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7화 (7/125)

# 7

헬 나이츠 1권 (7화)

Episode 02 벽에서 나온 사람들 (2)

제이크가 고개를 돌려 폴과 필을 보며 묻자 두 사람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요.”

“그래? 나도 처음 들어보는데.”

제이크도 전혀 모르는 이름이다. 하지만 제이크와 폴과 필이 한 가지 실수를 한 것이 시간적 괴리로 인해 이 사람들과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제이크가 생각하기에는 어렵게 다시 돌아왔고, 집이 그대로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당연히 아이린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더욱 재미있는 건 워낙 빚쟁이들에게 시달림을 당한 아이린이기에 그들의 얼토당토한 말에도 제대로 대꾸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이 제이크는 마치 제 집처럼 너무도 당당하게 걸어 나와서 아이린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러고는 오랜만에 찾아온 집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우와, 그렇게 많이 변하지는 않았네.”

“그러게요. 저는 많이 변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맞습니다. 그곳에서 생활이 워낙에 길었어야 말이죠.”

세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랜만에 집 구경을 했다. 주위에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그들을 저지하지 못했다. 너무도 당당했기에 차마 말도 걸지 못했다.

그때 네빌 집사가 아이린에게 넌지시 다가왔다.

“아가씨, 침착하십시오. 어쩌면 채플 백작가에서 보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농간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네빌 집사의 말에 아이린의 정신이 번쩍 들고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채플 백작이 아니더라도 영지를 노리는 자들은 너무 많다. 그들 중 누군가가 장난을 치는 거라면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꼬투리가 잡히면 큰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사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네요.”

아이린은 결심이 섰는지 집 구경을 하고 있는 제이크에게 다가갔다. 베일 기사단장이 그녀 옆에 바짝 붙어 섰다. 혹시라도 아가씨가 위험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아이린이 한창 집 구경에 빠져 있는 제이크를 보며 말했다.

“누구의 명을 받고 이런 장난을 치는지 모르겠지만 다치지 않아 다행이에요.”

아이린은 짐짓 대범하게 말을 했다. 그녀의 말에 제이크가 힐끔 쳐다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흥, 뭔 말이야. 누구의 명이라니. 그리고 다치긴 누가 다쳐. 고작 이 정도의 일에 다쳐서야 어찌 기사라고 할 수 있겠냐고.”

제이크는 갑옷에 새겨진 세 개의 붉은 홍염의 문양을 쓰다듬으며 잘난 척을 했다.

“그럼요.”

“당연하죠. 고작 그 정도로 천하의 도련님이 다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폴과 필이 맞장구를 치며 제이크를 추켜세워 줬다. 그 말을 듣는 아이린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귀족의 체면상 싸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알겠어요. 정말 대단하신 분인 것 같네요. 어쨌든 이곳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 일단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하죠.”

아이린의 말에 제이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무너지다니?”

“저기 벽 안 보이세요? 완전히 무너졌잖아요. 나머지도 곧 무너질지 모르니 자리를 옮기자고 하는 거예요.”

아이린이 가리킨 방향을 보며 제이크가 피식 웃었다.

“아, 저곳! 저곳은…… 아니다. 어쨌거나 내 연무장이 무너지는 꼴은 못 보지.”

그 말을 하고는 몸을 돌려 지하 연무장 입구에 섰다. 그러고는 구멍이 뻥 뚫린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팟! 파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서진 잔해들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뚫린 벽을 막기 시작했다. 잠시 후 조금 전까지 뚫려 있던 벽이 마치 새 것처럼 막혀 버렸다. 그 모습에 아이린은 깜짝 놀라며 입이 벌어졌다.

네빌 집사도, 베일 기사단장과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직접 두 눈으로 목격을 했으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제이크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한 후 아이린을 보며 히죽 웃었다.

“어때? 이 정도면 말끔하지!”

“아, 아니. 지, 지금 무얼 한 거죠?”

