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9화 (9/125)

# 9

헬 나이츠 1권 (9화)

Episode 03 승냥이 떼 (2)

“어머, 오빠 정말 잘생겼다. 놀다가.”

“아냐. 우리 집으로 와 예쁜 여자 많아.”

그녀들은 몸을 베베 꼬며 사내들을 유혹했다. 술에 잔뜩 취한 사내들은 그 모습에 눈이 돌아가며 그곳으로 하나둘 들어가고 있다.

또한 술집들도 연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용병들과 상인들이 하룻밤을 지내고 가는 곳인 만큼 거리에는 휘황찬란한 불빛들로 온통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런 것들로 밤의 도시라고 불리고 많은 유동 인구로 돈을 엄청 벌어들였다. 이 모든 것이 다 채플 백작가로 흘러들어 갔다. 물론 세금을 받는 것이지만 그 세금의 명목이 다른 영지보다 두 배 정도는 더 비쌌다.

그렇다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불만이 없었다. 세금을 많이 내는 만큼 다른 영지보다 벌어들이는 수입도 많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채플 백작가의 배를 불려 주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채플 백작이 머무는 성은 컬린 도시에서도 제일 화려함을 자랑했다. 화려한 도시답게 그곳을 통치하는 성 자체도 화려해야 한다는 채플 백작의 말에 엄청난 돈을 들여 재건축을 하였다.

그 결과 이곳 주위에서 가장 아름답고 거대한 성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건물 외벽을 전부 대리석으로 치장했고, 내부의 바닥은 전부 카펫을 깔았으며 이름만 들어도 놀라는 화가들의 그림으로 도배를 했다.

장식품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커튼과 액세서리로 만든 가구들 그리고 내부 중앙에는 자그마한 분수대까지 갖춘 최고급의 성이었다.

혹여 이런 말도 있다. 왕국의 성보다 더 화려한 성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국왕은 그에 대해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채플 백작이 내는 세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왕도 그저 담담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 화려함 속에 채플 백작가의 집무실은 의외로 수수했다. 책상과 휘장이 걸려 있고, 소파와 몇 개의 책장이 전부였다. 하나 그 모든 것이 최고급이라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휘장의 그림은 보석이었다. 그것도 반짝이는 보석으로 되어 있다. 일명 ‘쥬얼리’ 라고 불리는 휘장의 이름이다.

그 아래 뚱뚱한 체격을 가진 채플 백작이 뭔가에 열중하고 있다.

“클클클, 역시 아무도 없는 밤에 돈을 세는 것은 이 또한 기쁨이 아닌가.”

채플 백작은 책상 위에 놓인 상자에서 황금빛이 감도는 돈을 일일이 세고 있다. 이 돈들은 모두 상단에서 벌어들인 돈이었다.

“킥킥킥. 좋아, 좋아. 아우 귀여운 것들. 내 새끼들.”

황금빛 동전에 뽀뽀를 하며 온갖 아양을 다 떨고 있다. 그때 어둠속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흐흐, 그리 좋소?”

그 소리에 흠칫 놀라던 채플 백작이 재빨리 상자를 닫으며 소리쳤다.

“누구냐?”

그러자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자가 슬며시 달빛이 세어 들어오는 곳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로브와 후드를 뒤집어쓴 사내였다.

그를 발견한 채플 백작이 잔뜩 긴장되었던 얼굴이 풀어지며 말했다.

“호오, 라예키르. 어서 오시오.”

검은 로브 사내의 이름은 라예키르라 불리는 사람이다. 그가 등장하자 채플 백작의 얼굴이 환해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이리 앉으시오.”

앞에 있는 소파에 자리를 권했다. 라예키르는 그곳에 살며시 앉았다. 하지만 후드는 절대로 벗지 않았다. 후드 아래로 움직이는 입술만이 살짝살짝 보일 뿐이다.

채플 백작은 껄껄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의 두툼한 손에는 화려한 보석들로 된 반지가 끼워져 있고, 목에는 주먹만 한 푸른 보석이 매달려 있다. 그의 머리에 쓴 모자에도 루비가 박혀 있다.

그는 튀어나온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검은 로브 사내에게 말을 건넸다.

“나타날 때는 제발 기척 좀 내시구려. 매번 소리 소문 없이 등장을 하니 놀라지 않소이까.”

“후후, 적응할 만도 하지 않소.”

“에이, 전혀 그렇지 않소. 특히 내 취미 생활을 할 때는 더욱 그렇소.”

