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69화 (69/125)

# 69

헬 나이츠 3권 (19화)

Episode 27 무너지는 백작성 (4)

“피해 규모는?”

알포네 기사단장이 뒤에 선 카론 부단장에게 물었다. 카론 부단장은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대답이 없자 몸을 돌린 알포네 기사단장. 멍한 상태로 서 있는 카론 부단장을 보며 소리쳤다.

“이봐! 카론 부단장!”

“네? 네에!”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가 빼놓고 있는 것이야?”

“죄, 죄송합니다!”

“당장 피해 상황을 확인해서 보고해!”

“알겠습니다, 단장님!”

카론 부단장이 황급히 움직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알포네 기사단장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는 곧바로 채플 백작에게 다가갔다.

“백작님, 놈들은 이곳으로 안 나올 것입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서 빨리 성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해가 저물고 있지 않나.”

로이 남작이 나서며 말했다. 알포네 기사단장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어쨌든 이곳에 있다면 적들에게 공격당하기 십상입니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 성 가까이 가야 합니다.”

“그리해!”

채플 백작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도 이제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제대로 된 싸움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퇴각하고, 게다가 매복에 당하고. 정신없이 몰아치는 녀석들의 수법에 거의 기가 질린 듯 보였다.

알포네 기사단장은 서둘러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어서 성으로 귀환한다! 부상병들을 챙겨라!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최대한 성 가까이 가야 한다! 서둘러라!”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채플 백작은 거의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말을 몰았다.

한편 매복 기습에 성공을 한 제이크와 병사들은 잔뜩 들뜬 분위기였다. 이번에도 제이크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더니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게다가 사망자는 또 나오지 않았다. 다만 광산에서보다 많은 부상자가 나온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 명도 죽지 않았다는 것에 큰 위안으로 삼았다.

“대장, 대승리입니다!”

바론이 제이크에게 다가와 말했다. 제이크도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한 결과다. 그보다 우리 측 피해는?”

“부상자가 좀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죽은 병사는 없습니다.”

“잘했군. 너는 어서 부상자들을 이끌고 보일란 성으로 가도록.”

“네, 대장.”

바론이 힘차게 말을 하며 멀어졌다. 그때 후방에서 병력을 이끌고 나타난 베일 기사단장이 보였다. 그는 제이크에게 다가가며 주위를 살폈다. 여기저기 채플 백작가의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베일 기사단장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벌써 끝났습니까?”

“그래!”

“쩝, 병력을 잔뜩 이끌고 왔는데…….”

베일 기사단장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제이크가 크게 웃음을 지었다.

“하하핫! 이 정도면 충분해. 다음에 크게 활약할 일이 있을 테니. 실망하지 마.”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 제이크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일이 착착 진행되었군요.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것입니까?”

베일 기사단장이 진지한 표정을 질문을 던졌다. 그도 제이크의 지시를 받았다.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병력을 이끌고 오기만 하면 된다고 들었다.

그러나 베일 기사단장은 싸움이라도 할 것처럼 잔뜩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이미 끝이 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제이크가 말한 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에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제이크가 희미하게 웃었다.

“오랫동안 치열하게 싸워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돼.”

그의 말을 듣던 베일 기사단장이 약간 섭섭한 표정이 되었다. 도대체 얼마나 치열한 싸움을 했기에 저런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냥 속 시원히 말해 주면 좋겠지만 제이크는 그러지 않았다.

뭔가 비밀이 많은 남자였다.

“뭐, 얘기하기 싫으면 관두십시오.”

“후후, 그런 뜻이 아닌데.”

제이크 본인도 솔직히 말한 것이다. 마계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 하루가 멀다 하고 치열한 전투를 벌여 왔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을 한 것이다. 그러니 조금 전 제이크가 한 말은 맞았다.

다만 받아들이는 당사자가 이해를 못했기에 이런 오해가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고 굳이 이런 오해를 풀어 주고 싶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말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저런 설명을 한다는 것이 귀찮기도 했다.

“다음은 뭡니까?”

베일 기사단장이 물었다. 제이크가 바로 말했다.

“이제 곧 밤이야. 이곳의 시체들을 처리해 줘.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말이야.”

“그것뿐입니까?”

“응, 그것뿐이야. 시체들 정리 끝나면 보일란 성으로 돌아가서 경계에 신경 쓰면 돼.”

“알겠습니다.”

베일 기사단장이 퉁명스럽게 말을 한 후 그곳을 벗어났다. 그런 베일 기사단장을 보며 제이크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때 제이크 뒤로 폴과 필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련님, 이제 곧 밤입니다.”

폴이 말했다.

“알고 있어.”

“움직이실 거죠?”

“당연하지. 그동안 너희 둘만 재미를 봤잖아.”

“헤헤헤.”

필이 웃었다. 그러자 제이크도 따라 웃음을 지었다. 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어서 빨리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채플 백작가의 병력은 전투 때문에 걸음이 지체되어 성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근처에서 군영을 갖추었다. 이제 내일 오전에 성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정비를 하고 병사들을 더 모집한 후 다시 쳐들어갈 것이다. 이제 그들도 갚아야 할 빚이 있기 때문이다.

