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헬 나이츠 2권 (3화)
Episode 11 라예키르의 최후 (3)
‘이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라예키르는 모든 것을 포기했는지 순순히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말이다. 사실은…….”
“아니 됐어! 너 말고도 물을 자는 많을 테니.”
진실을 말하려 할 때 제이크가 그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제이크가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제이크의 손에서 어둠이 일렁이며 칼날로 변했다. 그와 함께 라예키르의 목을 날려 버렸다.
툭!
라예키르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며 떼구르르 굴렀다. 그의 눈이 채 감지도 못하고 부릅떠져 있는 상태로.
4
라예키르가 죽고 나자 목이 없는 몸체에서 검은 마기가 흘러나왔다. 제이크는 곧바로 두 팔을 벌려 그 마기를 자신의 몸으로 흡수시켰다.
제이크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모든 마기를 흡수한 후 팔을 내렸다.
“쩝, 내가 손해군.”
제이크는 라예키르에게 흡수한 마기가 그리 많지 않아 약간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왜냐하면 헬 나이츠로 변신하고, 키메라를 상대하고, 검은 구름으로 변신해 라예키르를 쫓아온 것은 모두 자신의 마기를 사용한 것이다.
사용한 마기에 비해 흡수한 마기가 턱 없이 부족했기에 제이크가 불만을 가진 것이다.
“어쩔 수 없군. 대지에 있는 마기라도 흡수를 해야지.”
그리 말하고는 옆에 찬 주머니를 열어 붉은 동전을 꺼내었다. 그것을 엄지손가락으로 쳐올렸다. 붉은 동전은 빙그르르 돌며 하늘로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큰 원과 그 안에 작은 원 하나, 그 안에 어긋난 두 개의 사각형이 엉켜 마치 별 모양으로 새겨졌다. 그리고 별 모양 안에는 이상한 문자들이 배열되었다.
마법진이 그려지자 하늘로 올라갔던 붉은 동전이 떨어져 데구르르 구르며 중앙에 멈추었다. 그 순간 마법진이 빛을 내며 활성화가 되었다.
게다가 활성화된 마법진에 시뻘건 눈이 나타났다. 제이크는 그것을 바라보고는 그 안으로 들어가 섰다. 눈을 감으며 두 손을 펼쳤다.
제이크의 몸이 마치 부풀어 오르듯이 요란하게 펄럭였다. 그 원을 따라 제이크가 뿜어냈던 마기가 서서히 모여들어 이마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한참을 그 자세로 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몇 분이 흐르고 마법진의 활성화가 점점 누그러졌다. 이윽고 마법진이 사라졌고, 눈을 감고 있던 제이크가 천천히 떴다.
“사람 사는 곳이라 좋긴 한데…….”
제이크 중얼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붉은 동전을 집었다.
“역시 번거로워.”
붉은 동전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는 입맛을 다셨다. 그 뒤로 마기를 흡수당한 라예키르의 몸은 이미 검은 재가 되어 바람에 날아갔다.
그때 달빛을 가리고 있던 어둠이 서서히 걷혔다. 그 어둠에 사라졌던 달빛이 드러나며 제이크를 비추었다.
“멋진 달이군!”
그 한마디를 하고는 제이크가 광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pisode 12 어둠이 걷히고…… (1)
1
동쪽 하늘이 붉게 변하며 아침 해가 떠올랐다. 광산 입구를 지키고 있던 폴과 필은 따분한 하품을 짓는다.
“아함! 따분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그 순간 익숙한 냄새가 새벽바람을 타고 광산 쪽으로 불어온다. 폴과 필은 동시에 코를 벌렁거린다.
“킁킁! 이 냄새는?”
폴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곧바로 필도 폴을 보며 물었다.
“너도 맡았지?”
폴이 고개를 끄덕인다. 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폴, 가자!”
그러자 폴이 필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어디를 가? 도련님이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말라고 했어.”
