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헬 나이츠 2권 (17화)
Episode 18 광산의 대혈투 (2)
“아가씨.”
그가 나직이 아이린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 아이린이 고개를 돌렸다.
“네빌 집사님, 앗! 베일 기사단장님도 오셨네요.”
네빌 집사 뒤에 묵묵히 서 있는 베일 기사단장을 보며 아이린이 애써 밝은 표정이 되었다. 베일 기사단장도 아이린이 생각하는 것만큼 걱정으로 가득해 보였다.
네빌 집사가 아이린에게 다가갔다.
“아가씨, 밤이 늦었습니다. 방으로 돌아가시지요.”
네빌 집사의 말에 아이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오늘 같은 날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베일 기사단장이 나섰다.
“아가씨께서 걱정하시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신다면 몸이 상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내일 아침 좋은 소식을 들으셔야죠.”
베일 기사단장의 말에 아이린이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보다는 저기 로키 산맥에서 광산을 지키고 있는 제이크 님과 그리고 200명의 병사들이 더 힘든 밤이잖아요. 그들이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전 이곳에서 기다리겠어요.”
“아가씨!”
“아가씨!”
네빌 집사와 베일 기사단장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아이린을 불렀다. 하지만 아이린은 이미 확고한 의지가 눈에 담겨 있었다. 하물며 광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이들을 두고 어찌 잠이 오겠는가.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네빌 집사도 베일 기사단장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린은 다시 몸을 돌려 창가를 바라보았다.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로키 산맥의 광산을 응시했다. 이미 낮에 위치를 파악했기에 어둠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네빌 집사와 베일 기사단장은 그런 아이린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집무실에 있는 세 사람은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던 중 먼저 입을 연 쪽은 아이린이었다. 그녀는 광산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채 천천히 물었다.
“괜찮을까요?”
그러자 네빌 집사가 바로 나섰다.
“제이크 님이라면 괜찮으실 것입니다.”
베일 기사단장도 거들었다.
“네빌 집사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제이크 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떠날 때 이런 말을 얼핏 들은 것 같습니다.”
“네에? 무슨 말을?”
아이린이 고개를 돌렸다. 베일 기사단장이 제이크가 광산으로 떠나기 전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했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다.’라고 말입니다. 그 뜻은 분명 자신 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제이크 님의 눈빛에서 강한 자신감이 어려 있었습니다.”
“정말요? 정말 그리 말했어요?”
“네, 중얼거리는 것을 제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베일 기사단장은 절대 위로의 뜻으로 하려는 말이 아니었다. 분명 오늘 밤 성벽을 나서기 전에 똑똑히 들었다.
아이린은 베일 기사단장의 말에 조금 위안이 되는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분이 그리 말했다면 분명 괜찮겠죠.”
“네, 아가씨.”
“그렇습니다.”
네빌 집사와 베일 기사단장이 바로 답했다. 아이린은 다시 몸을 돌렸다. 광산을 바라보며 나직이 속삭였다.
“제발 무사히 돌아오세요.”
그리고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는 눈을 감으며 기도를 올렸다. 아이린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2
“옵니다!”
광산에서 대기하고 있는 병사들 중 한 명이 바론을 향해 소리쳤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광산 병사들은 창을 강하게 움켜쥐며 광산 입구를 응시했다.
그때 입구에서 경계를 나갔던 병사 한 명이 허겁지겁 달려들어 오고, 그 모습에 바론이 주위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다들 준비해!”
바론은 눈빛을 반짝이며 정면을 응시했다. 광산 입구에 우거진 수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광산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은 더욱 긴장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광산 입구를 주시했다.
이마와 등에는 이미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린 지 오래였다.
파득, 파드득.
수풀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병사들이 일제히 긴장한 채 지켜보았다. 잠시 후 그곳에서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오는 한 명의 용병이 보였다.
“으아아악! 괴, 괴물이다.”
그 용병은 미친 듯이 앞으로 내달렸다. 그 뒤로 검은 물체가 하나 더 등장했다. 바로 폴이었다. 붉은 눈빛을 반짝이며 도망가는 용병들과 광산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을 한번 쳐다보고는 히죽 웃었다.
“크크크, 한 명쯤이야. 알아서 처리하겠지. 그럼 나는 다음 놈을…….”
그리 중얼거리고는 다시 수풀을 통해 사라졌다. 하지만 광산에 모인 병사들은 그런 폴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오직 광기 어린 울부짖음을 토해 내며 달려오는 용병에게 집중되었다.
그때 선두에 있던 바론의 조가 그 용병을 상대했다. 미친 듯이 뛰어들어 오는 용병은 두려움, 공포심에 잔뜩 젖어 있었다.
“으아앗!”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어 오는 그를 보며 바론이 소리쳤다.
“온다, 정신 바짝 차려!”
바론이 소리를 쳤지만 미끼를 해야 할 병사가 주춤거리며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바론은 그를 향해 소리쳤다.
“이봐, 뭐해! 어서 나가!”
미끼가 될 병사 바로 뒤에 있는 바론이 말했지만 좀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발이 땅에 박힌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론이 그 병사를 바라보았다. 잔뜩 겁에 질려 주저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는 용병을 보았다.
이대로는 놈을 처리하지 못할 것 같았다. 바론이 즉시 창으로 떨고 있는 병사를 툭툭 건드렸다.
“이봐! 죽고 싶어? 지금 놈이 달려오고 있잖아! 어서 나가!”
바론의 재촉에도 병사는 꿈쩍도 하지 못했다. 그는 창을 쥔 손이 벌벌 떨고 있었다. 바론이 다시 소리쳤다.
“우리를 다 죽일 셈이야. 뒤에 있는 우리를 믿어. 여태까지 훈련한 것을 생각하란 말이야.”
