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10화 (10/125)

# 10

헬 나이츠 1권 (10화)

Episode 03 승냥이 떼 (3)

아이린이 재빨리 창문을 통해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녀가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불쌍한 사람.”

아이린이 찾는 사람은 바로 제이크였다. 그날 밤 아이린은 제이크와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은 대부분이 제이크 혼자 마셨다. 아이린은 지난 10년간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이곳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하느라 술에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제이크는 심한 충격을 받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아이린에게 말했다.

“부탁이 있어.”

“뭐예요?”

“당분간 이곳에 머물러도 될까? 이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가족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봐야 하니까. 뭐, 안 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고.”

그의 말속에 애절함이 묻어 있다. 카론 왕국의 멸망과 함께 사라진 프라인 백작가문. 그리고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그리움. 아이린은 그 누구보다 그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네, 그렇게 하세요.”

아이린은 승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보다 혼란스럽고 힘든 사람이 제이크라는 것을 알기에.

“고맙군.”

짧은 한마디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때 아이린이 그를 붙잡았다.

“잠깐만요.”

제이크가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뭐지?”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면…….”

아이린이 말끝을 흐리며 말했지만 순간 아차 했다. 자신이 지금 저 사람의 가족들까지 신경을 써야 할 시간이 있는지 말이다.

“아냐, 됐어.”

제이크가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에요. 예전에 우리도 큰 상단을 운영했어요. 그래서 주변 상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아마도 가족들의 소식은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아이린이 말했지만 제이크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내가 할 일이야. 마음만 고맙게 받지.”

제이크는 말을 마치자 다시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갔다.

아이린은 손을 들어 다시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입을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슬픈 눈망울로 집무실을 빠져나가는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그 후로 제이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도 없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가족을 찾는다고 했으니 아마도 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좋은 소식이 있으면 좋겠는데.”

아이린이 나직이 중얼거리며 막 창문을 벗어나려고 할 때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린의 시선이 다시 창문으로 행했다. 마차 한 대가 성 입구를 통과해 달려왔다. 순간 아이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마차의 주인이 누군지 짐작되기 때문이었다. 아이린은 마차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곧이어 마차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내려섰다. 그는 내려서자마자 마부를 향해 거칠게 삿대질을 하며 뭐라 뭐라 소리를 질렀다.

아이린은 그 모습에 안색을 찡그렸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차에서 내린 사람, 아이린은 그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은 또 어떤 말로 날 괴롭힐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안색을 굳혔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저 사람과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닌 듯 보였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네빌 집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표정은 몹시도 좋지 않았다.

“아, 아가씨. 실은 베이런 후작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알고 있어요.”

“누가 찾아왔는지도 알고 계십니까?”

다소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아이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집무실로 모셔 오세요.”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요. 그러니 이리로 모시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네빌 집사가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이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비장한 표정이 되었다.

베이런 후작가에서 찾아온 사람은 바로 그의 둘째 아들인 빌슨 베이런이었다. 그의 평판은 매우 좋지 않았다. 매일 사고만 치고 다니며 망나니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아이린도 지난번 그에게 혹독하게 당했다.

돈을 갚으라며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다. 빌린 사람이 약자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아이린은 이를 악물며 참았다. 한 시간가량 난동을 부리고는 돌아갔다.

그가 돌아가고 아이린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서러움에 눈물까지 흘렸다. 단지 돈을 빌린 죄로 온갖 수모를 당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서러웠다.

그리고 보름이 지나 오늘 또다시 그가 찾아왔다. 지난번처럼 난동을 부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전처럼 울지는 않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을 했다.

잠시 후 복도가 소란스러우며 집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귀족가의 자식이면서 예의도 배우지 못했는지 마치 자기 집 안방으로 들어오는 듯 행동했다.

빌슨은 들어와서는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물었다.

“돈은 준비됐어?”

아이린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살짝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우선 이곳에 앉으세요.”

아이린이 소파에 앉기를 권했다.

