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64화 (64/125)

# 64

헬 나이츠 3권 (14화)

Episode 26 낮에는 바보 밤에는 괴물 (2)

“꿇어라!”

그러자 잡혀 온 두 명 중 뚱뚱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살살해.”

뚱뚱한 사내는 살짝 짜증을 내며 순순히 병사의 말을 들었다. 마른 체구의 사내는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린스톤 준남작은 그런 두 사내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입고 있는 갑옷이 에페로 자작가의 병사들 옷이었다. 그 순간 린스톤 준남작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후훗, 보아하니. 에페로 자작가의 병사들 같은데. 정찰을 왔느냐?”

린스톤 준남작의 물음에 두 사내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병사가 창끝으로 등을 툭툭 건드리며 소리쳤다.

“지금 대장님께서 묻지 않느냐. 어서 대답하지 못해!”

뚱뚱한 사내가 고개를 홱 돌려 째려봤다. 그 눈빛을 본 병사가 순간 몸을 움찔했다.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뭐냐? 어디서 째려봐.”

그래도 병사는 묶여서 포로로 잡혀 있는 놈이기에 더욱 강하게 나갔다. 그러자 린스톤 준남작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만! 말을 하지 않아도 에페로 자작가의 병사라는 것을 아는데. 굳이 따로 물어볼 필요 없지.”

“그럼 어떻게 할까요?”

병사가 물었다. 린스톤 준남작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말했다.

“우선은 광산 안에 붙잡아 둬. 내일 차근차근 물어보도록 하겠다.”

“넵, 대장님.”

지시를 받은 병사가 창끝으로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이놈들아 일어나!”

두 사내가 어슬렁어슬렁 일어났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이끌려 광산으로 향했다. 린스톤 준남작은 그런 두 사내를 힐끔 쳐다보고는 몸을 돌려 막사로 향했다.

어쨌거나 모든 준비는 마쳤기에 아무리 놈들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막을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정찰을 보낸 두 녀석을 잡았기에 한동안 놈들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린스톤 준남작은 막사로 들어가기 전 다시 한 번 지시를 내렸다.

“주변 경계를 철저히 하라!”

그리고는 막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병사들에게 이끌려 광산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내 중 마른 체구가 중얼거렸다.

“칫, 또 이런 짓을 해야 해?”

그러자 뚱뚱한 사내가 바로 말했다.

“도련님의 지시잖아.”

“젠장, 맘에 안 들어.”

마른 체구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러자 그 뒤에 있던 병사가 소리쳤다.

“시끄러! 뭘 그리 중얼거려! 어서 가지 못해!”

“네네.”

그렇게 두 사내는 병사들에 의해 광산 안에 가둬지게 되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몰랐다. 이 두 사람이 예전 광산을 광란의 피바다로 만든 폴과 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광산에도 어느덧 밤이 찾아왔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로 가득했다. 그들 중 가장 으뜸은 바로 달이었다.

하얀 빛의 달은 어두운 밤이지만 주변을 어느 정도는 밝혀 주고 있었다. 광산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도 주위가 밝아서인지 경계를 서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탁 트인 공간에다가 달빛마저 밝게 비추고 있으니 어느 누구라도 쉽게 숨어서 광산에 들어올 수는 없었다. 게다가 광산 입구 주위로 경계를 서고 있으니 뒤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 순간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서 네 개의 붉은 눈빛이 번쩍였다. 동굴 입구를 지키는 두 명의 병사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때 네 개의 붉은 눈빛이 두 개로 나뉘며 두 명의 병사 뒤로 접근을 했다. 그리고 뒤에서 두 병사를 덥쳤다.

“웁!”

“흡!”

우두둑!

두 병사는 고함을 지르지 못하게 입을 막고는 그대로 목을 꺾어 버렸다. 목이 부러진 병사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잠시 후 그곳에 나타난 인물은 바로 폴과 필이었다.

폴과 필은 동굴을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밝게 빛나는 달을 쳐다보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오늘따라 달이 무지 밝네.”

폴이 말했다.

“그러게, 광란의 밤을 즐기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이지.”

필이 동조했다.

“킥킥킥. 그래 맞아. 그런데 인원이 많은데.”

“우리가 그런 것에 신경 썼나? 그냥 보이는 족족 죽이면 끝이지.”

“클클클! 맞아, 맞아.”

폴과 필은 서로 얘기를 주고받으며 붉은 눈빛이 더욱 빛을 발했다.

“그럼 어디 시작해 볼까?”

“내가 먼저 나서지.”

필이 먼저 왼쪽으로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던 폴이 히죽 웃었다.

“그럼 나는 반대로.”

그 말을 하며 폴이 필과 반대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악!”

“으아악!”

병사들의 비명 소리에 천막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다른 병사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저,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쨍쨍쨍쨍!

적이 나타났다는 소리에 고요했던 광산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경계를 서는 100여 명의 병사들 빼고 나머지는 모두 천막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자기 적의 습격에 모두들 우왕좌왕하며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어느 천막에서도 잠에서 깨어나 장비를 착용했다. 그때 옆의 천막에서 동료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악!”

“크악!”

그러자 그 막사에 있던 기사가 장비를 착용하며 다급하게 외쳤다.

“어서 서둘러라! 어서!”

기사의 재촉에 병사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장비를 착용했다. 옆 천막이 갑자기 고요해졌다. 장비를 착용하는 기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순간 천막 옆이 부욱하고 찢어지며 누군가 나타났다. 기사는 그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누, 누구냐?”

