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16화 (16/125)

# 16

헬 나이츠 1권 (16화)

Episode 05 살림에 보태시오 (3)

“흠, 흠. 죄송합니다. 제가 추태를 보였습니다.”

“아니에요.”

아이린이 조용히 말했다. 그러자 네빌 집사가 말했다.

“제이크 님이 마음에 걸리신다면 이건 처분하지 않는 것이 어떨까요?”

“네?”

“사실 루시의 이슬이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원래 가치에 50배나 넘는 가격에 거래되었습니다. 듣기론 지금 더 가치가 올라갔다고 봐야 하죠.”

“그래요? 그럼 얼마 정도…….”

“원래 두 개를 합한 가치가 대략 5만 골드 정도였습니다. 그럼 한 개에 2만5천 골드의 가치인데 15년 전에 거래된 루시의 이슬은 그 당시 75만 골드에 거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루시의 이슬보다 미라젠의 눈물이 더 희소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딱 한 번 모습을 드러낸 후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럼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걸 처분하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고, 게다가 다른 물건들도 상당히 고가이니 이것들만 처분해도 빚을 갚는데 충분할 것 같습니다.”

네빌 집사는 차분하게 말을 한 후 미라젠의 눈물을 소중히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다른 것을 살펴보았다. 아직 상자 안에는 수많은 보석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네빌 집사가 하나하나 꺼내며 말했다.

“이 귀걸이는 블루사피아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또 이 반지는 루바, 에머럴, 디몬드 등이군요. 그 외 백금으로 만든 것과 순금, 은으로 만든 것 하나하나가 매우 귀한 것이며 고가에 팔릴 것 같습니다. 급하게 처분한다고 해도 이것을 다 판다면 대략 100만 골드는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네빌 집사는 차분했다. 처음부터 아주 귀한 물건을 보았기에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보였다. 하지만 하나하나가 매우 귀한 것이라 아주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네빌 집사의 말을 들은 아이린이 말했다.

“급하게 판다고 해서 싼값에는 팔지 마세요. 다 제값 받고 팔아야 해요. 제이크 님의 어머님 유품인데 싸게 처분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제이크 님은 이걸 우리에게 투자했으니 원래 가치대로 파는 게 옳아요.”

아이린의 말을 들은 네빌 집사는 진중한 얼굴로 대답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 말을 하며 상자 안에서 금으로 만든 여인상을 꺼내었다.

“그래도 급한 불은 꺼야 하니 이것부터 처리하겠습니다. 금이라면 환장하는 벨란 상단에게 넘기면 나쁘지 않게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세요.”

“네, 아가씨.”

네빌 집사는 대답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고 아이린은 미라젠의 눈물을 손에 쥐었다. 그녀는 그것을 바라보며 슬픈 표정이 되었다.

“이것만은…….”

낮은 한숨을 내쉬던 그녀가 그것을 들고 조용히 일어섰다. 책상 뒤쪽으로 간 아이린은 휘장을 걷어내자 그곳에 비밀 금고가 나타났다. 비밀 금고를 연 그녀는 검은 상자를 열어 미라젠의 눈물을 그 안에 넣었다.

“상황을 봐서 나중에 돌려 드리자.”

낮게 말을 한 후 다시 비밀 금고를 닫았다. 휘장을 다시 원위치하자 아무것도 없는 모습이 되었다. 아이린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다시 상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상자의 뚜껑을 닫은 그녀는 그것을 들고 다른 금고에 넣었다. 이것만 있다면 이제 그들에게 어떤 수모도 치욕도 받지 않아도 된다. 하물며 에페로 자작가문을 다시 일으킬 수 있게 될 것이다.

3

그날 저녁.

제이크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문을 열자 곧바로 네빌 집사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제이크 님.”

“어? 어어.”

그의 환송에 제이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네빌 집사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잔뜩 머금었다. 식당의 상석에 이미 아이린이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도 제이크를 발견하고는 환한 얼굴로 말했다.

