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60화 (60/125)

# 60

헬 나이츠 3권 (10화)

Episode 24 채플 백작의 시비(3)

병사들은 제이크와 폴과 필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로이 남작은 그제야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나오자 아예 본격적으로 듣고 싶었다.

“이보게 주인장.”

로이 남작이 주인장을 불렀다.

“네, 손님.”

주인장이 달려오고 로이 남작은 그에게 뭐라고 얘기를 했다. 그러자 주인장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부리나케 주방으로 향했다.

잠시 후 주인장 손에는 양손 가득 술이 들려진 채 병사들의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게 뭔가?”

“우리는 술을 시키지 않았는데?”

“하하하, 저분께서 사신다고 합니다.”

주인장이 로이 남작을 가리키며 말했다. 병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로이 남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하하하,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데 우연히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네. 그래서 나도 동참해 주지 않겠나 해서 말이야.”

로이 남작의 말에 병사들이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평범한 청색의 로브 차림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그를 보며 이상한 놈이라 생각을 했다. 그것을 눈치채고 로이 남작이 입을 열었다.

“하하하, 그리 이상하게 볼 것 없네. 나는 전 대륙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사람일세. 우연히 이곳에서 혼자 술을 먹는데 재미난 얘기를 해서 말이야. 그냥 끼어들기는 그렇고 이렇듯 내가 술을 대접할 테니. 그 얘기를 좀 해 주지 않겠나?”

로이 남작의 말을 듣던 병사들이 탁자 위에 오른 술을 보며 잠시 갈등을 하고 있었다.

“부담 갖지는 말게. 그냥 재미난 얘기를 듣는 것으로 되었네. 필요하면 안주나 술을 더 시켜도 되네.”

병사들은 서로의 눈빛을 주고 받고는 한 병사가 말했다.

“이리 오슈.”

“하하하, 고맙네. 오늘 마음껏 마시게. 내가 술은 다 사겠네.”

그러자 병사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무슨 횡재로 오늘 밤 공짜술을 마시게 생겼으니 말이다.

자리에 앉은 로이 남작이 주인장을 새로 불렀다.

“여기에 맛있는 안주 더 내오게. 그러지 말고 술도 통째로 꺼내 오게.”

로이 남작이 화끈하게 말하자 병사들의 얼굴은 더욱 밝아졌다. 그리고 그들을 보며 말했다.

“자, 술과 안주는 준비되었네. 나도 얘기를 들을 준비도 되었고, 아까 하던 얘기 좀 더 자세히 말해 줄 수 없겠나?”

3

그날 밤.

선술집의 불빛은 새벽이 되어도 꺼질 줄을 몰랐다.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주인장은 눈꺼풀이 무거운지 계속해서 깜빡였다.

하지만 테이블에 모인 여섯 사내들은 피곤하지도 않는지 연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로이 남작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눈빛은 매우 초롱초롱했고, 한 자라도 놓칠세라 온 정신을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그 주위로 병사 다섯 명이 자리했다.

그중 한 명의 입에서 연신 이야기를 하며 나무잔에 담긴 술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들 옆에는 이미 두 개의 술통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로이 남작이 밤새 술을 사 주며 병사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하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병사들도 취기가 오르고 눈이 스르륵 감기고 있었다.

반면 로이 남작은 말짱했다. 술을 마시는 척만 했다. 술이 취하면 병사들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병사들은 공짜 술을 먹으니 기분이 좋아서 연신 떠들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중요한 정보는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광산에서 활약 했었던 일, 에페로 자작가에 갑자기 나타난 손님 정도였다.

그 외는 자세한 상황을 듣지 못했다. 그가 어디 출신이며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말이다. 그렇게 병사들의 말을 듣던 로이 남작은 더 이상 안 들어도 될 정도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술집을 나서자 어느새 동쪽 하늘에 동이 터 오고 있었다. 밤을 새서 그런지 로이 남작의 눈가가 휑한 상태였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아주 중요한 정보는 얻지 못했지만 무엇보다 제이크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제이크라는 녀석에 대한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되었지.”

로이 남작은 피곤하지만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여관으로 향했다. 잠을 자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백작성으로 떠나기 위해서다.

여관에는 로이 남작이 타고 온 마차가 있었다. 입구를 돌아 마구간으로 향한 로이 남작은 어느새 일어나 말들을 손질하고 있는 마부를 발견했다.

마부 또한 로이 남작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그에게 달려가 인사했다.

“밤새 편히 주무셨습니까?”

마부의 인사에 로이 남작은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그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지금 당장 떠날 채비를 하게.”

“네에? 지금 당장요?”

“그래! 백작성으로 갈 것이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힘차게 대답을 한 마부는 즉시 말을 꺼내왔다. 마차에 연결하고는 상태를 확인했다. 모든 것을 마친 마부가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로이 남작에게 갔다.

