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헬 나이츠 2권 (2화)
Episode 11 라예키르의 최후 (2)
라예키르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모든 키메라를 내보내며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총 열 마리의 키메라는 울음을 터뜨리며 제이크에게 달려들었다.
“이때다!”
라예키르는 아픈 몸인데도 신속히 몸을 움직였다. 뒤는 절대 돌아보지 않는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도망칠 뿐이다.
그의 귓가로 자신이 소환한 키메라의 울음소리와 헬 나이츠로 변한 제이크의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녀, 녀석들이 막아 줄 것이다. 그때까지 난 최대한 도망을 쳐야 한다. 아니, 스승님께 도움을 청해야 해.”
라예키르는 이를 악물며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라예키르가 도망가는 사이 그가 불러낸 키메라는 제이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키메라들의 날카로운 발톱이 제이크의 몸을 사정없이 때리고 지나갔다.
제이크의 몸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땅을 딛고 있는 그의 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키메라가 할퀴고 지나간 갑옷은 뿌연 연기만 흐르고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제이크도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은 듯 보였다. 그 사이 키메라들은 제이크를 에워쌌다.
크르르릉!
캬캬캬캬!
키메라들이 내뱉는 괴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그 중앙에 선 제이크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의 눈이 번뜩이며 마계의 생물인 키메라를 응시했다.
“재미있는 놈들을 내보냈군.”
제이크는 도망간 라예키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어차피 제이크의 손아귀에 있다. 키메라 따위로 자신을 막으려고 했겠지만 제이크에게는 소용이 없다.
하나 여기 있는 인간들에게는 엄청난 존재이다. 기사들 백 명이 달려들어도 상대하기 힘든 존재가 바로 키메라였다. 한 번 발톱을 휘두를 때마다 육중한 거목이 한 번에 부러진다. 그 힘 하며 날카로운 이빨은 모든 육신을 찢어발겼다.
하지만 마계의 열두 군단장 중의 하나인 헬 나이츠 제이크에게는 한낱 귀여운 장난감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마계에 있을 때 수도 없이 녀석들을 상대했다.
검과 주먹 한 방에 놈의 몸통을 가리고 가슴을 꿰뚫어 심장을 꺼내었다. 한낱 마물들의 합성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움직이는 심장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시간을 지체한다면 놈을 놓치고 말 것이다.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한다.
할짝.
제이크는 새빨간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간다. 그 사이 키메라들도 한 번의 공격으로 앞에 선 인물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듯 보였다.
그래서 섣불리 공격도 하지 않는다. 그저 제이크의 주위만 빙글빙글 돌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하지만 먼저 움직인 쪽은 제이크였다.
스삿―
그가 있던 자리에 바람이 일렁이며 모습이 감춰졌다. 먹잇감을 놓친 키메라들은 빠르게 제이크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는 사이 제이크는 어느 한 마리의 키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제이크를 발견한 키메라가 놀란 얼굴로 두 발을 들려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말을 듣지 않는다. 오히려 몸이 딱딱하기 경직되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제이크의 눈을 보았다면 이해할 수 있다. 제이크의 눈은 검은 눈동자로 뒤덮인 채 키메라를 응시했다.
그 눈동자를 쳐다본 순간부터 키메라는 모든 움직임이 차단되었다. 움직일 수 없다. 아니, 움직이려 애를 쓰지만 하지 못한다.
그 사이 제이크의 왼손이 들려졌다. 번쩍하며 정확히 키메라의 왼쪽 가슴을 파고들어 간다.
푸욱!
두꺼운 근육을 뚫으며 파고들어 간 왼손이 서서히 빠져나왔다. 그의 손에는 키메라의 큼직한 심장이 들려 있다. 막 꺼내서 그런지 아직까지 벌렁벌렁 뛰고 있다.
꽈직!
왼손에 힘을 주자 속절없이 터져 버리며 사방으로 튀었다. 제이크의 입술 바로 옆에도 피가 튀자 그것을 혀로 핥는다. 앞에 있던 키메라는 이미 심장이 뚫린 채 쓰러졌다.
