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헬 나이츠 3권 (6화)
Episode 22 죽지 않는 용병대장 (4)
그는 침대에서 붕대를 감고 누워 있는 마틸다를 한 번 바라보았다. 눈빛에 살기가 담겼다. 그와 동시에 허리춤에서 작은 소도를 꺼내 들었다.
암살자의 동작은 매우 기민했다. 설령 침대에 누워 있는 마틸다가 눈을 떠도 바로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마틸다는 눈을 뜨지 않았다. 두건을 쓴 암살자의 눈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처음 의뢰를 받았을 때 레드베어 용병단의 대장이라고 해서 매우 신중했다. 하나 자신이 가까이 다가왔는데도 전혀 감지하지 못하니 맥이 빠진 것도 사실이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큰 부상을 입어 감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붕대를 감고 있는 상태만 봐도 알았다. 암살자는 검을 들고 서서히 내렸다. 정확히 숨통을 끊을 수 있게 검끝은 마틸다의 목을 향했다.
마틸다의 목에 검이 닿기 전에 암살자의 눈빛이 확 변했다. 그리고 사정없이 마틸다의 목을 찔렀다.
푹!
마틸다의 몸이 움찔했다. 그 순간 암살자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했다. 마틸다의 목에 찔러 넣었던 검을 빼 들고 다시 심장을 찔렀다.
푹!
그런데 느낌이 달랐다. 마치 죽은 시체를 찌르는 기분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찌르는 것과는 뭔가가 달랐다.
“단번에 죽은 것일까?”
암살자가 나직이 소곤거렸다. 하지만 목을 찌를 때 마틸다의 몸이 움찔한 것으로 보아 분명 살아 있었던 것이 맞았다. 그렇다면 목을 찔렀을 때 이미 절명한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의뢰는 완수했다.”
암살자는 그리 중얼거리고는 검을 빼서 허리에 감췄다. 몸을 돌려 창가로 다시 움직였다. 창문을 통해 빠져나가기 전 암살자는 다시 침대 위의 마틸다를 보았다.
뭔가 이상했지만 목과 심장을 찔렀으니 살아남지는 못했을 것이다. 죽은 마틸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난 후 암살자는 자신이 들어왔던 곳으로 빠져나갔다.
암살자가 빠져나간 후 침대에 누워 있던 마틸다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그는 몸을 일으킨 후 자신의 왼쪽 가슴을 쳐다보았다. 그곳에 진득한 무언가가 흘러나와 있었다.
그것을 손으로 쓰윽 닦고는 마치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거참, 빌어먹을 놈들일세. 왜 자꾸 귀찮게 구는 거야?”
마틸다의 시선이 창문을 향했다. 그곳은 암살자가 들어오고 나간 곳이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손에 묻은 자신의 피를 살폈다. 달빛밖에 없지만 확실히 색깔은 구분할 수 있었다. 인간처럼 선홍색이 아니었다. 죽은 사람의 피처럼 시커먼 색이었다. 그것도 마기에 중독된 피였다.
그 피를 보던 마틸다는 씁쓸한 마음이 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마틸다가 중얼거렸다.
“채플 백작. 나의 입을 그리도 막고 싶었소? 쩝, 섭섭하군. 그래도 한때는 당신을 위해 일한 몸인데 말이야.”
그러면서 마틸다의 눈빛에 살기가 아른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내 손으로 죽이고 싶다만 대장께서 계시니 참는 줄 알아!”
마틸다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머리의 붕대를 풀었다. 달빛에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검은색 얼굴에 입꼬리가 올라가며 히죽 웃고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게다가 달빛을 받았는지 그의 이마에 희미하게 마계의 인장이 찍혀 있다. 그 마계의 인장은 보통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직 제이크와 마계인들만 볼 수 있는 인장이었다. 마틸다는 스산한 미소를 짓고는 창가에서 몸을 뺐다. 그는 다시 침대로 가서 누웠다.
“어쨌든 잠은 자야겠지. 후후후, 잠이 올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을 하고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눈을 감았다. 암살자가 다녀갔지만, 마틸다를 어찌하지는 못했다.
Episode 23 채플 백작의 분노 (1)
1
“실, 실패입니다.”
채플 백작 앞에 선 로이 남작이 고개를 숙이며 힘없이 말했다. 채플 백작은 그 말을 듣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니 너무나도 답답한 노릇이다.
“정말 제대로 일을 한 것은 맞느냐?”
“네, 확실합니다.”
“확실! 확실! 도대체 몇 번째 확실하다고 말만 하는 것이냐! 그놈에 확실은 그냥 말만 하면 끝나나? 확실하다면 지금쯤 일이 처리되었어야 하지 않느냐 말이다!”
“…….”
로이 남작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자신 있다고 했던 일이 모두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도 몰랐다. 도대체 누가 도움을 주고 있는지 알 수도 없다.
언제부터인지 모든 것이 뒤틀렸다. 뒤틀리다 못해 꼬여 버린 것이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애를 썼지만 한 번 꼬인 일은 풀어지지 않았다.
채플 백작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치명적인 독을 먹여도 죽지 않고, 게다가 암살자를 보내도 살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놈인지 죽지를 않는 것이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독을 먹여도 살고, 암살자가 직접 목과 심장에 검을 쑤셔 넣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어찌 저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이냐? 그 이유가 무엇이냔 말이다!”
