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86화 (86/125)

# 86

헬 나이츠 4권 (11화)

Episode 35 겁을 내다 (2)

제이크는 갈기갈기 찢긴 발록 위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또 이러다니.”

땅이 꺼져라 내쉰 한숨에서 깊은 고뇌를 느끼게 되었다. 그는 발록 위에 앉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휴가랍시고 나왔는데 어째 군단장 노릇 할 때보다 더 많이 싸우는 기분이군.”

제이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가만히 있었다.

그때 폴과 필이 나타났다.

“도련님.”

“저희 왔습니다.”

폴과 필은 어린아이처럼 폴짝폴짝 뛰며 제이크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거대한 덩치의 발록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발록이잖아!”

“우씨, 이게 뭐야. 발록이랑 논 거예요?”

폴과 필은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발록이 나타났으면 저희를 부르시지.”

“맞아, 혼자만 노시고.”

“너무합니다.”

“우리도 발록 고기 무지 좋아하는데.”

폴과 필이 발록 시체를 만지며 구시렁거렸다.

제이크는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는데 폴과 필이 신경을 거스르자 인상을 팍 쓰며 소리쳤다.

“시끄러!”

제이크의 말에 폴과 필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불만으로 가득했다. 그때 폴의 눈에 발록의 심장이 보였다. 반쯤 뜯어져 있지만 아직까지 싱싱해 보였다.

“앗, 발록의 심장이다. 우헤헤!”

폴이 신난 얼굴로 심장을 들었다. 입맛을 다신 폴이 한입에 넣기 위해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때 필이 다가왔다.

“야, 혼자 다 먹으려고?”

“으응. 반밖에 남지 않았어.”

폴은 그대로 심장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아그작, 아그작.

그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폴의 얼굴에 매우 만족스런 미소가 지나갔다.

필은 그 모습을 보며 폴의 손에 있는 발록의 심장을 낚아챘다.

“야, 나도 좀 먹어 보자.”

필도 발록의 심장을 베어 물었다. 역시 맛이 정말로 좋았다. 몸에서 기운까지 샘솟았다. 폴과 필은 그렇게 발록의 심장을 한 입씩 나눠 먹었다.

발록의 심장.

두 사람에게는 최고의 보양식이었다. 마계에서도 발록을 잡으면 전쟁이었다. 서로 심장을 먹기 위해 싸웠다. 워낙에 귀한 것이기에 그러했다.

제이크는 그런 두 사람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아무런 느낌도 없이 너무나도 맛있게 먹는 폴과 필의 모습에 제이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쩝, 저리도 맛이 있을까.’

속으로 중얼거리던 제이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때 폴과 필은 벌써 발록의 심장을 다 먹어 치운 후였다. 그들은 손가락을 빨며 매우 아쉬운 눈이 되었다.

“쩝, 또 언제 먹을 수 있을까?”

“그러게.”

두 사람이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며 제이크가 물었다.

“그만하고, 너희들은 어찌 되었어?”

제이크의 물음에 폴과 필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답했다.

“헤헤, 저희들이 누구입니까?”

“아주 깔끔하게 놀아 주고 왔죠.”

폴이 필을 보며 말했다.

“한 30명쯤 되나?”

“그래, 나도 30명쯤 처리했지.”

“하긴 발록보다는 못하지만.”

“맞아, 발록 고기보다는 못하지.”

두 사람은 또다시 발록 얘기를 꺼냈다.

제이크가 일어서자 폴과 필이 뜨끔하며 뒤로 물러났다.

발록의 시체에서 내려선 제이크는 폴과 필을 지나쳤다.

“도련님?”

필이 지나쳐 가는 제이크를 불렀다.

하지만 제이크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얼굴이 몹시 어두워진 상태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폴과 필은 그런 제이크의 모습에 서로를 바라보며 눈만 멀뚱멀뚱거렸다.

조금 걷던 제이크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몸을 돌려 말했다.

“발록의 시체는 두 사람이 알아서 처리하고, 저기 죽은 흑마법사들은 놈에게 보내라.”

그렇게 말을 하고는 제이크는 사라졌다.

오늘따라 밤하늘이 유난히 밝았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을 보며 제이크는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는 폴과 필이 병사들을 얼마나 처리했는가가 중요하지 않았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흑마법사들이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또다시 병사들이 다친 것이 중요했다.

일종의 놈들에게 공포심을 심어 주려는 의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흑마법사들의 존재에도 병사들이 죽어 나가야 했다. 하물며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흑마법사들까지 죽었으니 아마도 큰 혼란에 휩싸일 것이 분명했다.

걸어가는 제이크 뒤로 폴과 필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쩝, 언제까지 이렇게 감질나게 싸워야 하냐?”

“도련님의 생각을 내가 어찌 아냐.”

“그냥 확 다 쓸어버리면 될 텐데.”

“내 말이 그 말이다.”

두 사람의 불만 가득한 얘기를 들은 제이크는 눈살을 찡그렸다.

‘이놈들아, 내가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제이크도 속 시원하게 여기 있는 놈들을 확 다 쓸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더 강한 적이 올 것이다.

이번에는 후작이 왔지만 다음에는 공작이, 그 다음에는 왕국의 국왕이 직접 나설지도 모른다. 하물며 주변의 제국이 나설 수도 있다.

제이크에게는 그들을 다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면서 자작령을 지켜야 했다.

고민하면 할수록 골치가 아파 왔다.

‘젠장, 휴가 한 번 힘들게 지내네. 어쨌든 현 상태를 유지해야만 해.’

현재 자작가는 커질 만큼 커져 있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영지를 확장하는 것도 무리였다. 그렇다면 지금 영지를 지키며 나중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했다.