“보면 몰라? 구멍 막았잖아.”

“그러니까… 어떻게?”

아이린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듯 말을 했지만 제이크는 별일 아니란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폴과 필이 나서며 호들갑을 떤다.

“저건 도련님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데요.”

“맞아, 새 발의 피지.”

“시끄러!”

제이크가 나무라는 듯 말했지만 얼굴은 밝은 표정이다.

“칫, 기분 좋으시면서.”

“괜히 우리에게 화를 내.”

폴과 필이 투덜대며 말했다. 그때 제이크의 날카로운 눈빛이 두 사람에게 향했다. 그러자 폴과 필이 곧바로 입을 굳게 다물며 딴청을 피웠다.

제이크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아이린을 보았다. 그는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흐흐. 뭐, 별것 아닌 거야. 그리 놀라지마.”

“아, 아니 그래도…….”

별것 아니라고 하지만 아이린이 보기에는 정말 대단한 능력이었다. 놀란 두 눈을 껌뻑거리고 있을 때 실실 웃던 제이크가 바싹 다가가며 속삭였다.

“구멍은 막았지만 지하 연무장은 삭막하니 일단 자리를 옮겨 보실까? 예쁜 아가씨?”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린의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급히 뒤로 물러선 아이린이 약간 떨린 목소리로 말했다.

“무, 무슨 짓이에요…….”

“무슨 짓이냐?”

베일 기사단장도 재빨리 아이린 앞에 서며 근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제이크는 자신은 아무 짓도 안 했다는 듯 두 손을 올리며 능글맞게 말했다.

“뭐야. 자리를 옮기자고 말한 것뿐인데 웬 호들갑?”

하지만 베일 기사단장은 더욱 경계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아이린이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베일 기사단장에게 말했다.

“베일 경, 괜찮아요. 물러서세요.”

“아가씨!”

“전 괜찮다니까요.”

아이린의 강한 말투에 베일 기사단장이 옆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언제라도 뛰쳐나가 아가씨를 보호할 태세는 갖추었다. 제이크는 그를 힐끔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아이린을 보며 말했다.

“그럼 여기서 이야기해?”

“아, 아뇨. 나, 날 따라오세요!”

아이린이 급히 말을 하며 몸을 돌렸다. 그 뒤를 제이크가 뒤따르며 간단히 대답했다.

“그러지!”

아이린은 다급히 정신을 차리고 몸을 홱 하고 돌리지만 콩닥거리는 가슴은 멈추질 않았다.

3

집무실로 들어선 제이크는 내부를 확인하며 표정이 밝아졌다. 지난 날 이곳에서 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비록 아버지에게 야단맞는 기억밖에 없지만 말이다.

“흐음, 여긴 여전하군.”

많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몇 가지 가구의 배치와 약간 낯선 냄새밖에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제이크는 그리운 눈으로 하나하나 살폈다.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는데 어느 한 곳에 시선이 멈췄다.

그곳은 바로 휘장이 걸려 있는 벽이었다. 사무를 보는 책상 뒤쪽에 걸린 휘장이 예전에 보던 그 휘장이 아니었다. 분명 프라인 휘장은 저 그림이 아니었는데…….

“저, 저건 뭐지?”

제이크는 당황한 눈으로 아이린을 보았다. 아이린은 그런 제이크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다.

“몰라서 물어요? 우리 가문의 휘장이잖아요.”

아이린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에 제이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가문이라니! 우리 가문 휘장이 언제 바뀐 거야?”

“휘장이 바뀌다니요. 무슨 소리에요! 원래부터 골드리버였어요.”

“골드리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제이크의 머릿속에 골드리버란 이름을 가진 휘장은 없었다. 도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야?

“이해가 되지 않는군. 골드리버? 왜 저런 휘장이 우리 가문에 걸려 있냐고! 용맹한 프라임 가문은 블랙울프(검은 늑대)였어! 저 쥐꼬리만 한 새가 아니고 말이야!”