그 말에 병사가 고개를 돌려 바론을 보았다. 바론은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것에 힘을 얻었을까? 병사는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용병을 만나자 창을 내찌르며 눈을 찔끔 감아 버렸다.
“으아아악, 죽어!”
용병은 달려오는 한 명의 병사를 보며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비켜! 비키라고.”
용병도 고함을 내질렀다. 병사는 창으로 검을 막으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리고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다. 어차피 미끼 병사는 용병을 상대하는 목적이 아니라 끌어들이는 것이다.
처음 느껴 보는 전투의 두려움에 잔뜩 움츠려 있던 병사는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며 용병을 끌어들였다. 그때를 같이해 바론과 다른 한 명의 병사가 가세했다.
용병은 앞의 병사를 상대하다가 갑자기 양옆으로 또 다른 병사들이 나타나 덤벼드는 것을 확인했다. 용병은 즉시 앞의 병사의 창을 쳐 내며 양옆으로 다가와 창을 내찌르는 병사의 창을 막았다.
여기까지 훈련한 대로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한 명에서 두 명이 더 늘어난 병사를 상대하는 용병은 당황했다. 고작 2주밖에 훈련되지 않은 병사라고 들었다. 하지만 이들의 합격술은 정말 대단했다.
“이, 이놈들이!”
용병은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사방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창을 막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용병의 등 뒤로 짙은 살기가 느껴졌다. 용병은 즉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자신 뒤쪽으로 다가온 두 명의 병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용병을 향해 창을 내찌르고 있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용병은 빠져나갈 구멍도 없이 사방이 둘러싸여 합공을 당했다. 검 하나로 다섯 개의 창을 막을 수는 없었다. 등 뒤를 고스란히 내어 준 용병은 그대로 두 병사의 창에 등을 꿰뚫렸다.
“죽어랏!”
“죽어!”
푹! 푸욱!
등이 뚫리며 창이 가슴으로 튀어나왔다. 용병은 눈을 부릅뜨고 입에서 붉은 피를 토해 내었다.
“욱!”
그와 함께 정면과 양옆에 있던 병사들이 창을 찔러 왔다. 이미 두 개의 창에 찔린 용병은 별 다른 저항 없이 나머지 세 개의 창에 옆구리와 배를 찔려 죽어 갔다.
“제엔장…….”
용병은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창을 내찌른 다섯 명의 병사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죽은 용병을 보았다.
“주, 죽였다!”
“그래, 성공했어.”
“하하핫, 우리가 해냈다!”
병사들의 얼굴이 미소가 지어졌다. 처음 겪는 일이라 많이 긴장하고 무서웠지만 막상 용병을 처리하고 나니 해냈다는 기쁨이 가장 컸다.
무엇보다 선두에 서서 미끼 역할을 했던 병사는 이번 한 번의 전투로 자신감을 얻었다. 바론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 날 용병 생활을 하며 레드베어 용병단의 위용을 익히 들어왔다. 자신도 그곳에 소속되고 싶었다.
하지만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고, 여러 곳에서도 거절을 당했다. 홀로 이리저리 방황을 하다가 병사를 모집한다고 해서 지원을 했다.
물론 거리를 떠돌며 불안전한 일을 맡아 하는 용병 생활보다 안정감을 주는 병사가 더 좋다는 판단에 지원을 했고, 이렇듯 병사가 되었다.
게다가 제이크가 알려 준 전술로 자신을 퇴짜 놓았던 레드베어 용병을 처리했다. 그도 이보다 기쁠 수가 없었고, 희열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좋았어!”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그와 함께 주위에 바짝 긴장하고 있던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잘 보았지! 우리처럼 하면 된다! 무서워하지 마! 두려워하지 마! 훈련한 대로 하면 절대 죽지 않아!”
나머지 병사들도 바론의 조가 행한 것을 지켜보며 자신감을 얻었다.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을 했다. 그때 다른 곳의 수풀이 흔들리며 또다시 한 명의 병사가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그곳에는 다른 조가 대기하고 있었다.
“으아아악!”
그 용병 또한 잔뜩 광기 어린 시선이었다. 다른 조도 바론 조가 했던 것처럼 창을 고쳐 쥐며 전술을 펼쳤다. 중앙에 선 한 명이 미끼가 되어 나가서 그 용병을 끌어들이고 그 뒤에 두 명이 압박을 한 후 나머지 두 명의 뒤를 돌아 마무리를 짓는다.
그렇게 한 명씩 수풀을 헤치며 광산으로 들어오는 용병들을 각 조들이 차례대로 상대를 했다. 제이크가 알려준 5인 집단 전투술을 마음껏 펼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상대를 하다 보니 어느덧 20명의 용병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바론을 비롯해 나머지 병사들은 점점 자신감이 붙게 되었고, 용병들을 처리하는 속도도 점점 올라갔다. 그때까지 폴과 필은 수풀에 숨은 용병들을 처리하며 한 명씩 광산으로 보내고 있었다.
마치 사냥을 나간 사냥개가 주인에게 몰아주는 것처럼 그들은 정신없이 레드베어 용병들을 도륙하며 몰아붙이고 있었다.
어떤 때는 두 명의 용병이 튀어나왔다. 마치 대기하고 있던 두 개의 조가 두 용병을 상대하러 나왔다.
이미 병사들은 자신감으로 충만한 상태였다. 검을 빼 들고 폴과 필에게 도망쳐 온 용병은 갑자기 나타난 다섯 명의 병사를 보며 당황스런 표정이 되었다.
“덤벼라!”
그때 한 명의 병사가 겁도 없이 자신에게 달려들었다. 그를 본 용병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검을 높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