제이크는 키메라와의 싸우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검으로 베어도 금방 재생을 한다. 그래서 아예 불꽃으로 태워 버리던가 아니면 심장을 꺼내 박살 내어 버리면 끝이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이런 키메라를 상대로 마계의 불꽃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작 이따위 마물들에게는 말이다.
우선 한 마리의 키메라가 쓰러지고 나머지 키메라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미 사라진 제이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 또 다른 키메라의 등 뒤로 모습을 드러낸 제이크.
살짝 몸을 띄운 후 그대로 떨어지며 검의 면으로 등을 가격했다.
빠아악!
키메라의 등이 아작 났다. 단번에 척추가 으스러지고 근육이 찢겨 나갔다.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가슴 앞으로 허연 뼈들이 뚫고 나왔다.
크아아앙!
키메라는 눈을 희번득 뜨며 괴성을 질렀다. 처참하게 흩뿌려지는 시뻘건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제이크는 등 뒤에서 여지없이 검을 찔러 넣었다. 정확히 심장을 겨냥했다.
푸욱!
그 한 번의 공격으로 키메라는 여지없이 즉사했다. 제이크는 또다시 몸을 날려 다른 녀석들을 차례대로 상대했다. 키메라들은 제이크의 모습 한 번 보지 못하고 심장이 뚫린 채 죽어 갔다.
쿵!
마지막 열 마리째 키메라가 심장이 뚫린 채 힘없이 무너졌다. 그 키메라의 등 뒤로 제이크가 서 있다. 그는 심장을 뚫은 자신의 왼손을 바라봤다. 붉게 뒤덮은 피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것을 혀로 한 번 핥았다.
“크흐흐흣.”
악마 같은 웃음을 흘린 제이크가 라예키르가 도망친 곳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 순간 제이크의 몸이 어둠이 되며 사라져 갔다.
“헉, 헉! 살아야 해. 어서 도망쳐야 해.”
라예키르는 죽기 살기로 온 힘을 다해 달려갔다. 자신의 앞을 막는 수풀은 소용이 없다. 손을 휙휙 저으며 무조건 앞으로 내달렸다.
지금 그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기에 어서 빨리 도망을 쳐야 했다.
“조금만 가면 된다. 조금만…….”
라예키르가 만일을 대비해 숲 속 깊은 곳에 마법진을 그려 놓았다. 그것은 곧장 자신의 동굴로 이어지는 마법진이었다. 그곳에 가면 우선은 살 수 있다. 그리고 스승에게 보고를 한다면 분명 놈을 처리할 방법이 있는 것이다.
“이제 다 왔다.”
점점 자신이 그려 놓은 마법진 근처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그를 쫓듯 시커먼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것을 힐끔 쳐다봤다. 분명 인위적인 어둠이다. 그리고 그 어둠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꼈다.
“제엔장!”
욕이 튀어나왔다.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조금만 더 가면 마법진이 있는 곳인데. 그는 점점 절망 속에 빠져들었다. 이대로 놈에게 잡힐 것만 같다.
어느새 시커먼 어둠이 라예키르를 앞질렀다. 라예키르는 달리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미 시커먼 어둠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허, 헉! 빌어먹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때 시커먼 어둠 속에서 제이크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딜 그렇게 가시나.”
그 말과 함께 시커먼 어둠이 사라지며 그 속에서 제이크가 걸어 나왔다.
3
“헉! 어느새!”
라예키르는 놀란 눈으로 응시했다. 제이크는 비릿한 웃음 띠며 서 있다.
“나에게 얘기는 해 주고 갔어야지.”
“이런 젠장!”
욕을 내뱉으며 속으로 키메라를 불렀다. 다시 한 번 키메라가 나서서 시간을 벌어 준다면 도망칠 방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제이크의 등 뒤에 있는 마법진까지만 가면 끝이었다. 하지만 라예키르의 부름에도 키메라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속으로 불렀다.
‘나와라! 제바알!’
간절히 불렀지만 역시나 응답이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모두 죽었다는 의미다. 라예키르의 얼굴이 급속도록 어두워졌다.