“흐흐흐, 알겠소. 당신이 돈을 세고 있을 때의 시간은 피하겠소.”

음산하면서도 무겁게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채플 백작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게다가 서로 말하는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알고 지내 온 사이로 보였다.

라예키르는 손을 품에 넣더니 두툼한 돈 주머니를 꺼내 탁자에 던졌다.

턱!

그것을 발견한 채플 백작은 재빨리 돈주머니를 낚아채며 주머니 안에 든 돈을 확인하며 말했다.

“어이쿠,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또 그러시오. 껄껄껄!”

그러자 라예키르의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에페로 자작가의 소식은 들었소?”

그의 물음에 채플 백작은 냉큼 돈 주머니를 품에 넣고는 말을 이었다.

“아, 내성 지하가 무너졌다는 소식 말이오?”

라예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소식 나도 들었소. 뭐, 소문에 의하면 조만간 에페로 자작가의 성이 무너진다는 소리도 있더이다.”

채플 백작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말을 했지만 라예키르는 달랐다. 후드 사이로 살짝 비취는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어째서 무너졌는지 그 이유를 하시오?”

“우움, 글쎄요. 그 일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서 말이오. 게다가 오래된 성은 종종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고 하더이다. 어째서 그런 것을 물어보시오?”

채플 백작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자 라예키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궁금해서 말이오. 무엇보다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아직 성이 무너지면 안 되지 않소.”

“아하, 그렇지. 아직 본전도 못 뽑았는데 무너지면 안 되지. 그리고 보일란 성도 얻지 못했는데 말이야.”

채플 백작은 얼굴이 사색이 되며 말했다. 그러다가 문득 라예키르를 보며 말했다.

“정 궁금하면 알아봐 줄 수 있는데…….”

“아니 됐소. 그보다 언제쯤 보일란 성을 차지할 수 있겠소.”

라예키르의 거부에 채플 백작이 살짝 입맛을 다셨다. 혹여 이걸로 돈을 좀 뜯어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러지 못해서 서운했다.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오. 조만간 끝을 내겠소.”

“시간이 많지 않으니 서둘러 주시오.”

라예키르가 말을 하고는 다시 품속에서 마나석을 꺼내 주었다. 육각형으로 각진 채 정교하게 만들어진 그 마나석은 그 값어치가 엄청 높았다.

마나석을 본 채플 백작의 두 눈이 뒤집혔다. 그는 순간적으로 그 값어치를 눈치채고는 흥분을 하였다. 두툼한 볼살이 떨리며 마나석을 보며 환호했다.

“오호, 이런, 이런.”

흥분한 채플 백작이 냉큼 그것을 낚아챘다.

“여부가 있겠소. 조만간 좋은 소식을 전해 주겠소.”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을 내는 마나석을 조심스럽게 두 손에 감싸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서둘러 줘야 할 것이오.”

“걱정 말라고 하지 않았소. 모든 것은 열흘 안에 결정이 날 것이오. 크크크.”

“열흘 안에 말이오?”

“그렇소. 에페로 자작가가 우리에게 빌린 돈이 무려 20만 골드요. 그동안 어떻게 마련을 했는지 간신히 이자는 내고 있더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사람을 보내 일을 추진했소. 열흘 안에 보일란 성을 내게 팔라고 말이오. 그러니 걱정 마시오. 열흘 안에 결판이 날 것이니 말이오.”

“으음. 그럼 열흘 안에 보일란 성을 살 수 있단 말이오.”

“그렇다니까.”

채플 백작은 확신을 하는 듯 말을 했다. 라예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럼 그대만 믿고 있겠소.”

라예키르는 얘기가 끝이 났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보며 채플 백작이 나직이 말했다.

“잘 가시오. 멀리 나가지 않겠소.”

그 말에 라예키르는 히죽 웃었다.

“흐흐, 배웅할 필요 없소이다.”

그러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이제 다시 집무실은 채플 백작 혼자 남게 되었다. 채플 백작은 마나석을 조심스럽게 들고는 눈앞으로 가져갔다.

“크크크, 예쁜 것. 너는 보면 볼수록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구나.”

채플 백작은 입이 찢어지며 기쁨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들어 책장으로 향했다. 그중 하나의 책장을 잡아당기자 벽에 넓은 공간이 생겨났다.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채플 백작은 하나의 상자를 꺼내었다.

