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2화 (2/125)

# 2

헬 나이츠 1권 (2화)

프롤로그 (2)

“되었다. 그만 물러가거라.”

“싫습니다. 형과 누나들은 보내 주면서 왜 저는 안 보내 주시는 겁니까, 왜요? 저는 그들과 달라서요? 아님 다른 배속에서 태어나서 그런 것입니까? 그래서 지금 차별하시는 거냐고요.”

“도련님!”

알렌집사가 강하게 말을 하며 팔을 붙잡았다. 제이크는 그런 알렌집사의 팔을 뿌리쳤다.

“이거 놓으세요!”

프라인 백작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이, 이놈이 애비에게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지. 어찌 그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선 그는 오른손이 올려졌다. 금방이라도 제이크의 뺨을 후릴 태세였다. 제이크도 지지 않고 눈을 부라리며 프라인 백작을 노려봤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알렌집사가 초조한 얼굴이 되었다.

두 사람이 한동안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프라인 백작의 손이 내려갔다. 그는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물었다.

“제이크. 네가 거기 가서 뭘 할 것이냐?”

“할 것? 그, 그거야 그곳에 들어가 보면 할 것이 많겠죠.”

제이크가 말을 얼버무렸다.

“그럼 좋다. 다시 한 번 물으마.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아니, 꿈은 무엇이냐?”

프라인 백작은 제이크를 응시하지 않고 계속해서 물었다. 제이크는 계속되는 물음에 확실한 답을 내지 못했다.

“꿈? 내가 원하는 것?”

‘그야 당연히 왕실 아카데미 졸업생이라는 간판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거지.’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말했다가는 절대로 보내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쉽게 답변을 하지 못했다. 잠깐 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제이크가 서서히 입을 연다.

“꿈이야. 왕실 아카데미 들어가서 충분히 생각하면 되죠. 어쨌든 그곳에서 제가 원하는 것을 찾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불같이 화를 내던 제이크도 아버지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풀렸다. 게다가 애원까지 하며 조르기 시작했다.

“저도 보내 주세요. 네? 아버지.”

계속해서 조르자 프라인 백작이 펜을 놓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몹시도 슬퍼 보였다.

“왕실 아카데미에 그리도 가고 싶으냐?”

“네!”

“좋다. 그럼 한 가지 조건을 걸겠다. 할 수 있겠느냐?”

“네, 할 수 있어요. 조건이 뭔데요?”

제이크는 조건을 들어보지 않고 냉큼 승낙을 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왕실 아카데미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할 것만 같다.

“후후, 알겠다.”

프라인 백작은 옆의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서 하나의 책자를 꺼내 제이크에게 주었다.

“이것은 우리 프라인 백작가문의 비전검술이다. 그것을 완벽하게 익힌다면 너를 왕실 아카데미에 보내 주겠다.”

제이크가 얼른 책자를 받았다. 한번 쫘르륵 살핀 후 다짐을 받아 내려는 듯 비장한 눈길로 말했다.

“정말이죠. 여기 있는 검술을 다 익히면 보내 주시는 겁니다.”

“약속하마.”

“약속하신 거예요. 그럼 부탁이 있어요.”

“부탁?”

“네, 아버지께서 수련하시는 지하 연무장을 빌려 주세요.”

단호히 말을 하는 제이크. 그 모습에 약간 어이가 없어진 프라인 백작이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려무나. 단, 연무장에 있는 것들을 함부로 만지거나 건드리지 말거라. 오직 수련만 해야 한다.”

‘아버지께서는 자신만의 연무장을 망가뜨릴 것 같아 걱정하시는구나. 하긴 내가 좀 많이 사고 쳤지. 히히히.’

제이크가 속으로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절대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요.”

“오냐, 알겠다.”

“그럼, 허락하신 겁니다.”

제이크는 신이 나게 말을 한 후 곧바로 집무실을 나갔다. 제이크가 나가고 프라인 백작은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그때 알렌 집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백작님. 가문의 비전검술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걸 막내 도련님께서 익힌다는 것은 좀…….”

