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38화 (38/125)

# 38

헬 나이츠 2권 (13화)

Episode 16 그믐달이 뜨면(2)

2

보일란 성에서도 어둠이 내려왔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도, 다른 곤충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한 정막. 지금 보일란 성이 바로 그런 실정이다.

연무장과 경계를 서고 있는 성 곳곳에는 횃불로 어두운 밤을 밝히고 있다. 두 명씩 짝을 지은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성벽 위의 병사들도 오늘 따라 어두운 밤은 처음인지 다들 잔뜩 긴장을 하고 있다.

“으으으, 날씨 한 번 더럽게 어둡네.”

“오늘 같은 날은 순찰보다는 그저 막사에서 편히 쉬는 게 좋은데 말이야.”

“누가 아니래.”

성벽을 순찰 중이던 두 병사가 중얼거렸다. 그때 베일 기사단장이 나타났다.

“근무를 서고 있는데 뭘 그리 중얼거리나.”

“헉!”

“허헉, 단장님!”

두 병사는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 섰다. 베일 기사단장이 그들을 보며 물었다.

“이상은 없느냐?”

“네,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병사가 말했다. 베일 기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 같이 어두운 밤일 수록 더욱 경계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네, 알겠습니다.”

두 병사는 자세를 잡으며 힘차게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인 베일 기사단장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두었다.

“알겠다. 고생하게.”

“네, 단장님.”

병사들은 힘차게 말하고는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베일 기사단장은 성벽 위에 나와 있는 폴과 필을 보았다. 그들은 성 담벼락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믐달이네.”

“크크크, 맞아.”

폴과 필이 그믐달 밤이 되자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그러면서 괴기스런 웃음을 흘렸다.

“킥킥킥.”

“크크크.”

마치 미친놈들처럼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또다시 중얼거렸다.

“달이 사라졌네.”

“달이 사라졌으니 너무 좋은 걸.”

“그러네.”

“크흐흐, 좋군, 좋아.”

옆에서 두 사람을 보던 베일 기사단장이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그는 속으로 폴과 필을 비웃었다.

‘미친놈들, 달이 사라졌는데 뭐가 좋다는 거야. 아무것도 안 보이면 꼼짝없이 죽을 텐데.’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 도망치기도 그러했다. 그런데도 필과 폴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계속해서 괴기스럽게 웃고 있었다.

훈련을 받은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달빛 하나 보이지 않는 이런 날이 매우 불안했다. 밤에 습격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검을 잘못 휘둘렀다가 동료를 부상 입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베일 기사단장은 이래저래 걱정이 앞섰다.

“놈들이 움직일 때는 지금뿐이다. 하지만 이런 날은 우리들에게도 최악의 날이다.”

바짝 긴장을 한 채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밤바람도 불지 않는다. 이런 날은 달빛을 보기가 무척 힘이 든다. 역시 달빛을 가린 검은 구름은 좀처럼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때였다.

베일 기사단장에게로 한 명의 병사가 빠르게 다가왔다. 그는 귓가에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 순간 베일 기사단장의 눈빛이 확 바뀌었다.

“확실한가?”

“네, 지금 그들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오는 중입니다.”

“크윽, 역시. 이런 날을 선택할 줄 알았어. 아무래도 일련의 행동들은 우리들의 안심시켜 놓으려는 것이었군.”

베일 기사단장은 주먹을 불끈 쥐며 분노했다.

“이놈들이 끝내 마성을 드러냈구나. 너희들은 보일란 성의 경계를 철저히 하라.”

“넵, 단장님.”

지시를 내리고는 그는 곧바로 제이크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몸을 돌리자마자 그는 우뚝 멈추었다.

제이크가 이미 성벽 위에 올라서 있는 것이다. 그는 뒷짐을 진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언제…….”

아무런 기척도 없이 그의 곁을 지나 성벽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베일 기사단장은 제이크 곁으로 다가갔다.

제이크는 하늘을 보며 검은 구름에 걸린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제이크의 눈에도 그믐달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오는 달은 남들과 같지 않았다.

달이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그의 눈에는 붉게 물든 달이 떠올라 있었다. 제이크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후후후, 아주 밝은 붉은 달이구나.”

그 옆에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폴과 필도 있었다. 두 사람도 제이크의 말에 괴기스런 웃음을 지었다.

“크크크.”

“흐흐흐.”

그런 세 사람을 보던 베일 기사단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검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달을 보며 붉은 달이라고 하고, 게다가 웃음까지 짓고 있는 것을 보니 딱 미친놈처럼 보였다.

베일 기사단장이 제이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제이크 님.”

제이크는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알고 있다.”

“네에? 아직 말하지도 않았는데…….”

“후훗, 놈들이 움직였겠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이때야말로 움직이기 아주 편한 밤이 아닌가. 게다가 우리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기도 하고…….”

“…….”

제이크의 말에 베일 기사단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눈만 끔뻑거리며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걱정 마라.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니까. 병사들은 이미 광산에 배치해 둔 상태다.”