제이크는 당황한 나머지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린이 어이가 없는 모습이 되었다.

“이보세요! 말조심해요. 쥐꼬리만 한 새라니요! 그보다 잠깐만요.”

아이린도 흥분하며 말을 하다가 제이크의 말속에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녀는 재빨리 냉정함을 되찾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프라인 백작가문이라고 했나요?”

이성을 잃고 막 소리치는 제이크와는 달랐다. 아이린은 그 와중에도 어긋나는 대화의 이유를 찾아냈다. 흥분하며 떠들던 제이크도 뭔가 이상한지 다소 누그러진 말투로 대답했다.

“그래, 프라인 가문!”

“저, 정말이에요? 당신이 정말 프라인 가문의 사람인가요?”

그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제이크는 흠칫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다니까. 너 왜 그래?”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아이린도 깜짝 놀랐다. 카론 왕국이 무너지고 이곳의 터줏대감이었던 프라인 가문의 몰락. 그 후 프라인 백작가의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오늘 프라인 가문의 사람이라고 나타난 자가 나타났다. 지하 연무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 아이린은 그가 궁금했다.

“혹시 당신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이린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이크는 당당하게 큰소리로 자신을 밝혔다.

“난 프라인 백작가의 둘째 아들 제이크 프라인이다.”

“제이크?”

아이린은 이름을 중얼거리며 잠시 고민을 하였다.

‘프라인 백작가의 제이크란 이름. 맞아, 그였어.’

우연히 서류를 통해 확인한 그 이름이 떠오른 것이다. 아이린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

“혹시, 당신이 10년 전 실종됐다던 그 제이크인가요?”

“실종? 10년?”

고개를 갸웃하던 제이크가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뭐, 뭐야! 벌써 10년이 지났어?”

아이린의 말을 듣고는 제이크는 허탈해 했다. 그는 힘없이 옆의 소파에 털썩 앉았다.

“10년이라니……. 벌써 10년이 흐르다니…….”

제이크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를 보며 폴과 필이 다가와 위로를 했다.

“도련님, 10년밖에 안 지난 거잖아요. 그곳에서 생활한 것보다는 작게 흘렀네요.”

“힘내세요. 도련님은 여전히 젊어 보이니까요. 그래도 우리가 예상했던 기간보다는 작게 흘렀네요. 그치?”

“그럼! 난 한 50년은 흐른 줄 알았는데 말이야.”

“맞아, 킥킥킥.”

폴과 필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 듯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킥킥 웃어댔다.

순간 제이크가 고개를 치켜들며 살벌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폴과 필은 그대로 얼음이 된 것처럼 꼼짝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도, 도련님. 무섭습니다.”

“그렇게 눈을 뜰 필요는 없잖아요.”

“시끄러우니까 입 다물고 조용히 해. 만약 다시 한 번 떠들어 봐.”

제이크의 으름장에 폴과 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두 사람은 뒷걸음질을 치며 구석으로 조용히 물러났다. 제이크는 다시 한 번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린이 안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불쌍하기까지 했다.

‘가출했던 프라임 백작가의 둘째 아들이 10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어. 나도 서류에 적힌 것만 봐서 자세한 것을 몰랐는데 진짜였어. 그런데 골치 아프게 됐네. 어떻게 말하지?’

아이린의 얼굴이 깊은 수심으로 가득했다. 에페로 자작가문이 이 성을 산 지 3년이 지났다. 그동안 이 성의 전 주인이 누구인지,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자료를 통해 확인을 했다. 그 자료 속에 제이크의 이름도 있었다. 그래서 아이린은 제이크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성의 주인이 바뀐 지도 어언 3년이 지났다. 만일 프라인 백작가가 여전히 존재한다면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렸을 것이다. 그런데 프라임 백작가는 카론 왕국의 멸망과 함께 사라진 지 5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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