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83화 (8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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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 나이츠 4권 (8화)

    Episode 33 벨키라노의 만용 (4)

    발데스는 마나를 불어넣고 있어 움직이지 못했지만 제자를 말리고 싶었다. 아니, 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벨키라노는 이미 멀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벨키라노, 조심하여라.’

    속으로 생각만 하고 의식을 완성하기 위해 애를 썼다. 지금 의식을 중단하기에는 늦었기 때문이었다.

    벨키라노는 깨어진 마법진 근처에 도착을 했다. 주위를 살펴보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마법진에 침입한 흔적은 찾을 수 있었다.

    잠시 그곳을 살펴보던 벨키라노는 뭔가의 기척을 느끼고는 곧바로 수인을 맺었다.

    “거기냐!”

    기척이 느껴진 곳으로 곧바로 저주 마법을 쏘았다. 벨키라노의 흑마법은 바로 저주 마법이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장기였다.

    벨키라노는 첫째 라예키르처럼 마법진을 잘 다루지 못하고, 셋째 스타니스처럼 몬스터 소환도 잘못한다. 다만 온갖 저주 마법에 능통했다.

    벨키라노의 손에서 검은 운무가 품어져 나왔다. 곧이어 자신 주변 전체가 검게 오염되고, 시야를 가렸다. 벨키라노는 눈동자를 굴리며 상황을 주시했다.

    그가 뿜어낸 저주 마법의 운무에 몸이 닿기라도 한다면 곧바로 반응이 있을 것이다. 하물며 보통 인간이라면 온몸에 검은 피를 뿜어대며 죽어 갈 것이다.

    그만큼 저주 마법에 자신 있었고, 또한 상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벨키라노는 자신의 저주 마법에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아무리 뛰어난 흑마법사라도 섣불리 다가설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견뎌낸다고 해도 다른 저주 마법을 뿌려 꼼짝도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벨키라노는 어느새 새로운 저주 마법을 준비시켜 놓은 상태였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제이크는 저주 마법이 뿌려지자 신기한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자신의 몸을 더욱 숨기기 좋게 만들어 주었다.

    사실 제이크는 마계에 있었기 때문에 오염된 땅과 벨키라노가 펼친 검은 운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속에 있으니 마치 고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에 제이크는 기분이 좋아졌다.

    벨키라노는 잔뜩 긴장한 채 검은 운무를 주시했다. 그때 검은 운무가 살짝 움직였다. 벨키라노의 눈이 번쩍 떠지며 재차 저주 마법을 뿌렸다.

    “거기냐! 받아랏!”

    쏴아아아!

    벨키라노의 속에서 검은 마기가 발산되며 검은 운무 속 안으로 쏘아졌다. 검은 운무가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 따라 벨키라노는 계속해서 흑마법을 구사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쉽게 반응이 되지 않았다. 아니, 놈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붙잡혀라!”

    이번에는 땅속에서 나무뿌리와도 같은 것이 불쑥 솟아오르며 꿈틀거렸다. 적의 다리를 휘감아 도망치는 것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저주 마법을 사용할수록 벨키라노는 점점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마에는 땀이 흥건히 맺혔다. 자신의 장기인 저주 마법을 뿌렸는데도 놈을 잡지 못했다.

    오히려 더욱 기세를 뿜어내며 벨키라노를 압박했다. 무서운 살기마저 느껴졌다. 놈의 다리를 묶기 위해 사용한 나무뿌리도 허무하게 잘려 나갔다.

    흑마법을 계속 시전할수록 힘들어지는 쪽은 벨키라노였다. 어느새 그의 숨은 가빠져 왔다.

    “하아, 하아. 이럴 수는 없어. 어찌 나의 흑마법이 하나도 통하지 않는단 말이야.”

    그러면서도 악을 쓰며 계속해서 흑마법을 날렸다. 하나라도 걸리라는 듯 마구 쏘았다. 하지만 그 많은 저주 마법 중 하나도 통하지 않는다.

    벨키라노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현재로써는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제길, 역시 대단하구나. 이렇게 된 이상 스승님에게로 유인할 수밖에. 게다가 이제 마법도 한계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벨키라노는 계속해서 사용한 흑마법 때문에 마나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놈을 스승님에게로 데려가기에는 충분했다.

    스승님과 전투를 벌이면서 자신은 마나를 회복하면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놈의 최후가 될 것이다.

    그리 맘을 다잡은 벨키라노는 천천히 마법을 뿌리며 스승님이 계시는 곳으로 뒷걸음질 쳤다.

    “이제 거의 되었다. 조금만 가면…….”

    그때 벨키라노의 등이 뭔가에 부딪치는 것을 느꼈다. 순간 그의 등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흐흐, 아주 재미난 장난을 부리는군.”

    뒤에서 들린 음성에 벨키라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렇게 가까이 올 때까지 기척을 감지하지 못했다.

    아무리 전방을 신경 쓰고 있다고 해도 이렇게 가까이까지 오는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자신보다 강자라는 사실이었다.

    “젠장!”

    벨키라노는 욕설을 내뱉으며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자신의 목을 감싸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헉!”

    헛바람을 삼킨 벨키라노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붉은 두 개의 눈동자를 발견했다.

    “헛, 너, 너는!”

    벨키라노가 놀라며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붉은 눈동자 주위로 서서히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빨을 드러낸 제이크가 히죽 웃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벨키라노의 목을 한 손에 쥐고 있었다.

    벨키라노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아니,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저 눈, 붉은 눈을 보고 있으니 함부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후후,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줘서 고맙군.”

    “크윽, 뭐라고?”

    “그에 대한 보답을 해 줘야겠지?”

    살기 어린 말투에 벨키라노는 눈을 부릅떴다. 도저히 항거할 수없는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 이노옴!”