“알고 있네. 하지만 녀석을 붙잡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네. 그리고 검술을 익히면서 차츰 알게 되겠지. 세상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말이야.”

“그래도 괜찮을까요?”

프라인 백작은 놀리던 펜을 멈추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괜찮겠지.”

집무실을 나선 제이크는 옷에 묻는 먼지를 손으로 털며 걸어갔다.

“내가 못할 줄 알아. 까짓것 해 준다고. 꼭 검술을 익혀서 왕실 아카데미에 가고 말 테다.”

제이크는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사실 제이크도 검을 차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검은 단지 장식용이다. 마을에 나가서 여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장식용 말이다.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차고 있으면 폼이 나기 때문이다.

“이게 우리 가문의 비전검술이란 말이지.”

제이크는 중얼거리며 책자를 펼쳤다. 난해한 그림과 함께 빼곡히 글씨가 적혀 있다. 그는 그것을 살피며 걸어갔다. 그러던 중 뭔가 강하게 부딪치며 뒤로 엉덩방아를 찍었다.

쿵!

“아얏! 어떤 자식이야.”

제이크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제이크의 눈이 크게 떠졌다.

“혀, 형.”

제이크랑 부딪친 사람은 바로 프라인 백작가의 장남인 제롬 프라인이었다. 제롬은 쓰러진 제이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짙은 눈썹과 매서운 눈으로 내리깔며 제이크를 응시했다. 마치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눈빛이다.

“칠칠치 못한 녀석!”

제롬은 그 한마디만 남기고는 제이크를 스치듯 지나갔다. 순간 제이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무실로 들어가는 제롬을 보았다. 눈빛을 사납게 하며 입을 연다.

“쳇, 재수 없는 녀석.”

제롬은 언제나 저랬다. 말도 별로 없다. 항상 제이크를 무시하며 상대도 해 주지 않았다. 하긴 프라인 백작의 장남으로써 그는 앞으로 백작가를 이끌 후계자가 아닌가.

하지만 제이크는 형이지만 제롬을 무척 싫어한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는 언제나 자신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조롱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것이 제이크는 정말 맘에 들지 않았다.

“아무튼 정말 재수 없다니까.”

제이크가 손을 탁탁 털며 중얼거릴 때 뒤쪽에서 여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누가 재수 없다는 거니.”

그 말에 제이크는 또 한 번 놀랐다. 몸을 돌리자 환한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파란색 눈망울에 탱탱한 볼살을 소유한 그녀는 바로 셋째인 마를렛 프라인이었다.

“자, 작은 누나!”

“안녕, 제이크!”

“작은 누나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그거야, 제이크가 보고 싶어서 왔지.”

“칫, 거짓말!”

“호호호, 거짓말 아냐. 잠깐, 너 얼굴이 이게 뭐니. 또 누구랑 싸웠구나.”

마를렛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손을 들어 제이크의 얼굴에 난 상처를 만졌다. 그러자 제이크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괘, 괜찮아.”

“어디 봐봐! 어떻게 된 거니.”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니. 이 상처 좀 봐!”

“이 까짓 상처는 아무렇지도 않아. 내가 앤가.”

제이크가 투덜거리며 말하자 마를렛은 그 모습이 귀여운지 크게 웃었다.

“호호호. 그럼 애지, 어른이니.”

“작은 누나!”

제이크가 소리쳤다. 마를렛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방에 가 있어. 바로 아버님 만나 뵙고 네 방으로 갈게.”

“내, 내 방에는 왜?”

제이크가 깜짝 놀랐다.

“왜긴, 이 누나가 약을 발라 줘야지.”

“싫어! 내가 알아서 해!”

“왜 그러니? 예전에는 이 누나가 자주 발라 주고 그랬잖아.”

“그, 그때는…….”

제이크가 말을 얼버무렸다.

마를렛이 환한 미소로 말했다.

“방에 가 있어. 누나도 곧 갈 테니까.”

마를렛이 그 말을 하며 집무실로 뛰어갔다. 제이크는 그런 작은 누나를 보며 얼굴이 붉어졌다.

마를렛 프라인.

