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헬 나이츠 1권 (6화)
Episode 01 에페로 자작가의 위기(3)
괴성을 지르며 책상 위에 놓인 책들과 서류들 그리고 촛대까지 모조리 집어 던졌다.
쨍그랑, 우당탕탕!
마치 미친 여자처럼, 아니, 광분한 여자처럼 집무실에 있는 잡다한 집기들을 던지며 바닥에 내팽개쳤다.
“이따위 것……. 도대체 날 보고 어쩌란 말이야. 도대체 날 보고!”
아이린은 분노 섞인 말투를 내뱉으며 집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쉽게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지 책상에 두 주먹을 쥐고는 강하게 내려쳤다.
쾅! 쿠르르릉!
그와 동시에 집무실이 흔들렸다. 아이린은 깜짝 놀랐다.
“뭐, 뭐지? 내 힘이 너무 셌나?”
그녀가 아리송하게 머리를 가로젓고 있을 때 집무실 문이 열리며 네빌 집사가 들어왔다. 그는 곧바로 아이린을 불렀다.
“아, 아가씨!”
네빌 집사의 모습에 아이린은 약간 부끄러운지 얼굴에 홍조를 띠며 말했다.
“내, 내 목소리가 조금 컸나요?”
아이린은 자신이 악을 질러 들어온 줄 알고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집사가 들어온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크,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라니요……?”
“지하 연무장이 무너졌습니다.”
“네에?”
아이린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서, 설마 조금 전 나 때문에?’
아이린은 마치 자신이 악을 지르고 두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친 그 충격으로 지하 연무장이 무너진 줄 착각하고 있었다.
“이, 이를 어째?”
아이린은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으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Episode 02 벽에서 나온 사람들 (1)
1
아이린과 네빌 집사는 급히 지하 연무장으로 향했다. 지하 연무장에 도착하자 기사들과 하녀들이 잔뜩 모여 있다. 그들 모두 굉음에 깜짝 놀라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무슨 일이지?”
“지하 연무장이 무너졌다는군.”
“이러다가 성도 함께 무너지는 것 아냐?”
하인들과 하녀들은 저마다 걱정스런 말을 꺼내며 불안해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까지 성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을 들은 네빌 집사가 아이린을 한번 쳐다보고는 하인들과 하녀들에게 시선을 던지며 급히 말했다.
“왜 이리 소란들이야.”
네빌 집사의 말에 하인과 하녀들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나타난 아이린을 보며 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 아가씨.”
“아가씨.”
아이린은 그들의 인사를 받고는 급히 지하 연무장의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네빌 집사는 손을 휙휙 저으며 소리쳤다.
“모두 물러서라.”
네빌 집사의 말에 모여들었던 하인들과 하녀들이 급히 양쪽으로 몸을 뺐다. 길이 뚫리자 아이린이 급히 이동했다. 지하 연무장에는 몇 명의 기사가 나와 있었다.
그 가운데 베일 기사단장을 발견했다. 아이린은 급히 베일 기사단장에게 다가갔다.
“무, 무슨 일이죠?”
베일 기사단장이 바로 보고를 했다.
“저도 방금 도착을 해서 상황을 파악 중입니다.”
“그래요?”
아이린은 걱정스런 얼굴로 굳게 닫힌 지하 연무장 입구를 보았다.
“혹시 지하 연무장에서 수련하는 사람은 있었나요?”
아이린의 물음에 베일 기사단장이 급히 말했다.
“아뇨, 대부분 야외 연무장에 있었습니다.”
“다행이에요.”
아이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 누군가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럼 다들 무사한 거죠.”
“아직 확인은 못했습니다.”
“그럼 어서 확인을 해야죠.”
아이린이 말했지만 네빌 집사의 표정은 심각했다. 아이린이 그를 보며 물었다.
“네빌 집사님. 무슨 걱정이라도…….”
“아, 아닙니다. 아가씨.”
네빌 집사가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말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조금 전 그 충격은 분명 지하 연무장이 무너진 소리였다. 만약 지하 연무장이 무너졌다면 지반이 흔들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쩌면 자작성 자체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네빌 집사는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그렇다고 이 사실을 곧바로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안 그래도 채플 백작가에서 다녀간 사람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아이린이었다.
