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헬 나이츠 3권 (24화)
Episode 30 영지전 확산 (1)
1
베이런 후작가에서는 벌써부터 영지전을 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현재 국경 수비를 맡고 있는 병력은 3만 정도 되었다. 그중 일만오천에 달하는 병사를 베이런 후작이 임의적으로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이었다.
게다가 기사만 무려 500명이 넘었다. 그중 150명 정도가 베이런 후작가의 기사였다. 베이런 후작은 국경을 수비하는 병력만 빼고 나머지를 영지전에 참여시킬 생각이었다.
베이런 후작가의 기사단장은 전쟁에 잔뼈가 굵은 레딘이었다. 레딘은 거의 마흔 살에 접어든 노장이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십대의 기사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힘과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노련함마저 갖추고 있기에 기사단들 중에서 그의 상대가 되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베이런 후작도 그에 대한 신념이 매우 두터웠다.
어찌 보면 오랜 친구 사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두 사람 사이에 격이 없었다.
레딘이 출병할 모든 준비를 마치고 베이런 후작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집무실로 향했다.
터벅터벅.
그가 움직일 때마다 갑주의 소리가 복도 가득 울렸다. 걷는 그의 모습에 너무나도 위엄 있어 보였다. 집무실 앞에 선 레딘이 문을 두드렸다. 곧이어 안에서 베이런 후작의 음성이 들려왔다.
“들어와!”
레딘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책상에 앉아 있는 베이런 후작을 발견했다. 레딘은 그를 향해 인사를 한 후 다가갔다. 베이런 후작은 레딘을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레딘 왔는가.”
베이런 후작이 환한 얼굴로 레딘에게 말했다. 레딘은 근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출진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 당장 출진할 수 있습니다.”
“수고했네.”
베이런 후작이 간단히 말했다. 그러자 레딘이 조용히 물었다.
“꼭 영지전을 하셔야 합니까?”
“무슨 소리인가?”
레딘의 물음에 환하게 웃던 베이런 후작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국경를 책임지고 있는 후작님이십니다. 그런데 변방에 위치한 자작령을 신경 쓰시는 것입니까?”
레딘에게는 그것이 너무나도 신경이 쓰였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왕국 사람인데 굳이 싸움을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날 모욕했다.”
“어떻게 말입니까?”
“나의 제안을 거절했단 말이다.”
베이런 후작이 강하게 말했다. 레딘 또한 물러서지 않았다.
“자세히 설명을 해 주십시오.”
“자네…….”
베이런 후작이 눈을 크게 뜨며 레딘을 응시했다. 레딘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마주봤다. 한참 동안 두 사람은 눈싸움이라도 하는 듯 그렇게 바라봤다. 그러다가 베이런 후작이 먼저 누그러졌다.
“그냥 자네는 나를 믿고 움직여 주게.”
“전 항상 후작님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해 같은 것은 필요 없네. 자넨 그저 내 명령에 움직여 주면 되는 것이네. 더 이상 질문은 하지 말게.”
베이런 후작이 정확히 선을 그어 버렸다. 레딘은 그래도 친구처럼 지내 왔는데 이번에는 그 어떤 말도 없었다. 그저 내일부터 영지전을 하겠다는 것뿐이었다.
레딘으로써는 왜 그래야 하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예전에는 자신에게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냥 내일 출병할 기사와 병사를 준비시키라는 지시뿐이었다. 이상했다. 절대 이유 없이 움직일 분이 아니었다. 여태까지 베이런 후작을 본 자신은 말이다.
“이유는 알려주지 않을 것입니까?”
다시 한 번 묻자 베이런 후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네, 언제부터 말이 그렇게 많았나. 그냥 시키는 대로 해!”
그러자 레딘이 몸을 움찔했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 파악을 하지 못했군요. 시키는 대로 내일 당장 출진하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는 몸을 홱 돌렸다. 순간 베이런 후작도 실언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며 지냈던 사이였다. 조금 전 언성을 높였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그래서 돌아서는 그를 붙잡고 사과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중에 모든 것을 얘기해 줄 것이니 말이다. 솔직히 자신도 이번에는 약간의 억지가 있었다. 만약 그것을 말한다면 레딘은 분명 반대를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일 때문에 서로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베이런 후작도 원하는 것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에 너무 오래 있었다. 지난날 전쟁이 끝난 후 평화가 지속되는 것이 조금 지루하기도 했다.
이제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벨키라노와 손을 잡았고, 이곳을 벗어나게 해 주는 조건으로 그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베이런 후작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언젠가 자네가 날 이해해 주겠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이내 다시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편 집무실을 빠져나온 레딘은 문을 닫고 한동안 그곳에 서 있었다. 그도 베이런 후작이 왜 저러는지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정확히 무슨 일 때문에 움직이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레딘으로써는 그것이 걱정이었다. 저러다가 국경 수비에 소홀해 적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하긴 너무 평화로웠지.”
레딘은 굳어진 얼굴로 중얼거린 후 천천히 복도를 걸어갔다.
2
에페로 자작가에도 병사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베이런 후작가가 영지전을 하겠다고 알려 왔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또 한 번 불안감에 휩싸였다.
채플 백작가의 공격에 간신히 벗어났는데 그것이 진정되기도 전에 또다시 베이런 후작가가 공격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니 한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다고 이미 정해진 일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도 없다. 어차피 에페로 자작가에 몸을 담은 이상. 가족이 있는 이 영지를 지키는 수밖에는 말이다.
