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헬 나이츠 3권 (2화)
Episode 21 망령을 부리다 (2)
네빌 집사의 말에 제이크와 아이린의 표정이 굳어졌다. 맞다. 채플 백작가에서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확실히 잡아낼 물증이 없는 것이다. 아이린은 황급히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굳어진 제이크의 표정을 보던 아이린이 바로 말했다.
“아, 아니에요. 어차피 일이 좋게 끝났잖아요.”
아이린이 혹여 제이크가 자책하지는 않을까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하지만 제이크는 굳어졌던 얼굴이 펴지며 태연하게 말했다.
“우움. 네빌 집사의 말도 일리가 있군. 그것도 좋은 생각인데?”
“네에?”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 제이크를 보며 네빌 집사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좋은 생각은 맞는데요. 이미 다 죽어 버린 사람을 어찌하겠어요?”
아이린이 물어보았다. 그러자 제이크가 피식 웃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야.”
“네에? 방법이 있어요?”
“그래.”
제이크를 바라보는 세 사람은 알 수 없는 말에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서 제이크에게 시선을 던졌다.
“사로잡은 놈들이 없다면서요?”
네빌 집사의 물음에 제이크 말했다.
“그렇지, 없지. 하지만 내게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 마.”
자신감에 가득한 얼굴이다. 그렇다고 방법을 알려달라고 대놓고 물어보기도 그랬다. 언제나 그랬듯이 제이크가 한다면 해 온 사람이다.
“어쨌거나 물증만 잡으면 되는 것이잖아.”
“그, 그렇죠.”
네빌 집사가 대답했다. 그러자 제이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이 일은 내게 맡겨!”
그 말을 하고는 회의실을 나갔다. 네빌 집사는 그런 제이크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무슨 생각이시지? 죽은 자를 살리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이 생각은 네빌 집사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린과 베일 기사단장도 마찬가지였다.
3
제이크는 회의실을 나서자 곧바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병사들의 숙소로 향했다. 부상자들을 뺀 병사들은 숙소에 모여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까지 광산에서의 전투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나, 아직도 흥분돼!”
“맞아! 나도 그래.”
“우리가 정말 녀석들을 상대했단 말이야?”
“이것 봐, 아직 손이 떨리잖아.”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수군대고 있었다. 한편 바론은 한쪽 구석에 앉아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가 이렇게 고민하는 것은 폴과 필 때문이었다. 전투 중이라 두 사람에게 그리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싸움 중간에 얼핏 두 사람을 보았다.
그때 폴과 필의 모습은 솔직히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 전 봤을 때는 영락없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봐 왔던 멍청하고 어딘지 모르게 어리바리한 그런 녀석들 말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모습은…….
“아, 미치겠군. 도대체 뭐가 진짜야?”
바론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은 그냥 스쳐 지나가다가 보았기 때문에 긴가민가한 것이다.
홀로 구석에 앉아 고민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동료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혹여라도 폴과 필의 모습을 본 사람이 있는지 말이다. 자신이 봤던 것을 다른 병사들도 보았는지 말이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병사들이 봤다면 분명 그런 말이 입에 오르락내리락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자신의 착각일 수도 있다.
“에이, 그만하자. 괜히 말했다가 나만 이상한 놈 될 거야. 그런데 영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으니…….”
바론은 머리를 감싸며 홀로 중얼거리며 괴로워했다.
그때였다.
숙소 문이 열리며 제이크가 들어섰다. 그러자 떠들썩하던 숙소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바론도 제이크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대장님!”
“어, 바론. 혹시 필 못 봤나?”
“아뇨, 못 봤습니다.”
바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래?”
제이크가 숙소를 살피는 사이 바론이 곧바로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아냐, 됐어. 그냥 넌 쉬어.”
“아닙니다.”
바론은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하며 숙소 밖을 나갔다. 제이크는 숙소에 있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편히들 쉬어.”
그 한마디만 남기고 제이크고 나갔다. 숙소에 있던 병사들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조금 전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밖으로 나온 바론은 허겁지겁 뛰어다니며 폴과 필을 찾았다. 그러던 중 어디서 나타났는지 폴과 필이 히죽 웃으며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바론은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한 걸음에 달려갔다.
“이봐! 너희들 어디 갔었던 거야?”
그러자 폴이 나섰다.
“왜? 그냥 돌아다녔는데.”
“지금 대장이 찾는다.”
“대장? 아, 도련님이?”
“그래. 지금 찾고 계셔.”
“날 왜?”
폴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하자 인상을 찡그린 바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장님이 찾는데 거기서 왜가 왜 나와! 그리고 너 말고 필을 찾고 있어.”
그러자 필이 말했다.
“날?”
필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하자 바론은 냅다 그의 손목을 잡고는 말했다.
“어서 가자!”
그때 제이크의 음성이 들려왔다.
“됐어, 나 왔다.”
“대장님!”
바론이 필의 손목을 놓으며 고개를 숙였다. 곧바로 필이 앞으로 나섰다.
“도련님, 저를 찾으셨다고요?”
“그래.”
“무슨 일로?”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제이크의 말에 필의 얼굴이 밝아졌다. 광산에서 싸움이 끝나고 심심했는데 아무래도 또 다른 싸움을 하라는 것으로 오해를 한 것이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필이 눈을 가늘게 뜨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제이크가 피식 웃었다.
