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헬 나이츠 1권 (24화)
Episode 09 불순한 움직임(2)
3
쏴아아악―
바람이 분다. 숲속의 나무들이 흔들리며 스산한 소리를 낸다. 어제까지 활기를 띠던 광산은 이제 아무도 존재하지 않은 광산으로 변했다.
어둠이 찾아왔다. 낮의 광산도 무척이나 을씨년스럽지만, 오히려 밤이 더 그렇다. 하지만 폴과 필에게는 아무렇지 않다.
두 사람은 광산 입구에 턱하니 앉아 있다. 그리고 멍하니 숲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킁킁, 이거 무슨 냄새지?”
폴이 코를 벌렁거리며 말했다. 필도 바람에 실려 오는 냄새에 눈빛을 반짝인다.
“그러게 익숙한 냄새인데?”
폴과 필은 숲속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냄새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숲속에서 이상한 물체가 툭 튀어나왔다. 이상한 물체인 것은 확실한데 그 모습이 몹시 괴기스러웠다.
크아앙―
맹수의 모습을 하고 있는 물체의 몸은 표범과 같았고, 등에는 날개가 달려 있었다. 덩치는 무려 2미터나 되는 엄청난 크기였다.
그것을 발견한 폴과 필은 동시에 놀라며 소리쳤다.
“키메라!”
라예키르는 숲속에 몸을 감춘 채 자신이 소환한 키메라를 광산 쪽으로 보냈다. 두 녀석의 실력과 무엇보다 저들도 자신과 같은 흑마법사인지 확인할 필요도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은 감춘 채 키메라를 소환해 먼저 보낸 것이다.
“싸워 보면 분명 알겠지.”
라예키르는 가장 큰 나무 위에 몸을 숨긴 채 상황을 주시했다.
필과 폴은 나타난 키메라를 보며 놀라면서도 반가운 눈빛이 되었다. 저 키메라는 폴과 필이 마계에 있을 때 자주 보았던 동물이었다.
저들과도 자주 싸움을 펼쳤다. 힘이 무지 세며, 날렵하고, 하늘까지 날 수 있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폴과 필은 저 키메라는 몹시도 좋아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키메라는 애완동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 녀석이 왜 이곳에 있지?”
폴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자 필이 이상한 느낌을 감지했는지 급히 말했다.
“폴, 녀석의 눈빛이 심상치 않는데.”
“엥? 그러게. 저 녀석 우리를 공격할 모양인데.”
“어떻게 하지?”
필이 물었다. 제이크의 지시는 채플 백작가의 사람들을 절대 광산에 들여놓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타난 것은 키메라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폴과 필이 잠시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 저 멀리 떨어져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던 키메라가 몸을 날렸다.
한순간에 폴과 필이 있는 곁으로 다가와서는 뾰족하게 솟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두 사람을 공격했다.
“어어!”
“임마, 이러지 마!”
폴과 필은 깜짝 놀라며 동시에 피했다. 하지만 워낙에 갑작스런 공격에 그만 폴의 가슴이 할퀴고 말았다.
“아야야야!”
폴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아픔을 느꼈다. 헬 솔져로 변신할 시간도 없었다. 필이 곧장 폴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많이 아파?”
“알면서 왜 물어?”
크아아앙!
키메라가 또다시 방향을 틀어 공격해 왔다. 이번에는 양발을 이용해 폴과 필을 동시에 공격했다.
“피해!”
“우씨!”
폴과 필이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날렸다. 그곳으로 키메라의 두 발이 땅을 때렸다.
콰쾅!
바닥이 파헤쳐지며 돌가루가 하늘로 비상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은 키메라가 재차 움직이며 폴과 필이 피한 방향으로 또다시 날려 공격을 감행했다.
폴과 필은 키메라의 공격에 몸이 점점 망신창이로 변했다. 물어 뜯기고 할퀴고 몸통에 부딪쳐 멀리 날아가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폴과 필은 녀석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젠장, 무진장 아프네.”