“이리 와서 앉으세요. 음식 식겠어요.”

“아, 알았어.”

제이크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대답을 하고는 아이린 옆으로 가서 앉았다. 식탁 위에는 갖가지 음식들이 즐비했다. 평소에도 그리 나쁘지 않았던 음식들이 올라왔는데 특히 오늘 저녁은 더 좋았다.

꿀과 향신료를 곁들인 말 고기와 한눈에 보아도 값비싼 와인, 새끼 돼지의 내장을 뺀 채 그대로 구운 통돼지 구이, 김이 무럭무럭 나는 스테이크에 커다란 소시지 덩어리, 과일, 스튜, 파이 등등. 온갖 음식들이 식탁 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제이크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때 네빌 집사가 그의 곁에 다가왔다.

“차린 것은 변변치 않지만 많이 드십시오.”

“으, 으응.”

평소보다 더 공손해진 집사의 말에 제이크가 얼떨결에 대답을 했다. 그 모습에 아이린이 나직이 말했다.

“손님으로 계시는데 제가 그동안 바빠 제대로 된 음식을 제공하지 못했네요. 미안해요.”

“아니야.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는데.”

그러자 네빌 집사가 즉시 끼어들었다.

“아닙니다. 파티라도 해야 하는데 사정상 그러지 못해 안타까울 뿐입니다.”

오늘 따라 네빌 집사는 입에 바른 소리를 계속했다. 제이크가 그를 힐끔 쳐다봤다. 네빌 집사가 움찔했지만 이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음식이 맘에 들지 않습니까? 다른 것을 더 준비해서 올리라고 하겠습니다.”

“됐어. 이거 다 먹지도 못해.”

제이크가 제지했다. 그는 네빌 집사가 이러는 이유를 알았다. 어젯밤 투자(?)한 그것 때문일 것이다. 하긴 빚을 갚을 돈도 있겠다. 그 장본인이 제이크라면 이 정도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제이크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한편으로는 사람을 도와주는 일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이후 성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 싹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훗, 이런 기분인가?’

제이크는 옆에 말없이 서 있는 네빌 집사를 힐끔 보았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옆에 서 있다. 그리고 아이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식겠어요, 어서 드세요.”

“그래.”

제이크는 눈을 껌뻑거리며 나이프와 포크를 들었다. 앞에 놓인 먹음직스런 스테이크를 바라보고는 나이프질을 시작했다. 그때 식당 문이 벌컥 열리며 폴과 필이 들어섰다.

“야호!”

“음식이다, 음식!”

그러면서 제이크 옆으로 뛰어와 허겁지겁 음식을 닥치는 대로 먹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네빌 집사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으구, 빵벌레 놈들.’

속으로 그리 말했지만 입으로는 꺼내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지켜보는데 그들이 하는 말이 더욱 가관이었다.

“우엑, 이게 뭐야. 맛없어!”

“이건, 왜 이렇게 바싹 익힌 거야!”

필이 앞에 놓인 새끼 통돼지 구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폴이 되받으며 말했다.

“난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게 좋은데.”

“나도 그래.”

그 말을 듣자 아이린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제이크의 눈썹도 치켜 올라갔다. 그보다 음식을 내놓은 네빌 집사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

‘으으, 저놈들을…….’

“미안하네, 이놈들이 워낙에 철이 없어서. 자네가 이해하게.”

제이크가 위로의 말을 건네며 사과하자 곧바로 네빌 집사가 얼굴이 바뀌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그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제이크의 말에도 폴과 필은 전혀 행동이 나아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이야. 제이크 님만 아니라면 이것들을 그냥…….’

속으로 분을 삼키는 네빌 집사였다. 그것을 모르는 제이크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원래 저렇게 타고난 놈들이니 말이다. 제이크는 어색한 웃음을 짓고는 다시 나이프을 놀리며 스테이크를 한 점 잘라 입에 가져갔다.

