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71화 (71/125)

# 71

헬 나이츠 3권 (21화)

Episode 28 베이런 후작의 욕심 (3)

만약 성을 짓는 공사 대금을 따로 뺐다면 다른 곳에 성을 하나 더 지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만큼 겉은 화려하면서 번지르르하고 속은 썩어 있었던 것이다.

옆에 있던 네빌 집사도 장부를 확인했다. 그도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다.

“도대체 영지 재정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이 모양인지 원.”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다. 그러자 갑자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아이린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집사님?”

“아까워서요.”

“뭐가 아까워요?”

“백작과 부인 가족들에게 쥐어 준 500골드 말이에요. 갑자기 그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을 쥐어 주지 말 걸 그랬습니다.”

네빌 집사는 정말이지 아깝다는 얼굴이었다. 그런 네빌 집사의 표정에 아이린이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그 돈은 우리 돈이 아니잖아요. 미련 버리세요. 그리고 좋은 일했다고 생각하세요.”

아이린이 네빌 집사를 위로하며 말했다. 하지만 네빌 집사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래도 아까운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을 하며 다른 것을 확인했다. 재정 상태를 확인했다면 현재 시장규모와 세금, 그리고 창고에 있는 식량까지 일일이 체크를 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을 파악하는데 아무래도 밤을 꼬박 새야 할 것 같았다.

“휴우, 이걸 언제 다 보죠?”

아이린이 약간 투정을 부리며 말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사실 이곳 에페로 자작령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백작령의 재정 상태가 다소 엉망이지만 자작령을 빼앗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런데 덤으로 백작령까지 얻었으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힘들게 일을 하면서도 마음만은 매우 편안했다. 옆에서 같이 일을 도와주는 네빌 집사는 여전히 백작에게 돈을 준 것을 아깝게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그런 생각 갖지 말라고 해도 네빌 집사도 완강했다. 그것이 다 즐거워서 부리는 투정이었다. 두 사람 다 투정을 부리면서도 입가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전쟁에서 이겨서 이제는 백작령까지 책임져야 하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것 같았다. 게다가 피부로 느껴지는 부담감 때문에 과연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백작령을 팔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어떻게 얻은 땅인데 함부로 팔겠는가. 그리고 제이크도 권리 행사를 할 수 있다. 물론 그가 원하지는 않겠지만 백작령을 얻은 것은 제이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작령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네빌 집사도 그 사실을 잘았다. 두 사람은 밤늦게까지 백작령에 관한 내용을 모두 파악했다.

다행이 큰일은 없을 것 같았다. 몇 달만 고생하면 모두 정상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다행이에요. 그쵸?”

“네, 아가씨. 다만 몇 달 동안 고생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힘이 쭉 빠지네요.”

네빌 집사가 앓는 소리를 내뱉자 아이린이 웃었다.

“어머나, 집사님도 그런 소릴하세요?”

“그럼요. 저도 인간입니다. 게다가 이제는 나이까지 들어서 요즘 부쩍 힘이 드네요.”

손으로 허리를 두드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네빌 집사를 보며 아이린이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요, 네빌 집사님. 집사님이 없었다면 아마 나 혼자 무척 힘들었을 겁니다.”

순간 네빌 집사가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가씨.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야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인데…….”

그리 말을 하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아이린도 그런 네빌 집사의 얼굴을 보며 눈물을 지었다. 그동안 힘들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한때는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마다 항상 곁을 지켜 주던 사람이 바로 네빌 집사였다.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린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무척 힘이 들지만 정신적이 아닌 육체적인 노동이기에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네빌 집사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이 늦었습니다. 어서 들어가 주무세요.”

“네, 그래야죠. 나머지는 내일 봐요.”

“네, 아가씨.”

책상 위에 널브러진 책자와 서류들을 대충 정리해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빌 집사도 손에 서류를 한 움큼 들었다. 자신의 침실로 가서 자기 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 모습에 아이린도 서류를 챙겼다.

“아가씨, 그건 내일 봐도 됩니다.”

“아니에요. 집사님도 보시잖아요.”

“하하하, 저야 나이가 들어 잠이 많이 없어서 그렇죠. 아직 한창인 아가씨께서 잠을 많이 못 주무시면 얼굴이 못생겨지십니다.”

“네에?”

그 말에 아이린이 화들짝 놀랐다. 그 모습에 네빌 집사가 껄껄 웃었다. 그러자 아이린은 네빌 집사가 자신을 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해요!”

“하하하, 죄송합니다. 그래도 제 말은 틀린 것은 아닙니다. 아가씨 나이일수록 피부에도 신경을 써야죠.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면 주름이 생길 수도 있어요.”

“정말요?”

“그럼요. 그러니 이 서류는 내려놓으시고 어서 침실로 가셔서 푹 쉬세요. 이건 내일 봐도 충분하니까요.”

“네, 알겠어요.”