채플 백작은 자신의 막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당한 것이 화가 났다. 그러면서도 무서웠다. 녀석들의 전술에 제대로 된 대응도 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자만심이었다.

자신의 자만심 때문에 병력을 잃었다. 5천이나 되는 병력이 지금은 2천도 남지 않았다. 거의 3분의2 정도나 되는 병력을 잃은 것이다.

채플 백작은 막사 안에서 와인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화가 났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오늘 밤은 술에 취해 잠들고 싶었다.

“빌어먹을! 젠장!”

채플 백작은 한 손에 와인병을 들고 몸을 비틀거리며 욕을 내뱉었다. 와인병 통째로 입에 가져다 물었다. 입술 사이로 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뭐가 문제야? 도대체 뭐가 문제냐 말이야.”

그리 말을 하며 자신의 침대로 가서 앉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두 팔도 축 늘어져 있다. 잠시 후 오른손에 들린 와인병이 바닥에 떨어졌다.

채플 백작의 몸이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채플 백작의 막사 안은 다섯 병의 와인병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밤은 헬 나이츠들의 천국이다. 채플 백작가의 군영이 설치된 곳에 제이크, 폴, 필이 나타났다. 제이크는 어둠 속에 숨어 주위를 살폈다.

폴과 필은 그의 옆에 서서 진영을 응시했다. 그들은 이미 헬 솔져로 변한 상태였다. 붉은 눈을 반짝이며 제이크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제이크가 말했다.

“놈들을 전멸시켜. 단, 채플 백작은 살려 두고.”

“크크크.”

“크르릉.”

폴과 필이 낮게 울음을 터뜨린 후 신속하게 군영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제이크도 어둠 속을 틈 타 서서히 군영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이 밝아 왔다.

채플 백작은 막사 안에서 자신의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의 몸이 꿈틀거렸다. 잠시 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채플 백작이 머리를 감쌌다. 숙취가 밀려온 것이다.

“으윽, 밖에 아무도 없느냐!”

채플 백작이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짜증이 확 밀려왔다. 숙취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다가 자신이 불렀는데도 들어오지 않다니.

“빌어먹을 녀석들이 왜 대답이 없어!”

채플 백작은 다시 문을 향해 소리쳤다.

“로이 남작! 로이 남작!”

로이 남작을 불렀지만 그도 대답이 없다. 채플 백작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는 밀려오는 두통에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걸음을 옮겼다.

“이것들이 전부 다 어디 간 거야?”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긴 후 막사 문을 열었다. 그때 그의 콧속으로 짙은 피냄새가 밀려왔다. 안 그래도 아픈 머리가 더욱 아파 왔다.

“무슨 피 냄새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채플 백작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주위가 온통 피로 물들어 있고, 여기저기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목 없이 몸통만 존재하는 시체, 배가 뚫려 내장이 흘러나와 있는 시체, 팔과 다리가 분리되어 있는 시체 등 그야말로 눈 뜨고도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무, 뭐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팠던 머리가 싹 가셨다. 아니, 채플 백작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로이 남작? 알포네 단장!”

채플 백작은 그들을 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때 그의 눈에 처참한 몰골로 죽어 있는 알포네 기사단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곁에는 로이 남작의 시체도 보였다.

그 뒤로 가신들을 비롯해 2천 명의 병사 시체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채플 백작이 믿어지지 않는 광경에 망연자실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꿈이야.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야.”

채플 백작은 직접 눈으로 목격했음에도 애써 부정했다. 그러다 급기야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는 울부짖었다.

“으아아악! 어떻게 이런 일이!”

채플 백작 본인을 제외하고 전부 다 몰살당한 군영을 보며 기겁했다. 그리고는 실실 웃기 시작했다.

“헤헤헤, 키키키, 흐흐흐. 믿을 수가 없어. 이건 현실이 아니야. 꿈이야!”

그 말을 내뱉고는 시체들 사이를 헤치며 걸어갔다. 거의 반미치광이나 마찬가지였다. 멀어지는 채플 백작의 몸이 비틀거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으히히히, 꿈이야. 어서 꿈에서 깨어나야지.”

Episode 28 베이런 후작의 욕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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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 백작령으로 제이크를 비롯해, 폴, 필 그리고 200명의 병사들이 들어섰다. 그곳에 있는 주민들은 갑자기 등장한 제이크를 보며 의아했다.

게다가 바론은 에페로 자작가의 깃발을 들며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모습은 매우 당당했다. 그 무엇도 두려움이 없었다.

당당히 이겼기에 부끄러움도 없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채플 백작의 성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부터 이 같은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둘 집에서 나왔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에페로 자작가의 깃발과 함께 채플 백작가의 성으로 향하는 제이크 일행들의 행렬을 보며 그들의 얼굴에 불안감이 싹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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