“남작님, 떠날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알겠다.”

그 말을 하고는 곧바로 마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마부도 올라타고는 힘차게 채찍질을 했다. 그 사이 로이 남작은 마차에 편하게 앉아 창가로 시선을 두었다.

로이 남작이 탄 마차는 이른 새벽에 큰 대로를 힘차게 달려갔다. 새벽이라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곳을 마차가 힘차게 내달렸다.

마차가 사라지고 여관 입구에서 웬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멀어지는 로이 남작의 마차를 한 참이나 바라보다가 몸을 홱 돌렸다. 그가 가는 곳은 바로 에페로 자작가의 성이었다.

한편 집무실에서 업무에 열중인 아이린의 귀에도 그 같은 사실이 전해지고 있었다. 바로 로이 남작이 잠도 자지 않고 서둘러 백작성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소식은 제이크도 들었다. 아이린의 시선이 제이크에게 향했다. 아침 일찍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한 병사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약간 불안한 시선으로 제이크를 응시했다. 그 시선을 받은 제이크는 그저 희미한 미소만 지었다. 하지만 제이크와 달리 아이린은 걱정스런 얼굴이 되었다.

아이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괜찮을까요?”

“뭐가?”

아이린의 걱정스런 물음에 제이크가 무성의하게 답했다. 그는 무척이나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아이린은 그런 제이크의 성격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당신에 대해서 알아 버렸잖아요.”

“괜찮아. 어차피 나중에 다 알게 될 일인데 그것이 조금 앞당겨졌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어.”

“하지만…….”

아이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 모습을 본 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래도. 내가 원한 일인데 뭘.”

“네?”

제이크의 말에 아이린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이 내가 계획했던 일이야. 그러니 걱정 말라고.”

“계획했던 일이라고요? 그럼 백작가에서 저렇게 나올 것이라 예상을 했어요?”

아이린이 놀라며 묻자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린은 그의 말을 듣고 의문이 잔뜩 들었다. 그럼 백작가에서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제이크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렇군요.”

아이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제이크가 조용히 말했다.

“그들이 다시 한 번 찾아올 거야. 그때도 지금처럼 행동하면 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한 번 더요?”

“그래.”

제이크가 단호히 말했다. 아니, 마치 확신을 하고 있었다. 아이린은 제이크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든 것을 내다보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제이크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그렇다고 한다면 분명 그럴 것이다. 여태까지 그가 한 말 중 한 치도 어긋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그의 말을 믿어야 했다. 아이린은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알겠어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죠. 전 믿어요.”

“후훗,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군.”

제이크는 그녀가 믿는다고 말을 해 주자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 상황에서는 아이린도 제이크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난 잠시 나갔다 올게.”

자리에서 일어난 제이크가 아이린에게 말했다. 아이린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세요. 저도 보고서를 마저 봐야 하니까요.”

“그래, 수고해.”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아이린의 말에 제이크도 미소로 답해 주고는 집무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고 아이린도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향했다. 잔뜩 쌓여진 문서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밝은 표정으로 서류들을 하나둘 훑어 내려갔다.

한편.

로이 남작은 부지런히 마차를 몰아 백작성에 당도했다. 그는 곧바로 채플 백작이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그가 알아온 내용을 어서 빨리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톡톡톡!

집무실을 두드리는 소리에 채플 백작이 고개를 들었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로이 남작이 들어서자 조금 전까지 서류를 정리하던 채플 백작이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를 보며 물었다.

“그래, 어떻게 되었나?”

채플 백작이 황급히 물었다. 로이 남작은 지난밤 선술집에서 들은 제이크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대부분이 제이크의 활약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가 어디서 왔으며 누구의 아들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한참을 듣던 채플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제이크란 놈이 그년 옆에 있었어.”

“네, 그렇습니다. 돌아가는 정황으로 봐서는 아마도 제이크라는 인물이 아이린을 조정하는 것 같습니다.”

로이 남작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꺼내었다. 채플 백작도 일리가 있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년이 저리도 당당하게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맞습니다.”

로이 남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가 채플 백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제이크라는 녀석에 대해서는 좀 더 알아보았나?”

“그게 확실하지 않습니다.”

“정보 길드 쪽은?”

“그렇지 않아도 오면서 들렀지만 그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습니다. 의뢰는 해 놓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로이 남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얘기를 들은 채플 백작이 신음성을 흘렸다.

“크윽!”

눈살을 찡그리며 잠시 생각을 하던 채플 백작이 재차 물었다.

“녀석의 특징은 어떠하더냐?”

“제가 보기에는 뭐랄까? 조금 음산하고 소름도 돋고, 인상까지 차가웠습니다. 살아 있지만 마치 죽은 듯한 냉기가 풀풀 흘러나왔습니다.”

로이 남작은 제이크를 보고 느낌 점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채플 백작이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