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11화 (11/125)

# 11

헬 나이츠 1권 (11화)

Episode 03 승냥이 떼 (4)

“아니, 섣불리 움직이지 마라.”

“하지만 도련님…….”

폴이 말했지만 제이크는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러자 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때 필이 폴에게 말했다.

“왜? 안 쫓아가?”

“도련님이 내버려 두라고 하신다.”

“아니, 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이씨, 손이 근질근질거리는데.”

필이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말하자 갑자기 뒤통수에서 충격이 전해지며 눈이 번쩍였다.

“아씨, 어떤 놈이야?”

필이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 뒤에 제이크가 서 있다.

“도, 도련님.”

“조용히 해!”

“네에.”

필은 뒷머리를 어루만지며 입을 다물었다. 옆에 있던 폴이 피식피식 웃으며 필에게 말했다.

“그러게 내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시끄러!”

폴이 히죽 웃었고, 필이 인상을 찡그렸다.

“어쨌든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가자.”

폴이 제이크를 응시하다가 필에게 말했다. 필도 약간 낌새가 이상한지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크는 집무실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어서 가자.”

폴과 필은 서둘러 그곳을 벗어났다.

폴과 필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 제이크는 그쪽으로 신경을 두지 않았다. 오직 앞에 있는 집무실 문만 바라보았다.

“음, 타이밍이 별로 좋지 않군.”

제이크의 눈동자가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검은 동공이 커지며 흰자위를 삼켜 버렸다.

제이크가 바라보는 시각에 문이 흐릿해지며 집무실 내부의 모습이 나타났다. 제이크는 아이린을 찾았다. 아이린은 소파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제이크가 안쓰러운 얼굴이 되었다.

“고생이 많군. 아무래도 오늘은 얘기하기가 어렵겠어.”

제이크는 그 말을 하며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흐릿해진 집무실 문이 다시 원상복귀가 되었고, 온통 검은 눈동자였던 눈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제이크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의 머릿속에 조금 전 아이린의 영상이 계속해서 재생되었다.

“쩝, 이거 밥값 정도는 해야 하나?”

제이크가 몸을 돌려 걸어가며 혼잣말을 했다.

Episode 04 보물찾기 (1)

1

아이린은 어제의 일을 잊고 집무실에서 언제나처럼 일을 시작했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인 그녀는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서류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의 일도 일이지만 앞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해 봐야 했다. 채플 백작의 압박과 베이런 후작의 압박, 그들을 상대하기에는 이제 너무도 지쳤다.

아이린은 서류 정리하는 것을 뒤로하고 창가로 향했다. 오늘따라 일하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그때 집무실 문이 열렸다. 아이린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제이크가 와서 대기 중이었다.

제이크도 아이린을 쳐다봤다. 깜짝 놀란 아이린이 제이크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당신이군요.”

“아, 미안. 노크를 안 했군. 다시 들어올까?”

“괜찮아요. 근데 아침 일찍부터 어쩐 일이세요?”

아이린의 물음에 제이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제 우연히 빌슨이라는 녀석을 만났어.”

제이크의 말에 아이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

“그랬군요.”

“아, 그렇다고 해서 자세한 것은 몰라. 그냥 5만 골드의 빚이 있다는 정도?”

“…….”

제이크가 당황하며 말했지만 아이린의 얼굴은 이미 붉어졌다. 그녀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제이크는 혹여 자신이 잘못 말했는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쩝, 이런 일을 처음해 보니 영…….’

제이크도 난감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여태까지 누구를 괴롭히기만 했지, 도움을 주려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곳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이런 상태다 보니 제이크로서도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뻘쭘한 자세로 서 있던 제이크를 보며 아이린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소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네요.”

“아, 아니야. 그냥 우연히 알게 된 것뿐이야. 우연히!”

제이크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이린은 그런 제이크를 보며 그냥 눈웃음만 지었다.

“그래서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뭐죠?”

“아, 혹시 내가 도울 일이 없는지 해서 말이지.”

제이크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이린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말이라도 고마워요.”

“그러지 말고 말해 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울 수 있게. 아니, 돕고 싶다.”

제이크가 진심으로 말했다. 아이린이 잠시 그를 바라봤다. 무슨 꿍꿍이로 그러는 것인지 몰랐다. 하지만 고작 며칠 동안 본 사람이 도우겠다고 하니 그 마음은 고마웠다.

“마음만으로도 고마워요.”

아이린이 정중히 거절을 했다. 하지만 제이크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솔직히 영지 사정이 어떤지 알려 줘. 한때 나도 이곳의 주인이었으니까.”

제이크의 말에 아이린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소파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우선 앉으세요.”

아이린이 자리를 권하자 제이크가 소파로 가서 앉았다. 제이크가 그녀를 바라봤다. 아이린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얘기를 시작했다.