이런 상태인데 또다시 걱정을 안겨 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여기 모인 하인들과 하녀들에게도 불안감을 심어 줄 필요도 없었다. 당분간은 말이다.
‘그래, 나중에 조사해 봐야겠다. 보수가 가능한지 아닌지 말이야. 우선은 나 혼자만 알고 있자. 나중에 확인을 한 후 보고해도 늦지 않아.’
생각을 마친 네빌 집사는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베일 기사단장의 눈빛이 바뀌며 조심스럽게 아이린에게 다가갔다.
“저, 아가씨.”
“네? 무슨 일인가요, 베일 경?”
아이린이 베일 기사단장을 보며 물었다. 베일 기사단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저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네에? 인기척이요?”
아이린과 네빌 집사는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조금 전에는 지하 연무장에서 수련하는 사람이 없다고 그랬잖아요.”
“네에, 그랬습니다만…….”
“그런데 어째서 인기척이 있을 수 있나요?”
“혹시 제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베일 기사단장이 난처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이린의 눈동자가 더욱 커졌다. 그녀는 급히 네빌 집사를 보며 말했다.
“네빌 집사님. 지금 빨리 인원을 확인해 보세요. 베일 경도 기사와 병사들을 체크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재빨리 인원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고, 아이린은 초조한 얼굴로 지하 연무장 입구를 바라보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네빌 집사와 베일 기사단장이 돌아왔다.
“어떻게 되었나요?”
먼저 네빌 집사가 말했다.
“성 안에 있는 식솔들은 다 있습니다.”
곧바로 베일 기사단장도 답했다.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병사들 빼고는 다 있습니다.”
“그래요?”
아이린은 의문이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지하 연무장 입구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안에 있는 자는 누군가요?”
“…….”
네빌 집사와 베일 기사단장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들도 모르겠다는 의사였다. 그러다가 베일 기사단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아크 도련님께서 실종된 이후 이곳은 거의 사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아가씨. 열쇠도 제가 보관하고 있어서 저를 거치지 않고는 이곳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네빌 집사의 말처럼 지하 연무장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안에…….”
아이린이 중얼거릴 때 네빌 집사가 베일 기사단장을 보며 급히 물었다.
“베일 경 자네가 잘못 느낀 것이 아닌가?”
베일 기사단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지금도 기척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서 말입니다.”
“그런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아이린이 이맛살을 찌푸리지만 베일 기사단장이 절대 거짓을 아뢰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게다가 워낙 황당한 말이지만 오랫동안 가문을 위해 일한 기사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 몰래 안으로 들어갔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문이 잠겨 있는 어떻게? 어느 누가?
이런 의문들이 계속해서 생겨났지만 이대로 그냥 가만히 지켜볼 수도 없었다. 인기척이 느껴지는 이상 안을 확인해 볼 필요성이 있다. 아이린은 급히 네빌 집사에게 말했다.
“지금 열쇠는 가지고 있나요?”
“네, 아가씨.”
“어서 문을 열어 보세요.”
“하나, 아가씨. 위험할 수 있습니다.”
네빌 집사가 걱정스런 얼굴로 되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지하 연무장이 무너졌다면 혹여 제2차 붕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위험 유무를 확인한 후 최소한의 인원으로 붕괴 유무를 확인할 심산이었다. 그런데 지금 열어 보라는 것은 아가씨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린은 단호했다.
“괜찮아요. 어서 열어 보세요.”
잠시 머뭇거리던 네빌 집사가 허리에 찬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후 몇 개의 열쇠들 중 하나를 선택한 네빌 집사는 지하 연무장 문의 열쇠 구멍에 넣었다. 딱 맞게 들어간 열쇠를 네빌 집사는 망설임 없이 돌렸다.
찰칵!
거친 금속음이 들렸다.
“잠시 뒤로 물러나십시오.”
베일 기사단장이 아이린과 네빌 집사를 뒤로 물리게 한 후 지하 연무장 문의 손잡이를 잡고 힘껏 당겼다.
끼이이익!
거친 문소리와 함께 먼지가 우두둑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윙윙 바람 소리가 들려왔고 메케한 공기가 빠져나왔다. 곰팡이 냄새인지 아니면 습기가 차 있어서 그런 것인지 별로 좋지 않은 냄새였다.