제이크와 가장 친한 사람이다. 나이가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서 그런지 무척이나 제이크를 챙겨 준다. 어릴 적 상처가 생기면 꼭 마를렛이 약을 발라 줬다. 맛있는 것 있으면 제일 먼저 제이크를 챙겨 줬다.

그래서 제이크는 엄마 다음으로 작은 누나를 좋아한다. 하지만 왕실 아카데미로 간 후에는 잘 만나지 못했다. 뭐가 그리 바쁜지 한 달에 한번 내려올까말까 했다.

그런데 오늘 주말도 아닌데 집에 왔다. 제롬 형과 함께 말이다.

“무슨 일이지?”

제이크가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뭐, 일이 있어서 왔겠지.”

제이크는 별일 아니라는 듯 신경을 끊었다. 그리고 떨어진 책자를 주워들고는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뛰어갔다. 어쨌든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자신도 왕실 아카데미에 가기 위해서는 어서 빨리 가문의 비전검술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형과 누나들이 있는 왕실 아카데미에 가고 말 테야!”

그는 중얼거리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복도를 돌아 자신의 방문 앞에 온 제이크는 투덜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흥! 내가 그깟 검술 하나 못 익힐 것 같아? 두고 봐, 나만 차별한다 이거지.”

씩씩거리며 방에 들어선 제이크는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러니까 자신이 데리고 있는 종복인 폴과 필이 바닥에 널브러져 잠을 자고 있었다. 그것을 본 제이크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어라! 이것들 보게.”

남은 실컷 아버지에게 야단맞고 왔는데 종복 녀석들이 퍼질러 자고 있으니 기가 막혔다. 게다가 얄밉기도 했다. 제이크는 퍼질러 자고 있는 두 종복에게 다가갔다.

“야, 빌어먹을 자식들아! 주인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감히 퍼질러 자! 일어나! 어서 일어나지 못해!”

제이크는 폴과 필을 발로 걷어차며 소리쳤다. 폴은 키는 작은데 몸이 뚱뚱했고, 필은 크고 왜소한 체격을 소유한 꺽다리였다.

그런데 알고 보면 두 사람은 쌍둥이다. 이렇게 체격이나 얼굴이 다른데 쌍둥이라는 것이 의심스럽다. 하나 진짜로 같은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였다.

제이크의 발길질 충격에 폴과 필이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폴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으아아암! 도련님 오셨어요.”

곧이어 필이 살짝 짜증을 내며 말한다.

“왜 오자마자 발로 차세요. 아주 곤히 자고 있었구만.”

필이 말하는 모습에 더욱 화가 난 제이크가 버럭 소리 질렀다.

“네 녀석들이 지금 잠을 퍼질러 잘 때야! 그리고 이 주인은 아버지께 실컷 야단맞고 왔는데 나의 종복이라는 녀석들이 주인도 오지 않았는데 바닥에 널브러져 자고 있어야겠냐고.”

그러자 폴이 황급히 손을 저었다.

“에이, 잠을 자다니요. 그냥 깜빡 졸았어요, 깜빡. 조금 전까지 도련님을 기다렸다니까요. 그치 폴!”

“그, 그럼, 당연하지.”

두 사람은 쿵짝이 잘 맞는 듯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자 제이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으구, 말이나 못하면.”

“헤헤, 누굴 닮았겠습니까. 그보다 백작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폴이 제이크 옆으로 다가와 더러워진 옷 벗는 것을 도와주며 물었다. 폴의 도움을 받으며 제이크가 약간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보면 모르냐. 호되게 야단맞았다.”

“에이, 한두 번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제 만성이 되었을 텐데…….”

새 옷을 가지고 오는 필이 말했다. 그러자 심각해진 제이크가 새 옷으로 갈아입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 옆으로 폴과 필이 섰다.

“이번에는 달라.”

제법 근엄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제이크. 그런 의외의 모습에 폴과 필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 사람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폴과 필도 심각해진 도련님을 보며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다. 그러기를 약 10분이 흘렀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어떻게든 바꾸기 위해 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저, 저기. 도련님?”

그 순간 공기 주머니가 한꺼번에 공기를 뱉어내듯 제이크의 입에서 숨이 몰아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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