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헬 나이츠 3권 (5화)
Episode 22 죽지 않는 용병대장 (3)
“그럼 이 일은 나에게 맡기고 찬찬히 지켜보기나 해. 그리고 한 가지, 아이린은 무엇보다 심장을 키워. 앞으로 놀란 일들과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될 거야. 그때까지 심장을 강심장으로 만들어 놔! 그게 네가 할 일이야.”
제이크가 심장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아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제이크는 그런 아이린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마틸다에게 말했다.
“가자!”
마틸다는 말없이 제이크의 뒤를 따라 집무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고 두 사람만 남게 된 집무실. 먼저 네빌 집사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아가씨. 괜찮을까요?”
“그럼요. 괜찮을 거예요. 제이크 님이시잖아요.”
아이린은 제이크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여 주고 있었다. 제이크가 무슨 신이라도 된 것처럼 말만하면 뚝딱하고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전 제이크 님을 믿어요. 믿어 보자고요.”
아이린의 말에 네빌 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가씨.”
네빌 집사도 제이크를 굳게 믿고 있었다.
한편, 광산에서 돌아온 바론은 숙소에 들자마자 술을 찾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독한 술을 세 병이나 연거푸 마셨다.
‘젠장, 내가 본 것이 뭐지? 도대체 뭐냔 말이야!’
그는 광산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놀라고 있었다. 제이크의 마법과 몸이 갈갈이 찢어져 그 형체도 알 수 없었던 용병대장의 시신. 그런데 잠시 후 영혼이 나오고 얼마 있지 않아 죽었던 용병대장이 살아나서 움직였다.
바론은 그 모습을 보며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다. 죽었던 인간이 살아났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제이크가 해냈다.
“믿을 수가 없어. 믿을 수가 없단 말이야. 난 꿈을 꾸고 있는 것이야. 꿈! 그래 난 꿈을 꾸고 있어.”
술을 마시면서도 계속해서 자기 최면을 걸고 있었다. 오늘 봤던 것은 꿈이라고 말이다. 그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병사가 걱정이 되어 다가왔다.
“대장, 무슨 일이 있습니까?”
병사는 바론을 완전히 대장으로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광산에서 지휘했던 모습과 제이크도 그에게만 지시를 내렸고 항상 붙어 다녔으니 말이다.
바론도 그런 자신이 정말이지 대장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했다.
“그, 그게 말이다.”
“네!”
바론이 술을 내려놓으며 물어본 병사에게 시선을 던지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러다가 다시 술을 마셨다.
벌컥벌컥!
“말을 해 보십시오.”
답답한지 병사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자 바론이 술병을 내려놓고는 그 병사를 보았다.
“그러니까… 아니다.”
바론은 괴로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분명 오늘 보았던 것을 말한다면 미친놈이라고 오해받을 것이다.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도 믿지 못하는데 말을 해 봤자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냥 미친놈이 되지 않으려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수록 병사는 집요하게 물어 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아니야. 아니라니까!”
바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병사는 깜짝 놀라며 물러났다.
“정, 말씀하기 싫으시면…….”
약간 서운한 눈길로 말을 했다. 그런 병사의 모습에 바론은 깊은 한숨을 흘리며 속으로 말했다.
‘후우, 너희들이 속 타는 나의 마음을 어찌 알리요.’
바론은 또다시 술병을 들어 마셨다.
‘그래, 미친놈이 되지 않으려면 입을 다물자. 그래야 여기 있는 놈들을 지휘하지. 암, 어느 누가 미친놈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기겠어. 그래, 나만 입을 다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남은 술을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그는 잔뜩 취한 후 곯아떨어져 자고 싶었다. 오늘 봤던 것을 꿈이라 생각하고 내일 말끔히 일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병을 마셔도 술이 취하지 않았다.
“젠장, 오늘따라 왜 이렇게 술이 안 취해! 빌어먹을!”
바론은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를 나갔다. 술을 더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숙소에 있던 병사들은 바론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왜 저래?”
3
어두운 복도에 한 명의 하녀가 걸어가고 있다. 그녀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음식이 한 가득이다. 양 고기를 소금에 살짝 절인 후 구운 아주 맛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들고 가던 하녀가 어느 방문 앞에 섰다. 그녀는 길게 숨을 내쉰 후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걸쭉한 남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들어와.”
하녀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붕대를 칭칭 감은 마틸다가 앉아 있었다. 하녀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섰다. 마틸다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음식을 들고 서 있는 하녀를 쳐다봤다.
하녀는 몸을 움찔했다. 붕대 속에서 빛나는 눈빛에 자신도 모르게 겁을 잔뜩 먹은 것이다. 그녀는 애써 그의 눈길을 피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추, 출출하실 텐데 이것 좀 드세요.”
그녀의 말에 마틸다가 말했다.
“가져와.”