“훗,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용병대장 시체를 찾아와!”
“엥? 용병대장 시체요?”
필이 깜짝 놀라며 묻자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필은 갑자기 맥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용병대장 시체는 뭐하시게요.”
“쓸 곳이 있다. 그러니 찾아와.”
“네, 폴이랑 같이 다녀오면 되죠.”
“알아서 해.”
“네, 다녀오겠습니다.”
축 처진 어깨로 돌아서는 필은 폴에게 말을 하고는 동시에 사라졌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바론은 제이크에게 다가가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마도 시체를 찾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어째서?”
제이크가 물었다.
바론이 바로 말했다.
“그게 워낙 병사들이 거칠게 싸워서 시체를 확인하기 어려울 겁니다. 어떤 것은 목이 없는 것도 있고, 다른 어떤 것은 팔이며 다리가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용병대장 시체만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
바론의 말에 제이크는 히죽 웃었다.
“걱정 마. 저 두 사람은 개 코거든!”
“네?”
바론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지만 제이크는 그저 미소만 짓고는 몸을 돌렸다. 바론은 그 자리에 한동안 서서 생각을 하였다.
“개코? 그렇다면 냄새를 잘 맡는다는 것인데. 그거랑 시체를 어떻게 찾아? 온통 피 냄새뿐일 텐데.”
바론이 잔뜩 의문 가득한 얼굴로 고민할 때 제이크는 저 멀리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바론이 제이크에게 뛰어가며 중얼거렸다.
“뭐, 확인해 보면 되지.”
그날 저녁.
폴과 필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곧바로 제이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제이크 옆에는 바론이 있었다. 폴과 필이 오는 것을 확인한 제이크가 물었다.
“찾았어?”
“네, 도련님.”
필이 말했다. 그러자 폴이 죽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목이며 팔다리가 분리되어 찾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폴이 인상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제이크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데.’ 그러나 입으로 삼키며 다른 말을 했다.
“시체를 꺼내 봐.”
“네.”
필이 대답을 한 후 폴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폴이 어깨에 걸친 자루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팔이며, 몸통, 다리, 머리를 하나둘 꺼내 놓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바론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잔뜩 피를 머금은 시체가 나오자 저도 모르게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폴과 필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맨손으로 잡았다.
제이크도 마찬가지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꺼내지는 시체를 꼼꼼히 살폈다. 그리고는 필을 향해 말했다.
“확실하지?”
“물론입니다. 제가 하나하나 확인을 하며 맞춰 보았는걸요.”
필은 그 말을 하며 씨익 웃었다. 그러자 바론이 그 웃는 얼굴을 보며 참지 못하고 몸을 돌린 후 허리를 숙였다. 곧바로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우에에엑!”
그런 바론의 행동에 폴과 필은 ‘저 녀석 왜 저래?’ 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반면 제이크는 꺼내 놓은 시체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도로 집어 넣고 날 따라와.”
“네, 도련님.”
필이 대답한 후 다시 시체 토막을 자루에 넣었다. 그때까지 바론은 계속해서 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배출시키고 있었다.
4
제이크가 앞장서서 걸어가고 그 뒤를 폴과 필이 따랐다. 폴의 어깨에는 피가 흥건하게 맺힌 자루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날따라 광산으로 올라가는 숲 속이 매우 으스스했다.
하지만 제이크와 필, 폴은 오히려 이런 분위기를 좋아했다. 그들의 얼굴은 마치 평온한 곳을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밝았다.
잠시 후 광산에 도착한 제이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까지 주위는 그날의 참사를 말해 주는 듯 붉은 피가 땅바닥에 뿌려져 있었다.
게다가 곳곳에는 아직까지 치우지 못한 시체까지 널브러져 있다. 하지만 제이크는 개의치 않았다. 찬찬히 주위를 확인하던 그는 어느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 정도가 좋겠군.”
고개를 끄덕인 후 폴에게 말했다.
“시체를 가져와.”
폴이 다가와 자루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각난 시체를 하나둘 꺼내 놓고는 그것을 맞추기 시작했다. 분리된 머리와 몸통을 붙이고 팔과 다리를 이었다. 그러자 죽은 용병대장의 모습이 되었다.
그것을 확인한 제이크가 그 주위로 마법진을 그렸다. 그리고 허리에 있던 주머니 속에서 파란 동전을 꺼내 용병대장의 가슴에 올려놓았다. 폴과 필은 뒤로 물러나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제이크가 두 손을 들어 시체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눈을 감으며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혼령을 소환하는 주문이었다.
그러자 마법진이 활성화되고 곧이어 마기가 솟아오르며 용병대장의 몸에 스며들어 갔다.
우우웅―
스으으윽!
마기는 끊어진 머리와 팔 다리를 이어 갔다. 잠시 후 완전한 용병대장의 시체가 나타났다. 잘려 나갔던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는 몸통과 완벽하게 하나가 되었다.
제이크가 눈을 뜨자 건너편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제이크는 그곳을 찬찬히 보았다. 파장이 일어나며 그곳에서 무수히 많은 혼령들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