아, 칼링 남작님께서 잠시 생각할 것이 있으니 누구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네.”
“아, 네.”
하녀가 대답했다. 브라운은 다시 병사 둘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자네 둘은 방 입구를 철저히 지켜 내일 아침까지 그 누구도 못 들어오게 하라는 지시가 있었네.”
“알겠습니다.”
병사 둘이 힘차게 대답을 했다.
하녀도 자신이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사라졌다. 브라운은 병사 둘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건너편 어둠으로 사라져 갔다.
그때까지 다른 브라운은 자신의 방에서 코를 골며 꿈나라에 가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노르딘 성이 발칵 뒤집어졌다.
간밤에 칼링 남작이 숨진 것이다. 아침에 잠을 깨우기 위해 들어간 하녀에 발견되었다.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는 마지막에 찾아온 브라운 기사였다. 곧바로 기사들이 소집되어 브라운 기사의 방으로 쳐들어갔다.
쾅쾅쾅!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곤히 자고 있던 브라운이 신경질을 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 옆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하녀가 누워 있었다.
그 하녀를 보며 피식 웃은 브라운이 옆의 옷을 걸치고 문으로 걸어갔다.
“뭐야, 아침부터.”
약간 신경질적인 얼굴로 문을 열자 곧바로 다섯 명의 기사가 들이닥쳤다. 기사는 검을 빼 들고 브라운을 제압했다. 당황한 브라운은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뭐야? 지금 뭐하는 짓이야!”
그러자 한 명의 기사가 소리쳤다.
“닥쳐라! 너를 칼링 남작님 살해범으로 체포한다!”
“무, 무슨 소리야! 칼링 남작님의 살해범이라니?”
아침부터 뜬금없는 말에 브라운 기사는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이놈! 감히 칼링 남작님을 죽이고도 발뺌을 할 참이야!”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왜 칼링 남작님을 죽여!”
브라운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초저녁부터 침대에 누워 있는 하녀랑 질펀하게 논 기억밖에 없었다. 그 후로 곧바로 잠을 잤는데 무슨 칼링 남작을 죽였다니.
“오, 오해가 있는 것이다! 난 어젯밤 칼링 남작님을 만난 적이 없다!”
“닥쳐라! 네놈이 칼링 남작님을 죽여 놓고 시치미를 뗄 참이냐! 하물며 증인이 있는데도 발뺌을 할 것이냐!”
기사의 노호성에 브라운은 기가 막혔다. 자신이 왜? 어젯밤 만나지도 않은 칼링 남작님을 죽인 범인으로 몰려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당황하며 뭐라고 말을 하려 했다. 그러다가 문득 침대에 있는 하녀가 생각났다. 초저녁부터 그녀와 있었으니 증인이 되어 줄 것이다.
“이봐, 진정들 해. 난 어제 저기 침대에 있는 하녀와 같이 있었단 말이다.”
브라운이 침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녀는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이불을 가린 채 눈만 빼끔 내밀고 있었다. 기사는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놈이 또 하녀를 건드렸군.’
울화통이 치밀었다. 이런데도 베이런 후작님과 칼링 남작님은 이 녀석을 감싸고돌았다. 하지만 칼링 남작님이 죽고, 이 녀석이 범인으로 몰린 이상 절대 봐줄 생각이 없었다.
어쨌든 브라운은 하녀를 보며 증언을 종용시켰다.
하지만 하녀도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를 노려 놈을 매장시키려 했다.
자신을 범한 저놈을 말이다.
하녀는 눈에 독기를 품고는 이불을 내렸다. 얼굴을 내민 상태에서 소리쳤다.
“아니에요! 전 밤늦게 불려 왔어요!”
하녀는 거짓말을 하였다. 기사들은 옳거니 하며 무섭게 브라운을 째려보았다.
“이놈, 감히 거짓말을 하다니! 네놈이 칼링 남작님을 만난 시각은 저녁 식사 후였다. 그리고 하녀의 말은 밤늦은 시각이었다. 그런데도 거짓말을 할 참이냐! 포박해!”
기사가 브라운을 묶으려 하자 거칠게 반항하며 소리쳤다.
“저, 저년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야! 난 초저녁부터 저년과 함께 있었어!”
아무리 발악하고 소리를 쳐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증인까지 확보된 상태에서 꼼짝 없이 당하게 생긴 것이다. 브라운은 침대에 있는 하녀를 무섭게 째려보았다.
“네 이년! 바른 대로 말하지 못할까!”
그 목소리에 하녀는 몸을 움찔했다. 그러면서 애써 그의 시선을 피한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가에 눈물이 고이며 흐느꼈다.
“흐흑!”
“이, 이년이……!”
브라운이 분노를 나타내며 당장에라도 하녀를 죽일 듯이 덤벼들었다. 하지만 네 명의 기사가 그를 제지하며 줄로 묶어 버렸다.
“놔! 이것 풀지 못해!”
브라운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소리쳤지만 기사들은 칼링 남작을 죽인 범인이기에 조금의 자비도 없었다. 급기야 반항하는 브라운의 배를 발로 강하게 찼다.
“얌전히 있지 못해!”
퍽!
“욱!”
브라운은 배를 걷어차이자 그대로 허리를 숙였다. 숨이 막혀 왔다. 그제야 얌전해진 브라운을 보며 기사가 말했다.