“너도 냄새 맡았잖아. 이건 분명 어제 낮에 맡았던 키메라의 냄새야! 아주 진동을 하는구만.”
“나도 맡아서 알아. 하지만 우린 이곳을 지켜야 해!”
폴이 필을 말렸다. 하지만 필은 폴의 팔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쳇! 그럼 너 혼자 지켜. 난 지겨워서 더 이상 못 있겠다.”
“야, 필!”
폴이 필을 부르며 말려 보지만 이미 필은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 광산 입구에서 필이 우뚝 멈춰서며 앞을 응시했다. 폴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광산 입구를 주시했다.
잠시 후 그곳으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바로 제이크였다. 그를 발견한 폴과 필의 얼굴이 무척이나 밝아졌다. 그리고 제이크를 부르며 달려갔다.
“도련님!”
“이제 오십니까.”
제이크를 발견한 필이 폴짝폴짝 기쁨을 나타내며 먼저 도착을 하고 곧바로 폴이 나타났다. 제이크는 폴과 필을 보며 말했다.
“잘 지키고 있었어?”
“넵!”
두 사람은 동시에 힘차게 대답했다. 제이크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순간 폴과 필이 제이크의 몸 주위를 코로 벌렁거리며 맡는다.
“킁킁. 이게 뭐야.”
“도련님 키메라와 한판 붙으셨습니까?”
필이 냄새를 맡고는 인상을 썼다. 폴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다.”
제이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필이 팔짱을 끼며 잔뜩 불만 어린 얼굴로 말했다.
“뭐야, 또 혼자서만 재미를 본 거예요?”
“쳇, 못됐습니다.”
폴도 약간 불만 어린 얼굴로 답했다. 그들의 모습에 제이크는 피식 웃음을 띠우며 폴과 필의 뒤통수를 가볍게 툭 쳤다.
“이놈들아, 혼자서만 재미를 보다니. 내가 오기 전에 녀석들을 먼저 처리했어야지. 종복들이 느려 터지니까 내가 고생하는 거 아니야.”
그들의 뒤통수를 때렸지만 세지는 않았다. 폴과 필도 가볍게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여전히 투덜거렸다.
“쳇, 그래도 혼자서만 재미 보고 괜히 저래.”
“도련님. 저희는 이곳을 지키느라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알고 있어. 나도 너희들을 만나러 오는 길에 키메라가 나타나 어쩔 수 없었다.”
제이크가 변명을 하며 말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쉽사리 누그러지지 않는 듯했다. 제이크는 피식 웃었다.
“어쨌든 이곳을 지키느라 고생했다. 별일은 없었지?”
“제발 별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필이 말했다.
“그럼 별일 없었다는 것이네.”
제이크가 말했다. 그러자 곧바로 폴이 답변했다.
“어제 그 이후로는 한 놈도 이곳에 들어서지 않았습니다. 필이 무척이나 지루해 했습니다.”
“엥? 왜 나만 지루해? 너고 그랬잖아.”
필이 억울한 듯 폴을 째려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난 끝까지 자리를 지켰어. 도련님의 명령을 지켰다고.”
폴이 익살맞은 얼굴로 말했다. 필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무, 뭐야? 너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내가 뭘?”
두 사람은 또다시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있던 제이크가 인상을 찡그렸다.
“됐어! 그만!”
제이크의 한 마디에 폴과 필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으르렁거리고 있다.
“어쨌든 녀석들을 쫓아낸 후 아무 일 없었다면 된 거야. 고생했어. 아침도 되었으니까, 밥 먹으러 가자!”
그 말을 듣는 순간 폴과 필의 얼굴이 밝아졌다. 조금 전 가졌던 불만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게다가 언제 싸웠냐는 듯 두 사람도 어린애마냥 좋아한다.
“밥?”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제이크가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고, 그 뒤로 히죽히죽 웃으며 따라 내려가는 폴과 필이었다.