‘끝났구나.’
라예키르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와 함께 낭패감이 밀려왔다. 그것을 눈치챈 제이크가 히죽 웃는다.
“그 녀석들을 부르는 것인가? 이거 어쩌나 날 막으려고 한 것 같은데 이미 내 손에 전부 죽었거든.”
라예키르는 인상을 찡그렸다.
“가, 감히 네 녀석이. 받아랏!”
재빨리 손을 들어 파란 불꽃을 던졌다. 이것은 죽은 키메라의 복수도 아니었다. 자신이 살고자, 의미 없이 날린 불꽃이다.
펑! 펑!
파란 불꽃은 여지없이 제이크의 몸을 강타했다. 불꽃이 사라지자 제이크의 모습이 나타났다. 전혀 피해를 입은 것 같지 않았다.
하긴 6클래스의 블러드 헬의 마법을 당하고도 멀쩡했는데 고작 이것으로 제이크에게 피해를 줄 것인가. 하지만 라예키르는 마지막 발악을 할 요량으로 던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소용이 없었다.
“아직까지 발악을 할 셈인가?”
“이익!”
제이크의 말에 라예키르가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 제이크의 몸이 갑자기 앞으로 쭈욱 밀려왔다. 그와 동시에 라예키르의 배에 강한 충격이 전해지며 뒤로 날아갔다.
퍽!
“윽!”
단말의 비명과 함께 뒤로 멀리 날아간 라예키르는 바닥을 뒹굴었다. 그의 배에 제이크의 발이 꽂힌 것이다. 창자가 뒤틀리며 끊어질 것처럼 고통스럽다.
그 고통이 너무나도 큰 나머지 신음 소리마저 나오지 않는다. 입을 벌린 채 꽉 막혀 버린 숨을 내쉬기 위해 애를 썼다.
“켁켁켁!”
갑자기 숨이 터졌다. 잔뜩 배를 감싼 채 바닥에 엎드렸다. 잠시 후 배에서 입으로 뭔가 올라왔다.
“우엑! 콜록콜록!”
피와 함께 섞인 위액이 솟구치며 나왔다.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배를 감싼 채 잔뜩 인상을 찡그린 라예키르가 고개를 들었다.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는 제이크가 있다.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하다. 비록 키메라이긴 하지만 그 녀석들과 살육을 즐겼을 것이다. 그런데 마치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다. 게다가 그 모습이 조금 기괴했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헬 나이츠들은 각 마왕들의 기운을 하나씩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격이 포악해서 피를 마시고 살육을 즐긴다고 했다.
하지만 앞에 서 있는 제이크는 달랐다.
‘설마… 헬 나이츠가 아닌 것인가?’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떠나서 살짝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입고 있는 홍염의 갑옷과 빠른 시간에 키메라를 처리하는 무력. 분명 헬 나이츠가 맞는 듯했다. 그런데 왜 이자는 다른 헬 나이츠와 다르지?
이런 의문들로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다. 게다가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라예기르의 두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며 고민하고 있을 때 제이크의 음성이 들려왔다.
“땅을 엉망으로 만들어 놨더군.”
“……?”
라예키르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의문의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확신을 가지고 물어보는 말이었다.
“무, 무슨 말이냐?”
라예키르가 모르는 척 되물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직접적으로 다시 물었다.
“누구 짓이지?”
확신에 찬 음성과 눈빛에 라예키르는 이미 녀석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절대 스승님의 이름을 댈 수는 없었다. 그는 그 과정에서도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래서 스승님의 라이벌이었던 그자를 떠올렸다.
“이, 이그나탈.”
눈알을 굴리며 힘없이 대답을 했다. 제이크는 그런 라예키르의 눈동자를 놓치지 않았다. 딱 봐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흥! 날 물로 보는군.”
“무, 무슨 말인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러자 제이크의 몸에서 검은 마기가 흘러 나왔다.
“그 따위 거짓말로 나를 기만할 셈이냐?”
“거, 거짓말이라니. 사실이다.”
“훗, 아직도 여유를 부리는군.”
제이크가 차가운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 모습에 라예키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