어쨌든 그들에 맞서 에페로 자작가도 병력을 구성했다. 2,000명의 병사 그대로였다. 늘어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줄어들지도 않았다. 어차피 채플 백작가와 영지전을 벌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무너졌기에 원래 병력 그대로를 유지했다.
제이크는 병력 현황을 보며 베일 기사단장과 의논했다. 우선 1,000명을 백작령에 보내고, 나머지 천 명은 이곳 에페로 자작가를 지키기로 했다. 영지가 두 개나 돼 적은 병력으로 두 영지를 지켜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백작령에 보낸 1,000명을 또 한 번 나누었다. 반으로 나눈 후 500명은 백작 성을 지키기로 했다. 그중 500명은 제이크가 가르친 병사들이다. 200명에서 추가 모집을 해 500명으로 불어난 것이다.
기존의 병사와 새로 편입된 병사들을 잘 조화시켜 다시 훈련을 시켰다. 바론이 책임지고 그들을 맡은 것이다. 그 결과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호흡은 맞았다.
어쨌든 결국은 제이크와 그의 병사들이 나서서 싸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만오천 대 500이라는 싸움을 말이다. 정말이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하지만 500명의 병사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지난번처럼 자신들의 대장인 제이크가 내리는 지시대로 움직인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 제이크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한두 명은 약간의 불안감과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쩝, 1만5천 대 500은 너무하잖아.”
한 병사가 투덜댔다. 그러자 그 주위에 있던 동료들도 동조했다.
“맞아, 싸움이 되지 않지. 어떻게 500으로 1만5천의 병력을 상대할 수 있어. 이건 절대 불가능이야.”
“맞아, 맞아.”
작은 불씨 하나가 엄청난 속도로 불을 확산시키고 있었다. 그 결과 병사들 모두에게 불안감을 안기게 되었다. 하긴 베이런 후작가의 병력이 워낙에 많아야 말이지.
어쨌거나 그들이 믿을 사람은 제이크밖에 없었다. 마침 제이크가 그들을 둘러보기 위해서 연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우연히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제이크가 나타나자 병사들은 일사분란하게 정렬을 하였다. 제이크가 투덜거린 병사에게 걸어갔다.
“그렇게 불안한가?”
“네에? 무, 무슨 말씀이신지…….”
병사는 시치미를 뗐다. 그러자 제이크가 희미하게 웃었다.
“무슨 말하지 않았나?”
“아, 아닙니다!”
병사가 모르쇠로 일관하자 제이크도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때 바론이 다가왔다.
“대장, 정말 우리들만으로 적들을 상대할 생각이십니까?”
“그래!”
제이크는 망설일 것도 없이 바로 말했다. 바론이 알고는 있지만 막상 직접 듣고 나니 앞이 캄캄했다.
“정말이었군요.”
바론이 힘없이 말했다. 제이크는 그런 바론의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하지 마, 너희들이 나설 일은 없을 테니 말이야.”
“네에? 그럼 왜 저희들을?”
바론이 의문이 가득 담긴 눈으로 물었다. 제이크가 말했다.
“만일을 대비해서지. 일이 틀어진다면 정말이지 너희들과 함께 싸워야 하니까.”
“……?”
바론은 그래도 이해를 하지 못했다. 제이크는 그런 바론의 모습을 보며 히죽 웃었다.
“어쨌든 나만 믿어.”
“믿는 것은 당연하지만…….”
바론이 말끝을 흐리며 중얼거렸다. 제이크가 믿으라고 하면 믿는 도리밖에 없다. 하지만 제이크는 그 믿음에 절대 배반하지 않았다. 그때 바론의 머리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대장, 혹시 혼자서 다 쓸어 버리기라도 하겠다는 것은 아니죠? 하긴 그런 것은 아닐 거야. 혼자서 어찌 그 많은 병사들을 상대하겠어.”
바론이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부정을 하였다. 하지만 제이크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런 제이크의 눈빛을 눈치채지 못하고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갔다.
제이크는 멀어지는 바론을 보며 히죽 웃었다.
“좋은 생각을 알려주는군.”
그 말을 하며 제이크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생겨났다.
3
다음날.
베이런 후작가의 병력이 성문을 나섰다. 선두에는 오랜만에 병력을 움직이는 베이런 후작이 있었다. 그 뒤로 레딘 기사단장이 말을 몰았다.
엄청난 긴 행렬이었다. 1만5천에 달하면 병력이 움직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한편 에페로 자작가의 병력들은 북쪽에 위치한 피넌 성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벌써 출진을 해야 하는데 웬일인지 제이크가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지시가 떨어질 때까지 성에서 대기하라고만 했다. 영문을 모른 채 에페로 자작가의 병력이 성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만 더욱 가중되었다.
에페로 자작령의 북쪽에는 또 하나의 성이 존재했다. 보일란 성과 마찬가지로 작은 성이 하나 있었다. 바로 피넌 성이다.
피넌 성은 이미 폐허가 된 지 오래였다. 지난 전쟁 때 프라임 백작이 사용하던 성이다. 이곳에 에페로 자작가의 병력이 있다.
제이크는 이곳에서 대기하라는 명령만 내리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어쨌든 병사들은 이곳에서 대기하며 명령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