“변명은 베이런 후작님 앞에서 하라. 끌고 가자!”
브라운은 끌려가면서도 중얼거렸다.
“아, 아니야. 내가 죽이지 않았어. 이건 오해야.”
그러나 기사는 끝내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베이런 후작은 분노했다.
감히 잘 봐주고 돌봐 주었던 놈에게 배신을 당했다. 게다가 사흘 후 에페로 자작령으로 병력을 이끌고 출진할 사촌이었다.
아무리 하녀들을 건드리고 몰상식한 짓을 해도 봐주었는데 자신의 사촌을 죽였다. 베이런 후작은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꼴도 보기 싫다. 끌고 나가 곧바로 참수하라!”
그가 내린 명령이었다.
브라운을 끌려 나가면서도 고함을 내질렀다.
“내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전 절대 칼링 남작님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하지만 그 말은 메아리가 될 뿐이었다. 명백한 증인이 무려 세 명이나 되었다. 하녀와 병사 둘이 칼링 남작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을 기억했다.
그 세 명 전부 다 브라운을 지목했던 것이다. 이건 어떤 변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용서도 되지 않았다.
그날 바로 끌려 나간 브라운은 곧바로 목이 잘리며 참수를 당했다. 눈엣가시 같았던 브라운이 죽자 기사들은 속이 시원했다.
갑작스런 브라운의 반란으로 칼링 남작이 죽었다. 그러자 노르딘 성은 그야말로 어수선해졌다. 게이런 남작을 비롯해 각 가신들은 충격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또 다른 힘이 개입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노르딘 성에 있는 기사들이 점점 죽어 나갔다. 그것도 믿고 의지했던 동료들에게 의해서였다.
똑똑똑.
“누구?”
“날세, 에토.”
“에토? 밤늦은 시각에 무슨 일이지?”
기사는 동료의 방문에 의아해하며 문을 열었다. 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검이 쑥 나오며 심장을 찔렀다.
“커억! 감히 네놈이……!”
그 기사는 눈을 부릅뜨며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다. 그리고 죽은 동료를 보는 에토라는 기사는 히죽 웃으며 그 자리를 유유히 벗어났다.
다음 날 에토라는 기사는 동료를 죽인 범인으로 몰려 또다시 참수를 당했다.
그날 밤에도…….
푸욱!
“네, 네가 어찌?”
기사는 동료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듯 눈을 뜬 채로 죽어 갔다.
이러한 사건이 무려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게다가 범인들은 하나같이 혐의를 완강하게 부정하며 참수를 당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뭔가 이상함을 느낀 베이런 후작이 즉시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실 분위기는 매우 무거웠다.
베이런 후작도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고, 가신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무거운 침묵을 깬 것은 게이런 남작이었다.
“후작님, 아무래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은 그냥 가벼이 여기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나도 그리 생각한다. 어찌 일주일 내내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인가. 게다가 하나같이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고 하고 말이야.”
베이런 후작도 답답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다. 게이런 남작이 잠깐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놈들의 흑마법사가 개입한 것 같습니다.”
“뭣이, 흑마법사가?”
베이런 후작은 깜짝 놀라며 이를 악물었다.
“크으윽!”
분노로 인해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이곳 노르딘 성에 와서도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괴물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흑마법사가 날뛰고 있으니 불안해서 살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신경 쇠약까지 걸릴 것 만 같았다.
“젠장,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베이런 후작이 분노를 표출하며 소리치자 게이런 남작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후작님, 이렇게 된 이상. 이곳도 위험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후작성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게이런 남작의 말에 베이런 후작은 결단을 내렸다. 에페로 자작령 하나 먹으려고 너무나도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자신도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군막에 두 흑마법사의 시체가 있고 난 후부터 말이다.
“제기랄, 지금 당장 돌아갈 준비를 하라!”
베이런 후작은 이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계속 있다가는 자신의 목숨을 물론이거니와 모든 기사들마저도 잃을 판이었다.
후작령으로 회군한다는 얘기가 퍼지자 기사들과 병사들은 서둘러 떠날 준비를 하였다.
그 중간에 기사들은 일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정확했다.
누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서로 눈치만 살피며 경계를 하였다.
그리고 노르딘 성을 나서 후작성으로 걸어가는 길에서도 굳은 얼굴로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런 기사들 사이에 낯선 기사의 얼굴이 보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 기사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Episode 37 미쳐 버린 베이런 후작 (1)
1
베이런 후작군이 자신의 성으로 복귀를 했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사기만 떨어진 채 돌아온 것이다. 마중을 나온 사람들은 모두 걱정스런 얼굴이 되었다. 병사들의 가족들은 무사히 돌아온 아들과 남편을 보며 눈물을 지었다.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는 통곡을 했다.
“싸움도 하지 않았는데 왜 죽어! 아이고, 재수도 없지!”
부모는 땅을 치며 소리 높여 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료 병사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헛된 죽음이었다. 괴물의 습격? 아니, 흑마법사의 공격에 의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베이런 후작이 철저하게 입단속을 시켰기 때문이다. 전쟁은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패잔병이었다.
베이런 후작은 자신의 성으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집무실로 향했다. 문을 걸어 잠근 채 그 누구의 출입도 허가하지 않았다.
성에 있는 부인과 둘째 아들 빌슨은 그런 아버지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다. 게다가 베이런 후작은 외부 출입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