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헬 나이츠 3권 (3화)
Episode 21 망령을 부리다 (3)
그들은 괴성을 질러대며 그 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그 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그 공간을 통해 하나의 혼령이 걸어 나왔다. 제이크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허름한 로브를 걸친 노인이었다. 그는 제이크 앞에 서며 말했다.
[자네가 날 불렀나?]
제이크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어험, 나를 부르지 않았다고? 이런 낭패가 있나.]
그 노인은 정말이지 낭패한 얼굴로 서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이크가 귀찮은 듯 말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냥 돌아가. 내가 원하는 녀석이 아니야.”
[그건 안 되지. 몇 백 년 만에 지상으로 나왔는데 그냥 돌아가면 섭섭하지 않겠는가. 헐헐헐.]
노인은 긴 수염을 손으로 매만지며 웃었다. 그러자 제이크가 손짓을 했다.
휘릭!
그 순간 노인은 깜짝 놀란 얼굴이 되며 당황했다. 그의 몸이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이, 이보게, 젊은이. 난 그 옛날 대마법사로 불린 하르마일세. 날 곁에 두면 아주 좋은 일이 생길 걸세. 이보게에∼]
노인은 자신의 신분을 밝혔지만 제이크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게다가 대마법사였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인데 제이크는 여기 죽은 용병대장의 혼을 원했기에 그 노인을 다시 돌려보낸 것이다.
“쩝,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제이크는 중얼거린 후 다시 기다렸다. 잠시 후 또 하나의 혼령이 공간을 통해 걸어 나왔다. 이번에는 멋들어진 갑옷을 걸친 기사였다.
[음, 자네가 날 불렀나?]
“아나, 너 아냐! 이것들이 만날 똑같은 말만 하고 그래.”
제이크는 짜증이 났는지 잔뜩 인상을 구겼다.
[내가 아니라고? 오호, 그렇다면 누굴 불러낸 것인가? 난 부름에 응했을 뿐인데. 에헴!]
유령기사는 짐짓 모르는 듯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됐어. 그만 돌아가!”
제이크가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 말하자 유령기사는 당황하며 검을 빼 들었다.
[이, 이보게. 다시 돌아가면 언제 다시 지상에 올지 장담하지 못하네. 그러지 말고 날 이곳에 두면 안 되겠나? 나를 보게 내가 펼치는 검술은 여태껏 보지 못한 것이네. 자, 한 번 보게.]
유령기사는 열심히 검을 휘두르며 제이크의 눈에 들려고 애를 썼다. 제이크는 팔짱을 끼며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손짓을 했다.
“별로 좋은 검술도 아니구먼.”
[아, 아니네. 더 좋은 것을… 으아아악!]
그 기사 또한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다. 제이크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졌다. 원하는 혼령이 나오지 않고 자꾸 엉뚱한 것만 나오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이 녀석이 내 부름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겠지?”
제이크가 으르렁거리며 기다리고 있을 때 또 한 사람이 나타났다. 화려한 옷과 머리에는 멋진 왕관을 쓴 사람이었다. 그는 제이크를 보며 근엄하게 말했다.
[그대가 짐을 불렀나?]
“아나, 안 불렀어. 왜 자꾸 엉뚱한 사람이 튀어나와!”
제이크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그 사람은 주위를 확인하며 말했다.
[음, 짐으로 말할 것 같으면 대제국을 다스렸던 발렌시아 황제이니라.]
“황제고 자시고 간에 너 안 불렀으니까. 그냥 돌아가라!”
[어허! 무엄하도다. 어찌 짐에게 그런 막말을 내뱉느냐!]
“지랄하네. 그냥 꺼져!”
[이, 이놈이.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여봐라!]
그 황제는 주위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제이크는 손가락으로 귀를 후벼 파며 소리쳤다.
“미친놈 아냐. 꺼져!”
[뭐, 뭐라고!]
발렌시아 황제는 노기 띤 얼굴로 소리를 질렀지만 제이크의 손짓에 그만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도 그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감히 천하의 황제인 내게… 어찌…….]
제이크는 잔뜩 인상을 구겼다.
“나오라는 놈은 안 나오고 별 이상한 놈들만 나오다니.”
그 뒤로 여러 명의 혼령이 나왔지만 제이크가 다 쫓아 버렸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일그러진 공간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제이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제야 나오는군.”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나온 사람은 바로 죽은 용병대장인 마틸다의 혼령이었다. 솔직히 그가 이렇게 늦게 나온 이유는 영혼들의 세계에서는 완전 피라미 수준이기에 섣불리 부름에 반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나온 것이다. 제이크는 그런 마틸다를 보며 히죽 웃었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와!”
마틸다는 제이크를 보며 어떻게 할지를 몰랐다. 게다가 자신 앞에 놓인 죽은 육신을 보며 혼란스러워했다.
[저, 저를 부르셨습니까?]
“그래, 너 그곳에 있었으면 내가 누군지 잘 알지?”
제이크의 뜬금없는 물음에 마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얘기하기 쉬워지겠군. 두 말하지 않겠다. 날 도와라. 그럼 내 군단에 널 넣어 주겠다.”
제이크의 말에 마틸다가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제이크를 보며 말했다.
[저, 정말입니까?]