입에 들어간 스테이크의 고소한 맛이 입맛 가득 맴돌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다시금 손이 가지는 않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앞에 놓여 있어도 확실히 입맛이 살지가 않았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제이크의 모습을 보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아이린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입에 맞지 않으세요?”

아이린의 물음에 제이크가 황급히 말했다.

“아니, 맛있어. 너무 맛있어서 할 말을 잃겠는걸.”

제이크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필과 폴이 눈을 게스츰레 뜨며 말했다.

“도련님께서도 입맛이 많이 변하신 것 같군요.”

“맞아, 이게 어딜 봐서 맛있다고.”

“…….”

필과 폴이 손으로 음식을 들며 핀잔을 주었다. 순간 제이크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주먹이 번쩍 하고 움직였다.

딱, 딱!

폴과 필이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았다. 그 모습에 아이린이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러자 제이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이놈들 원래 말하는 싸가지가 없어.”

그 말을 하고는 다시 나이프를 놀려 스테이크를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고기를 꼭꼭 씹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맛, 이 향기. 그곳에서는 절대 느껴 보지도 맡아 보지도 못했다.

정말 오랜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먹어 보는 것 같았다.

‘10년 만인가?’

제이크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스테이크의 맛을 음미했다. 이런 맛깔난 음식은 아마도 10년 만에 처음 느껴 보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옛 추억의 맛이 떠오르는 듯했다.

오랫동안 꼭꼭 씹어서 먹던 제이크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는 차려진 음식을 보며 슬픈 얼굴이 되었다.

‘가족들은 어디 있을까? 잘 지내고 있을지… 내게 주어진 시간 안에 찾아야 할 텐데…….’

Episode 06 채플 백작의 방문(1)

1

채플 백작은 이름 아침부터 분산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외출용 정장을 차려입고는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뚱뚱한 몸매에 맞은 옷이라고 있을까? 의심이 들었지만 그는 옷을 살 때는 뛰어난 디자이너를 불러 손수 옷을 제작해서 입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뚱뚱해도 몸에 딱 맞았다. 게다가 머리에 쓴 모자며 목, 손가락에는 부를 상징하는 각종 보석들로 치장을 했다.

그 모습을 한참이나 쳐다보던 채플 백작이 이중 턱을 매만지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껄껄껄, 역시 멋있어.”

이번에 새로 제작한 옷이 정말 맘에 든 모양이다. 한참 동안 거울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그때 로이 남작이 들어섰다.

“백작님, 마차가 준비되었습니다.”

“그래? 그럼 가야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로이 남작이 살짝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채플 백작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장서게.”

“네, 백작님.”

로이 남작의 안내로 성 밖으로 나온 채플 백작은 준비된 마차에 올라섰다. 여섯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마차도 그야말로 화려했다. 마차의 크기도 일반 마차보다 두 배는 컸다.

마차 위에는 채플 백작가의 상징인 쥬얼리 휘장이 바람에 나부끼고, 흰 마차에는 온갖 장식품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나 돈 있는 놈이라고 광고하는 느낌이다.

이 마차는 채플 백작 전용 마차다. 그가 길을 나설 때 항상 애용하는 것으로 도시 사람들은 누구라도 알아보며 볼 때마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대단했다.

내부도 화려했다. 일반 소파가 있는 것이 아니라 누워서 이동할 수 있는 침대가 있고, 그 앞에 의자가 놓여 있다. 그리고 두 명의 하녀들이 항시 대기하며 이동하는 내내 그의 시중을 들었다.

로이 남작도 그 마차에 올라타며 소파에 앉았다. 침대는 여행할 때 편안하게 이동하기 위한 채플 백작의 것이다. 마차에 힘겹게 올라 탄 그는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러자 곧바로 하녀들이 다가와 와인과 과일들을 꺼내며 그 앞에 대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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