2
채플 백작가의 집무실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채플 백작이 나와 있었다. 그는 집무실을 뒷짐을 진 채 안절부절못하며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초조함으로 가득했다.
로이 남작도 초조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에이! 왜 이렇게 소식이 늦어.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빨리 보고 하지도 않고 말이야.”
“곧 소식이 당도할 것입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로이 남작이 채근하는 채플 백작을 달래보지만 쉽지 않다.
“지금 내가 참고 기다릴 시간이 어디 있나!”
“하지만 라예키르 님이 떠나신 지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늦어도 오늘 저녁이나 소식이 들려올 것입니다.”
“오늘 저녁?”
로이 남작의 말에 채플 백작의 눈이 치켜 올라갔다. 그러다가 이내 손이 두툼한 턱으로 가져갔다.
“설마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
채플 백작이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로이 남작이 곧바로 답했다.
“절대로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라예키르 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6클래스의 흑마법사입니다. 절대 잘못되실 분이 아닙니다.”
“그렇지?”
로이 남작의 말에 채플 백작도 인정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 라예키르가 절대 실패할 리 없지. 암!”
하지만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채플 백작은 참지 못하겠는지 로이 남작을 보며 소리쳤다.
“에이, 그래도 못 참겠다. 지금 당장 빠른 놈을 불러 광산으로 보내 소식을 알아보게 해.”
“아, 알겠습니다.”
로이 남작이 인사를 하고는 집무실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가 나가고 초조한 얼굴로 채플 백작이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불안한 것이지.”
한편 보일란 성에 주둔하고 있는 기사들도 분주히 움직이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이린도 간단히 세면을 하고는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식탁에는 간단한 빵과 함께 스튜가 있었다. 또한 꿀을 살짝 바른 애플파이도 함께 있었고, 방금 막 짜서 가져왔는지 신선한 우유도 유리병에 가득 담겨 있었다.
그곳에 네빌 집사가 하녀들에게 일일이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어서 서둘러라. 그건 저기 놓고.”
음식들이 다 나오자 네빌 집사는 식탁을 쭈욱 훑었다. 아침 식사로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감을 나타내었다. 그때 아이린의 음성이 들려왔다.
“와, 아침부터 푸짐하네요.”
“앗! 아가씨 벌써 나오셨습니까.”
“네, 집사님도 안녕히 주무셨어요.”
“네. 이곳으로 와서 앉으시지요.”
네빌 집사가 밝게 웃으며 대답을 한 후 상석으로 아이린을 안내했다. 자리에 앉은 아이린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제이크 님은 아직 안 오셨네요.”
“그러게요. 벌써 내려올 시간이 되었는데…….”
네빌 집사도 걱정스럽게 말을 하며 식당 문으로 시선을 두었다. 아이린이 말했다.
“우선 오실 때까지 기다리죠.”
“제가 한 번 올라가 볼까요?”
“아뇨, 곧 내려오시겠죠.”
아이린이 말렸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지 꼬박 30분이 흘려서야 제이크가 식당 문을 열며 나타났다. 그 뒤로 폴과 필도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린은 폴과 필은 보지 않고 제이크를 응시하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응? 아, 미안. 이놈들을 데려오느라.”
제이크가 폴과 필을 가리키며 말하자 두 사람이 손을 흔들었다.
“저희들 왔습니다.”
폴이 말했다. 곧바로 필도 나섰다.
“예쁜 대리자작님 저도 왔어요.”
두 사람의 모습에 아이린의 얼굴이 환해졌다. 저들이 무사하다는 것은 광산 또한 무사하다는 것이었다.
“광산은요?”
아이린이 곧바로 물었다.
“일단 밥부터 먹고.”
제이크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아이린이 깜짝 놀랐다.
“아, 내 정신 좀 봐. 시장하실 텐데 어서 들어요.”
그때 네빌 집사가 제이크에게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