천막은 달빛이 들어오지 않아 매우 어두웠다. 그런데 천막 옆구리가 찢어지며 달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붉은 눈빛을 가진 키가 큰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크크크, 내가 누군지 지옥에 가서 알아봐! 아주 자세히 설명해 줄 테니.”

필은 늘어난 팔을 쭉 뻗어 옆의 병사 머리를 낚아챘다. 손에 힘을 팍 주자 마치 두부가 으깨지듯 박살 나 버렸다. 사방으로 뇌수와 피가 튀었다.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병사들은 동료 병사의 죽음에 그냥 무작정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으아악, 죽어라!”

하지만 이미 그 병사는 가슴이 꿰뚫린 채 싸늘한 시체로 변했다. 기사는 그 모습에 놀란 눈이 되며 소리쳤다.

“막아라, 놈을 죽여 버려!”

30명가량 모여 있는 천막의 병사들은 한꺼번에 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필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병사들을 차례대로 처리했다.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필의 팔은 자신의 근처까지 다가오려는 병사들을 단 한 명도 접근시키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가슴이 팔, 머리는 사방으로 날아가며 픽픽 쓰러졌다.

기사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처럼 잔인하고, 이처럼 포악한 녀석은 처음이었다. 아니, 평생 이렇게 무서운 괴물을 처음 봤다.

“이, 이럴 수가! 어떻게……?”

기사가 검을 들고 놀라고 있을 때 그 안에 있던 30명의 병사들은 이미 고혼이 되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필은 팔에 붉은 피를 잔뜩 묻히고는 그것을 혀로 핥았다. 그리고 기사를 향해 말했다.

“넌 덤비지 않을 것이냐?”

그 말을 듣는 순간 기사는 울분을 토해 내며 달려갔다.

퍽! 퍼퍽!

필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늘어난 팔이 날아와 기사의 안면을 가격했다. 그 뒤로 몇 개의 주먹이 날아왔다. 필 가까이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주먹이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몰랐다.

그냥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가끔씩 번쩍 하고 번개가 치는 듯했다. 그 순간 자신의 눈이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자신의 다리로 보이는 것이 있었고 말이다.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천막 옆구리를 찢고 나타난 사내의 다리가 보였고, 그 다리가 돌아가며 옆의 천막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기사는 목이 잘린 자신의 몸통을 보며 이해할 수 없는 눈빛이 되었다.

‘왜 내 몸이 저기 있지? 그리고 난 왜 바닥에 떨어져 있지?’

기사는 자신의 몸이 날아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필은 천막에 있던 병사와 기사를 처리한 후 옆 천막으로 이동했다. 그때 천막이 걷히고 그곳에서 병사들이 우르르 뛰어나오고 있었다.

필은 나오는 즉시 단 한 방으로 가슴을 꿰뚫으며 죽이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폴이 필과 마찬가지로 병사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광산은 조금 전 고요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살육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비명이 들리고, 여기저기 병사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그 사이를 붉은 눈을 가진 두 명의 사내가 이리저리 날뛰며 그 많은 병사들을 하나하나 처리하고 있었다.

기사 10명, 병사 1,000명은 그렇게 폴과 필에게 모두 전멸이 되어 가기 시작했다.

3

채플 백작이 이끄는 본진은 보일란 성에서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군영을 갖추었다. 군영을 설치한 산 반대편에 보일란 성이 있었다. 내일 저 산만 넘으면 이제 본격적인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다.

밤 늦게까지 회의를 거듭했고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공격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채플 백작은 회의에 크게 만족감을 드러내며 자신의 막사에 돌아갔다.

이제 잠을 자고 나면 보일란 성은 자신의 수중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흥분된 마음으로 막사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아 왔다.

채플 백작이 기지개를 펴며 일어났다. 군영 막사에서 잠을 잤지만 저택에서 넓고 푹신한 자기 침대에서 자는 것보다 오히려 편안했다.

이 모든 것이 오늘 보일란 성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잠옷 차림의 채플 백작이 딱딱한 나무 침대에서 나와 간단히 침대 옆에 마련된 세숫대야로 향했다.

그곳에는 언제 떠왔는지 물이 담겨져 있었다. 그 물로 간단히 세면을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을 때 막사 문이 열리며 로이 남작이 들어섰다.

“백작님, 큰일났습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는 채플 백작은 갑자기 들어온 로이 남작을 보며 의아했다.

“뭐가 큰일이 났다는 것이냐?”

채플 백작은 얼굴을 닦은 수건을 옆으로 던지며 물었다. 그러자 로이 남작이 지난밤 광산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의 습격 소식을 알렸다.

“백작님 광산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습격을 받았습니다.”

“뭣이?”

채플 백작의 눈이 부릅떠졌다. 혹여 자신이 잘못 듣지는 않았는지 재차 물었다.

“자세히 설명을 해 보아라?”

“오늘 새벽에 광산에서 소식이 와야 하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해 병사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확인을 보낸 병사의 말이 그곳을 지켜야 할 병사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저, 정녕 그것이 사실이냐?”

“네, 그렇습니다. 지금 광산을 확인하고 온 병사가 밖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어, 어서 들라 하라!”

채플 백작은 조금 전까지 편안했던 기분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무려 기사 10명에 병사 1,000명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그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었다.

로이 남작이 밖으로 나가서 병사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 사이 채플 백작은 서둘러 자신의 갑옷을 차려 있었다. 병사는 들어오자 채플 백작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네가 확인하였느냐?”

“네, 백작님.”

“그곳에서 봤던 것을 소상히 설명하라.”

채플 백작의 다그침에 병사는 자신이 본 것을 상세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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