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헬 나이츠 2권 (24화)
Episode 20 폭풍은 지나갔지만(3)
그래서 제약을 걸었고 절대로 목숨이 위태롭지 않을 시에는 헬 솔져로 변하지 말라고 했다. 또 하나 자신의 허락 없이도 변하지 말라고 했다.
폴과 필은 제이크의 말을 잘 따랐다. 물론 가끔 통제가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건 아주 극소수였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진행된다면 언제고 자신의 손을 벗어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정말 위험해지는 것이다.
제이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함부로 헬 나이츠로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극을 받아 심장이 요동치는 상태에서 흥분을 하게 되면 헬 나이츠로 변하게 된다.
원하지 않아도 타인에 의해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살육을 즐기고 피를 탐욕하는 괴물로 변하고 만다. 살심이 생겨나고 난폭한 기질마저 온몸을 감싸고 있다. 제이크는 그런 것을 정신력으로 누르고 있지만 어느 한계점을 벗어나면 아마도 자아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져들었다.
보일란 성으로 내려가는 제이크는 그러한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렇듯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점점 자신이 인간이 아닌 마계인으로 변해 버리는 것만 같았다.
군단장이 된 후 마왕으로부터 약간의 힘을 부여받은 뒤로 더 심해졌다. 성격도 더욱 난폭해졌고 말이다.
“아무래도 나 스스로 힘 조절을 해야겠어. 되도록 헬 나이츠로 변하지 말아야 하고 말이야. 안 그랬다간…….”
제이크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폴이 넌지시 물었다.
“네에?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그 말에 제이크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다. 어서 가자!”
3
제이크와 폴, 필은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 보일란 성에 도착을 했다. 이미 그곳의 연무장에는 바론을 비롯한 병사들이 먼저 와 대기하고 있었다.
제이크의 등장으로 어수선하던 병사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고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제이크가 그런 그들의 한 차례 훑어보며 말했다.
“지난 밤, 광산을 지키느라 고생이 많았다. 오늘 하루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난 후 내일부터 다시 훈련에 돌입한다. 이상!”
말을 마친 제이크가 바론에게 걸어갔다. 바론은 제이크의 멀쩡한 모습에 울컥했다. 게다가 덩치에 맞지 않게 울먹이기까지 했다.
“도대체 어디 계셨던……”
바론이 울컥한 마음에 말을 내뱉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제이크가 검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바론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이것을 왜?”
“검이 망가졌어. 가서 수리하도록.”
“네에?”
바론이 놀란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제이크는 검 하나 달랑 던져 주고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바론은 검과 제이크를 번갈아 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쳇, 괜히 할 말 없으니까.”
그렇게 말을 하며 검을 빼 보며 살폈다. 그 순간 바론의 눈이 크게 떠졌다. 검이 몽땅 이가 나가 있는 상태였다.
“헉! 세상에. 이 단단한 검에 이가 다 나갈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많이 싸웠단 말야.”
바론은 모든 것을 자신들에게 맡기고 구경만 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원망도 했다. 그런데 제이크가 건넨 검을 보니 이가 다 나가 있었다. 이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치열한 싸움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론은 갑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렇듯 검이 상할 때까지 싸웠다는 것도 모르고 원망했던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다.
“쩝, 그래서 광산으로 한 명씩 용병들이 들어왔구나. 게다가 기겁하며 놀란 듯 행동했고 말이지.”
검을 쳐다보며 바론은 피식 웃었다. 절대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쳤던 것이 아니었다. 바론과 병사들이 힘들이지 않고 싸울 수 있게 치열하게 용병들과 상대하며 정확히 40명만 광산으로 보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자 바론은 제이크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감동마저 밀려왔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검을 다시 검집에 넣고 성으로 들어간 제이크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그는 다짐을 했다.
“그래! 제이크 님이 있는 이상. 나도 열심히 해야지. 암!”
굳은 결심을 한 후 몸을 돌렸다.
병사들이 힘겹게 장비를 정비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바론은 목소리를 높였다.
“자자, 어서 서두르자. 빨리빨리 움직여!”
밝은 표정으로 병사들을 독려하는 바론의 모습에 정비를 하는 병사는 갑자기 왜 저러지 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제이크가 성 안으로 들어가자 아이린과 네빌 집사, 베일 기사단장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제이크를 발견하고는 환한 얼굴이 되었다.
아이린이 한달음에 달려와 제이크 앞에 섰다.
제이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녀왔어!”
“네,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무슨.”
제이크는 아이린의 말에 다소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곧바로 네빌 집사와 베일 기사단장이 다가왔다. 두 사람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들의 인사에 제이크의 표정이 더욱 붉어졌다.
“다들 왜 이래! 무슨 큰일을 했다고.”
그러자 아이린이 나섰다.
“큰일이 아니라니요? 레드베어 용병단을 하룻밤 사이에 전멸을 시켰는데요.”
“맞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네빌 집사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정말이지 햇병아리 병사들을 데리고 레드베어 용병단의 공격을 막고, 거기다가 전멸까지 시키지 않았나.
그 누구도 이런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베일 기사단장도 마찬가지다. 그가 나섰다 해도 이런 결과는 쉽게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사망한 병사는 없고, 부상자만 50명 정도 되지 않는가.
이는 정말 완벽한 대승리였다.
그들의 칭찬에 제이크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더 이상 낯간지러워 못 들을 것 같았다.
“이제 그만해!”
“하하하, 알겠습니다.”
“호호호.”
그렇게 아이린과 네빌 집사, 베일 기사단장은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한참을 웃고 난 후 제이크가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지금 바로 식사할 수 있을까? 배가 고픈데 말이야.”