마틸다는 제이크가 누군지 잘 알았다. 죽어서 마계에 간 후 12번째 군단장인 제이크의 무용담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그런 곳에 넣어 준다고 한다.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며,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어떤 일이든 하겠습니다.]
마틸다는 머리를 땅에 박으며 대답했다. 제이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잘 생각했어. 이 일만 잘 해결한다면 넌 내 군단 소속이 될 것이다.”
[성심을 다해서 따르겠습니다.]
“좋아!”
제이크가 웃었다. 그 뒤로 폴과 필이 괴기스런 웃음을 띠며 나타났다.
“크크크. 녀석, 복받았군.”
“흐흐흐. 그러게 말이야.”
폴과 필의 중얼거림을 뒤로하고 제이크가 마틸다에게 말했다.
“너의 몸은 저기 있다. 들어가라!”
그 말과 함께 제이크가 손짓을 했다. 머리를 박고 엎드려 있던 마틸다의 혼령이 마치 연기가 되며 죽은 자신의 몸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 순간 죽어 있던 마틸다의 육신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Episode 22 죽지 않는 용병대장 (1)
1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깊은 밤이었지만 채플 백작가의 집무실에는 아직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어젯밤 광산을 되찾기 위해 벌인 일 때문에 채플 백작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홀로 집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채플 백작은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쌌다.
“젠장!”
채플 백작은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감싸고 있던 두 손을 책상에 내려쳤다.
쿵!
“돈이 얼마나 들어갔는데… 아까운 내 돈.”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있던 채플 백작이 책상을 박차고 일어섰다. 그는 창가 쪽으로 걸음을 옮긴 후 밖을 내다보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 광산을 되찾기 위해 들어간 돈보다도 이제는 자존심 문제였다.
“그래, 이제는 나의 자존심 문제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빼앗고 말 테다!”
몸을 돌려 앞의 소파에 앉았다. 그는 심각해진 얼굴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용병단도 실패한 마당에 도대체 어떻게 하면 광산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좀처럼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머리가 아파 왔다.
“빌어먹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괴로워하고 있을 때 그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채플 백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래도 머리를 좀 식혀야겠군.”
채플 백작은 책상 뒤쪽 벽에 걸려 있는 휘장으로 향했다. 휘장을 살짝 걷어 내자 그곳에 금고가 있었다. 금고를 확인한 채플 백작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걸렸다.
채플 백작은 히죽 웃으며 금고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윙 소리가 나며 금고 앞에서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그 마법진을 확인한 채플 백작은 자신의 목에 걸린 보석을 하나 꺼낸 후 그곳에 대었다.
철컥!
마법진이 활성화되며 금고에 문이 열렸다. 채플 백작은 금고의 문을 열었다. 금고의 내부는 제법 컸다. 그 속에 들어 있는 물건들은 한눈에 봐도 매우 뛰어난 보석들로 가득했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보석들에서 나오는 자체 발광에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채플 백작은 그것을 보며 입이 귀에 걸렸다.
“으흐흐 귀여운 내 아가들, 잘 있었느냐. 이 아비가 찾지 않아서 섭섭하지는 않았고.”
채플 백작은 그렇게 말을 하며 금고 안에 있는 보석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었다. 그리고 안에 들어 있는 값비싸 보이는 상자를 꺼내었다.
“으찻!”
그 상자를 힘겹게 들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쿵!
그 소리만으로도 그 상자의 무게가 전해지는 듯했다. 채플 백작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마치 아기를 만지듯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내 새끼들 잘 있었느냐?”
그 말을 하며 천천히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상자 속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휘양찬란한 황금빛 동전들이 수두룩하게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채플 백작 얼굴에는 미소가 또 한번 걸렸다. 그리고 상자 안에 든 황금빛 동전들을 책상 위에 꺼내 놓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없었다면 내가 어찌 살았을꼬.”
두툼한 손에 들린 황금빛 동전들이 그의 말에 반하듯이 더욱 빛을 발했다. 그 후로 채플 백작은 꺼내 놓았던 동전들을 하나하나 세며 상자 속에 도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어지럽고 답답했던 머리가 한결 편해졌다.
한참 동전을 세던 채플 백작은 머릿속이 시원해지며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동전을 상자 속에 넣고 뚜껑을 닫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머릿속이 맑아지며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채플 백작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가만, 용병단이 실패를 했으니 살아남은 놈들이 나를 불어 버리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들자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절대 그 사실을 에페로 자작가에서 알아서는 안 되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을 향해 소리쳤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잠시 후 집무실 문이 열리며 하인이 들어왔다. 하인은 두 손을 가지런히 한 후 허리를 굽혔다.
“부르셨습니까?”
채플 백작은 그 하인을 향해 말했다.
“지금 당장 로이 남작을 불러들여라”
그 소리에 깜짝 놀란 하인이 말했다.
“지, 지금 이 시간에 말입니까?”
하인이 보기에도 너무나 늦은 시각이기에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어 되물었다.
채플 백작 얼굴이 일그러지며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어서 움직이지 못할까! 당장 로이 남작을 불러와라!”
“네, 네. 알겠습니다, 백작님”
놀란 하인은 급히 허리를 숙이고 집무실을 나갔다. 그 하인을 보며 채플 백작은 인상을 찡그렸다.
“답답한 녀석.”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