폴이 잔뜩 인상을 구기며 상처 난 부위를 살폈다. 필 또한 마찬가지다.
“나도 그래. 상처가 아물 시간도 없어.”
“그보다 이 녀석을 어쩌지?”
폴이 급히 물었다. 그러자 필도 난감한지 확실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겠다. 도련님이 광산에 백작가 놈들은 절대 얼씬도 못하게 하라고 했잖아.”
“그래, 근데 저놈은 백작가 놈이야?”
“그건 나도 모르지.”
키메라의 공격을 피해 가며 두 사람이 나눈 대화다. 스스로 공격을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마냥 이대로 피해야 하는지 확실치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폴과 필의 몸의 상처는 더욱 늘어가기만 했다. 그래도 깊은 상처는 입지 않은 모양이었다. 발톱에 할퀸 상처는 곧바로 상처가 아물었기 때문이다.
“야, 이대로 가다가는 몸이 남아나지 않겠다.”
“그래도 도련님이 함부로 헬 솔져가 되지 말라고 했잖아.”
“우씨, 그럼 어떻게 해?”
“그냥 이대로 녀석의 공격을 피하며 견뎌 봐야지.”
폴의 말에 필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쩝, 헬 솔져로 변하면 한 주먹감도 안 되는 놈인데 피하기만 해야 하다니. 맘에 안 들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도련님의 명령은 절대적이야.”
“쳇!”
폴과 필이 투덜거려 보지만 그들은 섣불리 제이크의 명령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 어떤 결과가 따라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사람에 있어서 키메라의 존재는 그리 큰 존재가 아니었다. 자신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지도 않을 뿐더러, 상처가 생겨도 금방 아물기 때문에 위험한 녀석이 아니었다.
어쨌든 외로운 밤이었는데 놀 상대가 생겨서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폴과 필은 열심히 키메라를 상대했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라예키르는 제대로 된 공격도 하지 않고, 그저 피하는 녀석들의 모습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녀석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장난스러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 뭐지? 키메라를 마치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건가?”
폴과 필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이러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녀석 다 본 실력을 드러내지 않아서인지 여기저기 많이 다치고 있었다. 그런데도 피가 금방 멎고 상처가 빨리 아물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라예키르의 표정은 매우 심각해졌다.
“흑마법사가 아닌 것은 확실한데……. 그래도 저 두 녀석이 보통 녀석들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어.”
혼자 독백을 하며 상황을 살폈다. 하지만 인간이 키메라를 상대로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이 저런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다.
같은 마계에서 온 존재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 생각에 미치자 라예키르의 눈빛이 반짝였다.
“서, 설마 저 녀석들도 키메라와 같은 소환물인가?”
라예키르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출 수가 없었다. 저토록 인간에 가까운 완벽한 존재의 소환물을 소환할 수 있는 흑마법사라면 엄청난 인물이 분명할 것이다. 그 생각에 미치자 라예키르는 더 이상 놈들에 대해서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같은 소환물이라면 더욱더 말이다. 생각을 정리한 라예키르가 고개를 동쪽으로 돌렸다. 어느새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더 이상 확인할 필요는 없겠군. 녀석들이 소환물이라면 분명 그 주인도 있을 터.”
생각을 마친 라예키르가 손을 들어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한참 싸움을 벌이고 있는 키메라에게 소리쳤다.
“돌아가라!”
그 순간 키메라의 행동이 멈추었고, 녀석의 발밑에 검은 육망성이 생성되며 안으로 사라졌다. 폴과 필은 녀석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멍하니 섰다.
“뭐야?”
“갑자기 사라지네?”
“한참 재미있었는데.”
폴이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필도 마찬가지지만 그의 눈빛은 매우 어두워 보였다.
“역시 소환된 키메라였네. 도련님이 오시면 말해야겠다.”
필은 폴과 달리 어느 정도 냉철했다.
그 사이 키메라를 다시 돌려보낸 라예키르는 두 사람은 다시 보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저 정도의 소환물을 소환할 수 있는 존재는…….”