아이린은 손을 들어 코를 막았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그때 지하 연무장 안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왜 이제 오고 난리야!”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아이린을 비롯한 베일 기사단장, 네빌 집사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2
어두운 지하 연무장에서 들린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베일 기사단장은 잔뜩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아이린과 네빌 집사도 마찬가지다.
그때 발자국 소리가 들리며 입구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베일 기사단장은 잔뜩 경계를 하며 지켜본다. 잠시 후 나타난 모습은 건장한 청년의 모습을 한 남자였다. 20대 초반의 모습일까?
다소 거친 검은 갑옷과 허리에는 검을 찬 기사의 모습이었다. 얼굴은 제법 준수했으며 머리는 어깨가지 내려오는 흑발이었다. 눈썹은 짙었으며 눈망울은 푸른빛을 띠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 드러난 장난기는 감춰지지 않았다.
당당한 걸음의 청년은 바로 10년 전 자취를 감춘 프라인 백작가의 문제아 제이크였다. 그가 다시 지하 연무장을 통해 돌아온 것이다. 제이크는 입구로 와서는 약간 짜증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나, 뭔 놈의 먼지가 이리도 많아.”
밝은 곳으로 나온 그는 몸에 잔뜩 묻은 먼지를 털어 냈다. 그러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러 사람의 시선을 느끼고는 하던 것을 멈추고 히죽 웃으며 손을 들어 인사한다.
“아, 모두들 안녕!”
그 모습에 약간 황당한 얼굴인 된 아이린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누구시죠?”
“엥? 그러는 넌 누구야? 못 보던 하녀인데?”
제이크는 솔직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서 자신 앞에 나타난 여자가 사라지기 전에는 못 봤던 인물이기에 당연히 새로 들어온 하녀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베일 기사단장이 발끈하며 아이린의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하녀라니, 말조심하라!”
“하녀 아냐? 그러면 누구지?”
제이크가 고개를 갸웃하며 아이린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역시 하녀라고 하기에는 얼굴이 너무 고았다. 드레스까지 걸치고 있으니 영락없는 귀족집의 자녀였다.
“어라? 설마 나 없는 사이에 동생이라도 생겼나?”
제이크는 턱으로 손을 가져가며 곰곰이 아이린을 뜯어보았다. 아이린은 제이크가 자신의 전신을 훑어보자 약간의 수치심이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이크는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세히 보니까 아닌 것 같은데…….”
그때 제이크의 뒤로 두 명의 사내가 더 등장했다. 뚱뚱한 사내와 말랐지만 키가 큰 사내였다. 그들이 바로 제이크와 함께 사라졌던 폴과 필이었다.
폴이 먼저 입을 열고 곧바로 필이 말했다.
“에이, 설마요. 안 그래, 필.”
“당연하지. 우리가 사라진 지 이곳의 시간으로 얼마가 지났는지 모르지만 그 사이에 동생분이 태어났을라고요.”
“그렇지?”
제이크도 두 사람의 말에 동감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폴과 필은 제이크 뒤에 서서 모여 있는 사람들을 힐끔힐끔 살폈다. 그러고는 폴이 말했다.
“어라, 전부 다 못 보던 얼굴들인데요.”
“그러게.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구나.”
폴과 필이 서로 마주보며 대화를 주고받을 때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린과 네빌 집사, 베일 기사단장은 어이가 없는 얼굴이 되었다.
특히 아이린은 갑자기 지하 연무장이 무너진 것도 이상한데 전혀 사용하지 않는 곳에서 사람이 턱하니 나타나 다짜고짜 자길 보며 하녀라고 하며 이곳이 마치 자기네 집인 것처럼 떠들고 있는 세 명을 보니 정말 기가 찼다.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죠? 어째서 남의 연무장에 함부로 들어와 있는 거죠?”
아이린이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제이크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 남의 연무장? 내가 없어진 사이에 아버지가 벌써 다른 사람에게 연무장을 내준 거야?”
그 말을 듣고 있던 아이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이 연무장은 아크 오빠가 사용하던 곳이라고요!”
“아크? 그 녀석은 또 누구야? 니들 아는 녀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