“그, 그렇습니까?”

베일 기사단장은 깜짝 놀라며 말을 했다. 그리고 제이크가 천천히 고개를 내려 그를 보았다.

“이제 움직여야겠지. 먼저 갈 테니. 성 잘 지켜!”

“네에?”

베일 기사단장은 제이크의 말에 깜짝 놀라며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제이크는 웃음 한 번 보내 주고는 성벽 아래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폴, 필! 가자!”

그것이 다였다. 폴과 필도 제이크의 뒤를 따라 성 벽을 뛰어내렸다. 세 사람은 순식간에 어둠으로 사라져 갔다.

아무리 작은 성이라고 해도 성벽의 높이는 제법 높았다. 그런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 어둠에서 그것도 아무런 장치도 없이 뛰어내렸다.

폴과 필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제이크가 뛰어내리면 그들도 마찬가지로 뛰어내렸다. 베일 기사단장이 성 벽 아래를 보았다.

어둠에 휩싸여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 어떻게 이런 곳에서 뛰어내릴 수 있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렇게 잠깐 동안 멍한 상태가 된 베일 기사단장이 번뜩 정신을 차리고는 성벽을 뛰어다니며 소리쳤다.

“모든 기사와 병사들에게 알려라! 지금 당장 성문의 경계와 성벽의 경계의 인원을 증원시키고 적들이 쳐들어올 것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넵, 단장님!”

병사가 힘차게 대답을 하고는 즉시 계단을 통해 성벽 아래로 뛰어갔다. 그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쉬고 있는 막사로 향했다.

베일 기사단장은 병사의 움직임을 보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지독히도 어두운 밤이다.

“무사히 지켜야 할 텐데…….”

3

휘이이잉―

바람이 분다.

파다다다닥!

어둠을 뚫고 몇 마리의 새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스아아아아.

밤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며 스산한 소음을 낸다.

현재 광산 앞의 공터에는 제이크를 비롯해 폴, 필 그리고 1조의 조장인 바론이 서 있다. 그는 어느새 200명의 총대장 역할을 자처하는 듯 보였다.

광산 주위로 200명의 병사가 잔뜩 긴장한 채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병사들은 침침한 어둠과 고요한 적막 속에 불어오는 밤바람 소리를 들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젠장, 주위 한 번 음침하네.”

“맞아, 어째 오싹한 기분까지 들어.”

병사들이 얘기를 주고받는다. 이들은 모두 음침한 밤기운에 잔뜩 겁을 먹었다. 병사들도 이런 날씨에 경계를 서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바론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바로 앞에 제이크가 서 있는데, 그의 등 뒤로 병사들이 두려움에 떠드는 소리가 왠지 짜증이 났다. 그래서 몸을 홱 돌려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이놈들아, 정신 바짝 차려! 그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어.”

바론의 호통에 병사들은 움찔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하긴 바론이야 오랜 용병 생활로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그의 말을 들어야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여기 있는 병사들은 하고 있었다.

어쨌든 병사들은 조금 전 가졌던 두려움을 잊으려고 애를 섰다. 그 두려움을 창대를 힘차게 고쳐 잡는 것으로 떨쳐 내며 주위를 경계했다.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바론이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정신 줄을 놓고 있어서야…….”

바론은 중얼거리면서도 다소 걱정스런 표정이 되었다. 단, 12일 동안 훈련을 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그도 똑같이 사람이다. 다만 용병 생활을 했다는 것이 이들보다는 조금 더 나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노력했다. 바론은 결심을 하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욱, 후―”

그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바론이 고개를 들자 제이크가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훗!”

제이크와 시선이 마주치자 바론이 움찔했다.

“왜 많이 떨려?”

제이크가 물었다.

“아, 아닙니다.”

바론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런 바론의 행동이 제이크에게는 재미있어 보였다. 그를 불렀다.

“이리 와 봐!”

바론이 제이크에게 다가가서며 아까 병사들에게 소리쳤던 것에 대한 변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괜히 자기가 나섰다고 혼을 내는 것은 아닌지 해서였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그저 다들 긴장한 거 같아서…….”

“잘했어.”

제이크의 의외의 말에 바론의 눈동자가 커졌다. 혹시 자신이 잘못 듣지는 않았는지 귀속을 후볐다. 그런 바론의 행동을 보던 제이크가 말했다.

“얘기할 것이 있다.”

제이크의 물음에 바론이 번뜩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네.”

바론은 다소 주눅이 든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제이크가 광산 입구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확실히 놈들은 오늘 움직일 것이야.”

“알고 있습니다. 조금 전 말씀해 주셨지 않습니까.”

“맞아, 말했지. 어쨌든 잘 봐 두라고, 오늘 같은 날은 정체를 감추기에 아주 좋으니까.”

제이크가 주위를 둘러보며 뜬금없이 말했다. 바론의 시선도 따라 움직이며 중얼거리면서도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몰랐다.

“녀석들도 이런 날을 기다렸던 모양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제이크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이내 바론에게 시선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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