잠시 깊이 생각을 하던 그때 라예키르의 눈빛이 강하게 빛을 발했다.
“서, 설마. 이그나탈이 나선 것인가?”
라예키르는 자신의 입으로 말을 하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때 대륙을 흔들었던 두 명의 흑마법사 중 하나였던 이그나탈. 그의 이름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이는 같은 흑마법사인 라예키르에게는 엄청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Episode 10 헬 나이츠 (1)
1
광산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일란 성을 거쳐 산맥 뒤쪽에 난 숲을 통과해야 한다. 다른 광산으로 가기 위해서도 꼭 이 숲을 통해 들어가야 했다.
산맥이 워낙에 험준하다 보니 입구가 딱 한 군데뿐이었다. 그래서 보일란 성이 그곳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숲 입구에 검은 로브와 후드를 쓴 라예키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잠시 보일란 성을 바라보고는 이내 몸을 돌려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적당한 자리를 물색한 그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라예키르는 폴과 필을 보며 확신을 했다. 그들이 소환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두 명이 광산을 지키고 있는 것이면 분명 그들을 소환한 주인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라예키르는 이곳에 함정을 파서 그 주인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주인이 이그나탈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대륙에서 전설로만 전해져 오는 흑마법사. 그가 나타났다면 자신도 쉽게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라면, 정면 승부로는 절대로 안 된다.”
정면 승부를 피하고 숲 입구 곳곳에 함정을 설치해 녀석을 죽일 생각인 것이다. 그가 오기 전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다.
라예키르는 아공간을 열어 그곳에서 마나석을 꺼냈다. 검은 마기가 꽉 찬 마나석을 수십 개를 꺼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길 중앙으로 나섰다.
그곳에 마법진을 그렸다. 다 그린 마법진 중앙에 마나석을 하나하나 꽂았다. 그러자 마법진이 빛을 내며 마나석을 삼켜 버리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마나석을 삼킨 마법진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라예키르는 흡족한 얼굴이 된 채 몸을 돌렸다. 또 다른 곳에 똑같은 마법진을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몇 개의 마법진을 더 그리고 난 후 라예키르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손으로 후드 안에 있는 얼굴을 닦았다. 그만큼 힘든 작업이었다.
“과연 이것으로 그를 막을 수 있을까?”
라예키르는 초조한 듯 말을 내뱉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자.”
힘겹게 대답을 하고는 또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키메라를 소환해 숲 중간중간에 배치해 두었다. 폴과 필을 공격했던 녀석인데 한 마리가 아닌 열 마리를 한꺼번에 소환하였다.
크르르릉!
낮게 울음을 울리던 키메라는 라예키르의 지시로 숲에 모습을 감추며 대기하였다.
거의 모든 준비를 마친 라예키르는 이제 녀석들의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들었다.
“이그나탈이 아니길 바랄 수밖에. 그렇다고 이그나탈이 나타났다는 것을 스승님이나, 제자들에게까지 말할 수는 없어. 이건 나 혼자 처리해야 해.”
라예키르는 이 말을 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어찌 보면 이것도 하나의 경쟁과도 같았다. 스승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이번 기회에 스승님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제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 전설의 흑마법사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을 아예 허용치 않기 위해서다.
이 모든 것이 흑마법사가 가진 자존심이었다. 스승에게도 그렇고, 제자들에게도 그렇다. 물론 라예키르가 이그나탈을 처리한다면 스승과 거의 동급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제자들에게는 큰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다른 경우라면? 라예키르가 이곳에서 진다면?
“아니야. 그런 부정적인 생각은 접자. 오직 승리만 생각을 하자.”
라예키르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내 힘으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해.”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한 후 다시 한 번 함정과 키메라의 배치를 살폈다.
이제 모든 것은 준비가 되었다. 이제 그 자만 나타나면 끝이었다. 라예키르는 어둠속에 모습을 감춘 후 그가 나타나기를 초조하기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