아이린이 힘차게 말했다. 네빌 집사는 흐뭇하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두 사람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자신들의 침실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친 아이린은 서둘러 집무실로 돌아왔다. 어제 보다만 서류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때 문이 열리며 네빌 집사가 들어왔다.

“아가씨.”

“네?”

서류를 보느라 정신없는 아이린은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그러다가 네빌 집사의 다음 말을 듣고 하던 일을 멈추었다.

“베이런 후작가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베이런 후작가에서요?”

아이린이 고개를 들어 네빌 집사를 보았다. 그의 표정은 매우 심각해 보였다.

“무슨 일이라고 하죠?”

“그냥 중요한 일이라고만 말했습니다.”

“알겠어요. 이리 모셔 오세요.”

“네, 아가씨.”

대답을 하고는 집무실을 나갔다. 아이린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았나?”

4

베이런 후작는 채플 백작가와의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사신단을 보내었다. 물론 그 일은 표면적일 뿐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아이린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이번 사신으로 온 사람은 바로 게이런 남작이었다. 언제 한 번 찾아왔던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게이런 남작은 집무실에 들어선 후 아이린에게 말했다.

“우선 후작님을 대신해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린도 최대한 예의를 갖춰 말했다. 예전에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사신으로 온 사람이다. 함부로 행동을 하여서는 아니 되었다.

네빌 집사는 차를 가져오겠다며 나갔다. 집무실에는 아이린가 게이런 남작만 남았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아이린이었다.

“베이런 후작님께서 이리 사신을 보내주어 축하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하하, 후작님께서는 항상 에페로 자작가를 깊이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요.”

아이린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속으로는 언제 생각해 주었냐며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전에 둘째 아들이 찾아와 행패를 부렸던 것을 생각하며 아직까지 이가 갈렸다. 그때 집무실 문이 열리며 네빌 집사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은쟁반이 들려져 있었다.

차를 내려놓고는 다시 나갔다.

“드세요.”

아이린의 말에 게이런 남작이 찻잔을 들었다. 한 모금 마신 후 내려놓으며 말했다.

“차가 맛있군요.”

“다행이네요. 근데 후작님께서 전할 말이라도 계십니까?”

아이린이 바로 물었다. 굳이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이런 남작도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바로 말을 했다.

“후작님께서는 두 영지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자고 하십니다.”

“공존할 수 있는 길이요? 그게 뭔가요?”

아이린은 의문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게이런 남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가씨께서도 알다시피 후작님에게는 도련님이 두 명 계십니다. 그런데 아직 둘째 도련님께서 장가를 가지 못했습니다. 아마 만나 보셨을 것입니다.”

게이런 남작의 입에서 둘째 아들의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아이린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그 망나니 같은 둘째 아들. 자신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잘 알고 있다. 모욕감과 치욕을 안겨 준 그이기에 아이린은 한시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요?”

아이린은 굳어진 얼굴로 나직이 말했다. 게이런 남작은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둘째 도련님의 상대로 아가씨를 염두에 두어 계십니다. 어쨌거나 백작령을 가졌으니 이제 그곳을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어쨌거나 아가씨 혼자서는 무리시니 말입니다.”

게이런 남작의 말은 그랬다. 어차피 여자는 결혼을 해야 한다. 변방에 위치한 자작령이야 크게 상관은 없지만 이제 백작령을 손에 넣었으니 남자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 일을 둘째 아들인 빌슨과 결혼해 그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변방의 자작가야 왕실에서도 신경 쓰지 않지만 백작령은 다르지 않습니까. 그곳을 제대로 차지하려면 후사를 책임질 남자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 고민을 후작님께서 들어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두 영지의 우호 관계로 확실히 할 겸 해서 말이죠.”

게이런 남작은 여유로운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아가씨도 알다시피 결국 결혼을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야 백작령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고 말입니다. 주변에 후작님의 둘째 도련님만큼 좋은 곳이 어디 있습니까?”

게이런 남작의 능글스런 말에 아이린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손이 부르르 떨리며 분노가 생겨났다. 그녀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졌다. 그 망나니 같은 둘째 아들과 혼인을 하라고? 그게 말이 되는가. 그놈이 아이린에게 어떻게 했는데. 아이린은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몸서리가 쳐졌다.

“말씀은 고맙지만 아직은 결혼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후작님께 말씀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린은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정중히 사양을 했다. 그러자 게이런 남작의 표정이 급격히 바뀌었다. 조금 전 미소를 띠고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나운 얼굴이 되었다.

“뭔가 오해하셨나 본데 이건 정중한 부탁 따위가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말이죠. 영지전이 끝나기 전 채플 백작이 후작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니 후작님께서 이 영지전에 끼어들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후작님은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불필요한 피를 보기 원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후작님께서는 에페로 자작령을 무척이나 아끼고 계십니다. 그러니 좋은 말할 때 후작님이 내민 손을 잡으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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