빌슨이 힐끔 아이린을 째려보고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다리까지 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이린도 맞은편에 앉았다.

“차는 뭐로 드시겠어요?”

“차? 나 그딴 것 마시러 온 거 아니야.”

“알고 있어요. 그래도 우리 가문에 오신 손님인데 차는 대접해 드려야죠.”

아이린은 냉정을 유지하며 최대한 예의를 갖춰 대답을 했다. 하지만 빌슨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기식대로, 자기 맘대로 했다.

“아니 됐고. 돈이나 내놔!”

손을 내밀며 돈을 줄 것을 요구했다. 그의 행동에 아이린은 살짝 당황했다. 한편으로는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아직 돈을 마련하지 못했어요.”

“엥? 뭐야? 내가 지난번에 보름 후까지 준비하라고 했잖아. 그런데 내 말을 뻥으로 들었어.”

빌슨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아이린을 윽박질렀다.

“빈말로 듣다니요. 저희도 최대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에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도대체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더 하는 거야. 이 정도로 봐 줬으면 나도 할 만큼 했어. 이제는 나도 못 참아, 어서 돈을 갚으란 말이야. 돈!”

아이린은 간절하게 부탁을 했지만 빌슨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역정을 내며 돈을 내놓으라고 떼를 섰다.

아이린은 당혹감에 어쩔 줄을 몰랐다. 뭐 이리도 무대포로 나갈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 이런 자가 후작가의 아들인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저희들도 애를 쓰고 있지만 돈이 마련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해요. 저도 빨리 갚고 싶어요.”

아이린도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그 모습에 빌슨은 더욱 흥분하며 소리쳤다.

“뭐, 뭐야? 애를 썼으면 그 결과물이 나와야 할 것 아냐. 차라리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이 성을 포기하던가. 그게 좋겠군. 그냥 이 성을 포기해!”

빌슨이 비웃음 섞인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아이린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녀는 두 주먹을 쥐며 부르르 떨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이 성을 포기하라니요. 그럼 이 성이 고작 5만 골드밖에 안 되는 줄 아세요? 정말 불쾌하군요.”

하지만 오히려 빌슨이 더 날뛰었다.

“불쾌하면 돈을 갚던가.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성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다면 성의 값어치는 떨어지지. 물론 5만 골드보다 더 떨어질 수 있고 말이야. 그럼 손해는 우리가 보는 거라고.”

빌슨은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 사실 영지의 가치는 영지의 생산량, 농민, 농노의 수도 중요하지만 영주가 거주하는 곳도 상당히 반영되는 법이다.

“아무리 영지가 좋아도 성이 당장 무너질 정도라면 어느 영주가 와서 살려고 하겠어. 결국 성이 무너져서 다시 짓는다면 그 비용은 새 영주가 감당해야 하잖아.”

빌슨이 말을 하면 할수록 더 가관이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붙이며 더욱 아이린을 몰아세웠다.

아이린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화를 참으려고 하니 열이 올라온 것이다. 빌슨을 똑바로 응시하며 어떻게든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절대 그런 일은 없어요. 이 성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요.”

“그래? 그럼 지하 연무장이 무너졌다는 소식은 뭐지? 거짓말이야?”

“네, 거짓말이에요.”

아이린은 눈을 똑바로 뜨며 말했다.

빌슨이 그녀의 눈을 보자 순간 움찔했다.

‘어라? 요년 보게. 눈을 부라리는 것을 보니 그 소문이 거짓이었나? 이러면 곤란한데. 아버지에게 뭐라고 해야 하지?’

빌슨은 속으로 무척이나 난처해했다. 베이런 후작가를 떠나면서 큰소리를 쳤기 때문이다. 자신이 꼭 성을 포기하게 만들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빌슨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어쨌든 그딴 것은 필요 없어. 지금 당장 빌린 돈을 갚아. 성을 못 내놓겠거든 그 잘난 몸이라도 바치라고. 공작님께서 아주 좋아하실 거야. 하긴 공작님께서 널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는 않았지. 흐흐흐.”