그것을 열자 그 안에 지금 손에 들고 있는 마나석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라예키르에게 받은 것들이다. 채플 백작의 얼굴이 환해지며 조금 전 받은 마나석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개수를 세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요 귀여운 것들. 하나, 둘, 셋… 열아홉, 스물. 정확히 스무 개구나. 이게 돈이 얼마야. 크크크.”

채플 백작이 가지고 있는 마나석의 가치는 개당 1천 골드 정도다. 지금 20개 정도 가지고 있으니 다 합쳐서 2만 골드 정도 되었다.

보통 평민 기준으로 봤을 때 밀 한 포대의 가격이 1골드 정도 한다.(생산량에 따라 가격의 차이가 다소 있다.) 6인 기준으로 밀 한 포대면 보통 두 달을 먹고살 정도였다.

그러니 2만 골드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마나석에 따라 등급도 다르다. 마법사들이 사용하고 난 폐기물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천 골드를 호가한다. 마법사가 준 것 중에서 적당히 마나가 남아 있는 마나석이라면 잘만 쳐주면 2천 골드 이상 받아 낼 수도 있다.

그러니 마나석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그것을 무려 20개나 가지고 있는 채플 백작이기에 입이 찢어질 만했다. 이 모두 라예키르가 준 마나석이었다.

상자를 다시 닫고 공간에 넣은 후 책을 다시 원상복귀시켰다. 그러자 공간이 생겨났던 벽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자신의 자리로 온 채플 백작은 곰곰이 생각을 했다.

“그 녀석은 도대체 마나석을 얼마나 가지고 있기에 내게 아낌없이 주는 것이야. 하긴 에페로 자작령의 북부 산지를 내준다고 해도 전혀 아깝지 않겠지. 거긴 어차피 쓸모없는 땅이니까 말이야. 그래도 왜 자꾸 에페로 자작령에 눈독을 들이는지 모르겠어.”

깊이 생각을 해 보지만 도무지 알지 못했다.

“에이, 머리만 아프게 그딴 것을 왜 생각해. 난 돈만 받으면 되지.”

그 말을 하며 아까 하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상자의 뚜껑을 열자 황금색 동전이 눈에 들어왔다.

“으흐흐흐. 요 귀여운 것들. 얼른 끝내 줄게.”

그 말을 하며 다시 동전을 세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온 라예키르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틈타며 성을 빠져나왔다. 성 앞에 서서 둥근 보름달을 한 번 보고는 채플 백작가의 성에 눈이 갔다.

그 순간 후드 아래로 드러난 그의 입술에 의미 모를 미소가 스르륵 번지며 중얼거렸다.

“돈에 환장한 녀석. 하긴 그러니 다루기도 쉽지.”

라예키르는 작게 중얼거린 후 고개를 돌렸다. 그는 두 손을 움직이며 바닥에 뭔가를 그리며 중얼거렸다. 잠시 후 바닥에 검은 구멍이 생성되며 라예키르가 그 안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러고는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곳에 마치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2

아이린은 언제나처럼 집무실에서 수많은 서류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부분이 돈을 결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것만 봐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나 결제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눈가에 주름이 잡히며 서류를 하나둘 정리했다. 한참을 정리하던 아이린은 잠시 펜을 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창가로 갔다. 밖은 따사로운 햇빛이 내려와 주위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연무장에는 기사와 병사들이 나와 수련을 하고 있다.

옛날에는 기사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나가고 불과 20여 명밖에 없다. 대부분 월급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해 다른 곳으로 떠났다. 여기 남아 있는 기사들도 임금이 무려 석 달이나 밀려 있다.

하지만 그들은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 때부터 충성을 맹세한 그들이기에 봉급이 몇 달 밀렸다고 해서 그 충성심마저 사라지지는 않았다. 지금 현재 남아 있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에페로 자작가의 기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린은 그들을 바라보면 다소 미안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봉급도 제때 주지 못하면서 에페로 자작가를 지켜 주니 얼마나 고마울 따름인가. 특히 베일 기사단장이 기사들을 잘 다독여 주니 이 또한 감사했다.

“하아, 정말 하늘에서 돈이 뚝 하고 떨어졌으면 좋겠다.”

아이린은 깊은 한숨과 함께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금 한 말은 정말 진심이었다. 매일 매일 돈 때문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 곤욕이었다. 이럴 때는 정말이지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아무 걱정 없이 생활했던 그때가 그리웠다. 아이린은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참, 그 사람은 어디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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