채플 백작이 강한 어조로 물었다.
답답한 것은 로이 남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모든 사실을 들어 알고 있지만 어째서 살아 있는지 몰랐다.
그때 암살자가 건넸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채플 백작에게 바로 말했다.
“백작님, 암살자에게서 아주 이상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무슨 얘기?”
채플 백작의 자세가 바뀌었다. 로이 남작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 녀석이 하는 말이 용병대장을 처리할 때 왠지 시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고 합니다. 검을 찌를 때 살아 있는 몸과 죽어 있을 때의 몸의 차이가 있다고 하던데 그때의 일은 마치 시체를 찌르는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정녕 그리 말하던가?”
“네, 그렇습니다.”
“그래?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군.”
채플 백작도 뭔가 이상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시체라… 시체!”
채플 백작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는 시체라는 말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로이 남작이 그의 행동을 보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로이 남작의 물음에도 채플 백작은 답을 하지 않았다.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기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채플 백작이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이제야 모든 것이 아귀가 맞아!”
“아귀가 맞다니 무슨 뜻입니까?”
로이 남작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자 채플 백작이 그를 보며 말했다.
“그 녀석 말이다. 라예키르!”
“라예키르 님이 무슨 일이라도…….”
로이 남작은 채플 백작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채플 백작은 뭔가 확실하다는 심증을 굳힌 듯 말했다.
“모든 일은 그놈이다. 라예키르가 꾸민 짓이란 말이다.”
“네에? 라예키르 님이요?”
로이 남작은 깜짝 놀랐다. 채플 백작이 하는 말은 지금까지의 일들이 모두 라예키르가 행한 일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서, 설마요. 라예키르 님은 죽지 않았습니까. 죽은 사람이 어찌 그런 일을 벌인단 말입니까.”
“그것이 바로 그놈이 노리는 것이겠지. 우리에게는 죽었다는 정보를 보내고 그 녀석이 에페로 자작과 손을 잡고 날 기만한 것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는가. 자네도 생각해 보게. 암살자가 분명 시체를 건드리는 느낌이라고 하지 않았나. 게다가 목과 심장에 검을 박았는데도 지금 살아 있어. 그렇다는 것은 분명 흑마법을 썼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단 말이지. 안 그런가?”
채플 백작의 말에 로이 남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법에 죽은 사람을 살리는 마법이 있다는 것을 얼핏 들은 기억이 있다. 게다가 라예키르가 이상한 생물을 소환하는 것을 보았다. 어림짐작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채플 백작이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다 흑마법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광산을 빼앗기는 일도 그렇고, 갑자기 에페로 자작가에 돈이 생겨난 것도 그렇고 말이다. 그 많은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는 없지 않는가.
채플 백작에게 그 비싼 마나석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는 것을 보면 그럴 것이라 짐작이 되었다.
“로이 남작, 처음부터 생각을 해 보게. 라예키르는 흑마법사네. 그리고 라예키르가 에페로 자작 편이라고 가정하에 모든 사건을 하나하나 맞춰 보면 딱 떨어지지 않는가.”
채플 백작은 금세 얼굴이 일그러지며 말했다. 로이 남작도 곰곰이 생각에 잠기었다. 채플 백작의 말처럼 라예키르가 상대편에 섰다고 생각하고 사건들을 하나하나 끼워 맞춰 보았다. 그러니 모든 것이 퍼즐처럼 딱 맞아떨어졌다.
로이 남작의 표정이 달라졌다. 채플 백작의 말처럼 라예키르가 에페로 자작과 손을 잡았다는 것에 확신이 들었다.
“백작님,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라예키르 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뒤통수를 칠 수 있습니까?”
로이 남작이 분노에 찬 음성으로 말하자 채플 백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이마에 핏줄이 불쑥 솟아오르며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어쩐지 순순히 날 따른다고 생각을 했어! 젠장! 가만두지 않겠다!”
채플 백작은 분노를 드러냈다. 로이 남작 또한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어느 정도 냉정을 되찾은 채플 백작이 나직이 말했다.
“아이린, 그 어린 년이 제법이구나.”
“그렇습니다.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닌 것 같습니다.”
로이 남작이 동의했다. 어리다고 얕잡아 본 것이 큰 실수였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지. 흑마법사 그놈이 자작 놈의 편이라면 우리도 달리 해야 할 것이야.”
“네, 백작님. 당연히 그러셔야 합니다.”
로이 남작이 강하게 말했다.
“으음,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두 연놈을 처리할 수 있을까?”
채플 백작이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로이 남작도 딱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여태까지 한 것이 있으니 섣불리 말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채플 백작도 딱히 기대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채플 백작이 소리쳤다. 그러자 밖에서 한 남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백작님. 에페로 자작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뭣이? 에페로 자작가?”
“네, 그렇습니다.”
채플 백작은 로이 남작을 보았다. 로이 남작 또한 놀란 얼굴이 된 채 채플 백작을 보았다.
“그 녀석들이 무슨 의도로?”
“만나 보면 알겠지요.”
로이 남작의 말에 채플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리로 데려오너라.”
“네.”
채플 백작은 혹시 용병단 일 때문에 찾아온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로이 남작도 마찬가지였다. 어쨌거나 그 일이라면 발뺌하며 시간을 벌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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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 문이 열리고 그곳으로 하인 한 명이 들어왔다. 그는 채플 백작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