그 순간 깜짝 놀란 네빌 집사가 얼른 말했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지금 당장 준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올라가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러지.”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고, 네빌 집사는 재빨리 식당으로 향했다.
아이린이 제이크에게 말했다.
“올라가요.”
“응.”
제이크가 앞장섰고, 아이린이 그 옆에 섰다.
베일 기사단장이 지나가는 아이린을 보며 말했다.
“아가씨, 전 성 경계를 확인하겠습니다.”
“네.”
아이린이 고개를 끄덕였고, 베일 기사단장이 제이크를 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제이크도 고개를 끄덕인 후 미소를 지으며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베일 기사단장이 망토를 휘날리며 성으로 나가고 아이린과 제이크는 우선 식사가 준비될 때까지 집무실에 있기로 했다.
집무실로 들어선 두 사람.
제이크는 다소 피곤한지 소파에 몸을 누이고는 눈을 감았다. 아이린이 맞은편에 자리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제이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히죽 웃고 있었다.
“히히.”
입을 가리고 웃고 있으면서도 그 웃음이 틈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제이크가 눈을 떴다.
“왜 그렇게 웃지?”
“아, 아니에요. 그냥 즐거워서요.”
“즐거워? 날 보는 게 즐거운 거야?”
“네.”
아이린은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답했다.
제이크는 당돌한 아이린의 대답에 그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허허, 이런.”
“왜요? 내가 웃으면 안 되나요?”
“안 될 건 없지. 그런데 나를 보고 웃는다는 것이 문제지.”
제이크가 말했다.
아이린이 그런 제이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처음에 당신을 보고 정말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우리 에페로 자작가를 도와주고 뭐 이런 복덩어리가 다 있지. 하고 생각을 하니… 앗, 죄송해요!”
아이린이 급히 자신의 입을 막았다. 제이크를 보며 복덩어리라고 말을 해 버린 것이다. 이것은 그냥 머릿속에 생각만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입으로 튀어나와 버렸으니 당황하는 것은 당연했다.
제이크는 그런 아이린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괜찮아. 뭐, 어차피 너에게 있어 나는 복덩어리가 맞지. 넘어가려는 성을 살려 주었지, 광산도 되찾아 주고. 맞는 말이야.”
제이크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
“후훗, 어쨌든 기분이 좋아서 웃었어요. 이해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아이린이 가볍게 목례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아침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섰다.
제이크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밝게 웃는 얼굴이 매력적인 아이린이었다. 게다가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이 그녀를 비추자 더욱 예뻐 보였다. 제이크는 그런 아이린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때 아이린의 고개가 돌아가며 제이크와 눈이 마주쳤다.
잠시 황홀경에 빠져 있던 제이크는 아이린과 눈이 마주치자 무안했는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이린도 뜨거운 제이크의 시선을 받고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만이 장시간 흘러갔다.
“흐흠.”
낮은 신음이 흘러 나왔다. 아이린이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끝났죠?”
그녀의 말에 제이크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일단은…….”
제이크의 말에 아이린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제이크가 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아직 끝난 것이 아니지.’
4
와장창!
“빌어먹을! 젠장!”
채플 백작은 집무실에 있는 물건들을 마구 던지고, 깨부수며 분노를 드러냈다. 그 앞에 몸을 벌벌 떨고 있는 로이 남작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무릎을 꿇었다.
“주, 죽여주십시오. 백작님.”
그도 더 이상 목숨을 구걸할 형편이 아니었다. 이번 레드베어 용병단을 보내자고 한 것도 로이 남작 본인 생각이었다. 채플 백작이 동의는 했지만 모든 작전을 자신이 짜고 구상했다.
그런데 결과는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레드베어 용병단에게 들어간 돈도 만만치 않았다. 그 돈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채플 백작은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태세였다.
“으아아아악! 내 돈! 내 광산!”
채플 백작은 육중한 몸매를 흔들며 광분하듯 외치기 시작했다. 그날 하루 종일 로이 남작은 광분하며 분노하고 있는 채플 백작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오히려 구타를 당했다.
그렇게 용병단을 고용해 광산을 되찾으려는 구상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채플 백작은 보름 동안 머리를 감싼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북서쪽에 위치한 베이런 후작가의 저택.
집무실에 있는 베이런 후작은 남부 지역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보고서를 다 살피고 한 곳에 내려놓은 베이런 후작이 입가에 스르륵 미소가 번졌다.
“후훗, 에페로 자작령에 재미난 게 있는 모양이군. 이렇듯 떠들썩하니 말이야.”
베이런 후작은 매우 흥미로운 얼굴이 되며 다시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눈동자가 움직이며 다시 한 번 읽어 내려간 그는 히죽이며 허연 이빨을 드러냈다.
“크크크, 좋아. 아주 재미있어.”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베이런 후작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크게 웃음을 흘렸다.
“하하핫, 푸하하핫!”
한참을 웃던 그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더니 천천히 중얼거렸다.
“그래, 이렇게 재미있는 일에 내가 빠질 수 없지.”
베이런 후작이 말을 하고는 눈을 빛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대륙의 지도로 향했다. 그곳에 서서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자신의 영지와 로키 산맥을 아래에 있는 에페로 자작령, 그리고 채플 백작령. 그 세 곳을 연달아 눈으로 살펴보며 입꼬리를 스윽 올렸다.
“이것을 하나로 이으면 정말 멋지지 않는가. 이 얼마나 멋진 선이란 말인가. 크크크.”
베이런 후작의 웃음소리가 집무실 안에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바야흐로 에페로 자작령의 위기가 이제부터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