제이크가 사라지고 폴과 필은 발록의 시체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으음, 시간이 지나서 맛이 상했겠지?”

“아마도 그럴 거야. 아니면 내가 한 번 맛을 볼까?”

“에이, 상한 음식 먹는 거 아니랬어.”

“그래도, 쩝. 맛나겠는데…….”

폴이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런 폴을 필이 위로했다.

“그래도 배고픔은 면했잖아. 자, 도련님께서 화내시기 전에 이것들을 옮기자.”

“알았어.”

폴과 필은 죽은 발데스와 벨키라노의 시체를 각자 하나씩 들고 다시 베이런 후작 진영으로 사라졌다.

두 사람이 나타난 곳은 베이런 후작의 군막이었다. 입구는 두 기사가 지키고 서 있기에 섣불리 다가설 수 없었다.

“저 두 사람도 처리하고 들어갈까?”

“아니야. 이러면 몰래 가져다 놓은 의미가 없잖아. 옆구리를 뚫고 들어가자.”

필의 말에 폴이 히죽 웃었다.

“킥킥, 그거 좋은 생각이네.”

폴과 필이 베이런 후작의 군막 옆구리를 손톱으로 쭈욱 찢은 후 안으로 들어갔다. 베이런 후작은 자신의 침상에 누워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필이 그의 곁으로 몰래 다가갔다.

“지금 밖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아주 편하게 자는군.”

“야! 어서 놓고 가자.”

“알았어!”

필의 작은 목소리에 폴이 고개를 끄덕인 후 두 사람의 시체를 내려놓았다.

어둠 속에 빛나는 네 개의 붉은 눈동자. 폴과 필은 잠든 베이런 후작을 보며 웃어 보인 후 들어왔던 곳으로 사라졌다.

그때까지 베이런 후작은 아무것도 몰랐다. 몸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며 아주 편안하게 꿈나라를 여행하고 있었다.

2

다음날 아침이 밝아 왔다.

“으아아앗!”

때 아닌 비명 소리가 베이런 후작 진영에 울려 퍼졌다. 그 비명 소리는 바로 베이런 후작이 내는 소리였다. 베이런 후작이 자고 있는 군막 밖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기사들이 후다닥 안으로 들어왔다.

“후작님, 무슨 일이십니까?”

“왜 그러십… 헉!”

기사들이 들어서자 침대에 걸터앉아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베이런 후작이 보였다. 그는 바로 앞에 있는 두 흑마법사의 시체를 보며 충격에 빠져 있었다.

베이런 후작의 비명 소리를 듣고 곧바로 또 다른 기사들이 들어왔다. 기사들도 죽은 두 흑마법사의 시체를 확인하고 헛바람을 삼켰다.

“허헛, 이럴 수가!”

“괜찮으십니까, 후작님!”

기사들이 곧바로 검을 뽑아 들고는 재빨리 주변을 경계했다. 베이런 후작은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지금 당장 게이런 남작을 불러라. 어서!”

잠시 후 게이런 남작과 다른 가신들이 들어섰다. 게이런 남작은 곧바로 베이런 후작에게 다가갔다.

“후작님 괜찮으십니까?”

게이런 남작의 물음에 베이런 후작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이것을 보고 지금 말하는 것인가? 내가 지금 괜찮아 보여!”

“…….”

게이런 남작은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도 지금 이 광경을 보고 놀랐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기사단장은 어디 있는가! 레딘 기사단장!”

게이런 남작이 레딘 기사단장을 불렀다.

레딘은 이미 와서 베이런 후작의 군막 주위를 철저하게 경계를 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때 게이런 남작의 부름을 받고 군막 안으로 들어섰다.

“부르셨습니까?”

“도대체 간밤에 어떻게 경비를 썼기에 이런 일이 발생한단 말이오!”

“그것이 군막을 찢어서 침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경비는 제대로 서고 있었는데…….”

레딘 기사단장도 할 말이 없었다.

베이런 후작의 신변 책임은 모두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굳은 얼굴로 게이런 남작을 보는 레딘 기사단장. 게이런 남작은 더욱 노기를 띠며 말했다.

“제대로 섰는데! 적이 침입했단 말이오! 침입한 놈들이 그사이에 후작님을 해하였다면 어찌할 생각이었소!”

게이런 남작의 꾸지람에 레딘 기사단장은 그저 입을 굳게 다물 뿐이었다.

베이런 후작은 자신이 오히려 화를 내야 하는데 게이런 남작이 더 성을 내며 말하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게이런 남작의 말마따나 침입한 놈들이 이렇듯 아무런 제재 없이 들어와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상태였다.

그 생각에 미치자 등골이 오싹했다. 게다가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만하면 됐다. 게이런 남작.”

“하지만…….”

“그만하래도. 레딘.”

베이런 후작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레딘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후작님의 신변을 책임지지 못한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되었다. 어쨌든 경비를 두 배로 늘리도록 하라.”

“네, 후작님!”

레딘 기사단장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어서 이것들을 치워라!”

“네.”

기사들이 나서서 두 흑마법사를 치우려 할 때 게이런 남작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두 흑마법사를 보는 게이런 남작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후작님, 이것을 보십시오.”

게이런 남작의 말에 베이런 후작은 인상을 찡그렸다.

“시체를 왜 보라고 하는 것이냐.”

“이 흑마법사들 혹시 우리가 데리고 온 그 흑마법사들이 아닙니까?”

베이런 후작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며 두 흑마법사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검은 피를 잔뜩 뒤집어썼지만 자세히 보니 그러했다.

“헉! 이럴 수가!”

베이런 후작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곳에 있는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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