“어, 어찌 그런 말을…….”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린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빌슨이 아이린을 능욕한 것이다. 어찌 귀족의 자식이 되어 저런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을 거리낌 없이 말을 할까? 정말 망나니는 망나니였다.

아이린은 수치심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분노가 온몸을 휘감으며 손에 칼이라도 쥐고 있다면 당장이라도 저 자식을 찌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빌슨은 그런 아이린은 보며 피식 웃었다. 그 말로 인해 자신이 승리했다는 도취감에 빠진 것 같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다, 나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시간을 좀 더 주도록 하지. 앞으로 열흘이다. 그때까지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성을 포기하던가, 아니면, 네 몸이라도 팔던가. 하하핫. 크하하핫!”

빌슨이 크게 웃음을 몸을 홱 돌려 집무실을 나갔다. 그때까지 아이린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꽉 쥔 두 주먹이 떨렸다.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안 울려고 다짐을 했다. 모든 수모를 참을 수 있다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몸을 팔라는 말은 여자에게 수치심을 안기는 것도 모자라 모욕감과 함께 죽으라는 말이었다.

아이린은 고개를 숙인 채 두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어쨌든 밖으로 나온 빌슨은 그녀를 꼼짝 못하게 한 것이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때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제이크와 눈이 마주쳤다. 벨슨은 흠칫하며 뒤로 몸을 뺐다.

“어라? 못 보던 놈인데 넌 뭐야?”

빌슨은 제이크에게 괜한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잠시 이곳에 볼 일이 있어 온 사람입니다.”

제이크는 마치 상인처럼 상냥하게 굴었다. 평상복 차림에 곱상하게 생긴 제이크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빌슨이 비웃음을 지었다.

“훗. 그럼 볼 일 봐.”

그 말을 하며 제이크를 스치며 지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제이크가 그를 붙잡았다.

“저기… 잠시만요.”

순간 걸어가던 빌슨이 발을 멈추며 짜증난 얼굴로 말했다.

“뭐, 인마!”

“혹시 에페로 자작가에 돈을 얼마나 빌려 주었습니까?”

“왜? 그걸 알면 네놈이 갚으려고?”

“하하하, 그것이 아닙니다. 저도 돈을 빌려 줘 오늘 받으려고 왔는데 혹시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하고 궁금해서요.”

제이크가 실실 웃으며 능글맞게 말했다. 그 모습에 빌슨이 인상을 찡그렸다.

“빌어먹을, 5만 골드다. 너도 돈을 빌려 줬다면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빌슨은 으르렁거리며 말을 하고는 제이크를 스치며 지나갔다.

제이크가 나가는 빌슨을 힐끔 쳐다봤다.

“훗, 고작 5만 골드 가지고 여자를 희롱하다니. 저 자식 완전히 미친놈이군.”

제이크가 썩은 미소를 날리며 혀를 쯧쯧 찼다.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처럼 말했다. 바로 그때 귀신처럼 폴과 필이 나타났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필이 말했다.

“도련님이셨으면 그냥 단번에 쓱쓱 해치웠을 텐데. 크크크.”

“맞아. 5만 골드가지고 저 난리라니.”

“웃긴 일이지.”

폴과 필이 썩은 미소를 날리며 말했다. 그리고 폴이 슬쩍 제이크 곁으로 다가갔다.

“정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제가 뒤쫓아 가서 저놈을 확 없애 버릴까요?”

폴의 말에 필도 손을 들었다.

“나도 나도. 폴 혼자만 재미를 볼 수는 없지.”

“필! 내가 지금 재미 보러 가는 거냐?”

“그럼 아냐?”

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하자 폴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다. 그냥 넌 조용히 입 다물어.”

“아, 왜?”

폴과 필은 꿍짝이 잘 맞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았다. 폴이 말하면 필이 동조했고, 뭐든지 같이 움직이려는 듯 보였다. 두 사람의 모습에 제이크의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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