    벨키라노가 눈을 부라리며 째려보았다. 제이크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며 살기 짙은 음성을 내뱉었다.

    “크크, 보답은 바로 너의 죽음이다!”

    제이크는 말을 끝내자마자 벨키라노의 목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벨키라노의 목이 한쪽으로 꺾기며 우드득 소리가 났다.

    그 순간 벨키라노는 죽음을 맞이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뜬 상태였다.

    벨키라노의 허무한 죽음이었다. 그의 장기인 저주 마법으로도 제이크를 어찌하지는 못했다.

    혀로 입술 주위를 살짝 핥은 제이크의 시선이 마법진 중앙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여전히 마나를 불어넣고 있는 발데스가 앉아 있었다. 마법진에서는 마계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마기에 의해 검은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Episode 34 투신 (1)

    1

    검은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그곳에 발데스가 보였다. 그는 자리에 앉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기를 계속해서 끄집어내고 있었다.

    그 마기는 바닥에 그린 마법진에 스며들어 갔다. 발데스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아직인가? 아직 멀었나?”

    엄청난 양의 마기를 불어넣고 있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좀 더 많은 마기를 달라는 듯 요동을 치고 있었다. 발데스는 저도 모르게 이를 깨물었다.

    “제길, 도대체 얼마를 더 넣으란 말이야!”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더욱더 마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발데스의 머릿속으로 뭔가가 번쩍하고 스쳐 지나갔다.

    발데스는 멍한 상태가 되었다.

    “이 느낌, 뭔가 끓어지는 것 같은 이 느낌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발데스는 이 느낌이 주는 불안감은 바로 둘째 제자인 벨키라노라는 것을 깨달았다.

    “벨키라노가… 벨키라노가 죽었다.”

    발데스는 제자의 죽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 한 구석이 불안했는데 끝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뿌드득!

    발데스는 이빨을 갈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때 발데스 뒤쪽으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희미하지만 발자국 소리도 들려왔다. 걸음걸이로 보아 급히 달려오는 것은 아니었다.

    뭔가 여유로움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놈이 뛰어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직 소환 의식을 마무리하려면 아직도 마기를 더 불어넣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우우우웅!

    마법진이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발데스의 마기에 응답한 것이다. 그 순간 발데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놈! 그 여유로움이 뼈아픈 실책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해 주지!”

    발데스가 강하게 말을 하며 마지막 마기를 쏟아부었다. 잠시 후 마법진의 마기가 더욱 강해지며 검은빛이 생성되었다.

    드디어 소환 의식이 끝난 것이다.

    발데스 앞에 거대한 검은 구멍이 열렸다. 발데스는 그 구멍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나와라, 어서 나와!’

    발데스는 속으로 간절히 외쳤다.

    놈은 아직까지 자신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 걸어오는 걸음은 이미 멈춘 상태였다. 발데스는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때 그의 등 뒤로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다.

    “후후, 도대체 무엇을 소환하려고 그리도 마기를 쏟아 넣었는지 궁금하군. 까짓것 기다려 주지.”

    제이크였다.

    그는 팔짱을 낀 채 검은 구멍을 응시했다.

    발데스는 그의 여유 있는 말에 자존심이 상했다. 이를 깨문 상태로 전방을 응시했다.

    검은 구멍이 열렸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상대방은 공격할 의사는 없는 듯 보였다. 녀석의 거만한 태도에 발데스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래, 그 만용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하지만 답답하게도 검은 구멍만 열렸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을 좀 더 벌어야 했다. 발데스가 즉시 몸을 돌려 나타난 자를 보았다.

    전혀 뜻밖의 인물이었다. 나이는 대략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였다.

    검은 갑옷 차림에 여유롭게 웃는 얼굴. 팔짱을 낀 채 발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발데스는 이그나탈이 나타났을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다른 인물이었다. 궁금증이 느껴진 발데스가 제이크를 보며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

    그러자 제이크가 말했다.

    “나? 제이크!”

    “그럼 이그나탈이 아닌 것이냐?”

    “이그나탈? 도대체 그 녀석은 누구냐? 왜 자꾸 나를 이그나탈이라고 하는데.”

    제이크가 팔짱을 풀며 소리쳤다. 발데스는 그의 행동에 다소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 그럼 이그나탈이 아닌 것이야? 그의 가디언도 아니고?”

    그러자 제이크가 인상을 팍 썼다.

    “아, 그러니까. 그 녀석이 도대체 누구냐 말이야. 왜 자꾸 날 이그나탈로 착각을 하는 것인데.”

    제이크의 성난 말투에 발데스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뭐, 뭐지? 그럼 여태까지 저 녀석을 이그나탈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인가? 이런 낭패가 있나.’

    그렇게 생각을 하며 발데스는 제이크를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자신들의 제자를 모두 죽인 것을 보며 정말 뛰어난 흑마법사라는 것이다.

    자신과 이그나탈에 비견할 또 한 명의 흑마법사의 존재. 여태껏 자신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고 생각했다.

    “너무 오랫동안 산속에 있었나? 저렇게 젊은 녀석이 우리를 능가하는 실력을 가졌다니.”

    발데스는 믿어지지 않는 현실을 부정하려 애를 썼지만 앞에 있는 녀석은 진짜였다.

    “제이크라고 했나? 그대가 내 제자 셋을 다 죽인 것이냐?”

    “제자? 아, 나를 공격했던 그 세 명이 당신 제자였어?”

    “그렇다.”

    발데스가 당당히 말했다. 그러자 제이크는 귀찮다는 듯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제자였구나. 근데 하나같이 약해 빠져서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가르친 거야?”

    제이크의 심드렁한 말에 발데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신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흑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인정해 주는 제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약하다고 말을 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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