무미건조한 음성에 하녀는 또 한 번 몸을 떨었지만 이내 음식을 탁자 위에 놓았다. 그리고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마틸다는 탁자 위에 놓인 음식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맙다.”
마틸다의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하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아니에요.”
마틸다는 음식을 보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먹었다.
하녀는 그런 마틸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하녀의 눈빛이 조금 전 겁을 먹었던 모습이 아니었다.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호호호, 그래 먹어라. 마음껏 먹어. 그것이 너의 마지막 만찬이 될 것이니.’
그녀는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사실 마틸다에게 음식을 가져다 준 하녀는 채플 백작의 사주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 마틸다가 먹고 있는 음식에는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었다.
장정 열 명을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 아주 독한 독이었다. 바로 붉은 전갈의 독이었다. 아주 소량의 독으로도 엄청난 크기의 코끼리도 죽일 수 있는 독이었다.
하녀는 와구와구 음식을 먹고 있는 마틸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음식은 점점 줄어들었고, 바닥이 서서히 들어났다. 그런데도 마틸다는 아무런 느낌도 없는지 계속해서 먹어댔다.
‘어떻게 된 일이지? 지금쯤 거품을 물고 쓰러져야 하는데…….’
하녀의 얼굴이 점점 사색이 되어 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독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의심이 들었다.
‘아니야, 내가 직접 넣었어.’
그렇다. 사주를 받은 하녀가 직접 독을 탔고, 이곳까지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어찌 아무런 반응이 없단 말인가. 하녀는 더욱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한 가지 몰랐던 사실은 마틸다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그런 자에게 독이 통할 리 만무했다.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그녀였기에 지금의 상황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어쨌든 하녀는 마틸다가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어쩌면 독이 늦게 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마틸다가 음식을 다 먹었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빈 그릇을 보았다.
“커억! 거 참 맛있네. 양념이 잘됐어.”
만족한 얼굴이 된 마틸다가 자신의 배를 툭툭 치면서 고개를 돌렸다.
“한 접시 더 줄 수 있나?”
“……네?”
마틸다의 말에 하녀의 눈이 크게 떠지며 깜짝 놀랐다. 그러자 마틸다의 표정이 사납게 변했다.
“음, 한 접시 더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하녀의 말에 다소 실망한 마틸다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곧바로 말했다.
“으음, 이거 곤란하군. 난 배가 고프면 신경이 날카로워지는데 말이야.”
그리 말을 하며 고개를 홱 돌렸다. 순간 마틸다의 눈빛이 사납게 바뀌었다. 그 눈빛을 보자 하녀는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왜, 왜 그러세요?”
하녀는 독을 먹은 상태인데도 저 정도의 기세를 뽐내고 있는 마틸다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물며 저 눈빛! 마치 자신을 잡아먹을 듯한 느낌이었다.
하녀는 뒤로 물러나며 문의 손잡이를 뒤쪽에서 잡았다. 여차하면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마틸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녀를 바라보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음식이 없다? 그렇다면 네년이라도 잡아먹어야겠구나.”
그의 말에 하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문의 손잡이를 돌리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고함을 질렀다.
“괴, 괴물이다!”
정말 그랬다. 극독을 먹였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더욱 기세를 드러내며 자신을 잡아먹으려 했다. 하녀는 깜짝 놀라며 복도를 뛰어갔다.
그 사이 마틸다는 눈빛을 반짝이며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놀라기는…….”
그렇게 마틸다의 독살은 실패로 돌아갔다.
4
언제나 사건은 밤에 진행이 된다.
다음날 늦은 저녁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마틸다는 자신의 방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물론 제이크의 지시로 방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식사는 언제나 하녀들이 가져다 줬다. 물론 지난밤의 하녀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 하녀가 독을 썼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죽은 몸에 독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게다가 그녀에 대해 알릴 생각도 없다. 그런 하잖은 것들을 잡아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틸다는 자신의 몸이지만 단지 껍데기인 몸만 빌리고 있는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다시 살아났다는 것에 기뻐했지만 사람은 한 번 죽으면 끝이라는 제이크의 말에 실망을 하기도 했다.
하나 제이크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그로써는 그에게 충성을 해야 했다. 다시 돌아가 고생을 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마틸다는 침대로 가서 누웠다.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몸이지만 인간이었던 그때와 똑같이 행동해야 했기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주위는 고요했다. 방은 단지 창가로 비춰지는 달빛이 전부다. 침대에 누워 있는 마틸다도 이미 깊은 잠에 빠진 모습이다.
그때 창가로 검은 그림자가 비춰진다. 그러다가 어느새 사라지고 잠시 후 창문이 조심스럽게 아주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마틸다는 아무것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다. 반쯤 열려진 창문으로 검은 인영이 스르륵 들어왔다. 마치 어둠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다.
그 어둠의 그림자는 어느덧 잠을 청하고 있는 마틸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림자는 서서히 형체를 갖추며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가 바로 로이 남작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