“사실, 이곳을 사고 나서 이사를 왔을 때 영지는 매우 풍요로웠어요. 산이나 들, 모두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이런 곳에서 밀과 각종 곡식을 재배하면 정말 잘 자라겠다고 생각을 했죠. 그런데 막상 재배를 하고 보니 상황이 달라졌어요. 밀의 알은 대부분 썩어서 떨어졌고, 다른 곡식들은 제대로 크지 않았어요. 이런 일이 몇 년째 지속되다 보니 영지의 살림은 점점 어려워졌어요.”

아이린은 잠시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아버지께서 상단으로 벌어들이신 돈으로 곡식을 사서 영지에 들였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어요. 흉년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는 곡식이 자랄 수 없는 땅으로 변하고 말았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이크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곡식이 자랄 수 없는 땅이라니?”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이린이 고개를 저었다.

“영지의 생산들이 곡물만은 아닐 텐데?”

제이크가 말했다. 그러자 아이린이 더욱 큰 한숨을 내쉬었다.

“광산도 몇 개가 있었죠. 하지만 원인 모를 사고가 생겨서 전부 무너지고 말았어요.”

그녀의 말에 제이크의 얼굴이 굳어졌다.

‘광산마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지?’

제이크는 이상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째서 땅이 척박해지고 광산마저 무너졌는지 말이다. 아이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사실 우리 가문은 상단을 운영했어요. 그리고 여기까지 컸죠.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상단 운영밖에 없어요. 하지만 자금이 없어서 그마저도 어려운 실정이에요.”

아이린은 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어깨가 축 쳐졌다. 말을 하고 있으면서도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영지 사정에 그녀도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곰곰이 듣던 제이크가 아이린에게 물었다.

“조금 전 영지가 척박해졌다고 하던데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야?”

제이크의 물음에 아이린이 답했다.

“아뇨, 무슨 일은요. 설마 누군가 땅을 척박하게 만들었겠어요? 그냥 이상하게 곡식만 심으면 잘 자라지 않았어요.”

아이린의 말에 제이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어린 시절만 해도 프라임 백작가는 상당히 부유한 축에 끼었다. 물론 프라인 백작가는 무장의 집안으로 검술이 뛰어나 왕국에서도 힘을 실어 주는 가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지에는 많은 곡물들이 생산되었다. 게다가 광산도 일곱 개나 되어서 카론 왕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영지였다. 그런데 돈이 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제이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이크는 아이린을 향해 말했다.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당시 내가 있을 때만 해도 영지의 땅은 매우 기름졌고, 풍요로웠어. 들판에는 항상 파릇파릇한 곡식들로 가득했단 말이야.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에 땅이 척박해졌다는 것은 솔직히 이해하기가 힘들어.”

“네에? 그게 사실이에요?”

아이린의 물음에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린도 제이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 이곳에서 살았고, 전(前) 에페로 성의 주인이었던 그였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땅이 이상해졌을까요?”

아이린의 물음에 제이크는 확실한 답을 주지 못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만약 그전에 풍요로웠다면 분명 그 원인이 있었을 거예요.”

“그래 맞는 말이야.”

제이크가 나직이 말을 했다. 잠시 고민을 하던 그가 아이린을 향해 말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내가 잠시 영지를 둘러봐도 될까?”

제이크의 물음에 아이린의 눈이 커졌다.

“정말요? 그래 주실 수 있나요?”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살펴볼 테니. 대신 큰 기대는 하지 마.”

“정말 고마워요.”

아이린이 밝게 웃었다. 제이크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2

제이크가 아이린과의 얘기를 마치고 성 밖으로 나가자 뒤에서 네빌 집사 달려왔다.

“제이크님, 농경지에 가 보실 생각이십니까?”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알았지?”

제이크의 물음에 네빌 집사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전 에페로 자작가문의 집사입니다. 그 정도는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제가 안내해 드릴까요?”

그의 대답에 제이크가 피식 웃었다.

“하하, 그렇군. 부탁하네.”

“네, 절 따라오십시오.”

네빌 집사가 재빨리 움직이며 앞서 걸어갔다. 그때 마당에서 미친 사람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폴과 필이 제이크과 네빌 집사를 발견하고는 쏜살같이 달려왔다.

“도련님!”

“어디 가세요?”

폴과 필이 해맑은 얼굴로 묻자 네빌 집사가 대답했다.

“제이크님께서는 농경지를 살펴보시러 가시는 길이라네.”

“농경지?”

“아니, 왜 갑자기 농경지는?”

폴과 필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제이크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난 농경지를 둘러보면 안 되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폴이 황급히 말했다. 하지만 눈치 없는 필이 나섰다.

“에이, 도련님은 농경지를 둘러보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 않아요.”

“야!”

폴이 재빨리 필을 끌어당겼다. 영문을 모르는 필은 폴을 향해 짜증을 냈다.

“아, 왜!”

“넌 가만히 있어.”

“아니,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그것도 잘못이야?”

“그건 아니고, 도련님께서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지.”

“그러니까, 무슨 생각?”

폴과 필은 티격태격 거리며 말을 섞었다. 그 모습을 보던 네빌 집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제이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냥 가지.”

“네에?”

“저 녀석들은 무시해.”

“아니, 그래도…….”

“아, 그냥 내버려 둬.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신상에 그냥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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